3‘밀림’에 대한 기대가 깨지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모잠비크 해협을 건너 마다가스카르 상공에 들어선 순간 나는 이미 알았다. 마다가스카르는 밀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바나 평원에 가깝다는 사실을. 1950년만 해도 전 국토의 65%를 차지하던 밀림은 2010년에는 10%로 줄었다. 농사를 위해 숲을 태웠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보니 지금도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을 태우는 연기가 곳곳에서 보였다.
사바나로 변해버린 밀림의 왕국
하지만 마다가스카르가 진화와 동물의 왕국이라는 면모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촬영과 별도로, 개인적인 관심사인 생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영화로 친숙한 영장류였다.
영화 ‘마다가스카’에서는 뉴욕 동물원을 빠져나온 동물들을 여우원숭이들이 맞아준다. 숲은 여우원숭이로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는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사방에서 여우원숭이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여우원숭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마다가스카르 북쪽에서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로코베국립공원에서야 처음으로 여우원숭이를 만났다.
먼저 원주민들이 ‘마카코마카코’라고 부르는 검은여우원숭이. 암컷은 연한 갈색이며 수컷은 검정색이다. 대부분의 여우원숭이와 마찬가지로 암컷 중심의 모계사회를 이루고 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유명한 원숭이가 있다. 마가가스카르의 상징인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라고도 한다. 이 여우 원숭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의 바위틈에 산다.
섬의 북쪽에서는 스포르티브여우원숭이(왼쪽 사진)를 만날 수 있었다.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나무에 매달려 있었는데, 우리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졸음에 겨워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 원숭이는 야행성이다. 스포르티브여우원숭이가 졸고 있던 나무와 가까운 곳에서 보아뱀을 만났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그림으로 보여준 것처럼 코끼리를 삼키지는 못하겠지만 여우원숭이를 삼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낮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야행성 여우원숭이의 가장 위험한 천적은 바로 보아뱀이다. 우리가 만난 스포르티브여우원숭이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청산 먹는 원숭이와 ‘집착의 나무’
마다가스카르 밀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은 거대한 고사리처럼 생긴 목본 양치류다. 그런데 라누마파나국립공원에는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다섯 가지 대나무 가운데 두 가지는 마다가스카르 고유종이다. 이 가운데 하나인 자이언트대나무의 죽순에는 청산(HCN)이 들어 있어서 사람이 먹으면 5분 안에 죽는다. 그런데 1986년에야 처음 발견된 큰대나무여우원숭이는 이것을 먹을 수 있다.
현재 라누마파나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큰대나무여우원숭이는 단 한 쌍. 더 심각한 문제는 둘 사이가 부녀 관계라는 것이다. 이 상태로 두면 이곳의 큰대나무여우원숭이는 멸종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1차적으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집을 짓고 불을 피우는 데 사용하기 위해 대나무를 베어가면서 큰대나무여우원숭이가 살 수 있는 곳이 줄었기 때문이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도 먹는 작은대나무여우원숭이와는 달리, 큰대나무여우원숭이는 오직 대나무만 먹는다는 문제도 있다. 집착은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해롭다. 집착의 무서움은 또 있다. 외국 관광객이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바오밥 나무다.
“왜 외국 사람들은 바오밥 나무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거죠?” 현지 가이드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기 때문이겠죠.” “거기에 좋은 나무로 나오나요?” “아뇨. 행성을 파괴하는 나무로 나옵니다.” “그렇죠! 나쁜 나무로 나오는게 당연해요!”
왜 그렇게 바오밥 나무를 미워하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아주 건조한 일부 지역에서만 사는 바오밥 나무는 주변의 수분을 엄청나게 빨아들여서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덩치는 크지만 만드는 그늘은 보잘 것이 없다. 게다가 죽으면 수분이 빠져나간 나무줄기는 물을 흠뻑 머금었다가 말라버린 종잇조각처럼 되기 때문에 목재로도 사용할 수 없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이 바오밥 나무를 좋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코끼리발’이라는 식물은 바오밥 나무와는 상관없는 종이지만 바오밥 나무처럼 수분에 욕심이 많은 나무다. 그래도 보기에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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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지역에 사는 코끼리발. 뭉툭한 모습이 귀엽지만, 사실은 주변의 수분을 모두 빨아들이는 욕심 많은 나무다.]
카멜레온은 정직한 동물이다
어느 날 오전 9시쯤이었다. 용변을 보기 위해(화장실이 따로 없어 다들 숲에서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들어간 숲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빨간 팬더카멜레온을 보았다. 암컷이었다. 이 나무에 암컷이 있다는 것은 같은 나무에 수컷이 있다는 뜻이다. 수컷은 암컷보다 훨씬 크고 진한 초록색이다. 아직 아침이라 체온이 오르지 않아 이동이 느렸다. 쉽게 잡아서 만져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입 안은 호박죽처럼 진한 노란 색이었다.
흔히 카멜레온은 주변 배경에 따라서 피부색이 빨강에서 파랑까지 자유자재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전 TV 광고 때문에 생긴 착각일 뿐이다. 카멜레온의 피부색은 배경색이 아니라 체온에 따라 변한다. 햇볕을 쬐어 체온이 오르면 암컷은 진한 빨강이 되고 수컷은 진한 초록색이 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을 카멜레온에게 비유하곤 하는데, 카멜레온이 들으면 억울할 것이다. 카멜레온은 정직한 동물이다.
1억 살 땅, 2000살 사람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아시아라는 느낌이 든다. 코끼리, 사자, 기린 같은 거대한 포유류를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들의 생활모습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에 사람이 처음 온 것은 불과 2000년 전. 올해 발표된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왔고, 당시 약 30명의 가임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쌀농사를 지으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배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어, 말레이어와 사촌관계인 말라가시어를 사용한다.
은행 역할도 하는 소
마다가스카르의 소는 대부분 제부(Zebu)라고 하는 혹소다. 혹의 정체는 지방. 낙타와 마찬가지로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 영양분을 저장하는 곳이다. 해변가의 목동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소를 해수욕시킨다. 몸에 달라붙어 있는 해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고원지대의 바라 족에게는 은행이 없다. 그래서 소가 은행이나 마찬가지다. 소를 팔면 쌀을 살 수 있고, 쌀을 팔아 돈을 벌면 소를 산다. 남부 고원지대의 바라족은 소를 팔기 위해 수도 안타나나리보까지 수백 km의 길을 소를 몰고 가야한다.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인도양의 거센 파도를 넘어 커피콩과 목재를 수탈할 수 없었던 식민주의자들은 해안가를 따라 존재했던 석호를 연결해 600km에 이르는 거대한 팡갈란 운하를 만들었다. 팡갈란 운하는 마다가스카르 서부 해안의 젖줄이다.
운하를 따라 인구 수백~수천 명의 도시가 이어져 있다. 마치 그들에게는 춤 유전자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기회만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마다가스카르 동쪽에 위치한 팡갈란 운하에서 밤하늘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별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달의 모습도 우리가 보던 것과는 위아래가 바뀌어 있다. 정말로 지구가 둥근가 보다.
팡갈란 운하의 끝자락은 걸어서 건너도 될 정도로 얕다. 모래톱 너머로 인도양의 파도가 넘어 온다. 마다가스카르 어부들은 쪽배에 몸을 싣고 인도양을 나가야 한다. 보통 20km를 나가야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이렇게 파도가 셀때는 1km 정도밖에 나가지 못한다. 그나마 배가 없는 여인들은 그물을 안고 물속에 뛰어든다.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멸치 크기의 작은 생선 몇 마리를 건질 수 있다. 인도양 너머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다가스카르는 제주도처럼 화산폭발로 생겨난 화산섬이 아니다. 1억 50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남극과 함께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였다. 이후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지구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 됐다. 물론 그 이후 신생대에 많은 화산활동이 벌어졌다. 마다가스카르 말로 ‘큰 섬’이라는 뜻의 ‘누시베’는 화산섬으로, 11개의 칼데라 호가 있다. 또 마다가스카르 남부 지역에 위치한 이살루국립공원은 남북 400km에 이르는 거대한 평원 위에 솟아난 암석지대다. 평원은 해발 1000m 이상의 백악기 지층인데, 여기에 100~300m 솟아 있는 국립공원은 이보다 앞선 쥐라기 지층이다. 지구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알 수 있다.]
[우연히 남부 고원지대 바라 족을 만났다. 소를 팔기 위해 수백km 북쪽에 위치한 수도까지 걷고 있었다. 이들에게 소는 은행과 같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2000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왔다. 그래서 말도 생김새도 아시아인을 닮았고, 말도 인도네시아어나 말레이어와 비슷하다. 생활 모습도 친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