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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류기업’ 씨뿌리는 초전도 전도사

전자재료및소자연구실




“반도체 시대가 지나고 이제 곧 ‘초전도 시대’가 열린다. 반도체 시대의 일류 전자기업에 맞먹는 새로운 회사가 탄생할 수 있고, 선진국 진입도 앞당길 수 있다. 도전해 보지 않겠는가.”

2004년, 유상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후배에게 고온초전도 재료 벤처기업 ‘서남’ 설립을 권유하면서 했던 말이다.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이 야심 찬 한마디에는 사실 ‘믿는 구석’이 있다. 최고 수준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연구개발을 선도해본 경험이 있는 유 교수의 자신감이다.



연구 불모지에서 일약 최전선으로

초전도는 물질이 어떤 온도(물질마다 다르지만 대개 영하 138℃ 이하)에서 전기 저항이 갑자기 뚝 떨어져 사라지는 현상이다. 저항이 사라지면 전류를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전기 손실을 확 낮출 수 있어,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초전도 전동기(모터)를 만들면 무게나 부피를 10분의 1로 줄이면서도 힘은 더 크게 내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군함용으로 개발할 정도다. 풍력발전기를 만들면 작은 부피로 전력을 생산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초전도의 단점은 온도가 너무 낮아 연구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절대온도(약 영하 273℃)에 가까울수록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다루기가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보다 높은 온도(영하 243℃ 이상)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고온초전도다.

1992년 세계적으로 고온초전도 연구가 한창이던 때, 미국 유학과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막 마친 유교수는 일본 도쿄의 국제산업기술연구센터 초전도공학연구소(ISTEC -SRL)에서 연구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뭔가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죠. 아직 큰 성과가 없었어요.”

아이디어는 넘쳐서 머릿속은 새로운 생각으로 늘 가득 찼지만 실험은 번번이 실패였다. 뭔가 승부수가 필요했다. 당시 초전도 학계의 관심사는 고온초전도 재료의 응용으로 Nd123이라는 물질로 최고 성능을 구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 역시 무수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유 교수는 당시 연구소의 책임자인 초전도계의 석학 무라카미 마사토 박사에게 “3개월만 달라”며 홀로 연구에 돌입했다.

두 달이 지나고 약속한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수첩에 적어 둔 아이디어는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성공은 멀어 보였다. 무라카미 박사는 “국제학회가 얼마 안 남았으니 연구를 중단하고 미완성인 채로 발표하자. 이 상태도 훌륭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요. 어쨌든 실패한 아이디어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아이디어가 남았으니 1주일만 기다려달라고 했죠.”

유 교수는 초전도 물질을 일반 공기보다 산소가 적은 곳에서 공정 처리하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마지막으로 시도했다. 일주일 뒤, 극적인 결과가 나왔다. 전에는 꿈쩍도 않던 물질이 액체질소 안에서 영구자석과 강한 반발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전도 현상이었다. 같은 공법을 다른 물질에 적용하자 그 물질들도 초전도 현상을 보였다. 성공이었다. 유 교수는 이 연구로 원천 물질 특허를 확보했고, 이 현상을 보고한 첫 논문은 500번 이상 인용된 초전도 재료 분야의 ‘베스트셀러’ 논문이 됐다. 전세계 초전도 재료 연구의 물꼬가 트인 것은 물론이다.

“일본에서 꽤 유명해졌어요. 초전도 현상을 찾아보면 나오는 대표적인 사진이 영구자석을 공중에 띄우는 사진이죠? 저는 스모 선수까지 띄웠고, 그 모습이 텔레비전에도 나왔어요.”

한 번의 ‘세계 수준 연구’가 가져온 변화는 놀라웠다. 연구소 내에서 6명의 연구원들로 시작한 유 교수 연구팀은 곧 60억 원의 일본 국가 연구비를 지원받는, 40명의 연구원이 상주하는 거대한 연구그룹이 됐다.

“당시엔 저희가 하는 모든 연구가 다 새로운 길을 가는 연구였어요. 500번 이상 인용된 리뷰 논문을 하나 더 냈고, 100번 이상 인용된 논문도 거의 10편 가까이 냈죠. 연구자로서 남들이 안 간 길을 걸어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어요.”

국내 최고는 소용없다

유 교수는 파란만장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서울대 공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교수는 연구뿐 아니라 교육도 중요하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짜릿한 연구 경험을 학생들도 겪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독특한 교육철학을 세웠다. 바로 ‘연구 교육’이다.

“서울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모두 공부 면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인재들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이 꼭 연구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공부에 필요한 이해력이나 암기력 외에, 연구는 다른 능력을 요구합니다. 바로 창의력입니다. 이걸 깨워 진정한 연구자가 되게 하는 교육이 연구 교육입니다.”

이를 위해 유 교수는 ‘1000 논문의 법칙’을 강조한다. 자기 분야는 물론 인접 분야의 논문을 닥치는 대로 1000편만 읽어보라는 말이다. 그러면 자기 안에서 창의력을 가리고 있던 요소들이 치워지면서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했다. 문리가 트이듯 연구하는 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식견이 트이는 것이다.

“등단하는 소설가를 생각해 보세요. 선배 작가들의 글을 펼쳐놓고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쓰며 읽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연구팀이 쓴 논문을 넓고 깊게 읽어놔야 합니다.”

유 교수 자신이 유학 시절 이 방법을 실천했다. 매해 1000편의 논문을 읽었다. 그냥 읽은 게 아니라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그 부분을 정리한 뒤 지도교수를 찾아가 알 때까지 물어보며 정독을 했다. 한번은 복사기를 너무 많이 이용하는 걸 이상하게 여긴 학과장이 유 교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방에 논문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오히려 유 교수를 격려했다고 한다. 유 교수는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이 방법을 실천하길 권하고 있다.

국산 케이블형 초전도체로 세계를 제압한다

유 교수는 요즘 또다른 ‘세계 최초’의 길을 걷고 있다. 바로 효율 좋은 고온초전도 재료(선재)를 개발하는 일이다. 유교수가 일본에서 연구했던 재료는 모두 덩어리(벌크) 형태다. 하지만 발전기, 전선, 전동기 등 초전도 재료를 활용할 기기의 대부분은 긴 선재 형태를 선호한다. 현재는 외국만 일부 생산하고 있는데, 유 교수가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유 교수는 ‘서남’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공법으로 제조 효율이 외국의 2배 이상이고 값은 더 싸면서도, 한꺼번에 세계 최장(1km) 수준의 길이로 생산할 수 있는 선재 공정 원천기술 개발했다. 이미 각종 현상을 분석한 논문도 완성해 투고를 기다리고 있다.

“고온초전도는 반도체 시대 이후,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흔치 않은 분야입니다. 일부 대기업은 이미 미래 5대 개발품으로 선정했어요. 연구 개발에 더 많은 젊은 인재가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201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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