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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새는 여전히 진화의 증거


 

‘한국, 창조론자 요구에 항복하다(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6월 7일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는 박수빈 씨가 기고한 기사로 네이처 홈페이지를 뜨겁게 달궜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진화론과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진화론 교과서에 들어가야’ 86%

2009년 기독교계 단체인 창조과학회 교과서위원회와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를 통합한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각각 시조새와 말의 진화와 관련된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내용이 틀렸다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수신처로 ‘개정 청원서’를 보냈다. 각각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와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다’라는 주제다.

“사실 창조론자들이 생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 부분을 빼라는 요청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다만 이번에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게 문제죠.”

‘한국진화학회추진위원회(이하 진추위)’를 만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장대익 교수의 말이다. 장 교수의 말처럼 출판사 3곳에서 과학교과서의 관련 내용을 빼기로 했다.

물론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빠진 것도 아니고, 창조론이 들어간 것은 더욱 아니지만 파장은 컸다.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윤환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며 “외국의 동료들이 이 사실을 알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생물학 관련 과학기술자 회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474명의 86%는 출판사들이 시조새 내용을 삭제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은 ‘문제다’라고 답했다. 진화론이 과학교과서에 포함돼야 한다는 답변도 86%로, 삭제돼야 한다는 의견(11%)을 압도했다.

최근 진화 증거 교과서에 소개해야

시조새와 말이 왜 문제가 된 걸까. 시조새 화석은 1861년 독일 바바리아 지역 쥐라기 지층에서 처음 발견됐다. 약 1억 5000만 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까마귀만 한 크기다. 시조새는 이빨이 있고 긴 꼬리뼈에 앞발톱이 세 개가 있어, 두 다리로 걷는 육식형 수각류(獸脚類) 공룡에 가까웠지만 새처럼 온몸이 깃털로 덮여 있었다. 이 때문에 1868년 영국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수각류 공룡과 현생 조류의 중간적 특징을 갖는 화석들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진화의 상징이었던 시조새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 ‘네이처’에는 시조새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오히려 500만 년 정도 더 앞선 지층에서 발견된 조류 화석인 ‘샤오팅기아 정기’가 공개됐다. 연구자들은 “이들 화석을 비교 분석한 결과 시조새는 새보다는 공룡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시조새는 공룡과 조류를 잇는 중간 단계가 아니어서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진화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고생물학회 허민 회장(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은 “수각류 공룡에서 조류가 진화해 나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종의 생물이 나타나고 사라졌을 것”이라며 “시조새는 그 중 가장 원시적인 종의 하나”라고 말했다.

‘말의 진화’ 문제는 진화론의 결함이 아니라 현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화되면서 생긴 것이다. 현재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말은 5500만 년 전 개 크기의 동물인 ‘하이라코테리움’에서 단순히 몇 단계를 거쳐 곧바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진화가 진행됐다는 화석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학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말의 진화에 대해서 새롭게 이론을 정립했다. 시조새든 말이든 과거 내용을 기술한 교과서를 갖고 진화가 틀렸거나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장대익 교수는 “말의 진화도 새의 진화처럼 오랜 기간을 거쳐 수많은 종이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이뤄졌다”며 “교진추의 억지 주장은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교과서 집필자들은 수많은 진화 증거 가운데 교과 과정에 적합하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사례를 소개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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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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