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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고 설득하고 ‘꿀벌은 정치가'


작년 7월 과학동아 기획기사 ‘벌의 죽음’을 취재하기 위해 경남 함양의 한 동양꿀벌(토종꿀벌, 토봉) 농가를 찾았을 때다. 당시 2년째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바이러스 성 감염병이 유행해 전국의 동양꿀벌이 거의 다 죽은 상태였다. 30년 동안 매해 500개의 벌통을 키우던 농장주의 벌집도 전 해(2010년)에는 전부 폐사했고, 그 해에 키운 단 10통의 벌통 모두 감염이 된 상태였다. 더 이상 가망이 없었다. 벌들도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작은 벌통 입구에서 일벌이 나와 하얀 뭔가를 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세 마리가 힘을 합쳐 들기도 했다. 운반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키우던 애벌레였다.

“병든 애벌레를 버리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놀라운 행동이었다. 벌집 전체에 병이 퍼지는 일을 막기 위해, 다시 말해 집단의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엉덩이춤’ 부터 집짓기까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이 장면을 보면서 벌의 협업 방식에 관심이 갔다. 이런 ‘비상상황’에서도 군집을 살리기 위해 집단 행동을 했다면,
평소에는 얼마나 정교한 협업을 할 수 있는 걸까.

잘 알려져 있듯 일벌은 바깥에서 일하다 꿀이 있는 꽃을 발견하면 집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위치를 알린다. 이 때 사용하는 방법이 잘 알려진 벌춤이
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드는 ‘엉덩이 춤’을 추고 좌우로 빙글빙글 ‘8자 스텝’까지 밟는다. 작고 귀여운 벌이(물론 쏘이면 아프고 때로는 위독해지니 마냥 귀엽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사실은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어린 아이들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내용이 밝혀진 것은 의외로 꽤 최근의 일이다. 1944년 독일 뮌헨대의 동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가 처음 밝혀서 1973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몇 년 뒤, 프리슈의 제자인 마르틴 린다우어는 벌집을 관찰하다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춤을 추긴 하는데 평소처럼 벌집이 아니라 다른 벌의 등 위에서 춤을 추는 벌을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몸에는 꿀이나 꽃가루가 아니라 검댕이 가득 묻어 있었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뮌헨 시내는 여전히 폐허였다. 벌이 꽃이 아니라 이런 건물 잔해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는 뜻이다. 린다우어는 이들이 먹이를 구하러 간 게 아니라 이사를 위한 집을 구하러 다녔다고 생각했다. 돌아온 벌은 동료들에게 직접 찾아갔던 집터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린다우어의 연구는, 20년도 더 지난 1970년대에 대서양 건너 미국의 한 대학원생의 눈길을 끌었다. 바로 ‘꿀벌의 민주주의’ 저자인 토머스 실리 미국 코넬대 교수다. 당시 그는 취미 수준을 넘은 양봉가였는데, 의대 진학을 때려치우고 곤충사회학자 에드워드 윌슨 밑에 들어갈 정도로 벌에 매혹돼 있었다. 그가 보기에 린다우어의 연구는 아쉬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연구의 맥이 끊겼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설득하고 합의하고 ‘민주주의 꿀벌 사회’

20년의 시차가 있지만, 실리 교수는 린다우어가 처음 발견한 꿀벌의 ‘이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한 벌통을 놓고 실험을 하고, 이 ‘새 집터’를 살펴보는 정찰벌들의 춤 횟수와 격렬한 정도를 기록했다. 놀랍게도 실리 교수는 이들 정찰벌이 보고 온 것들을 서로 보고하고, 일종의 논쟁까지 벌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적의 집터를 본 벌은 춤 횟수가 늘어났다. 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본 집터가 최적이라고 확신하고, 그것을 적극 어필했다. 만약 반대의견이 줄어들고 동조하는 벌이 늘어난다면 그 장소가 새로 이사할 지점이 된다. 논쟁을 하고 의견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떠올리게 했다. ‘꿀벌의 민주주의’는 벌의 이런 행태를 집단지능의 한 예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꿀벌의 의사결정 과정을 고된 생물학 실험과정과 함께 소개한 과학책이다. 지식이나 결론 자체보다도 실험과 관찰을 한 과정이 흥미롭다. 만약 꿀벌의 행태 자체에 대해 좀더 쉽고 친숙하게 설명한 책을 원한다면 위르겐 타우츠의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를 찾아 읽으면 좋다. 10년 넘게 벌을 연구한 독일 과학자의 책으로, 초접사로 촬영한 다양한 꿀벌 사진과 쉬운 설명이 장점이다. 실리 교수가 ‘집단지능’, ‘민주주의’라는 사회학 용어로 표현한 꿀벌의 행태를 3000원‘초개체’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꿀벌의 민주주의’에는 현장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자신의 꿀벌 배설물 지식이 미국 정보국과 구소련 사이의 화학무기 공방전을 해결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한 직후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연구가 어떻게 예상치 않은 유용한 지식을 만들어내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의 혜택은 기초 연구에서 물거품처럼 솟아나오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74쪽).”

우리나라에서 꿀벌의 배설물을 연구하겠다고 하면 연구비를 타기는 커녕 이상한 사람 소리만 안 들어도 다행이다. 아니 이런 걱정조차 필요없을지 모르겠다. 곤충 연구 자체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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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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