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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에는 종종 유명한 과학자들의 부고와 추모기사가 실린다. 올해 1월에는 작년 11월 타계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추모기사가 실렸다. 세포 내 공진화 개념을 제안한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저자다. 동료였던 미생물학자 모셀리오 차이히터가 당차고 신념 깊은 여성 생물학자의 열정적인 학문 업적을 차분히 정리했다. 2010년 10월에는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를 추모하는 기사가 실렸다.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을 제안해 리처드 도킨스에게 영향을 미친 대학자로, 국내에도 ‘진화의 미스터리’ 등이 번역돼 있다. 기사도 도킨스가 직접 썼다.

이렇게 대가의 추모기사는 또다른 대가가 맡는다. 연구뿐만 아니라 글쓰기 역시 따라올 사람이 없는 대가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글솜씨를 갖춘 동료 과학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가장 심했을 과학자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만한 이가 또 있었을까. 굴드는 “진화는 일정한 속도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갑작스럽게 계단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의 ‘단속평형설’을 주장해 다윈 이후 정체에 빠져 있던 진화론을 ‘진화론 버전2’로 탈바꿈시킨 세계적인 학자다. 하지만 그는 생전 22권의 저서와 101편의 서평을 쓴 빼어난 과학저술가로 더 유명하다. 멀고 아득한 캄브리아기를 생물학계 전면에 떠오르게 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와 야구와 통계, 진화를 접목시킨 ‘풀하우스’ 등은 평소 과학책을 읽지 않는 인문학 전공 독자들까지 매혹시킬 만큼 뛰어나다(한 신문 논설위원은 몇 년 전 칼럼에서 ‘풀하우스’를 언급하며 “뿅간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래서일까. 2002년 5월 굴드가 타계했을 때, ‘사이언스’는 또다른 글쓰기의 대가 리처드 포티 영국런던자연사박물관 수석고생물학자를 추모기사의 필자로 ‘모셨다’. 포티 역시 ‘삼엽충!’, ‘런던자연사박물관’ 등의 책으로 유명한 글쓰기의 달인이다. 포티는 이 글을 마무리하며 “아무도 굴드의 인류애, 박식함, 그리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유창한 표현력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굴드는 동료로부터 이런 최고의 헌사를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과학자다. 그에게는 ‘과학 글쓰기의 계관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굴드의 또다른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책이 새로 나왔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다. 그가 미국자연사박물관 잡지에 연재했던 자연학 에세이를 가려 묶은 책이다. 진화와 멸종, 환경파괴 등 주요 연구 분야는 물론, 과학과 관계가 적은 개인적 에세이도 포함돼 있다. 개인적 에세이라고는 해도 읽다 보면 진화와 창조, 위생학과 미생물학 등 생물학자로서의 지식이 녹아 있어 결코 사적으로 흐르는 일이 없다. 이 책은 시리즈로 나올 예정이며, 국내 최고로 꼽히는 전문 과학번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굴드의 이력에서 이색적인 것은 101편의 서평이다. 그의 탁월한 글쓰기 솜씨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생물학자의 서평 책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글쓰기의 대가를 꼽으라면 반드시 언급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통섭의 식탁’이다. ‘찰스다윈 서간집’부터 ‘노자’까지, ‘이기적 유전자’부터 ‘마틴 루터 킹 자서전’까지 다양한 분야, 다양한 주제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 속 중국의 재등장을 역설한 사회과학책 ‘리오리엔트’를 언급하며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인류학적 관점을 연결시키거나, 노자의 정치철학을 이야기하며 다윈을 언급하는 등 동물행동학자로서의 전문적인 관점을 잃지 않은 글이 반갑다. 일부 글은 기존에 나왔던 책의 서문으로 썼던 글을 고쳐 묶었다. 굴드의 책이 한 권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은 특이하다.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에 버금가는 현존 학자의 자연 에세이가 있을까. 출간된 지 몇 년 지났지만, 미국 일리노이대의 곤충학자 메이 베렌바움의 ‘벌들의 화두’가 읽어볼 만하다. 미국에서 유행했던 ‘벌집붕괴증후군(CCD, 벌집이 이유 없이 사라지는 현상. 과학동아 2011년 7월호 기획 ‘벌의 죽음’ 참조)’을 연구한 유명한 학자로, 능청스러운 유머가 일품이다. 3년 전 미국에서 강연을 듣고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친근한 태도에 ‘대중과 호흡하는 법을 아는 과학자는 역시 다르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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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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