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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 환경 문제 해결사



‘이 진흙 양동이가 최신기술?’

GIST 국제환경연구소에서 가장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 허호길 연구소장이 꺼낸 것은 세라믹 필터였다. 얼핏 보기엔 초기 인류나 썼을 법한 평범하고 투박한 모양의 진흙 토기였다.

“겉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안에는 개발도상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읽었는지 허 소장이 이어서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첨단 정수 기술이 잘 발달됐지만 개발도상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남아시아 같은 개도국에서는 흐르는 강물을 그대로 마시거나 우물물을 떠 마시는 경우가 많다. 병원성 세균이 많아 이질,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게 허 소장의 설명이다.

선진국의 정수 기술을 보급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발달된 물 정화 기술을 보급하고 싶어도 비싸고 복잡해 현지에서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좀 더 저렴하고 현지인들이 이용하기 쉬운 기술, 현지에서 확보 할 수 있는 값싼 재료를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허 소장이 강조하는 이른바 ‘적정기술’이다. 허 소장이 소개한 세라믹 필터는 개도국 수질을 정수할 수 있는 적정 기술인 셈이다. GIST의 국제환경연구소는 개도국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맞춤형 ‘적정기술’ 개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적정기술이 필요한 곳으로

GIST와 국제연합대학(UNU)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환경연구소는 적정기술을 개발하고 개발도상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 NGO인 RDI와 협력해 메콩강 유역에 보급 중인 세라믹 필터는 점토와 왕겨, 홍토, 점철석처럼 메콩강 주변에 많은 재료로 만들어 현지에서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 점토는 구웠을 때 작은 공극이 생겨 먼지나 세균 등을 걸러내는데, 왕겨를 섞으면 효과가 더 커진다. 여기에 양전하를 띤 홍토와 점철석을 섞어 넣으면 물에 섞인 바이러스도 제거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정수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커진다. 필터를 사용한 뒤 식수 내 대장균은 평균 95.1%가 감소했고, 주민들의 설사병은 약 46%가 감소했다. 바이러스도 90% 이상 제거했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이 어렵지 않게 생산할 수 있으며, 개당 10달러의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 수 있어 적정기술로서 가치가 높다.

이와 같은 적정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국제환경연구소도 당장은 어렵지만 개도국에 연구실을 마련하고 장기 체류하며 연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허 소장은 “현재 수질오염이 심한 캄보디아에서 우물물의 오염도를 측정해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주민에게 필요한 연구를 찾아 진행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연구자 인턴교육으로 쑥쑥 키운다


국제환경연구소가 애정을 가장 크게 쏟는 분야는 따로 있다. 현지 연구자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교육훈련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연구진들과 메콩강 수질을 공동연구하면서 우리나라의 앞선 과학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열어 개발도상국의 대학생들을 GIST로 초청하기도 한다.

세라믹 필터를 현지에 보급해 질병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연구자들을 환경 전문가로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를 졸업한 랑쏜 후이 연구원도 작년 9월부터 국제환경연구소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중이다. 이곳에서 랑쏜은 세라믹 필터에 산화철을 첨가해 병원균 제거 효과를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인턴이 끝나고 캄보디아로 돌아가면 이 곳에서 배운 기술로 수질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어요.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오염된 우물 때문에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인턴이 끝난 뒤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랑쏜은 망설임 없이 현장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국제환경연구소에서는 2004년부터 시작해 매 학기마다 개발도상국 연구원들을 꾸준히 교육해오고 있다. 랑쏜처럼 인턴십 프로그램의 비용은 전액 연구소에서 부담한다. 국제환경연구소는 앞으로 선진 기술과 시스템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지식 전파사’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글 : 변지민
이미지 출처 : 사진 이서연

과학동아 2012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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