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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구야 돌아라!

지구자기장 비밀 밝혀질까




 

부우우웅~. 저것 봐,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황동색의 구가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어. 아직 속이 빈 채라고 해도 지름이 3m나 되다보니 꽤나 시끄러운걸. 그냥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저 안에는 지름 1m의 동심구가 하나 더 들어 있어. 연구팀은 이번 달까지 바깥쪽 구와 안쪽 구 사이를 1만 3000L의 액체 나트륨으로 가득 채울 계획이야.

이 구는 바로 내 몸, 즉 지구 속을 본떠 만든 거야. 커다란 바깥쪽 구는 하부맨틀, 안쪽 구는 내핵, 액체 나트륨은 그 사이에 있는 외핵 역할을 하는 거지. 아쉽게도 상부맨틀과 지각 부분은 없어. 이 실험은 내 안 깊숙이 위치한 외핵에서 자기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 목표거든.

내 뒤태, 아니 속태(!)를 닮은 이 ‘인공지구’의 이름은 바로 ‘다이나모3m’야. 미국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다니엘 래이스롭 교수가 10년에 걸쳐 만든 실험기구지. 처음엔 지름 20cm에서 시작해 점점 커다란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어. 만약 다이나모3m가 자기장을 만들고 스스로 유지해내는데 성공한다면 래이스롭 교수는 지구를 닮은 구체로 자기장을 만든 최초의 과학자가 될 거야.

 


스스로 유지되는 지구의 자기장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그럼, 어렵고말고. 그냥 자기장이 아니라 ‘스스로 유지되는’ 자기장이거든. 문방구에서 산 영구자석과 내 안의 외핵은 성격이 전혀 달라. 외핵은 온도가 맨틀과 가까운 가장 시원한 쪽이 4400℃, 내핵과 가까운 안쪽이 6100℃에 이르거든. 이 안은 안은 철과 니켈이 진득한 액체로 존재하는 곳이지.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는 자석이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말거야.

이런 모순을 설명해주는 이론이 바로 1920년 조세프 라모가 제창한 ‘다이나모 이론’이야. 이 이론에 따르면 외핵이 스스로 유지되는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데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해. 첫 번째 조건은 외핵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전도성이 높은 액체일 것. 두 번째 조건으론 행성이 회전할 때 생기는 운동에너지.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내부의 뜨거운 열 때문에 외핵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 위 아래로 움직이는 대류현상이야.

 


래이스롭 교수의 지구 외핵 따라잡기

래이스롭 교수는 다이나모 이론의 세 가지 조건 중 첫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액체 상태의 철과 니켈 대신 액체 나트륨을 사용했어. 나트륨은 금속이라 전도성이 높아. 그러면서도 녹는점이 철이나 니켈보다 한참 낮은 97℃이기 때문에 실험에 쓰기가 편리해. 래이스롭 교수는 105℃로 가열한 액체 나트륨을 두 개의 구 사이에 꽉꽉 채워 넣을 예정이야.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지구가 자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를 회전시킬 거야.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지?

래이스롭 교수는 액체 나트륨의 대류현상을 지구와는 좀 다른 방법으로 일으킬 생각이야. 이전 모델인 ‘다이나모Ⅰ’이나 ‘다이나모Ⅲ’는 바깥쪽에서 적외선램프로 직접 열을 가해서 대류현상을 만들었어. 그런데 열을 왜 내핵이 있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가하냐고? 어머, 날카로운데? (104쪽 다이나모 개발역사 참고)

대류현상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 거야. 아래에 있는 내핵이 더 뜨겁기 때문에 내핵과 붙어있는 아래쪽 외핵물질이 뜨거워져서 부피가 팽창하고, 결국 밀도가 낮아져서 위쪽으로 상승하게 되지. 반대로 차가운 위쪽의 외핵물질은 하강하게 돼. 그런데 지구의 자전 때문에 상승과 하강하는 방향이 일직선이 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게 되면서 ‘코일’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져. 외핵이 전도성이 높은 철과 니켈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 자기장이 만들어지게 되지. 이렇게 만들어진 자기장은 다시 전류를 유도해서 코일을 따라 흐르도록 해.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순환하게 되면 스스로 유지되는 자기장이 형성되는 거야. 외핵 안에는 이렇게 자기장을 형성하는 코일이 무척 많단다. 나도 몇 개인지 잘 모를 정도야.






그 이유는 바로 실험기구에서 중력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야. 인간이 만든 실험기구는 중력을 충분히 만들어내기엔 질량이 너무 작거든. 그래서 자전으로 생기는 원심력이 중력 역할을 대신하게 된 거야.

열을 받아 부피가 커진 액체 나트륨은 밀도가 낮아져서 중심으로 향하게 되고, 반대로 식어서 부피가 작아지고 밀도가 높아진 액체 나트륨은 원심력 때문에 바깥쪽으로 끌어당겨지지. 결국 내핵은 중심에 있지만 대류에 필요한 중력 역할을 하는 원심력은 바깥쪽으로 향하는 ‘뒤집힌’ 구조가 돼(중력이 바깥 방향으로 작용하는 셈이야). 이것이 바로 열을 만드는 적외선램프가 구의 중심이 아닌 바깥에 위치하게 된 까닭이지.

다이나모3m에서도 원심력이 중력을 대신하지만 대류현상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 바로 내핵에 해당하는 안쪽 구와 하부맨틀에 해당하는 바깥쪽 구가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거야. 안쪽 구는 초당 15바퀴의 속도로 회전하고, 바깥쪽 구는 상대적으로 느린 초당 4바퀴의 속도로 회전해.

두 개의 구가 각기 다른 속도로 회전하기 때문에 그 사이를 채운 액체 나트륨은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몰라 혼란스럽게 움직이지. 그 결과 대류현상과 비슷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래이스롭 교수는 이 움직임이 실험기구의 자전 방향과 수직으로 엇갈리면서 외핵처럼 코일을 만들고, 이 코일이 마침내는 스스로 유지되는 자기장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

이번 연구는 모형을 이용한 비슷한 연구 중 규모가 가장 커. 왜 이렇게 모형이 점점 커지는 줄 아니? 크기가 클수록 ‘난류(亂流)’를 더 잘 만들기 때문이야. 내부가 넓어서 액체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 자기장을 만드는 코일도 더 잘 만들 수 있겠지? 이차선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줄지어 가지만 차선이 넓어질수록 여기저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야.

그래서 래이스롭 교수는 지름이 3m나 되는 거대한 구를 이용한 이번 실험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거야. 역대 가장 커다란 규모의 실험이니만큼 지구 자기장에 관심이 많은 다른 과학자들 역시 이번 실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자북극이 움직이고 자기장이 역전된다고?

과학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건 ‘스스로 유지되는 자기장이 만들어지느냐’ 뿐만이 아냐. 지구인 내가 하는 것처럼 정말로 자기장이 역전되거나 자북극(자전축이 아닌 자기장의 북극)이 움직이는 현상까지 재현해 낼 수 있는지도 관심이 커. 이런 일들이 나타날 때 내 속에 있는 진짜 외핵은 직접 관찰할 수가 없지만 다이나모3m 안의 액체 나트륨의 움직임은 초음파 투시기와 내부의 압력센서로 똑똑히 관찰할 수 있다고.

이게 무슨 소리냐고? 지구의 N극과 S극은 자전축 위에콕 하고 박혀있지 않아. 지금 자북극(N극)은 자전축상의 북극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고 매년 55km의 속도로 러시아의 시베리아를 향해 이동하고 있어. 1989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15km 속도로 이동했는데, 최근 들어서 속도가 더 빨라졌어. 또 자기장 세기를 측정하기 시작한 1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자기장의 세기는 10%나 약해졌어.

이런 현상들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의 자기장 역전이 다가오는 게 아니냐고 염려하고 있어. 자기장 역전은 10만 년에서 100만 년 간격을 두고 보통 일어나는데, 가장 최근은 78만 년 전이야.

자기장이 역전 될 경우 체내에 있는 나침반으로 길을 찾는 고래나 철새 같은 동물들이 길을 잃어 위험에 처할 수 있고,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이 비켜가지 않고 지구로 그대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어.

래이스롭 교수는 지난달 25일 다이나모3m를 액체 나트륨으로 가득 채웠어. 이제 실험을 시작하는 건 시간문제야. 과연 래이스롭 교수의 실험이 지구자기장의 신비를 풀어줄 수 있을까? 실험결과가 나오면 꼭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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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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