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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백신 여성의 구세주 될까


매년 유럽에서는 40만 명이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13만 명이 유방암으로 죽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방암이 갑상샘암 다음으로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사람 중 40%는 유방을 제거한다. 수술 후에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의 고통은 이어진다. 여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유방암 백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단다. 아직은 임상 초기단계지만 효과와 안전성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수술실에 음침하고 우울한 기운이 감돈다. 젊은 여자가 수술대에 누워있다.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의사가 다가와 여자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그리고 커다란 칼을 들어 여자의 가슴에 댄다. 여자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18세기 후반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아담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존 아담스’의 한 장면이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여자는 유방암을 앓고 있는 대통령의 딸이다. 18세기만 해도 아무런 마취도 없이 큰 칼로 유방을 도려냈다.

유방암의 공포

유방암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 여성의 경우 7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린다. 33명 중 1명은 유방암으로 사망한다.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1년부터 유방암이 여성 암 1위를 차지했으며 200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감상샘암 다음으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 됐다. 더욱이 국내 유방암 발생률은 1996년 이후 지난 10여 년 간 3배나 증가했다. 1996년 3801명이던 환자수가 2008년에는 약 1만 3000명에 이르렀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젊은 여성도 유방암에 잘 걸린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유방암은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반면 우리나라는 폐경 이전 여성의 발병률이 무려 68%가 넘는다. 젊은 여성의 유방암 발생 속도도 1년에 7%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영양상태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옛날보다 초경은 빨라지고 폐경은 늦어졌다. 생리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더 받게 된 것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유방을 자라게 할 뿐 아니라 유방암 세포의 성장을 돕는다. 서구화된 식단도 이유다. 지금의 30~40대는 어렸을 때부터 서구화된 식습관에 익숙해진 첫 세대다. 중성지방이 많은 햄버거, 고기, 튀김 등을 자주 접하며 자랐다. 중성지방은 에스트로겐을 활성화시킨다. 중성지방이 150mg/dL 이상인 여성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1.4배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이것이 이유라면 유방암에 걸리는 나이는 앞으로 점점 더 어려질 것이다.

유방암의 1차 치료방법은 수술이다. 유방암 완치를 위해 피할 수 없다. 유방암의 발생 위치나 전이의 정도, 종양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유방암 환자의 40%는 유방을 제거한다. 수술 후에도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계속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최근에는 치료법도 다양해지고 안전해져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 많이 줄었다. 유방재건술 등 유방을 보존하는 방법도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방암을 치료하기 위해 유방과 난소를 드러내고 이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공포다.





자기 면역계를 이용해 암세포를 죽이는 백신

그렇다면 유방암이 생기지 않게 미리 막을 방법은 없을까. 있다. 유방암 예방백신을 만들면 된다. 예방백신의 원리는 간단하다. 병을 일으키는 항원을 약하게 만들어 인체에 주사한다. 우리 몸은 항원이 들어오면 이에 대항하는 항체를 만든다. 따라서 나중에 같은 항원이 들어오면 미리 만들어 둔 항체가 재빨리 항원을 죽여 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면역세포인 대식세포가 독성 물질을 분비해 암세포를 파괴하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가 빠지고 소화도 잘 안되며 생리가 멈춘다.]


문제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항원이 아직까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항원을 모르니 예방백신을 만들 수가 없다. 다른 암도 마찬가지다. 예방백신으로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과 자궁경부암 백신이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은 암 예방백신은 아니다. 하지만 간염을 막아 간암까지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간암 원인의 70%가 B형 간염이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1970년 후반 자궁경부암과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관계가 밝혀진 뒤 제약회사 머크가 15년 가까이 연구해 예방백신인 ‘가다실’을 만들어 냈다. 가다실은 인체에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6, 11, 16, 18에 대해 항체를 만든다. 국내 자궁경부암의 60%(전세계 평균 70~80%)는 이 네 가지 종류에 의해 발생한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의 종류가 많아 100% 예방은 불가능하지만 60%의 예방효과는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유방암을 포함한 대부분의 암 백신은 치료백신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치료백신은 예방백신을 만드는 기초자료가 된다. 암치료백신(이하 암 백신)은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세포독성T세포’와 항체를 많이 만든다.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죽이는 전략이다. 면역계는 암세포가 생기면 일단 백혈구와 NK(natural killer)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한다. 이 둘은 인체에 이상한 세포가 들어오면 무조건 공격한다. 하지만 암세포는 영악하다. 빠른 속도로 세포를 늘리고 주변에 공격에 쉽게 당하지 않도록 장벽을 만든다.

여기서 백신은 암에서만 나타나는 단백질(항원)을 몸에 넣어 항체를 생성하게 한다. 유방암의 경우 HER2/neu와 MUC1 등 정상 세포에서는 없지만 유방암 세포에서 많이 나타나는 단백질을 항원으로 넣어준다. HER2/neu나 Muc1 단백질이 있는 특정 암 세포만 죽이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다.

그렇다면 암 백신과 항암제는 어떻게 다를까. 현재 항암제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일반세포보다 빨리 증식하는 모든 세포를 죽인다. 암세포가 특이적으로 빨리 성장하는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인체에는 암세포 외에도 빨리 성장하는 정상세포들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배란을 하기 위한 생식세포, 계속 자라났다가 사라지는 소화기관의 점막세포, 그리고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낭세포와 면역세포 등이다. 이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가 빠지고 설사와 구토를 한다. 생리도 멈춘다. 치료 이후에도 영구불임이 될 수 있다.



유방암 백신의 항원으로 이용하는 단백질은 MUC1, HER2/neu, CEA, 알파-락트알부민 등이다. 정상세포에는 없지만 유방암 세포 표면에서 많이 나타난다. 유방암에 걸린 환자의 약 4분이 1은 암세포 표면에 HER2/neu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HER2/neu 단백질이 많은 암세포의 특징은 빨리 분열해 진행이 빠르고 그만큼 재발의 확률도 높다. 이 때문에 유방암 백신의 대부분이 HER2/neu 단백질을 항원으로 이용한다. MUC1은 유방암과 대장, 난소, 폐, 췌장 등 전체 암의 70%에서 발견되는 단백질로 두번째로 많이 쓰이는 항원이다.

HER2/neu를 항원으로 한 유방암치료백신 연구는 대부분 임상 1단계 또는 2단계에 와 있다. 임상 1단계는 정상적인 남자 지원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1회 용량, 반복적으로 투여했을 때 내성이 얼마나 생기는지를 검사한다. 2단계에서는 환자를 대상으로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한다. 따라서 유방암 치료 백신의 대부분은 동물실험을 거쳐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3단계는 신약 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비교적 다양하고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로 이 단계에 이르면 신약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작년 9월 MUC1을 항원으로 한 스티무백스(stimuvax)가 유방암치료백신 중 처음으로 임상 3단계에 돌입했다가 연구가 잠정 중단됐다. 치료를 받던 한 환자에게서 뇌염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다른 유방암치료백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대 연구진은 세계적으로 13개 암에 대한 230개의 치료백신이 임상시험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유방암이 34개로 40개인 흑색종의 뒤를 이어 가장 많다. 미국제약협회(PhRM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까지 미국에서만 887개의 암 치료제 및 백신이 임상시험 또는 승인심사 중이다. 유방암치료백신도 치료제를 포함해 91개에 달한다.

동물실험단계에 있지만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는 연구도 많다. 지난달에는 미국 조지아대 암센터가 MUC1을 이용한 항암백신을 유방암을 일으킨 쥐에게 투여한 결과, 종양이 90%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임상 1단계를 위한 지원자를 모으는 중이다. 블릭 브랜드 클리닉 러너 연구소도 알파-락트알부민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한 백신으로 유방종양을 최고 50%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역시 올해 임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펩타이드 백신이 가장 많아

백신은 어떻게 만들까. 암치료백신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펩타이드 백신, DNA 백신, 수지상세포 백신, 종양세포 백신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항원의 펩타이드를 넣어 만드는 펩타이드 백신을 가장 많이 쓴다. 앞서 소개한 스티무백스도 MUC1의 펩타이드를 이용해 만든 백신이다. 펩타이드는 커다란 단백질을 쪼개 만든 조각 단백질이다. 우리 몸은 몸 밖에서 들어온 단백질(항원)에 대해 항체만 많이 만들고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T세포는 적게 만든다. 반면 펩타이드는 세포독성T세포를 많이 만들어 낸다.

HER2/neu 단백질로 예를 들어 보자.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플라스미드에 넣고 세균에서 배양한다. 배양한 세균에서 얻은 단백질을 펩타이드 형태로 만들어 몸 속에 넣는 것이다. 체내에 들어간 펩타이드는 항원제시세포(APC)에 의해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MHC) 위에 올려진다. 이를 T세포 수용체가 인지하고 세포독성T세포에게 감염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받은 세포독성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공격하고 B세포는 펩타이드(항원)에 대항하는 항체를 만들어 암세포를 공격한다.

DNA 백신은 단백질(항원)을 만들어 내는 DNA를 우리 몸에 주사하는 방법이다. 만드는 과정은 펩타이드 백신과 비슷하다. HER2/neu, MUC1 단백질을 만드는 DNA를 플라스미드에 넣고 체내에 주사한다. DNA는 체내에서 단백질(항원)을 만든다. 면역계는 외부에서 들어온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고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항원을 가지고 있는 암세포를 죽인다. 결국 펩타이드 백신은 단백질 조각을 직접 넣고 DNA 백신은 단백질 조각을 만드는 유전자를 넣는 것이다.



수지상세포(DC)를 배양해 암세포(항원)와 함께 넣는 방법도 있다. 수지상 세포(DC)는 암세포(항원)를 세포 안으로 잡아들인 뒤 항원 펩타이드를 세포독성T세포에게 내 보인다. 이를 통해 세포독성T세포는 항원을 인지하고 암세포를 공격한다. 가장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이끌어 내는 백신이다. 하지만 수지상세포는 수가 적어 체내에서 세포를 얻기가 어렵고 수를 늘리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수지상세포를 대신해 B세포를 활용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B세포에 NKT(natural killer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물질과 암항원 펩타이드를 올려 인체에 투여하는 방법이다. 항체를 만드는 B세포는 수지상 세포와 같이 항원을 세포독성T세포에게 보여주면서 항체도 만든다. 백신 하나로 항체를 만들면서 NK세포와 세포독성T세포를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종양세포 백신은 방사선을 쬔 암세포를 면역보조제와 함께 넣는 방법이다. 암세포가 항원인 셈이다. 따라서 항원 인식능력을 강화하는 면역보조제는 암에 걸려 면역력이 약해진 인체가 항원을 잘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8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핑크리본 캠페인’은 매년 ‘유방암 예방의 달’인 10월에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전세계 40여 개국 100여개 도시에서 열린다.]
 


3년 안에 유방암치료백신 나올 것

사실 암 백신은 성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암세포가 생기면 면역계의 면역 인식능력이 떨어진다. 암 세포가 인체 내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면역계가 암 백신 속에 있는 펩타이드나 단백질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면역강화제를 넣는데 면역계가 강화되면서 정상세포나 조직을 공격하는 자기면역강화의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지난해 전립선암 치료백신인 ‘프로벤지(Provenge)’가 FDA의 최초 승인을 받았다. 2013년 치료백신으로는 처음으로 유럽에 시판될 것으로 알려졌다. 강창율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임상 중인 유방암치료백신들이 안전성과 효과 면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강 교수가 HER2/neu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유방암치료 DNA백신도 현재 임상 1단계에 있다. 강 교수는 이어 “정확한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2~3년 내에는 유방암치료백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이화영 talkto@donga.com
이미지 출처 : istockphoto, 위키피디아, istockphoto, 동아일보

과학동아 2012년 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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