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사육은 곤충의 탈피나 변태 과정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생명의 신비와 원리를 살펴보고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사육하는 많은 종들을 통해서 애벌레의 식성과 활동 시기, 발달 시간 등 그들의 생활사를 알 수 있다. 연재 마지막 호에서 애벌레를 사육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애벌레 사육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정확한 먹이 식물을 찾는 것이다. 곤충의 식성은 범위가 대단히 넓지만 나비목 애벌레들은 거의 대부분 식물을 먹이로 한다. 식물을 먹는 애벌레는 한 종류 또는 매우 가까운 2~3종의 식물만을 먹는 단식성, 일정한 관계가 있는 몇 가지 식물만 먹는 협식성과 거의 모든 식물을 먹어대는 광식성으로 나눌 수 있다.
배저녁나방, 붉은매미나방, 날개물결가지나방이나 노랑 쐐기나방 그리고 차주머니나방 같은 종류들은 입맛이 소박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든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광식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몇 종류를 제외하곤 대부분 특별한 먹이를 고집한다. 입맛에 맞는 먹이를 제 때에 공급하지 못하면 제대로 키울 수가 없다. 필자도 먹이를 잘 챙겨주지 못해 애꿎은 애벌레들을 수없이 굶겨 죽였다. 갈고리재주나방과 소나무붉은밤나방은 채집된 암컷에게서 알을 받아 부화된 1령까지만 애벌레를 관찰하고 있다. 3년이 걸렸으나 아직 먹이 식물을 찾지 못했다.
참나무잎이 맛있나 봐
먹이식물은 애벌레가 있던 식물을 잘 살펴만 봐도 찾을 수 있다. 야외에서 애벌레가 발견된 식물은 대부분 애벌레가 먹는 먹이식물이다. 그러나 허물을 벗거나 번데기가 되려는 애벌레나, 병에 걸린 애벌레 그리고 기생당한 애벌레는 꼭 먹이 식물이 아니더라도 이동할 수 있으므로 자세히 관찰한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놈은 허물을 벗으려는 애벌레고, 번데기를 틀기 전의 애벌레는 보통 때보다 훨씬 바쁘게 돌아다닌다. 먹이에 관심이 없거나 무늬를 잃어 버리고 색깔이 검게 변하면 병에 걸린 것이다.
먹이 식물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다양한 식물을 공급해본다. 참나무는 다른 어떤 식물보다도 많은 애벌레들의 먹이가 된다. 싸리, 벚나무, 버드나무는 많은 애벌레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다. 제공된 식물 중 배설물과 먹은 흔적이 확인되는 종이 그들의 먹이가 된다.
먹는 것을 해결해 준 다음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애벌레들은 곰팡이에 민감하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 이상 사육 상자를 체크하자. 사육 상자는 보통 밀폐된 상태이므로 습하다. 게다가 식물의 잎에서 나오는 수분과 애벌레 배설물로 더욱 축축해지므로 곰팡이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종이 타월을 사육 용기나 상자 아래에 까는것은 과도한 수분을 흡수하고 똥이나 배설물 같은 오물을 신속히 제거해 줄 수 있다. 애벌레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크기가 작은 어른벌레가 생기거나, 질병이 퍼질 수 있다.
사육 상자의 문제점인 습기나 불결한 환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먹이 식물 그 자리에서 사육하는 것이다. 양끝을 묶을 수 있고 옆에 지퍼가 있어 사용하기가 편리한 슬리브(sleeve)라는 장치를 이용하면 비교적 손이 덜 가며, 실제 크기의 성충이나 발육 상황을 자연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슬리브 안에는 애벌레를 위한 충분한 잎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애벌레를 슬리브에 넣기 전에 언제나 가지를 흔들어서 거미, 침노린재 등 천적을 제거해야 한다. 먹이식물을 분재에 옮겨 심고 그 안에 적당한 수의 애벌레들을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겨울나기의 비밀 종이타월
사육의 가장 큰 어려움은 월동이다. 어떤 곳에서 얼마나 추워야 하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가. 단순히 애벌레를 살아 있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 동안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의무적인 휴면기를 잘 보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곤충들의 겨울나기는 종마다 독특하고 다양하다. 알로 애벌레로 혹은 번데기로 월동하는 형태도 모두 다르고 매서운 찬바람을 느끼는 외부에서부터 따뜻한 땅속까지 장소가 다 다르다.
나뭇가지나 잎을 이용해 외부에서 월동하는 종들은 나름대로 내한성 물질을 몸 안에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놔두어도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다. 자동차의 엔진이 어는 것을 막아 주는 부동액과 비슷한 물질인 글리세롤을 번데기나 애벌레의 가장자리에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속에서 월동하는 종들은 월동 조건인 온도와 습도를 사육 상자에서 제대로 맞추기는 어렵다. 야생 상태에서 많은 애벌레들은 땅속에 번데기 방을 만들거나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나기 위해 굴을 판다. 네눈박이산누에나방, 큰쥐박각시, 콩박각시, 맵시곱추밤나방 등 봄
에 활동하는 종들은 번데기나 애벌레 상태로 월동하기 위해 10cm 또는 그 이상의 깊이로 굴을 판다. 만약 그들이 번데기를 만들거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면 죽게 된다. 필자는 사육 상자 안에 종이 타월을 구겨 넣어 준다. 땅속의 환경처럼 찬 공기가 직접 몸에 닿지도 않고 몸을 기대어 번데기를 만들 수 있다. 더 확실하게는 땅에서 10~20cm의 깊이로 판 구멍에 나무껍질이나 풀로 그늘진 은신처를 만든 뒤 번데기나 애벌레를 묻는다.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애벌레와 어른벌레는 정말 같은 종일까
변태를 진행하는 곤충들을 보고 있노라면 애벌레와 어른 벌레가 완전히 분리된 두 종으로 보인다. 커서 어른이 되는 ‘애’가 ‘어른’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아직도 필자는 궁금하다. 아니 신비스럽다. 한 종은 애벌레의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종은 어른의 역할을 하는 생물이 아닐까.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종이지만 사실상 다른 종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애벌레의 탈피나 변태의 과정을 제대로 몰랐던 옛날에는 애벌레를 육체로부터 분리된 유령, 망령이나 도깨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신비한데다 그들이 어떻게 변할지 확신하지 못했던 애벌레는 기묘한 자연 현상이었고 곤충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가면이었다.
애벌레는 육상 생태계의 먹이사슬 전체를 움직이는 동물이면서 연구자가 거의 없는 분야이므로 전적으로 과학자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복잡한 생활과정을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아직도 거의 모든 종의 생활사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과 아마추어 애호가들이 채집, 사육한 정보가 유용한 자료가 된다. 세심히 채집하고 사육하고 철저하게 관찰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과학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애벌레 사육을 통해 얻은 기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생물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었던 많은 독자들의 제보와 정보 제공을 기대한다.
15년 동안 세상에서 꼭꼭 숨어 있던 애벌레를 연구하면서 수집하고 쌓아두었던 정보를 대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과학동아에 지난 1년간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제멋대로 생긴 것처럼 보이는 애벌레의 모양을 다리와 털의 특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도 해 봤다. 그냥 불쾌한 존재였던 애벌레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애벌레의 놀라운 생명력이 선사하는 특별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난 1년간의 글이 종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됐기를 기대한다. 재미가 있었는지, 유익했는지 궁금하지만 12월호를 마감하면서 좋은 논문의 마지막 탈고를 끝낸 기분이다. 그동안 읽어주신 과학동아 독자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