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대한 흔한 상식 하나. ‘개는 색맹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개들이 눈밭을 신나게 뛰어 노는데 그건 희고 검은 색밖에 구분하지 못해서라는데 사실일까. 상식 둘. 거실에 ‘실례’를 한 개는 자기 잘못을 알고 있어서 주인이 들어오면 꼬리를 감추고 피하거나 알아서 벌을 선다? 개가 그렇게 도덕적인 동물일까.
개를 잠시라도 키워본 사람들은 위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개가 색맹인 것은 사실이지만 적록색맹처럼 붉은색과 녹색을 헷갈릴 뿐이다.
자신이 실수한 현장에서 혼나면 버릇을 고친다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개라면 ‘일을 저지르고’ 움찔 놀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작 몇 분이다. 몇 분이 지나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까맣게 잊고 만다. 만약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와 돗자리 위에서 말라붙은 오줌 자국을 보고 혼을 낸다면, 개는 주인이 화를 낸 이유가 외출에서 돌아와 기분이 나빠져서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개는 주인이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커튼 뒤로 숨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물인 개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들의 행태나 진화적 특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하다. 개는 어떻게 인간과 살게 됐을까. 야생 늑대가 우연히 사람의 거주지에 들어와 살다가 지금의 개가 됐다는 의견이 많지만, 유전자로 진화계통수를 분석해 보면 두 종이 분리된 때는 13만 5000년 전이다. 현생 인류가 아직 아프리카와 중동 사이에서 다른 대륙으로 나갈까 말까 꾸물대고 있던 때다. 현생인류가 개를 집안에서 키우기 시작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약 3만 년에서 7000년전 사이에 나타난다. 개는 늑대에
서 갈라져 나온 이후로도 10만 년 이상을 야생에서 살았다는 뜻이다. 이런 개가 어떻게 인류의 친구가 됐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가장 가깝고 친숙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를 통해 동물행동학에 입문해 보자. ‘네이처’ 미국편집자 출신의 과학저술가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는 개의 행태와 심리를 가장 자세히,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 놓은 책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가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동물을 소개한 ‘고양이에 대하여’, ‘말에 대하여’도 모두 번역돼 있다.
개를 궁금해 한 것은 200년 전 다윈 역시 마찬가지였다. 못 말리는 애견가였던 다윈의 ‘개 사랑’을 추적하며 그의 진화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는 ‘다윈의 개’도 새로 나왔다. 그의 개인적인 행적을 좇으며 사상과 저작, 당시의 애견 문화까지 훑어보는 재미가 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는 좀더 ‘야생’에 가까운 지식을 주는 책이다. 인지생물학자인 저자가 ‘동물들은 무엇을 알고 어떻게 사고하나’라는,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을 모았다. 늑대나 까마귀, 침팬지, 미어캣 등 동물들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과정은 우리와 다른 종을 이해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 그 자체다.
10월 17일 수암생명공학재단의 황우석 박사가 북아메리카에 사는 야생 포유류 코요테를 개의 난자를 이용해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개와 코요테는 종이 다른 정도를 넘어 ‘속(속은 종 다음으로 큰 분류 개념)’이 다르다. 종을 뛰어넘어 복제에 성공한 경우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황박사는 ‘속을 뛰어넘어(이속간)’ 복제에 성공한 첫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에도 과, 목, 강(각각 3,4,5번째로 작은 분류개념)을 뛰어넘어 체세포 복제를 통해 배반포를 만든 연구가 성공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조류(강)인 닭의 체세포를 포유류(강)인 소의 난자에 넣은 뒤 배반포를 만든 연구가 2004년에 있었다. 하지만 대리모 임신을 하고, 건강한 자손까지 낳은 경우는 없었다. 만약 황 박사의 연구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진전은 진전이다. 하지만 연구가 논문 형태로 나오지 않아 검증되지 않았고, 데이터조차 발표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언론플레이’, ‘또 정치권을 이용했다’는 지적도 많다.
코요테는 개의 친척이다. 하지만 늑대와 100만 년 전에 갈라졌으니 셋은 의외로 먼 사이다. 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인간이 유전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코요테를 이해하고 있을까. 혹은 몰라도 복제 코요테를 탄생시키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문득 ‘동물을 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진다.
개를 잠시라도 키워본 사람들은 위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개가 색맹인 것은 사실이지만 적록색맹처럼 붉은색과 녹색을 헷갈릴 뿐이다.
자신이 실수한 현장에서 혼나면 버릇을 고친다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개라면 ‘일을 저지르고’ 움찔 놀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작 몇 분이다. 몇 분이 지나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까맣게 잊고 만다. 만약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와 돗자리 위에서 말라붙은 오줌 자국을 보고 혼을 낸다면, 개는 주인이 화를 낸 이유가 외출에서 돌아와 기분이 나빠져서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개는 주인이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커튼 뒤로 숨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물인 개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들의 행태나 진화적 특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하다. 개는 어떻게 인간과 살게 됐을까. 야생 늑대가 우연히 사람의 거주지에 들어와 살다가 지금의 개가 됐다는 의견이 많지만, 유전자로 진화계통수를 분석해 보면 두 종이 분리된 때는 13만 5000년 전이다. 현생 인류가 아직 아프리카와 중동 사이에서 다른 대륙으로 나갈까 말까 꾸물대고 있던 때다. 현생인류가 개를 집안에서 키우기 시작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약 3만 년에서 7000년전 사이에 나타난다. 개는 늑대에
서 갈라져 나온 이후로도 10만 년 이상을 야생에서 살았다는 뜻이다. 이런 개가 어떻게 인류의 친구가 됐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가장 가깝고 친숙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를 통해 동물행동학에 입문해 보자. ‘네이처’ 미국편집자 출신의 과학저술가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는 개의 행태와 심리를 가장 자세히,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 놓은 책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가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동물을 소개한 ‘고양이에 대하여’, ‘말에 대하여’도 모두 번역돼 있다.
개를 궁금해 한 것은 200년 전 다윈 역시 마찬가지였다. 못 말리는 애견가였던 다윈의 ‘개 사랑’을 추적하며 그의 진화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는 ‘다윈의 개’도 새로 나왔다. 그의 개인적인 행적을 좇으며 사상과 저작, 당시의 애견 문화까지 훑어보는 재미가 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는 좀더 ‘야생’에 가까운 지식을 주는 책이다. 인지생물학자인 저자가 ‘동물들은 무엇을 알고 어떻게 사고하나’라는,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을 모았다. 늑대나 까마귀, 침팬지, 미어캣 등 동물들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과정은 우리와 다른 종을 이해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 그 자체다.
10월 17일 수암생명공학재단의 황우석 박사가 북아메리카에 사는 야생 포유류 코요테를 개의 난자를 이용해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개와 코요테는 종이 다른 정도를 넘어 ‘속(속은 종 다음으로 큰 분류 개념)’이 다르다. 종을 뛰어넘어 복제에 성공한 경우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황박사는 ‘속을 뛰어넘어(이속간)’ 복제에 성공한 첫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에도 과, 목, 강(각각 3,4,5번째로 작은 분류개념)을 뛰어넘어 체세포 복제를 통해 배반포를 만든 연구가 성공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조류(강)인 닭의 체세포를 포유류(강)인 소의 난자에 넣은 뒤 배반포를 만든 연구가 2004년에 있었다. 하지만 대리모 임신을 하고, 건강한 자손까지 낳은 경우는 없었다. 만약 황 박사의 연구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진전은 진전이다. 하지만 연구가 논문 형태로 나오지 않아 검증되지 않았고, 데이터조차 발표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언론플레이’, ‘또 정치권을 이용했다’는 지적도 많다.
코요테는 개의 친척이다. 하지만 늑대와 100만 년 전에 갈라졌으니 셋은 의외로 먼 사이다. 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인간이 유전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코요테를 이해하고 있을까. 혹은 몰라도 복제 코요테를 탄생시키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문득 ‘동물을 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