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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만 찔러 죽이는 바이러스 항암제

블록버스터 신약을 꿈꾸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독감백신을 맞는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2009년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형인 ‘신종플루’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내에서만 76만여 명이 감염됐고 270명이 사망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바이러스에 시달린다. 지난 겨울철에는 사상최악의 구제역이 돌아 많은 동물이 살처분됐다. 바이러스는 분명 두려운 존재다.

바이러스, 친구인가 적인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는 심각한 병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바이러스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해롭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나 바이러스가 있다. 바이러스는 동물세포 크기의 100분의 1 밖에 되지 않지만 모든 바이러스의 무게를 합치면 전 세계 코끼리 무게의 1000배가 넘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가 떠다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평생 바이러스가 있는 공기를 호흡하고, 눈과 소화기를 통해 많은 바이러스를 접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을 사람과 더불어 살며 사람의 면역체계를 갖추는 데 도움을 줬다.



바이러스는 의약품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지금 쓰는 백신의 80% 이상이 바이러스 백신이다. 바이러스는 오히려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한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의사들은 백혈병 환자가 심한 독감에 걸리면 백혈병이 낫는 경우를 종종 관찰했다. 바이러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들은 바이러스가 암을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었다. 연구 결과 정말 암세포를 죽이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세포는 활발히 증식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런데 특정 종류의 바이러스는 암세포가 만든 돌연변이를 이용해 암세포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 암세포를 죽이고 만다. 과학자들은 이 신기한 바이러스를 ‘항암 바이러스(oncolytic virus)’라고 불렀다. 아데노 바이러스, 헤르페스 바이러스, 백시니아 바이러스(우두 바이러스) 등이 있다.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공격하면 든든한 지원군도 눈을 뜬다. 암세포의 위세에 억눌려 있던 면역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세포독성 T임파구’가 활동을 시작하고 종양 항체도 많이 만들어진다. 결국 암세포는 바이러스와 면역세포, 양쪽의 공격을 받아 죽고 만다.

이런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려 요즘은 바이러스가 새로운 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1월 미국의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바이오벡스가 개발하던 항암 바이러스는 거대제약사 암젠에 10억 달러(1조 1000억 원)에 팔렸다. 로저 퍼뮤터 암젠 부사장은 “바이러스 자체뿐 아니라 바이러스가 유도하는 면역기능 때문에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강력한 항암 바이러스를 만들다

필자도 10여 년 째 항암 바이러스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1993년 필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스티브 숀 스탠포드대 교수(현 피츠버그대 교수)와 데이비드 컨 옥스퍼드대 교수를 만났다. 컨 교수는 항암 바이러스 분야에서 혁신적인 연구를 주도하는 종양전문의이자 바이오텍 CEO다. 실험실 연구에서 벗어나 실제 신약을 개발하고 싶었던 필자에게 이들을 만난 것은 좋은 기회였다.

필자는 컨 교수에게 함께 연구를 하고 싶다고 의견을 말하고 몇 차례 e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연구는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필자는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컨 교수를 무작정 기다렸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3일째, 두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때 필자의 연구계획을 전달했다.

다음날 아침 7시, 컨 교수가 필자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왔다. 공동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뿐 아니라 미국 대학의 교수들과 함께 항암제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는 말을 전했다. 이때부터 국제 공동연구가 시작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구제역 바이러스가 한반도를 덮쳤다. 그 결과 약 350만 마리 정도의 소와 돼지가 땅에 묻혔다. 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백시니아 바이러스로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다. 이 백신으로 사람은 천연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선 필자와 숀 교수는 어떤 종류의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가장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수십 개의 바이러스 후보를 테스트한 결과 백시니아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죽이는 능력이 가장 좋았다. 토끼 모델에서도 백시니아 바이러스는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간암은 물론 폐까지 전이된 경우에도 효과적이었다.

백시니아 바이러스는 천연두 백신으로 100년 이상 사용해오던 바이러스다. ‘백신’이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로 천연두를 예방했을 뿐 아니라 결국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였던 천연두를 종결시켰다. 필자는 이 바이러스가 인류를 암의 고통에서도 벗어나게 해 줄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백시니아 바이러스는 숙주의 증식 속도에 맞춰 자란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암세포에 사는 바이러스가 더 빨리 자라고 그 수도 많다. 암세포는 스스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성장을 억제하는 인자를 없애고 성장을 유도하는 물질을 많이 생산해 낸다. 특히 DNA를 합성하는 효소인 ‘티미딘 키나아제(TK)’라는 효소를 많이 만든다. 암세포 뿐 아니라 백시니아 바이러스도 DNA를 합성할 때 이 효소를 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했다. 암세포의 TK 효소를 뺏어 쓰는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바이러스의 TK 유전자를 없애기만 하면 된다. TK 효소가 없는 바이러스는 암세포의 TK를 이용해 증식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에게 효소를 뺏긴 암세포는 더 증식하지 못하고 죽었다. 바이러스는 다시 다른 암세포로 가 같은 방식으로 암세포를 파괴했다. 이 순환을 반복하며 주위의 암세포를 모두 죽였다. 남은 바이러스는 몸속 면역세포가 없앤다.

반면 이 바이러스는 정상 세포 속에서는 자랄 수 없다. 대부분의 정상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세포 속에 TK 효소가 없기 때문이다. 모근세포처럼 빨리 분열하는 세포라 하더라도 TK 효소의 양은 바이러스가 이용할만큼 충분하지 않다(항암제의 부작용은 암세포뿐만 아니라 분열 속도가 빠른 정상세포도 함께 죽인다는 점이다).

이렇게 암세포에서만 자라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백시니아 바이러스에 ‘JX-594’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GM-CSF’를 만드는 유전자도 추가했다. GM-CSF는 면역작용을 유도하는 물질이다. JX-594는 면역세포와 협공해 암을 직접 죽이고 암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파괴했다.

간암 대장암에 효과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전에 우리는 동물 모델을 이용해 JX-594의 효과를 검증했다. 그 후 국내에서 임상1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결과는 종양 분야의 저명한 논문인 ‘란셋 온콜로지’에 실렸다.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1상에서는 JX-594를 정맥으로 주사했다.


[➊ 암종양을 화살표로 표시했다. 간암이 목으로 전이된 상태다.
 ➋ 내부를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촬영했다. 빨간색 원으로 나타낸 부분이 암종양이다.
 ➌ JX-594를 주사하자 암종양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➍ CT촬영으로도 암종양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➎ 간에 생긴 암종양 (왼쪽)에 JX-594와 간암치료제인 소라페닙을 주사하자 9달 후 암종양이 괴사했다(오른쪽).
 ➏ 같은 환자의 전신을 찍은 사진. 간과 신장에 있던 암종양(왼쪽)이 치료 후에는 보이지 않는다(오른쪽).]

암환자 23명 중 8명에게 항암 바이러스를 혈관으로 두 차례 투여했다. 그 결과 8명 중 7명의 암세포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6명은 암종양이 줄어들거나 증식을 멈췄다. JX-594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며 암세포만 선택해 죽인 것이다.

지금까지 항암 바이러스를 이용한 모든 임상시험에서는 바이러스를 암세포에 직접 넣어 효능을 확인해 왔다. 따라서 암세포가 몸속 깊은 곳에 있거나 민감한 장기에 퍼졌을 때는 주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항암 바이러스를 정맥주사제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항암제 개발에서 큰 진보를 거둔 것이다. 실험 결과는 ‘네이처’ 9월 1일자에 발표됐다. 영국 BBC 방송에서도 보도했다. 임상 2상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50여 명의 간암 환자에게 JX-594를 주사한 결과 1상과 같은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임상시험은 국내에서 시작했고 이후 미국과 캐나다가 참여했다. 실험 결과 중 일부를 올해 4월 유럽 간학회에서 발표했다. 11월 중에는 미국 간학회와 한국 세포유전자치료학회에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임상 2상에서 JX-594와 함께 유일한 간암 치료제인 ‘소라페닙(넥사바)’을 주는 실험도 추가했다. 그 결과 암세포는 2~3주 만에 괴사했다. 소라페닙만 줬을 때보다 훨씬 좋은 결과다. 지금까지의 임상 시험 대상은 주로 간암 환자와 대장암 환자였지만 앞으로 다른 암에도 사용할 계획이다.

2~3년 내 상용화 기대

그러나 JX-594는 검증할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았다. 우선 항암 바이러스를 반복적으로 투여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생겨 치료를 지속하기 힘들다. 또 말기 암 환자의 경우 면역기능이 너무 약해 바이러스를 넣어도 괜찮은지를 완벽히 증명하지 못했다. 또 바이러스 항암제를 써도 살아있는 암세포는 여전히 많다. 워낙 돌연변이가 많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이들을 모두 죽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게 남은 과제다. 다음 임상시험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JX-594는 두 개의 큰 산을 넘고 마지막 세 번째 고개를 넘기 위한 길에 섰다. 임상 3상에는 영국, 스페인, 홍콩도 가세했다. 이 속도라면 JX-594는 2~3년 내에 의료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개발을 주도한 최초의 항암제인 만큼 아주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JX-594는 정맥주사로도 이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간암과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했지만 다른 암에도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예정이다]
글 : 신선미 기자, 글 황태호 교수 vamie@donga.com
이미지 출처 : 동아일보, istockphoto, 위키미디어, 란셋 온콜로지, 몰레큘러 테라피

과학동아 2011년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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