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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숙주 특이성

AI가 구제역보다 두려운 이유

현재 구제역이 AI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구제역 보다 AI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AI의 일부는 사람까지도 감염시킬 수 있을뿐더러 일단 감염되면 고병원성일 경우 치사율이 60%에 이르기 때문이다. 실제 2003년 동남아에서 AI에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처음 나온 이래 현재까지 500여 명이 감염돼 300여 명이 사망했다.



바이러스가 숙주에 침입하려면 먼저 숙주 세포에 달라붙어야 한다. 바이러스들은 수많은 돌연변이를 통해 표면 단백질의 구조를 바꿔왔고 이 과정에서 숙주 세포의 단백질에 딱 들어맞는 종류가 자연선택됐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따라 인식하는 숙주의 단백질이 정해져 있다.



물론 숙주 세포 표면의 단백질들은 바이러스가 달라붙으라고 있는 건 아니다. 세포나 개체 차원에서 필요하니까 존재하는 것이다. 세포 표면이 매끄럽게 진화한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는 세포가 모인 개체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박종현 수의연구관은 “구제역바이러스는 캡시드 단백질인 VP1의 돌출부분이 숙주인 우제류(소나 돼지처럼 발굽이 둘로 갈라진동물) 세포 표면의 인테그린이라는 단백질에 달라붙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인테그린은 우제류뿐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 모두 갖고 있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왜 구제역바이러스는 우제류만 감염시키고 사람은 물론 우제류와 비교적 가까운 사이인 기제류(말처럼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동물)조차 감염시키지 못할까.

인테그린은 세포가 주변의 다른 세포나 조직에 달라붙을 때 관여하는 분자로 종에 따라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박 연구관은 “구제역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은 우제류의 인테그린은 인식할 수 있지만 구조가 조금 다른 사람이나 말의 인테그린에는 달라붙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행인 셈이다.



미국농업연구청 동물질환센터 조나단 아르츠 박사팀은 구제역 바이러스가 소의 비인두(코 뒷부분과 목을 연결하는 부분)의 상피세포에 가장 먼저 침투한다는 사실을 밝혀 ‘수의병리학지’ 2010년 11월호에 발표했다. 인테그린은 상피세포 표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같은 바이러스라도 오르토믹소바이러스과에 속하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표면의 다른 분자를 인식한다. 즉 바이러스 표면의 헤마글루티닌(H) 단백질이 숙주의 시알산이라는 당 분자에 달라붙는다. 흥미롭게도 시알산의 경우 사람과 돼지에서 구조가 비슷하다. 반면 조류는 다소차이가 난다. 따라서 돼지와 사람을 공통적으로 감염시키는 인플루엔자는 종종 나타나지만 AI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2003년 사람도 감염시키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이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은 H5형으로 원래 사람은 감염시키지 못하는 구조다. 그런데 182번째와 192번째의 아미노산이 바뀌는 변이가 일어나 사람의 시알산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한반도에 퍼지고 있는 AI도 사람에 감염될 확률은 낮지만 구제역처럼 안심할 수는 없는 이유다. 한편 돼지와 사람의 시알산 구조는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둘 다 감염시키는 플루바이러스가 흔하다.



흥미롭게도 구제역바이러스와 같은 피코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리노바이러스는 인테그린이 아니라 사람 세포 표면의 세포간결합분자1이나 저밀도지질단백질수용체에 달라붙어 안으로 들어온다. 리노바이러스는 감기 원인의 5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흔히 ‘감기바이러스’로 불린다. 라노바이러스의 구조는 1985년 밝혀졌는데, 4년 뒤 규명된 구제역바이러스와 비교해보면 얼핏 봐서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반면 이호왕 박사가 발견한,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타바이러스(부니아바이러스과)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가까운 종류지만 구제역바이러스처럼 숙주 세포 표면의 인테그린을 인식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자치대 에스테반 도밍고 교수는 “바이러스가 이용하는 세포 표면의 수용체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질 등 다양하다”며 “분류상 가까운 바이러스라도 이용하는 수용체는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퇴치가 그만큼 어려운 이유다.





[구제역에 걸린 소는 잇몸이 허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죽지 않더라도 허약해져 가축으로서의 상품성이 떨어진다.]



바이러스 생활사

구제역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둘 다 게놈이 RNA 단일가닥으로 이뤄져 있다. RNA는 DNA에 비해 불안정한 분자이기 때문에 복제과정에서 오류가 많아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그 결과 숙주의 면역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한편 구제역바이러스는 게놈 자체가 전령RNA(mRNA)가 되는 양성가닥 RNA 바이러스인 반면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mRNA와 상보적인 음성가닥 RNA 바이러스다. 그 결과 숙주세포에서 복제하는 메커니즘이 많이 다르다.





[구제역바이러스-지름이 30nm에 불과한 작고 단순한 바이러스로 캡시드(껍질)단백질 240개가 RNA게놈을 감싸고 있다. 캡시드단백질은 VP1, VP2, VP3, VP4 네 가지가 각각 60개씩 있는데 VP4는 표면에 노출되지 않는다. 아래는 결정구조로 왼쪽이 구제역바이러스, 오른쪽이 리노바이러스(감기바이러스)로 매우 닮았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지름이 100nm 정도이고 캡시드단백질을 지질막이 감싸고 있는 구조다. RNA게놈은 8개의 조각으로 나눠져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지만 결정화가 안 되기 때문에 구제역바이러스처럼 원자 차원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생활사는 다소 복잡하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한반도 바이러스 대공습!
Part 1. 구제역 전파
Part 2. 숙주 특이성
Part 3. 백신 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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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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