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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사슬 받치는 '천연 소시지'

애벌레의 비밀

[1. 가장 많이 잡아 먹힌다]

나비와 나방, 딱정벌레의 애벌레만 보고 어떤 생물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애벌레는 저마다의 식성과 습관, 행동양식이 모두 다르다. 자기 어미(성충)와도 다르다. 생태계에서 애벌레가 차지하는 역할을 안다면 누구도 애벌레를 미물로 여기지 못할 것이다.


 








 
[대표적 흡즙성(먹이의 몸에서 즙액을 빨아먹는) 포식자인 다리무늬침노린재가 호랑나비 애벌레 체액을 빨아 먹고 있다.]



나무젓가락 한 쌍과 석유가 든 깡통을 하나씩 들고 학교 앞산의 송충이 사냥에 동원되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초등학교 시절 풍경이 있다. 빽빽하게 난 털 탓일까,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탓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송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징그러워한다. 외양 때문에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이유 없이 미움 받는 불쌍한 존재다.



애벌레를 외면한 것은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곤충을 전공한 학자 중에도 애벌레를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곤충의 어린 시절’, ‘하루 종일 먹고 자기만 하는 시기’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애벌레는 중요하지 않은 단계, 농작물을 해치는 존재라는 오명을 썼다. 결국 애벌레는 아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생물 집단이 돼버렸다.



2010년 현재 곤충 분류학자들이 한반도에 살고 있다고 확인하고 이름 지은 나비목 곤충은 3702종이다. 이들의 생활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계인 애벌레도 3702종이라는 얘기다. 지금껏 곤충 연구는 어른벌레(성충)에 집중됐다. 사실 어른벌레는 짝을 찾아 번식을 하고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주하는 짧은 시기일 뿐이다. 하지만 어른벌레와 달리 애벌레에 관해서는 정확한 분류나 정보가 거의 없다.

 
 


 
 
모르기 때문에 ‘해충’ 편견 생겨



필자는 강원도 횡성군에서 서식지외 보전기관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이끌며 1997년부터 애벌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인 애기뿔소똥구리, 붉은점모시나비, 물장군의 증식과 복원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서식지외 보전이란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 동식물을 서식지가 아닌 시설에서 인위적으로 키워 야생에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애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필자는 애벌레를 동정(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생태학교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과 교사들은 직접 채집해 온 애벌레를, 국립공원이나 식물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조사 중 우연히 만나 촬영한 애벌레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 알고 싶다고 질문을 한다. 그들의 질문은 대략 이렇다. “이것은 무슨 애벌레인가요? 이 애벌레는 무엇을 먹나요? 이 애벌레가 잘 가꾸어 놓은 식물원에 해를 끼치지는 않나요? 이 애벌레는 자라서 무엇이 되나요?” 애벌레가 우리 생활을, 우리가 먹어야 할 농산물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우러난 궁금증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애벌레는 전 생애에 걸쳐 사용할 영양분을 축적하느라 모든 식물을 끊임없이 먹어댄다. 이런 애벌레들은 농작물을 해치기 때문에 사람의 입장에서는 해충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살충제를 잔뜩 뿌려 벌레 먹은 자국 없는 깨끗하고 보기 좋은 농산물이 신선한 것처럼 보였지만, 요즘은 오히려 벌레가 갉아 먹은 채소들이 유기농이라면서 더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벌레와 생물학적인 조화를 이룬 농산물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환경에, 생태계에, 그리고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려할 때 애벌레가 사람들에게 오해와 편견을 받는 일이 매우 안타깝다.



 
 






 
 어른과 아이 모두 먹여 살리는 ‘애’



사람의 입장에서 해충인 애벌레가 생태계에선 꼭 필요한 존재다. 다른 동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비목의 애벌레는 딱딱한 껍질이 없고 단백질 덩어리처럼 부드러워 잡아먹기에 좋다. 마치 ‘자연의 소시지’처럼 곤충을 비롯해 조류, 파충류, 포유류 등 여러 동물들의 식량이 된다. 먹이사슬 가장 아랫자리에서 육상 생태계 전체를 움직인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검은딱새의 어미가 새끼에게 어떤 먹이를 물어다주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전체 먹이 중 80% 정도가 곤충류였는데, 37.7%가 나비목 애벌레였다. 새끼가 먹은 내용물을 직접 채집해 조사하는 방법(경륜법)으로도 동물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 수 있다. 활엽수림에 사는 곤줄박이는 주로 곤충(89%)을 먹이로 하는데 대부분 나비목 애벌레(48.4%)다. 침엽수림에 사는 곤줄박이도 주식인 곤충(91.5%) 가운데 나비목 애벌레가 81.4%나 됐다. 바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태안해안국립공원 해안사구에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 Ⅱ급 파충류인 표범장지뱀을 살펴보니 애벌레가 중요한 먹잇감이었다. 바다와 육상 생태계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표범장지뱀 역시 곤충을 주로 많이 먹었는데(70%), 대부분이 나비목 애벌레(30.6%)였다. 애벌레가 없었다면 이 동물은 이미 지구에서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새나 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곤충들도 다른 곤충의 애벌레를 많이 먹는다. 애벌레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로 인기가 많다. 자기 먹이로 삼지 않더라도 새끼의 밥으로 삼는 기생 천적도 많다. 예를 들어 맵시벌은 복부 끝에 달린 긴 산란관으로 애벌레의 피부를 찢고 살 속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다. 산호랑나비의 애벌레 가운데 맵시벌의 알을 품고 사는 녀석들은 84%나 된다. 애벌레는 천적과 그들의 새끼들까지 먹여 살리는 셈이다.

 
 




 


생태계 이해하려면 애벌레 잘 알아야



먹이사슬 최하위층에서 다른 종들의 훌륭한 먹잇감으로 그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애벌레들이야말로 생태계 수레바퀴를 돌리는 엔지니어라 할 수 있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생태계에서 많은 천적들에 둘러싸여 기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애벌레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애벌레의 성충이 줄어들 미래도 문제지만, 당장 천적들의 목숨도 길지는 못하다. 숲의 봄은 적막하고, 생태계가 온전하게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인류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생태계를 움직이는 중심인 애벌레에 대한 관심과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생활양식이나 천적, 번식방법 등 지금까지 학자들이 어른벌레에 대해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애벌레를 분류하고, 생물학적 요구를 이해하고 이러한 생물체들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과정은 생태계 전체의 생리를 이해하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필자는 어른벌레와는 독립적으로 애벌레를 분류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백 종의 애벌레를 직접 키워왔다. 애벌레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 겨울은 어떻게 견뎌내는지 등 애벌레의 생태와 행동을 관찰하면서 연구한 지 벌써 14년이 넘었다.



앞으로 직접 알아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독자들에게 매달 재미있는 습관과 특이한 행동으로 보기만 해도 즐거운 애벌레들의 비밀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애벌레가 얼마나 중요한 생물인지, 미물이라고 치부하기엔 얼마나 흥미롭고 유익한 행동을 하는지 알리고 애벌레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싶다. 이 글을 통해서 애벌레들이 장차 유익한 나방이나 화려한 나비가 될 청사진을 내부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연히 그들을 만나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애벌레에 대해 관심을 갖길 바란다. 지금은 징그럽고 단순하게 보이는 이 작은 생명체는, 장차 우리 삶에 도움을 주거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곤충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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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운 박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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