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재난과 질병 vs. 은폐와 거짓



탈은 ‘덧보기’라고도 불린다. 본래의 얼굴에 덧씌우는 다른 얼굴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한국과 일본은 ‘가면(假面)’을,  중국은 ‘면구(面具)’를 주로 사용한다. 탈이란 말은 ‘일에 탈이 생겼다’, ‘배에 탈이 났다’, ‘재주가 많은 것도 탈이 되나’, ‘무슨 일에나 탈을 잡으려 한다’는 말처럼 변고, 사고,  병, 흠, 트집의 뜻이 있다. 이러한 탈을 없애는 것이 탈이다. 탈을 쓰고서 재난과 질병을 막거나 없애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탈을 벗고 정체를 밝혀라’, ‘천사의 탈을 쓴 악마’, ‘죽은 아비의 탈을 쓰고 술타령을 하느냐’는 말처럼 은폐, 거짓, 복제의 뜻으로도 쓰인다. 이러한 위장과 위선의 탈을 벗기기 위해서도 탈이 필요하다. 이것이 탈의 역설(paradox)이다.















탈에는 표정과 상징이 있다



탈은 기본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은폐 도구다. 그러나 방독마스크나 도둑의 복면처럼 얼굴의 가리개나 보호도구의 구실만 하면 탈이 예술이 될 수 없다. 탈이 조각품이 되려면 표정과 상징을 지녀야 한다. 탈을 쓰면 인간은 신이 되고, 동물로도 변신한다. 탈은 남자를 여자로 전환시키고, 천민을 왕으로 바꿀 수 있다. 직업과 성격도 바꿀 수 있다. 탈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표현되고, 상징적인 뜻이 들어 있다.



하회탈을 보면, 실눈에 생글생글 웃는 부네는 기쁜 표정이고, 실눈을 하고 너털웃음을 짓는 양반탈은 즐거운  표정이다. 반면에 입을 새침하게 다물고 오른쪽 눈은 지긋이 내리뜨고 왼눈은 살짝 치뜬 각시는 슬픈 표정이다.



고리눈으로 쏘아보는 초랭이, 할미, 선비는 분노의 표정이다. 그리고 처용이 청색·적색·백색·흑색·황색의 옷을 입는 것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한다. 늙은 노승탈의 검은 색과 젊은 취발이탈의 붉은 색이 각각 겨울과 여름을 상징한다. 눈을 뜨고 있는 연잎탈은 하늘을, 눈을 감고 있는 눈끔적이탈은 땅을 상징한다. 또 우창부탈의 오른쪽으로 굽은 코는 성공을, 좌창부의 왼쪽으로 굽은 코는 실패를 상징한다.















신의 얼굴부터 원혼과 역귀까지



신라 산신의 탈이나 하회 서낭신의 탈은 신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므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신라 때 처용이 아내와 동침하는 역신을 내쫓은 데서 유래하는 처용탈이나 네 개의 황금색 눈이 달린 중국의 방상시는 벽사탈이다. 그리고 예능 활동으로 사용하는 무용탈과 연극탈이 있다. 토템탈은 단군신화의 곰처럼 직접적인 조상으로 믿거나 조상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토템동물의 탈이다. 풍요제의탈은 제주도의 입춘굿에서 긴 염이 달린 붉은 색 탈을 쓴 농부가 씨앗을 뿌리면 새가 쪼아 먹고, 그 새를 포수가 쏘아 죽이는 것과 같이 풍요다산을 비는 탈이다. 의술탈은 제주도 도깨비영감의 탈처럼 질병의 원인이 되는 역귀(疫鬼)의 탈을 쓰고 춤을 추어 역귀를 떠나보낸다. 영혼탈로는 중국에서 조상이 마을에 나타나 농사를 지어주고 돌아간다.



장례탈은 중국 실크로드의 고분에서 발굴된 시신의 얼굴에 씌워진 비단탈처럼 장례식에서 죽은 사람의 얼굴에 씌우는 탈이다. 추억탈은 황창이 칼춤을 추다가 백제의 왕을 암살하고 죽임을 당하자 신라인들이 그를 추모하여 탈춤을 추었다고 하는 것처럼 위대한 인물을 추모하거나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탈이다. 수렵탈로는 만주족이 사냥을 할 때 사슴을 유인하려고 쓴 사슴탈이 있다. 전쟁탈은 중국의 난릉왕(蘭陵王)이 탈을 만들어 여자처럼 곱상한 얼굴을 가리고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고사가 있다. 이밖에도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입사식(성년식)과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기우제에서도 탈이 사용되었다.















인간은 왜 탈을 만들고 탈춤을 추는가




신라의 헌강왕이 남산에 갔을 때 남산의 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 그것을 헌강왕만 보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헌강왕이 남산신의 탈을 만들어 쓰고 춤을 흉내 내어 사람들에게 남산신의 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헌강왕이 신의 얼굴을 모방하여 탈을 만들고, 신의 춤을 모방하여 춤을 춘 것이다. 이래서 위대한 종교가 있는 민족만이 위대한 예술을 창조한다는 말을 한다. 종교가 예술의 모태이고 원천인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예술도 제천의식에서 발생하였다. 마찬가지로 하회탈놀이도 마을의 안녕과 풍요다산을 비는 뜻으로 광대가 각시탈을 쓰고 춤을 추고 혼례를 치른다.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신이 인간세계에 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결혼하고, 나쁜 귀신을 쫓아내고, 농사를 지어주고 되돌아가는 과정을 연극적인 굿으로 논 것이 원래의 탈춤이고 탈놀이다.



그러나 영남지방에는 양반의 하인 말뚝이가 양반의 뒷조사를 하여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폭로할 때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탈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신



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현실 문제를 다루며 즐기는 연극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탈과 탈춤에도 과학이 있다. 탈과 탈춤은 주술성이 있고 예술이기 때문에 과학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탈의 재료가 종이, 금속, 돌, 비단일 경우 제조 과정에 과학과 기술이 뒷받침된다. 탈을 잘 보관하려면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야 한다.



하회탈은 옻칠과 향물, 연기의 힘으로 나무탈임에도 700년 이상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그리고 탈춤을 출 때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어떤 근육이 발달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의 효과가 크다는 말도 있는데, 실제로 탈춤을 추는 사람들은 대체로 장수한다. 또 탈놀이를 하면 신명풀이를 하여 정신건강과 정서함양에 좋다. 뇌(腦)과학에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1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태 대구대 교수 기자

🎓️ 진로 추천

  • 문화인류학
  • 역사·고고학
  • 미술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