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의 공이 컸다고 한다. 무엇이 사람들이 걷는 방향을 바꾸는 결단을 내리게 했을까.
‘자동차라면 모를까 사람이 걷는 것까지 좌우를 지정할 필요가 있을까?’7월 1일부터 전면 실시한 우측보행 제도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적한 길을 걷는다면 좌우 어느 방향으로 걷든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조금만 많아져도 진행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차이는 엄청나다. 앞사람과 부딪칠까봐 옆으로 비켜서도 앞에 또 사람이 있으므로 앞으로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좌측보행을 해온 거 아닌가?’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좌측보행으로 별 탈 없이 잘 지내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불편함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문제였을까.

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으로
“우리나라는 좀 독특한 경우였습니다. 차들은 오른쪽으로 가는데(우측주행) 사람은 왼쪽으로 다녔으니까요(좌측보행). 세계에서 이런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우측보행을 결정하는 데 근거가 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연구실 유정복 박사의 말이다. 세계의 도로교통체계를 보면 우측주행과 좌측주행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와 포함해 북미, 유럽대륙의 나라들은 우측주행을, 일본과 영연방 나라들은 좌측주행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빼면 다들 우측주행은 우측보행을 실시한다. 심지어 좌측주행을 하는 나라도 우측보행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일제시대에는 좌측주행이었는데 해방되고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우측주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보행방향은 함께 바뀌지 않았죠.”
우리의 혼용체계는 이런 아픈 역사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사실 보행이 완전히 좌측으로 통일된 것도 아니었다. 회전문의 경우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그 앞에서는 우측보행으로 바꿔야했고 공항의 자동문도 우측보행 기준이었다. 에스컬레이터 역시 건물에 따라 우측보행과 좌측보행이 뒤섞여 있었다.‘그랬었나? 난 몰랐는데….’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면 우측주행, 좌측보행 체계가 큰 문제는 없는 것 아니었을까.
“저희 조사는 바로 현상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보행 방향 변경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연구팀은 먼저 사람들의 보행 습관을 조사해봤다. 그 결과 우산이나 짐을 오른손에 들고 다니는 경우가 80%로 왼손보다 훨씬 높았다. 또 첫발을 내디딜 때 오른발인 경우가 68%였고 갑작스런 상황에 몸을 피할 때도 57%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오른손잡이가 대다수인 현실에서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좌측보행 체계를 쓰다 보니 마주보는 사람을 지나칠 때 좌측으로 피할 경우 우산이나 짐이 부딪치는 경우가 잦고, 보행방향 표시가 없을 경우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본능은 우측인데 교육을 좌측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급한 상황에서 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반면 우측보행을 실시하는 나라들에서는 보행방향에 대한 안내 표시가 없는 곳에서도 사람들이 우측보행을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다고. 또 공항이나 호텔처럼 국제 규격에 맞춰야 하는 건축물의 경우 회전문의 방향이나 자동문, 에스컬레이터의 방향 모두
우측통행을 기준으로 설치돼 있다. 따라서 좌측통행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혼란을 겪게 된다.
시뮬레이션도 우측보행 지지
그렇다면 보행방향이 도대체 얼마나 보행효율에 영향을 미칠까. 유 박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대상은 서울역 역사 안으로 사람들의 밀도를 달해가며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의 차이를 살펴봤다. 그 결과 우측통행을 할 경우 보행속도가 좌측통행에 비해 1.6배나 빠르고 그 결과 사람들의 밀도도 24% 줄어들었다. 마주 오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 횟수도 28%나 감소했다.
보행 방향은 차 옆을 걸을 때도 중요하다. 차도와 보도가 분리된 경우 좌측보행을 하면 차도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차를 등지게 된다. 물론 차가 제 길을 가면 별 일이 없지만 사고란 ‘아차!’할 때 발생한다. 이 경우 보행자가 차의 이상행동을 보느냐 못 보느냐는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우측보행이 무조건 안전한 건 아니다. 지방도로나 골목길처럼 차도와 보도가 분리돼 있지 않아 사람이 한 줄로 갈 정도밖에 공간이 없는 경우는 좌측보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차의 진행방향과 마주보기(대면보행) 때문이다. 물론 도로 이쪽 편에 있는 집을
가는데 대면보행을 하려고 길을 건넌 뒤 이동하고 다시 길을 건너는 수고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를 등지고 걸을 때 교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대면통행만 잘 지켜도 사고를 20%나 줄일 수 있어요.” 유 박사는 조금 귀찮더라도 안전보행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양대 인체공학연구센터 김정용 교수팀은 뇌파와 심박수 등 생리적 지표를 측정함으로써 주행과 보행을 통일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사람들에게 우측주행을 하는 동영상과 우측보행을 하는 동영상을 함께 보여줄 경우 우측주행과 좌측보행을 함께 보여주는 경우보다 알파파는 늘어나고 베타파는 줄어들었던 것.

뇌파는 신경계에서 뇌신경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때 생기는 전기의 흐름이다. 주파수 8~13Hz인 알파파는 심신이 안정됐을 때 늘어나고 13~30Hz인 베타파는 각성이나 긴장 상태에서 우세하다. 따라서 일상에서 환경변화에 따른 뇌 활동의 변화는 주로 알파파와 베타파를 측정해 해석한다. 주행과 보행이 통일된 동영상을 봤을 때 서로 엇갈렸을 때보다 알파파가 늘고 베타파가 줄었다는 건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사실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심박수 역시 두드러진 차이는 아니지만 주행과 보행이 같은 방향일 때가 다른 방향일 때보다 더 적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혼란과 불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의 힘은 대단
합니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바뀐 경우가 우리 심신에 더 자연스러울 경우 금방 적응
을 하지요.”내년 이맘쯤이면 ‘우리가 언제 좌측보행을 했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