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처럼 빛나는 누런 들판이 바닷물처럼 출렁인다. 하늘에서 선물이라도 쏟아지는지 들판은 쉴 새 없이 손을 흔든다. 나무들도 ‘선물’을 받으려고 하늘로 손을 뻗었다. 나무마다 머리 꼭대기가 연두색으로 밝게 빛난다. 가장 키가 큰 나무는 혼자 차지하고 싶어 온 가지를 사방으로 쭉 뻗어 기지개를 편다. 나무와 들판이 이렇게 반기는 선물은 무엇일까. 강원 평창군 평창읍 다수리를 찾아간 우제용 씨는 자연이 반기는 ‘하늘의 선물’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그것은 빛이었다. 그의 사진 속에 찍힌 빛은 공기 중에 둥둥 뜬 채 들판으로 내려오는 풍선 같다.
“여러분 곁의 빛은 공해입니까, 생명입니까.”경기 양주시 필룩스 조명박물관에 걸린 문장이다. 이곳에서는 올해 6년째인 ‘빛공해 사진 공모전’ 수상작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삶을 편리하게 하는 빛이 한편으로는 공해가 되고 있다. 세상의 시작이자 자연을 키우는 어머니인 빛이 언제부터, 어떻게 동식물과 사람의 삶을 괴롭히는 존재가 돼버렸을까.
동식물 먹여 살리는 태양의 ‘이유식’
지구에서 아침마다 해가 떠오르지 않는 곳은 없지만 같은 모습으로 뜨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같은 장소에서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해는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솟아오른다.전남 여수시 무슬목에는 해를 가두는 ‘방패’가 잔뜩 있다. 다른 데서는 하루에 하나밖에 뜨지 못하는 해가 이곳에서는 20개가 넘게 뜬다. 건물 외벽에 철로 만든 커다란 거울들이 걸려 있는데, 거울마다 해가 한 개씩 떠오르기 때문이다.
안개처럼 뿌연 연기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없앤 채 해가 뜨는 곳도 있다. 경기 안성목장에서 눈 내린 새벽에 목장을 산책하던 작가는 하얀 눈밭을 비추며 해가 솟는 모습을 촬영했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에너지는 식물과 동물,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 식물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인 엽록체는 빛망울을 잡아 ‘광합성 기계’를 돌린다. 물을 쪼개 전자와 수소이온을 만들고 산소를 내뿜는다. 전자는 광합성 기계를 본격적으로 돌리면서 최종산물인 탄수화물(포도당, C6H12O6)을 만든다. 장소를 옮기지 않고 햇빛과 물만으로 사는 식물은 무척 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빛으로 유기물을 만드는 엄청난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동물과 사람은 빛으로 유기물을 직접 합성할 수 없어 식물을 섭취해 얻는다. 사람은 인공적으로 빛(전구)을 만들어 깜깜한 밤을 밝힌다. 빛이 지금처럼 공해가 되기 전, 인공 빛은 사람이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밝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더 다채롭게, 더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야경
서울 한강에 뜬 무지개처럼 화려한 분수를 뿜어대는 반포대교, 빨갛고 파랗게 변하는 남산 N타워,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도심 속의 은하수. 건물과 도로, 강을 지나는 다리마다 특색 있는 조명을 달아 저마다 개성을 뽐낸다.밤길을 밝히고 활동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조명을 개발한 인류는 빛으로 도시를 꾸미는 일에 주목했다. 지난 달 석가탄신일을 기념해 청계천에 일렬로 전시됐던 작품도 커다란 전등이었고, 연말마다 나무와 조각상 위를 칭칭 감은 것은 작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이었다. 최근에는 다양한연출이 가능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조명이 보급되면서 더 화려하고 독특한 색깔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가로등을 LED조명으로 교체하면 에너지를 40% 가량 절감할 수 있다.
현란한 야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레이저 쇼다. 하늘을 뚫을 듯이 일직선으로 굵고 강하게 뻗어나가는 레이저는 흔히 알려진 녹색과 적색뿐 아니라 노란색, 파란색, 분홍색, 흰색 등 원하는 대로 색과 모양, 움직임을 연출할 수 있다. 강가를 따라 늘어선 레이저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먼 곳을 향해 빛 대포를 쏘는 듯하다.
별도, 달도 삼켜버리는 인공 빛이 어지러워~
서울 시내는 이렇게나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데, 왜 서울 밤하늘은 시커먼 허공에 회색 구름뿐일까. 공기가 오염된 탓이기도 하지만, 시내가 너무 밝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밤하늘에서는 맨눈으로 수천 개의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은하수는커녕 별도 몇 개 보이지 않는다. 도심 속의 조명이 별을 가렸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빛공해를 ‘인간이 만든 과잉 빛으로 인한 공해’로 정의하고 있다.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낭비할 뿐 아니라, 낮과 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사람과 자연의 생활 리듬을 깬다. 건강에 해를 주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빛공해는 빛이 없어야 할 곳까지 빛이 침범하거나, 빛이 너무 밝아 생활에 방해가 되거나, 조명으로 소모하는 에너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경우 모두 해당된다. 바쁜 하루를 끝내고 포근한 잠자리에 누웠는데, 집밖의 타워에서 빙글빙글 돌리는 레이저가 밤새 컴컴한 천장을 훑으면서 지나간다고 상상해 보자. 그 빛은 더 이상 아름다운 도시의 상징이 아니라 밤마다 괴롭히는 ‘불면의 악마’처럼 느껴질 것이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밤새 밝게 비추는 가로등 옆에 놓인가로수는 계절을 혼동해 단풍이 늦어지곤 한다. 너무 환한 밤과 낮을 구분하지 못해 생체리듬이 깨진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해양생물이 집단으로 폐사한다. 농작물의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기도 한다. 동식물을살리고 에너지를 절약함과 동시에 도시의 ‘절도 있는’ 야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너무심한 빛공해를 막아야 한다.
사진 조명박물관 www.lighting-museum.com/eyelovecampa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