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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만드는 '5가지 레시피'


과학자들이 ‘아이티 좀비’의 실상은 복어 독에 중독됐던 존재였다고 밝혀냈지만, 그것만으로 좀비를 등장시키면 좀비 영화나 소설이 너무 심심해진다. 좀비를 만들 수 있는 다른 ‘과학적인’ 방법은 없을까.

2007년 미국의 공포 코미디 소설 작가인 데이비드 웡은 지금까지 좀비가 등장했던 영화와 소설, 게임 등을 두루 살펴 ‘과학적으로 가능할 만한’ 좀비 만드는 방법 5가지를 뽑았다(당연히 부두교의 주술사가 시체를 저주한다는 내용은 없다). 뇌에 기생충이 있는 경우, 죽은 시체의 뇌에서 신경 조직이 발생하는 경우, 신경 독소에 중독된 경우, 분노바이러스에 전염된 경우, 그리고 초소형로봇(나노봇)을 뇌에 이식하는 경우다. 과연 5가지 ‘발칙한’ 방법대로 좀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뜯어 봤다.

RECIPE 1 숙주 조종하는 뇌 기생충 넣는다

게임 ‘레지던트이블4’에 나오는 좀비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뇌 안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 뇌 기생충은 숙주의 뇌 네트워크를 조종해 기생충에게 유리하게 사고하거나 행동하게끔 유도한다.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사람의 뇌 안에서 살 수 있는 기생충은 예를 들면 돼지고기에서 전염되는 낭미충(유구조충의 유충)이 있다. 낭미충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으면 사람에게 옮겨진다. 이 기생충은 안구나 척수, 뇌에 기생하면서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킨다. 낭미충은 숙주(사람)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좀비처럼 조종을 하진 못한다.

그런데 숙주의 뇌에 살면서 조종을 하는 기생충이 실제로 발견됐다. 란셋 흡충의 애벌레는 개미 몸속에 기생하면서 자란다. 이 기생충은 알을 낳으려면 초식동물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개미더러 풀잎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명령한다. 좀비가 돼버린 개미는 불쌍하게도 풀잎과 함께 먹힌다.

포유류 중에서도 ‘좀비’가 발견됐다.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 )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가 나타나도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잡아먹힐 때를 기다린다. 전문가들은 톡소포자충이 고양이 몸속에 들어가기 위해 쥐를 세뇌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톡소포자충은 사람을 숙주로 삼기도 한다. 사람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신경계가 손상돼전신경련과 뇌수종을 일으키고 실명이 되기도 한다. 더 심각한 상황은 임산부가 감염됐을 경우다. 신생아를 유산시키기 때문이다. 유럽 산부인과에서는 임산부에게 고양이를 멀리 하거나 상추 같은 채소를 꼼꼼히 씻어 먹으라고 당부한다. 키우던 집고양이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됐을 수도 있고,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들고양이의 분뇨가 상추에 묻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다행히(?) 톡소포자충이 사람의 뇌를 조종한다는 보고는 없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식자
숙주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톡소포자충이 조종하기에 사람의 뇌 네트워크가 너무 복잡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내용은 없다.

RECIPE 2 시체의 뇌에서 신경조직을 재생시킨다

‘어둠의 마법’으로 저주받아 부활한 시체들. 밤마다 흐느적거리며 깜깜한 거리를 활보한다. 어느 날 썩어가는 시체를 뜯어 먹는 일에 지친 좀비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저녁식사로 결정한다. 시체이지만 뇌 조직이 끊임없이 재생되기 때문에 생각이나 의지가 가능한 덕분이다. 좀비들은 눈동자가 녹아버린 듯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다니다가, 먹잇감을 발견하자 떼로 달려든다.

이미 죽은 사람의 뇌에서는 신경조직이 생성되거나 분열할 수 없다. 웡 작가는 다양한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가능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더 이상 호흡을 하지 않으며 심장이 뛰지 않아 신선한 혈액이 뇌에 공급되지 않는데다, 세포분열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과학적으로는 가장 ‘불가능한’ 좀비 레시피다.

그렇다면 역으로 살아 있는 뇌 조직이 손상됐거나 신경계에서 신호 전달이 비정상적으로일어나는 경우는 어떨까.

과거 좀비 묘약에 든 테트로도톡신의 역할을 알아낸 과학자들도 주술사가 정신질환자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좀비로 만들 사람을 고를 때 정신분열이나 긴장증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정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주술사가 묘약을 먹이기 쉬웠을 것이다.

한편, 정희연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긴장증은 대개 환자의 정신질환이 악화됐을 때 자폐적인 사고에 빠져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흐리멍덩해져 좀비처럼 보일 수는있지만, 외부 자극에 절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공격하거나 명령에 복종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RECIPE 3 신경 독소와 환각제 넣은 좀비 묘약 먹인다

신경 독소로 중독시키는 방법은 실제로 좀비를 연구했던 과학자들이 밝힌 방법과 비슷하다. 영화 ‘악령의 관’에 등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자세한 내용은 기획 첫 번째 파트‘죽은 사람이 어떻게 농장 노예 됐을까’에 나와 있다).

아이티에서 좀비가 나타났던 1980년대, 부두교 주술사들이 사용했던 묘약에는 공통적으로 복어 독(테트로도톡신)과 자이언트두꺼비의 침, 독말풀이 들어 있었다. 과학자들은 테트로도톡신에 중독돼 가사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 뒤 두꺼비의 침과 독말풀같은 환각성분으로 ‘최면’에 빠져 주술사의 명령에 따랐다고 발표했다. 좀비로 알려졌던 사람이 죽은 뒤 시신을 부검해 뇌의 전두엽이 손상됐음을 밝힌 학자도 있었다. 가사상태 동안 뇌에 공급되는 산소의 부족이 원인으로 꼽혔다.

심규원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산소가 부족해 뇌에 손상을 입었을 경우(저산소성 뇌병증) 자기생각이나 의지가 없이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두엽만 손상되기는 어렵고 뇌 전체에 걸쳐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정희연 교수는 “뇌 전체나 일부분의 기능이 떨어지면 의식 수준이 나빠질 수는 있어도,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조종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천기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뇌에서 어떤 부위가 손상됐는지에 따라 다양한 행동 양식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전두엽이 손상되면 충동적으로 변하거나 자발성이 없어지고, 양쪽 측두엽이 손상되면 식욕과 성적충동을 자제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역이용해 뇌에서 손상된 부분을 절제해 질환을 치료하기도 한다. 정천기 교수는“뇌종양이나 뇌혈관 기형처럼 뇌의 일부분이 정상적이지 않을 때 이를 제거하는 수술은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까지 간질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도 뇌에서 손상된 부분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신경 독소와 환각 성분으로 좀비를 만드는 방법은 과학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티에서 나타났던 좀비 노예를 만드는 방법이다. 영화 속 좀비처럼 살아 돌아온 시체가 아니며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잡아먹지도 않는다.

RECIPE 4 분노바이러스에 감염시킨다

2002년에 개봉한 영화 ‘28일 후’에서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좀비가 점점
늘어난다. 좀비 마니아들이 말하는 ‘분노바이러스’다. 흔히 분노바이러스를 광견병 바이러스에 비교한다. 좀비가 사람을 물면 분노바이러스가 옮겨져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되는데, 광견병 개에게 물리면 사람도 광견병에 감염되기 때문이다.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나 사람은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공수병으로도 부른다.이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면 음식을 삼키는 근육(연하근육)에 통증성 경련이 일어나 물을 삼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다른 개체에 전염되기 위해 개의 뇌 안에서 겁 없고 공격적으로 날뛰도록 조종한다. 주변이 시끄럽거나 빛이 밝게 비치면 더욱 난폭해진다. 광견병에 걸린 개는 다른 개나 사람에게 덤벼들어 물게 되고, 침에 머물고 있던 광견병 바이러스는 다른 동물에게 전염된다. 시간이 흐르면 온몸에 경련이 생기고 혼수상태에 빠져 죽는다. 광견병에 걸린 사람은 개처럼 다른 동물을 물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린 상처를 중심으로 근육이 마비되고 점점 전신이 마비되면서 죽어간다. 코가 간지러운 탓에 재채기를 하는데, 광견병 바이러스가 침 대신 공기 중으로 나와 퍼지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광견병은 다른 개체에게 전염이 된다는 점과, 감염되면 하루아침에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게끔 조종한다는 점(개의 경우)에서 영화 속 좀비와 비슷하다. 만약 광견병 바이러스와 비슷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사람도 난폭한 성질을 갖도록 만들고, 사람이 사람을 무는 방식으로 전염된다면 이것을 분노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RECIPE 5 뇌에 ‘나노봇’ 이식해 생각을 조종한다

미국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2004년에 쓴 ‘먹이’를 보면 뇌 안에 초소형로봇을 심어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내용이 나온다. 크라이튼은 소설가이자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고, 솔크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초소형로봇으로 사람을 조종한다는 설정이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초소형로봇으로 뇌를 조종한다는 내용은 게임 ‘나노브레이커’에서도 나온다.

2002년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10월 19일자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명 ‘좀비 뇌’로 불렸던 미니브레인 칩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생화학연구소의 신경물리학자 페테르 프롬헤르츠 박사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바이오테크 회사 ‘텐소바이오사이언스’의 미로 패스트낙 박사가 개발했다. 이들은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정신분열 같은 뇌질환을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목적으로 뇌를 조종할 수 있는 작은 칩을 만들었다.

미니브레인 칩의 표면에는 64개 전극이 배열돼 있어 이 위에 살아 있는 뇌 조직을 올려놓으면 전기적인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뇌의 전기신호를 측정하는 뇌파 전위 기록 장치(뇌파계)를 초소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 칩을 이용하면 뇌 조직을 계속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하면서, 새로 개발한 뇌 질환 치료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관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칩은 뇌 조직만 ‘좀비’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 남가주대의 테드 버거 박사는 뇌의 기억장치를 보완하는 미니브레인 칩을 개발 중이다. 그는 칩을 이식해 외국어를 익히거나 자동차 운전법, 어려운 물리 공식 등을 쉽게 외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연구는 2004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소개한 ‘황당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바꿔 줄 발명 10가지’에 뽑히기도 했다. 공포 영화에서는 악당 과학자가 사람의 생각과 의지를 조종해 좀비를 만든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많은 과학자들이 난치병을 치료하고 인류의 생활을 편하게 하는 목적으로 뇌를 조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결국 5가지 방법으로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좀비를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무시하기도 어렵다. 미니브레인 칩처럼 과학이 발전할수록 ‘좀비 레시피’도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비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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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정아 zzunga@donga.com

과학동아 2010년 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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