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과학수사대’ 특유의 시그널 뮤직을 배경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숲에서 조깅하던 한 남자가 야생 동물에게 물려죽은 채로 발견된다. 하지만 실제 사인이 된 외상 외에 발견된 내장의 훼손. 그리섬 반장과 워릭, 닉은 시체에 찍힌 개의 이빨 자국을 통해 한 미모의 여의사가 키우는 커다란 개 ‘심바’가 그 남자를 죽인 범인임을 알게 되고…. 의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그녀가 그리섬 반장 앞에서 마셨던 컵에서 푸른색의 루미놀 발광이 발견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CSI 대원의 무기 ‘루미놀’
루미놀은 비단 드라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현장 CSI 대원들의 무기라고까지 불린다. 그렇다면 이 루미놀이란 무엇일까. 루미놀은 혈흔의 유무를 판단할 때, 정확히 말해서 혈흔예비시험에 널리 쓰이는 화합물로서 회색 또는 연한 노란색을 띠는 가루다. 3-아미노프탈산히드라지드라(3-Aminophthalhydrazide)라고도 한다. 루미놀 용액은 증류수 100mL에 루미놀 0.1g, 무수탄산나트륨 5.0g을 녹이고 30% 과산화수소수 15.0mL와 섞어 만들 수 있다. 또는 간단하게 루미놀 0.1g을 0.5% 과산화나트륨수 100mL에 녹여 만든다. 루미놀은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게 녹이기 위해서는 교반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루미놀의 반응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림 1>;과 같다. 혈액 속에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을 촉매로 과산화수소가 분해될 때, 여기에서 발생하는 산소가 루미놀을 산화시킴으로써 빛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화학발광이라고 한다.
이것 봐, 여기 범인의 피가 있어!
KM 검사는 CSI 과학수사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실험 중 하나다. CSI 대원이 면봉에 증류수를 묻히고 혈흔이라고 의심되는 붉은 얼룩을 묻혀낸 뒤, 몇 가지 시약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종종 봤을 것이다. 이 경우 혈흔이 맞다면 시약이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는 혈흔의 혈색소, 즉 헤모글로빈(Fe2+)을 촉매로 과산화수소가 분해될 때 발생하는 산소가 페놀프탈린(phenolphthalin, KM 시약)이 다시 페놀프탈레인(phenolphthalein)으로 산화하는 데 관여하면서 발색되는 반응이다.
3가지의 용액만 있으면 아주 간단하고도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는데 면봉에 증류수를 묻혀 촉촉이 적신 뒤, 혈흔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얼룩을 묻혀낸다. 그리고 에탄올, KM 시약을 차례대로 두세 방울씩 떨어뜨린다. 약 5초 뒤 3% 과산화수소(H2O2)를 추가로 두 방울 떨어뜨리면, 혈흔인 경우 즉각적으로 분홍색으로 나타난다. 일부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학생들은 빨간색의 피가 몇 방울의 액체에 의해 희석됐으니 당연히 색이 흐려져 분홍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대조군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조군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결과는 확실하게 나타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의 시간관계상 3단계의 실험과정이 전부 나오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이러한 장면을 눈여겨보는 것도 과학수사 드라마를 즐기는 재미일 것이다.
무색 마라카이트 그린 시약을 사용해 혈흔을 검출하는 방법은 CSI 과학수사대에는 잘 소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 또한 매우 간단한데, 혈흔으로 짐작되는 물질을 필터페이퍼로 묻혀낸 뒤 제조된 무색 마라카이트 그린 시약 한 방울, 3% 과산화수소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된다. 혈흔이 확실하다면 청록색으로 변한다. 이 실험의 특징은 루미놀에 비해 민감도(sensitivity)는 떨어지는 반면 특이도(specificity)는 높다는 점이다. 즉 루미놀이 20만 배 이상 희석된 혈액이라도 찾아내지만, 무색 마라카이트 그린은 혈흔이 400배 이상으로 희석된 경우 반응하지 않는다. 반면 특이도는 높아서 루미놀의 경우 혈흔이 아닌 것과도 반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무색 마라카이트 그린은 거의 혈흔에만 반응을 일으키는 장점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3가지의 혈흔검사는 공통적으로 매우 예민하면서도 조작방법이 간단해서 사건 현장에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혈흔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CSI 대원들은 살인현장에 출동하며 마치 무기처럼 시약들을 챙겨나간다. 만약 현장에서 혈흔이라고 의심되는 얼룩들을 죄다 증거물 봉투에 담아 실험실로 보낸다면 안그래도 바쁜 실험실은 더욱 분주해질 것이다.
루미놀 반응은 얼마나 민감할까
<;그림 3>;의 위 사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혈액을 10배, 100배, 1000배, 1만 배, 10만 배로 희석한 것이며, 아래 사진은 각각의 시험관에 루미놀을 분무해 반응을 살펴본 것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혈액을 10만 배로 희석했을 경우 맨눈으로는 혈액의 존재를 알 수 없으나 루미놀 용액을 사용하면 확실하게 푸른색 발광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실험에 의하면 20만 배 이상으로 희석된 혈액에도 반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실험실이 아닌 실제 범행현장은 다양한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야외라면 밤이라는 시간에 한정되며, 도심에서는 가로등, 간판 불빛으로 인해 루미놀의 푸른빛이 잘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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