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르헤스(1899 ~1986)는 그의 저서 ‘존 윌킨스의 분석언어’에서 ‘중국의 어떤 백과사전’에 나온 동물 분류법을 소개했다. 그 동물 분류법은 다음과 같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위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광포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 주전자를 막 깨트린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보르헤스, ‘존 윌킨스의 분석언어’
과학적인 생물분류법에 전문 지식이 없는 이라도 이 같은 분류법을 본다면 금세 엉터리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h)와 (j) 항목은 논리적으로도 한참 어긋나 보인다.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 인과법칙에 맞지 않는, 그래서 이름도 ‘마술적 사실주의’인 특이한 문학기법을 사용했던 보르헤스의 이력을 감안한다면 이 백과사전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1926~ 1984)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에 보르헤스의 이런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분류 방식을 언급하면서 ‘낯선 사유체계’의 매력을 통해 우리는 ‘사유의 한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동물을 체계화하는 데 있어 색다른 방식을 제시한 보르헤스의 분류체계를 서양 근대철학의 체계와 사유방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출구로 본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책이 있다. 바로 조선의 실학자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저술한 ‘자산어보(玆山魚譜)’다. 이 책에도 보르헤스와 같은 비논리적인 분류가 등장한다. 과연 우리는 자산어보의 분류법으로 근대적 생물학의 분류체계가 지닌 틈을 확인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
유배지에서 탄생한 생물보고서
정약전이 1814년에 저술한 자산어보는 흑산도 부근의 해양생물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이다. 자산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이다. 실학자인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이들은 모두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를 당했는데, 정약전이 유배당한 장소가 흑산도이다. 유배 이후 그는 흑산도 근해의 해양 어류들의 생태를 치밀하게 탐구해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자산어보는 총 3권 1책으로 구성돼 있다. 1권은 비늘 있는 물고기 70여 종, 2권은 비늘
없는 물고기 40여 종과 껍데기가 있는 해양생물 60여 종을, 3권은 바닷가의 벌레, 날짐승, 육지동물, 해초 등 잡류 40여 종을 다루고 있다. 총 220여 종에 이르는 바다 생물들은 한자이름, 고유이름, 형태와 생태 및 생산지, 용도, 기타 문헌상의 기록 순으로 소개돼 있다.
‘자산어보’는 김려가 1803년 편찬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어류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이 두 서적 모두 편찬 당시의 생물학적 정보를 제공해 줄뿐 아니라 당대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산어보’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필사본들끼리도 각각 내용에 차이가 있어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는데 수산학자인 정문기가 이들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해 1974년에 자산어보 한글판을 출판했다. 일부 논자들이 이 책을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으나 아직 학계에서 명칭이 통일되지는 않았다.
인용은 또 하나의 창작
정약전은 흑산도 주변의 해양생물들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해 생김새와 습성 등을 밝혔다. 그는 어부들과 함께 배를 탔는데 이런 체험을 통해 정약전은 해양생물들의 체내 구조까지 정확히 파악했다.
특히 상어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놀라울 정도다. 체외 수정을 하는 일반 물고기와 달리 상어는 짝짓기를 통해 새끼를 낳는다. ‘자산어보’에는 “암상어의 몸 안에는 두 개의 태가 있고 거기에서 알이 생기는데, 부화된 알은 어미의 태보 안에서 새끼 상태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머문다”고 적혀있다. 또 부화된 새끼 상어는 난황을 달고 있다. 이러한 자산어보의 서술 내용은 현대 생물학이 밝힌 상어의 생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상어뿐만 아니라 아귀의 생태, 특히 아귀의 낚시방법 설명은 현재 알려진 정보와 유사하다.
서구에 아귀의 낚시방법이 알려진 것은 1935 ~1936년 사이에 윌슨이라는 사람이 수족관에서 아귀를 사육 관찰하고 나서부터다. 어떻게 정약전은 윌슨보다 백 년을 더 앞서 깊은 바다에 사는 아귀의 생태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유배를 당한 처지라고 해도 아마 선비가 바다 속으로 직접 뛰어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약전이 사용한 방법은 인용이다. 그는 창대라는 이름의 소년으로부터 해양생물에 관한 자료를 얻었다. 이 소년은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서 영남산 청어의 척추는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의 척추는 53마디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 자신이 창대로부터 물고기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혔다. 평범한 소년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겸허한 자세, 이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연구 태도, 자신의 저술이 그와의 공동저작이라는 점을 밝히는 정약전의 공정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제자에게 까다로운 실험과 잡무를 일임하고도 연구 결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현재 과학계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채집과 관찰, 실험은 과학연구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개별적인 사례들을 일일이 검토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귀납적 방법이라고 한다. 정약전은 이 방법으로 밝혀내지 못한 어류의 생태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했다.
물론 자산어보에도 오류가 적지 않다. 정약전이 내안상어로 분류한 생물은 물을 뿜는다는 서술로 볼때 범고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고래를 어류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자산어보에 들인 그의 열정과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정도의 실수는 큰 흠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자산어보가 현대 생물학과 달리 어떤 방식으로 생물을 분류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름은 효과적인 분류방법
생물학의 분과학문인 생물 분류학은 생물을 자연적인, 또는 이론적인 관계에 따라 집단으로 분류하는 학문이다. 즉, 생물의 다양한 무리들을 단계별로 질서 있게 정리해, 개별 생물체들 사이를 관통하는 원리와 이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탐구한다는 얘기다.
생물체를 효과적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계급체계가 필요하다.
현대의 생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곱 가지의 기본 계급은 상위로부터 계(界 Kingdom), 문(門 Phylum), 강(綱 Class), 목(目 Order), 과(科 Family), 속(屬 Genus), 종(種 Species)이다. 사람은 동물계(Animalia), 척색동물문(Chordata), 포유강(Mammalia), 영장목(Primates), 사람과(Hominidae), 사람속(Homo), 사람종(Homo sapiens)에 속한다. 이렇게 집단들 간의 유연관계(연관관계)에 따라 무리를 짓고, 생물들 간의 특성을 구분해 이름을 정확히 밝히는 일은 분류학에서 기초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정약전 역시 종 분류에서, 생물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내는 일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생물의 이름은 어부들이나 창대에게 묻고, 그들도 모르는 생물이라면 직접 자신이 이름을 붙였다.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생물들의 반은 정약전이 직접 명명한 것이다.
또 그는 특정 생물이 어떤 집단에 소속돼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정약전은 비슷한 생태적 특성을 지닌 종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상위의 범주, 즉 계급의 체계를 설정했다. 예컨대 ‘가자미목, 넙치과, 넙치속’에 속하는 넙치(종)는 접어라는 대표종 옆에 소접, 장접, 전접, 담접, 우설접, 금미접 등 유사한 종을 병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현대 생물 분류학처럼 정교한 계급체계는 아니지만 정약전이 생물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종들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생물학
정약전이 현대적 생물 분류학과 유사한 체계를 설정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위 계급의 설정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자의적이라 이런 장점이 빛을 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산어보는 어류를 다루고 있는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개류(介類)에서는 패류(貝類)나 갑각류(甲殼類)들을, 잡류(雜類)에서는 조류(鳥類), 해조류(海藻類)까지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자의적인 분류체계를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생물 분류학은 각 개체들 사이의 유연성에 주목해 분류의 기준을 설정한다. 우리는 이 기준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유사성과 차별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는 종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에 집중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비난하면서 이는 종차별주라고 지적한다.
유사성은 차이의 그림자이고 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라는 역설적인 생각, 즉 차이보다는 유사성에 주목하고 유사성보다는 개별 생물의 고유성을 존중하자는 이러한 생각은 정약전의 분류작업이 담고 있는 생각과 이어진다.
유사성과 차이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을 비교대상으로 삼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종과 종 사이의 관계는 유전적 친연성이 몇 퍼센트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의 분류체계는 전적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나 편견에 가깝다. 그러므로 철학에서 다루는 관념의 체계든 생물학에서 다루는 종(種)의 분류체계든 우리는 그 체계의 이면에 담겨 있는 세계관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엉성해 보이는 정약전의 분류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쓰게 된 것은 흑산도에 바다생물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종류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 생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생김새에서부터 생태 그리고 먹는 방법, 약으로 썼을 때의 효과 등 실생활에 쓰이는 데 유용한 정보들을 기록해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단순한 학문적 탐구욕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산어보를 있게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자산어보의 내용은 생물들 사이의 친연성이나 차이보다는 개별생물의 습성이나 맛, 용도에 주목하고 있다. 즉, 자산어보는 어민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했던 정약전의 실학정신이 구체화된 저술이다.
비록 자산어보의 분류 체계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초보적일지라도 그 분류법에서 정약전의 애민사상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자산어보는 귀납적 연구방법과 현대적 생물분류학에 버금가는 분류 체계, 애민사상이 결합해 창조된 어류보고서이다. 이 책은 단지 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분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 즉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다.
근대적 의미의 정통 생물 분류학은 종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뿐만 아니라 생물의 유전자에 남겨진 진화의 흔적까지 고려해 그 절대성과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비정통의 의미를 복원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포스트모던 철학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견해를 패러디하면 ‘과학적 지식은 비과학적 지식에 호소해야만 참된 지식임을 입증 받을 수 있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위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광포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 주전자를 막 깨트린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보르헤스, ‘존 윌킨스의 분석언어’
과학적인 생물분류법에 전문 지식이 없는 이라도 이 같은 분류법을 본다면 금세 엉터리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h)와 (j) 항목은 논리적으로도 한참 어긋나 보인다.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 인과법칙에 맞지 않는, 그래서 이름도 ‘마술적 사실주의’인 특이한 문학기법을 사용했던 보르헤스의 이력을 감안한다면 이 백과사전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1926~ 1984)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에 보르헤스의 이런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분류 방식을 언급하면서 ‘낯선 사유체계’의 매력을 통해 우리는 ‘사유의 한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동물을 체계화하는 데 있어 색다른 방식을 제시한 보르헤스의 분류체계를 서양 근대철학의 체계와 사유방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출구로 본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책이 있다. 바로 조선의 실학자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저술한 ‘자산어보(玆山魚譜)’다. 이 책에도 보르헤스와 같은 비논리적인 분류가 등장한다. 과연 우리는 자산어보의 분류법으로 근대적 생물학의 분류체계가 지닌 틈을 확인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
유배지에서 탄생한 생물보고서
정약전이 1814년에 저술한 자산어보는 흑산도 부근의 해양생물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이다. 자산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이다. 실학자인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이들은 모두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를 당했는데, 정약전이 유배당한 장소가 흑산도이다. 유배 이후 그는 흑산도 근해의 해양 어류들의 생태를 치밀하게 탐구해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자산어보는 총 3권 1책으로 구성돼 있다. 1권은 비늘 있는 물고기 70여 종, 2권은 비늘
없는 물고기 40여 종과 껍데기가 있는 해양생물 60여 종을, 3권은 바닷가의 벌레, 날짐승, 육지동물, 해초 등 잡류 40여 종을 다루고 있다. 총 220여 종에 이르는 바다 생물들은 한자이름, 고유이름, 형태와 생태 및 생산지, 용도, 기타 문헌상의 기록 순으로 소개돼 있다.
‘자산어보’는 김려가 1803년 편찬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어류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이 두 서적 모두 편찬 당시의 생물학적 정보를 제공해 줄뿐 아니라 당대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산어보’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필사본들끼리도 각각 내용에 차이가 있어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는데 수산학자인 정문기가 이들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해 1974년에 자산어보 한글판을 출판했다. 일부 논자들이 이 책을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으나 아직 학계에서 명칭이 통일되지는 않았다.
인용은 또 하나의 창작
정약전은 흑산도 주변의 해양생물들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해 생김새와 습성 등을 밝혔다. 그는 어부들과 함께 배를 탔는데 이런 체험을 통해 정약전은 해양생물들의 체내 구조까지 정확히 파악했다.
특히 상어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놀라울 정도다. 체외 수정을 하는 일반 물고기와 달리 상어는 짝짓기를 통해 새끼를 낳는다. ‘자산어보’에는 “암상어의 몸 안에는 두 개의 태가 있고 거기에서 알이 생기는데, 부화된 알은 어미의 태보 안에서 새끼 상태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머문다”고 적혀있다. 또 부화된 새끼 상어는 난황을 달고 있다. 이러한 자산어보의 서술 내용은 현대 생물학이 밝힌 상어의 생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상어뿐만 아니라 아귀의 생태, 특히 아귀의 낚시방법 설명은 현재 알려진 정보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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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아귀의 낚시방법이 알려진 것은 1935 ~1936년 사이에 윌슨이라는 사람이 수족관에서 아귀를 사육 관찰하고 나서부터다. 어떻게 정약전은 윌슨보다 백 년을 더 앞서 깊은 바다에 사는 아귀의 생태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유배를 당한 처지라고 해도 아마 선비가 바다 속으로 직접 뛰어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약전이 사용한 방법은 인용이다. 그는 창대라는 이름의 소년으로부터 해양생물에 관한 자료를 얻었다. 이 소년은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서 영남산 청어의 척추는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의 척추는 53마디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 자신이 창대로부터 물고기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혔다. 평범한 소년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겸허한 자세, 이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연구 태도, 자신의 저술이 그와의 공동저작이라는 점을 밝히는 정약전의 공정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제자에게 까다로운 실험과 잡무를 일임하고도 연구 결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현재 과학계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채집과 관찰, 실험은 과학연구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개별적인 사례들을 일일이 검토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귀납적 방법이라고 한다. 정약전은 이 방법으로 밝혀내지 못한 어류의 생태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했다.
물론 자산어보에도 오류가 적지 않다. 정약전이 내안상어로 분류한 생물은 물을 뿜는다는 서술로 볼때 범고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고래를 어류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자산어보에 들인 그의 열정과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정도의 실수는 큰 흠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자산어보가 현대 생물학과 달리 어떤 방식으로 생물을 분류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름은 효과적인 분류방법
생물학의 분과학문인 생물 분류학은 생물을 자연적인, 또는 이론적인 관계에 따라 집단으로 분류하는 학문이다. 즉, 생물의 다양한 무리들을 단계별로 질서 있게 정리해, 개별 생물체들 사이를 관통하는 원리와 이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탐구한다는 얘기다.
생물체를 효과적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계급체계가 필요하다.
현대의 생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곱 가지의 기본 계급은 상위로부터 계(界 Kingdom), 문(門 Phylum), 강(綱 Class), 목(目 Order), 과(科 Family), 속(屬 Genus), 종(種 Species)이다. 사람은 동물계(Animalia), 척색동물문(Chordata), 포유강(Mammalia), 영장목(Primates), 사람과(Hominidae), 사람속(Homo), 사람종(Homo sapiens)에 속한다. 이렇게 집단들 간의 유연관계(연관관계)에 따라 무리를 짓고, 생물들 간의 특성을 구분해 이름을 정확히 밝히는 일은 분류학에서 기초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정약전 역시 종 분류에서, 생물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내는 일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생물의 이름은 어부들이나 창대에게 묻고, 그들도 모르는 생물이라면 직접 자신이 이름을 붙였다.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생물들의 반은 정약전이 직접 명명한 것이다.
또 그는 특정 생물이 어떤 집단에 소속돼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정약전은 비슷한 생태적 특성을 지닌 종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상위의 범주, 즉 계급의 체계를 설정했다. 예컨대 ‘가자미목, 넙치과, 넙치속’에 속하는 넙치(종)는 접어라는 대표종 옆에 소접, 장접, 전접, 담접, 우설접, 금미접 등 유사한 종을 병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현대 생물 분류학처럼 정교한 계급체계는 아니지만 정약전이 생물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종들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생물학
정약전이 현대적 생물 분류학과 유사한 체계를 설정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위 계급의 설정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자의적이라 이런 장점이 빛을 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산어보는 어류를 다루고 있는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개류(介類)에서는 패류(貝類)나 갑각류(甲殼類)들을, 잡류(雜類)에서는 조류(鳥類), 해조류(海藻類)까지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자의적인 분류체계를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생물 분류학은 각 개체들 사이의 유연성에 주목해 분류의 기준을 설정한다. 우리는 이 기준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유사성과 차별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는 종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에 집중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비난하면서 이는 종차별주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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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성은 차이의 그림자이고 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라는 역설적인 생각, 즉 차이보다는 유사성에 주목하고 유사성보다는 개별 생물의 고유성을 존중하자는 이러한 생각은 정약전의 분류작업이 담고 있는 생각과 이어진다.
유사성과 차이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을 비교대상으로 삼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종과 종 사이의 관계는 유전적 친연성이 몇 퍼센트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의 분류체계는 전적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나 편견에 가깝다. 그러므로 철학에서 다루는 관념의 체계든 생물학에서 다루는 종(種)의 분류체계든 우리는 그 체계의 이면에 담겨 있는 세계관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엉성해 보이는 정약전의 분류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쓰게 된 것은 흑산도에 바다생물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종류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 생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생김새에서부터 생태 그리고 먹는 방법, 약으로 썼을 때의 효과 등 실생활에 쓰이는 데 유용한 정보들을 기록해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단순한 학문적 탐구욕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산어보를 있게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자산어보의 내용은 생물들 사이의 친연성이나 차이보다는 개별생물의 습성이나 맛, 용도에 주목하고 있다. 즉, 자산어보는 어민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했던 정약전의 실학정신이 구체화된 저술이다.
비록 자산어보의 분류 체계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초보적일지라도 그 분류법에서 정약전의 애민사상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자산어보는 귀납적 연구방법과 현대적 생물분류학에 버금가는 분류 체계, 애민사상이 결합해 창조된 어류보고서이다. 이 책은 단지 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분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 즉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다.
근대적 의미의 정통 생물 분류학은 종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뿐만 아니라 생물의 유전자에 남겨진 진화의 흔적까지 고려해 그 절대성과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비정통의 의미를 복원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포스트모던 철학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견해를 패러디하면 ‘과학적 지식은 비과학적 지식에 호소해야만 참된 지식임을 입증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