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3국은 지난 1월 14~17일 중국 북경에서 황해의 생물다양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황해를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포럼을 열었다.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인 황해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한·중·일 3국이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지난 2007년 12월 태안을 덮친 ‘검은 재앙’을 비롯해 중국과 한국의 무분별한 간척사업과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유입이 계속되며 황해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희귀종인 ‘점박이물범’이나 멸종위기종인 ‘상괭이’는 여전히 황해를 찾는다.
한·중·일 3국은 황해의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이들의 서식지가 더 이상 파괴되는 일을 막기 위해 약 800만 원을 황해 인근 지역에 지원하는 소액사업을 시작했다.
‘800만 원의 기적’
“커아이(可愛)~” “가와이(かわいい)~”(귀엽다는 뜻의 중국말과 일본말)
강아지처럼 장난기가 넘치는 얼굴을 물 위로 쑥 내민 채 헤엄치는 모습, 바위에 올라와 통통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일광욕을 즐기는 점박이물범의 사진이 한 장씩 소개될 때마다 회의장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점박이물범은 황해를 둘러싼 한국과 북한,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관계를 완화할 평화의 상징입니다.”
녹색연합의 김미영 연구원은 지난 1년 동안의 사업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점박이물범을 이렇게 소개했다. 점박이물범은 한국의 백령도와 중국의 보하이만(발해만), 북한의 평양 앞바다를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황해생태지역지원사업(YSESP)의 1단계 소액사업에 선정돼 백령도에서 물범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했다.
황해생태지역지원사업은 황해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위해 한국해양연구원(KORDI)과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중국과 일본 지부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국제 프로젝트이며 일본의 파나소닉이 후원한다. 황해 인근 지역 가운데 한국 3곳(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전라남도 무안군, 제주도 서귀포시)과 중국 5곳(강소성 남통시, 산동성 청도시, 위해시, 동영시, 하북성 진황도시)이 황해를 되살리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1997년 세계자연보호기금은 전 세계 멸종 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서식지를 생태지역으로 정해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가운데 우선순위에 꼽힌 200곳을 ‘글로벌 200 생태지역’이라고 부른다. 황해를 포함해 해양에서는 43곳이 글로벌 200 생태지역에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황해는 예로부터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으로 꼽힌다.
황해생태지역은 중국의 보하이만과 황해, 중국해 동부 일부를 포함한 남한과 북한, 중국 해안지대에 걸친 수심 200m이내의 접경 지역으로, 전체 넓이는 한반도 면적(약 23만km2)의 2배인 약 46만km2에 이른다. 한국해양연구원의 김웅서 박사는 “황해생태지역은 일조량이 충분할 뿐 아니라 한강과 중국의 양쯔강, 황하에서 유입되는 유기물이 풍부하고 평균 수심이 44m로 얕아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 남서지역 연안과 하구는 수달의 주요 서식지며 충남 태안해안국립공원 일대와 양쯔강 유역에서는 돌고래 중에서 가장 작은 종인 상괭이(쇠돌고래과)도 종종 발견된다. 상괭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인 ‘사이테스’(CITES)의 ‘부속서 I’에 등재된 희귀종이다. 부속서 I에 등재된 동물은 국제적으로 상업적 용도로 매매가 금지된다. 이외에도 황해와 보하이만에는 희귀 고래와 돌고래류 17종, 물범류 4종이 서식한다.
황해생태지역과 소액사업 선정 지역
황해생태지역(오른쪽 그림 점선 위)은 중국의 보하이만, 황해, 중국해 동부 일부를 포함해 남한과 북한, 중국 해안지대에 걸친 수심 200m이내의 접경 지역으로 전체 넓이는 한반도 면적의 2배에 이른다.
황해를 둘러싼 한국 3곳(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전라남도 무안군, 제주도 서귀포시)과 중국 5곳(강소성 남통시, 산동성 청도시, 위해시, 동영시, 하북성 진황도시)이 황해생태지역지원 소액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황해생태지역에 서식하는 점박이물범은 봄이 되면 백령도로 내려와 여름을 보낸 뒤 9월 말에서 11월 말 사이에 북한의 평양 앞바다를 거쳐 다시 중국의 보하이만으로 이동한다.
점박이물범과 친구들
점박이물범은 봄이 되면 중국의 보하이만에서 백령도로 내려와 여름을 보낸 뒤 9월 말에서 11월 말 사이 북한의 평양 앞바다를 거쳐 다시 중국의 보하이만으로 이동한다. 보하이만은 황해생태지역 가운데 염도가 낮아 겨울에 얼어붙는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점박이물범은 빙원에서 번식하는 습성이 있어 이곳을 찾는다.
2004년 점박이물범 보호활동을 시작한 녹색연합은 그동안 물범의 서식 환경과 생태 습성을 조사하는 모니터링을 해왔으며 점박이물범 보호를 위해 한·중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물범 보호에 앞장서왔다.
하지만 정작 점박이물범과 함께 살아가는 백령도 주민들은 물범에 대해 무관심했다. 김미영 연구원은 “주민들 대부분이 점박이물범을 물개로 잘못 알고 있었다”며 “게다가 일부 주민들은 물범을 생계활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점박이물범이 주민들이 쳐 놓은 그물을 끊고 그 안의 물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녹색연합은 소액사업에 선정된 뒤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모니터링 활동과 교육을 강화했다. 일방적으로 보호활동을 추진하기보다는 주민과 충분히 협의한 뒤 보호활동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백령도 지역 내 점박이물범에 관한 관심을 청소년으로 확대하기 위해 백령중·고교학생 10명으로 구성된 ‘백령도 점박이물범의 친구들-점박이물범 모니터링’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청소년들은 2008년 6월에서 10월까지 점박이물범의 개체수 조사와 특이사항 기록, 점박이물범 그림 그리기 같은 다양한 생태교육을 체험했다. 김 연구원은 “지역주민이 점박이물범을 지역의 중요한 생태자원으로 인식해 스스로 보호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런 노력은 큰 성과를 거뒀다. 녹색연합은 지역주민에게 ‘점박이물범을 통한 생태관광 활성화’ 같은 백령도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고 학교와 지역 면사무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람사르 습지’ 무안 갯벌
전북 무안의 월두마을에서는 지역주민과 함께 만드는 갯벌 마당놀이가 열렸다. 무안 갯벌은 2001년 한국에서 최초로 연안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1월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다. 무안에서 소액사업을 맡아 진행한 생태지평의 이승화 연구원은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워크숍이나 교육만으로 갯벌 보존의 중요함을 알리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무안에는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노인이 많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했다. 결국 생태지평은 천혜의 무안 갯벌을 무대로 하는 마당놀이를 기획했고, 극단 ‘갯돌’과 마을주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생태지평연구원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안 주민 대부분이 어업과 농업을 겸업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번기인 3월에서 9월까지 주민들을 연습에 참여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 연구원은 “부족한 시간을 틈틈이 내 마당놀이를 준비해 마당극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준비한 무안 갯벌 마당놀이는 2008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첫 선을 보였다. 다소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결국 무안 갯벌 마당놀이는 지난해 10월 29일 열렸던 제10차 람사르 총회에서 사이드 이벤트에 초청되는 성과도 거뒀다.
‘철새들의 국제공항’ 제주
“1년 내내 땅이나 나뭇가지에 한 번도 내려앉지 않고 하늘을 나는 새가 있을까요?”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의 홍수연 연구원의 질문에 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홍 연구원은 “알바트로스나 군함조 같은 새들은 번식기가 아니면 땅 위에 내려앉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황해생태지역지원사업의 소액사업에 선정된 또 다른 지역인 제주도에서는 이처럼 새와 관련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제주의 새와 새들의 삶터’라는 생태교육교재를 만들었다. 제주의 한라수목원과 하도리, 종달리, 한라산 계곡과 곶자왈 숲은 철새들이 자주 찾는 ‘국제공항’이다.
홍 연구원은 “제주도에서는 1년 내내 박새, 때까치, 딱새, 바다직박구리, 휘파람새 등 다양한 새를 볼 수 있지만 제주의 새에 대해 아는 주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는 제주의 새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2월 일반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라수목원에서 사진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와 함께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가 1년 동안 조사한 봄, 가을 철새의 이동경로와 서식지 귀환조사 같은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세미나도 개최했다.
홍 연구원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텃새와 철새를 자세히 다루는 체계적인 교재를 만들어 학생들이 새와 더 친해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나아가 제주도를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을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생물다양성의 중심지 ‘황해’
중국에서 소액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곳은 강소성 남통시, 산동성 청도시, 위해시, 동영시, 하북성 진황도시로 총 5곳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한국과 달리 NGO나 시민단체의 활동이 어려워 대부분 정부나 학교에서 교육프로그램이나 대중인식을 증진하기 위한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
산동성 청도시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사, 대학생을 대상으로 황해생태지역의 어류와 포유류에 관한 특별강의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청도시 공무원과 환경법 전문가, 자연과학 전문가, 저널리스트, 학생을 대상으로 황하 삼각주 보호구역 연수와 환경교육도 진행했다.
산동성 위해시에서는 산동대학교 해양학부 학생들이 소액사업을 맡았다. 산동대 해양학과 리빈 씨는 “공무원과 어민, 학생을 대상으로 황해생태지역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황해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상어, 돌고래의 중요성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연구원 최영래 연구원은 “중국은 아직까지 실천단계의 사업이 부족한 측면이 있지만 황해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려면 지역주민, 각국 정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특히 한·중·일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해생태지역지원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한국, 중국, 일본의 참가자들은 각 소액사업의 성과와 노하우를 나눈 뒤 동북아시대 황해를 전 세계 생물다양성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앞장 설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황해를 둘러싼 8개 도시에서 ‘800만 원의 기적’은 이미 시작됐다.
황해생태지역지원사업 (YSESP)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총 7년 동안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로 총 3단계로 이뤄진다. 제1단계(2007년 8월~2010년 3월)는 ‘생물다양성 인식증진 과 효과적인 생물종 및 서식지 관리’를 주제로 한국과 중국의 16개 기관을 선정해 소액사업을 지원한다. 제2단계 (2010년 1월~2013년 3월)는 효과적인 서식지 관리를 목표로 한국과 중국 각각 1개 지역을 선정해 3년간 보전활동을 한다. 제3단계(2013년 4월~ 2014년 9월)는 제1, 2단계에서의 성공사례를 국내외에 홍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