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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광우병 공포 누그러뜨린 프리온 발견

1982년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의 단백질 감염 인자 제안

 

외로운 투쟁 끝에 프리온의 실체를 규명해 노벨상을 수상한 프루시너 교수.


One of the fascinating questions about prions concerns their mode of replication. If prions do not contain a nucleic acid genome, then studies on the replication of prions may reveal unprecedented mechanisms of reproduction.
프리온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는 그 복제 방식에 관한 것이다. 만일 프리온이 핵산 게놈을 갖고 있지 않다면, 프리온 복제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생식 메커니즘을 밝혀낼 것이다.


1980년대 등장해 사람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했던 전염병이 에이즈라면 1990년대 등장한 공포의 대상은 광우병이다. 아프리카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에이즈에 비한다면 광우병으로 인한 피해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후자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에이즈는 바른 생활만 하면 남의 이야기지만 광우병은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감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3년 영국 정부가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으로 죽은 사람이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한 이래 vCJD는 ‘인간광우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소들이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쓰러져 죽고 스펀지처럼 녹아내린 뇌를 보고 사람들이 경악할 때 단 한사람만은 우려의 눈빛 속에서도 임박한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는 1997년 단독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유는 ‘새로운 감염 인자인 프리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프리온(prion)은 프루시너 교수가 1982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단백질성 감염성 입자’(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와 바이러스 입자를 뜻하는 ‘비리온’(virion)을 합친 단어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바로 프리온이다. 프루시너 교수가 10년 전 이미 해답을 내놓은 셈이다.
 

쿠루병에 걸려 죽음이 임박한 아이.


뉴기니 부족 풍토병 규명이 출발

대학 때 화학을 전공한 프루시너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1972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신경과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했다. 이때 만난 환자 한 사람이 그의 앞날을 바꿔 놓았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던 이 환자는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환자를 살려보려고 관련 문헌을 방대하게 조사하던 프루시너 박사는 질병과 관련된 흥미로운 스토리에 푹 빠져버렸다.

그의 상상력을 가장 크게 자극한 인물은 칼턴 가이두섹 박사. 슬로바키아 이민 2세인 그는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화학을 섭렵한 뒤 하버드대 의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20세기 최고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의 실험실을 포함해 여러 곳을 방랑하던 그는 1954년 호주로 날아가 호주와 뉴기니 원주민의 풍토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7년 가이두섹 박사는 뉴기니 고지에 사는 포레 부족의 풍토병 ‘쿠루’(kuru)에 대한 첫 번째 보고를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에 투고했다. 포레어로 ‘웃는 죽음’라는 뜻의 쿠루는 뇌가 손상돼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병으로 보통 전염병에서 나타나는 열이나 염증이 없었다. 특이한 점은 아이와 여자에서 발병률이 높다는 것.

쿠루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이두섹 박사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포레족은 장례를 치르면서 식인습관이 있었는데 커피농장이 들어서면서 이 풍습이 금지된 곳에서는 쿠루의 발생도 줄었던 것. 한편 죽은 사람을 먹을 때 부드러운 뇌와 골수는 아이와 여자들의 몫이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가이두섹 박사는 쿠루에 걸려 죽은 사람의 뇌를 먹어 병이 전염된다는 가설을 내놓았고 포레족의 엽기적인 장례 의식은 사라졌다.

1959년 수의병리학자인 윌리엄 해드로우 박사는 쿠루가 양이나 염소에서 발생하는 스크래피와 증상이 비슷하다는 분석을 의학전문지 ‘란셋’에 발표했다. 병에 걸린 양 역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결국 쓰러져 죽는다. 발병 과정에서 가려움을 참지 못해 벽에 대고 털이 벗겨질 정도로 등을 긁어대 스크래피(scrapie)라는 병명을 얻었다.

그 뒤 연구자들은 CJD도 같은 계열의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이두섹 박사는 쿠루로 죽은 사람의 뇌조직을 갈아 동물에 넣어주면 비슷한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병을 옮기는 인자를 찾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했지만 1976년 ‘새로운 유형의 전염병을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탈 때까지도 여전히 성과가 없었다. 가이두섹 박사의 노벨상 강연 원고 제목은 ‘특이한 바이러스와 쿠루의 기원 및 소멸’이다. 즉 일반적인 병원성 바이러스와는 달리 감염시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이 수년 내지 수십 년 뒤에 병을 일으키는 슬로우(slow) 바이러스를 병원체로 생각했다.
 

비정상 프리온이 증식하는 메커니즘^비정상 프리온은 정상 프리온과 아미노산 서열은 똑같지만 입체 구조가 다르다. 둘이 만나면 정상 프리온의 구조가 바뀌 어 비정상 프리온이 되면서 뭉쳐진다. 시험관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이 과정을 재현하려면 일정 간격으로 초음파를 가해 비정상 프리온 덩어리를 쪼개 표면적을 넓혀줘야 한다.


외로운 투쟁 끝에 얻은 승리

한편 슬로우 바이러스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프루시너 박사는 1974년 신경학과 조교수로 임용된 뒤 자신이 이 스토리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본격적으로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프루시너 교수팀 역시 슬로우 바이러스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조직을 주사해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쥐를 대량으로 만든 뒤 뇌를 갈아 바이러스를 찾는 지루한 과정이었다.

“나는 정제한 스크래피 인자가 작은 바이러스로 드러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시료를 분석한 데이터는 핵산은 없고 단백질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곤혹스러웠다.”

이렇게 고전하고 있을 때 프루시너 교수는 우연히 영국 햄머스미스 병원의 티크바 알퍼 박사팀의 논문을 읽게 됐다. 이 논문에서 알퍼 박사는 스크래피 인자는 핵산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유전 물질인 DNA나 RNA같은 핵산은 자외선을 쬐면 파괴되는데 스크래피 뇌조직 추출물은 자외선을 쪼여도 여전히 감염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순간 자신의 데이터가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프루시너 교수는 스크래피 인자가 단백질이라는 가정을 하고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모든 실험결과가 이 가정을 지지했다. 1982년 4월 9일자 ‘사이언스’에 지면을 할애 받은 프루시너 교수는 지난 수년 동안 자신의 연구결과를 종합한,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새로운 단백질성 감염 입자’라는 제목의 논문을 투고했다.

이 논문에서 프루시너 교수는 “실험 데이터와 부합하는 단백질 가설은 명백히 이단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프리온 복제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등 감염성 인자는 생명체이고 따라서 자체 유전자, 즉 핵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당시 생물학의 기본 전제였기 때문에 ‘사이언스’ 같은 권위있는 저널에 이런 논문이 실린 사실에 과학계는 격분했다.

같은 해 12월 프루시너 교수는 스크래피에 감염된 햄스터의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PrP)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고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1986년 연구자들은 생쥐에서 프리온 단백질 유전자를 찾아냈고 1990년대 초 프리온의 구조를 밝혔다. 그 결과 스크래피나 CJD에 걸린 뇌조직에 있는 프리온 단백질은 정상적인 뇌조직에 있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서열이 동일하지만 입체구조가 다르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일렬로 늘어선 수십~수백 개의 아미노산은 종이접기처럼 일정한 순서로 접히면서 특정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 된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잘못 접혀진 단백질은 기능을 못하거나 프리온처럼 엉뚱한 짓을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가지 프리온 단백질을 섞어 놓으면 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정상 단백질의 구조를 변형시켜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버린다는 것. 드라큘라에 물린 사람 역시 드라큘라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뒤 단백질의 입체구조가 바뀌면서 서로 뭉쳐 결국 뇌세포를 파괴해 생기는 질병들이 속속 보고되기 시작했다. 아밀로이드 단백질로 인한 알츠하이머병, 시누클레인 단백질의 파킨슨병, 헌팅틴 단백질이 관여하는 헌팅턴병 등이다. 현대 의학의 과제는 이들 잘못 접힌 단백질을 어떻게 없애거나 원상회복시키느냐를 알아내는 일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랄프 페터슨 박사는 “프루시너 박사는 강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10년이 넘게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왔다”며 “프리온 가설로 스크래피, 쿠루병, 그리고 광우병에 관한 불가사의는 결국 해명됐고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흔한 치매의 병인을 밝혀낼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과학 지식의 틀에 맞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과학자들이 회의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최고의 과학은 현재의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결과들을 주의 깊게 모아놓은 상황에서 튀어나옵니다.”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며 연구비가 끊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험난한 길을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밀고나간 프루시너 교수의 경험담이다.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으로 죽은 환자의 뇌조직. 비정상 프리온이 뭉쳐져 갈색 침전물로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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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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