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수많은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탐정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가 창조한 프랑스 탐정 오귀스트 뒤팽. 그는 최초의 탐정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을 비롯해 세 편의 소설에서 맹활약했다. 어두운 밤 사색을 즐기고 몽마르트 거리의 이름 없는 도서관에서 하릴없이 낡은 책을 뒤적거리는 뒤팽은 몹시 매력적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은 셜록 홈즈를 탄생시켰다. 그는 연재 도중 몇 번이나 그만둘 위기에 빠졌지만 매번 사람들의 뜨거운 성화로 홈즈를 다시 불러내곤 했다.
심지어 홈즈가 실존 인물이며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 독자들은 소설 속 배경인 베이커 스트리트를 찾아 무작정 런던거리를 헤맸다. 또 모리아티 교수와의 격투 끝에 홈즈가 사망했다고 쓴 ‘마지막 문제’가 발표되자 비탄에 빠져 술렁였다.
‘홈지언’ ‘셜로키언’이라 불리는 이들은 셜록 홈즈를 너무 좋아해서 홈즈 이야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고 연구한다. 셜록 홈즈가 태어난지 한 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얻고 있는 이유도 열렬한 팬들의 지지 덕분이 아닐까.
‘셜로키언을 위한 주석 달린 셜록 홈즈’는 셜로키언의, 셜로키언에 의한, 셜로키언을 위한 책이다. 1000개가 넘는 주석을 단 이는 셜록 홈즈의 팬이자 그 분야 권위자인 레슬리 클링거. 그는 24편의 이야기를 꼼꼼히 편집해 셜록 홈즈를 멋지게 부활시켰다.
1892년 2월 영국 ‘스트랜드매거진’에 발표한 ‘얼룩띠’는 유난히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른 아침 공포에 떨며 찾아온 스토너 양의 의뢰로 홈즈와 왓슨은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주어진 단서는 금고, 우유 접시, 고리가 있는 채찍 그리고 휘파람 소리뿐이다.스토너 양의 쌍둥이 자매인 줄리아는 2년 전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얼룩띠’를 봤다고 얘기했는데 과연 그 정체는 뭘까.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홈즈가 된듯 냉철한 직관을 발휘해보자. 홈즈의 절친한 동료 왓슨처럼 모든 사건을 지켜보며 생생히 기록해보는 것은 어떨까.
영국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면 우리는 코난 도일, 아니 그가 창조한 셜록 홈즈를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거다. 1004쪽이라는 묵직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기분만 샘솟는다면 당신도 이미 셜로키언.
P r o f i l e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낸 영국의 소설가. 188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대를 졸업한 뒤 개업의로 일하며 짬짬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87년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1890년 ‘네 사람의 서명’ 등 홈즈와 왓슨이 활약하는 수많은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빅토리아시대의 몽상가이자 예언가였으며 동시에 과학자, 전선기자, 역사가였다.
나를 바꾼 과학책
“오늘날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출간된 데스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인간을 하나의 동물 종으로 다뤘다는 이유로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동물학자의 독특한 시선은 지구촌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1990년대 초,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기 전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들었다. 처음엔 인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내 안에 남아 있는 동물적 행동양식이 떠올랐다. 어쩌면 동물적 본성에서 비롯된 ‘전쟁’에 대비하는 신세였기에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교과서 밖에서 처음으로 만난 교양 과학도서로 기억된다. 인간의 유전자가 침팬지와 99% 이상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저자의 혜안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진화생물학이나 동물행동학의 재미를 알게 했으며 ‘온 생명’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과연 털없는 원숭이로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