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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만능 공장 디지털 팩토리

컴퓨터에 공장이 들어갔네

김디지 공장장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 ‘오늘은 무슨 공장을 지어줘야 하나?’ 김 공장장이 열심히 게시판을 체크하고 있는데 모니터 아래에서 메신저 메시지가 뜬다.

[아날로그 짱] 김 공장장, 나 좀 도와줘~ ㅠㅠ

[디지털 만세] 아니, 이 공장장, 아침부터 왜 울고 그래? 무슨 일이야?

[아날로그 짱]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2년 전 자동차용 PC를 개발하지 않았나. 그 PC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거든. 수출 계약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생산 라인도 늘리고 작업 효율도 높일 겸 공장을 새로 지으려고 해. 그런데 설계비가 턱없이 비싼 거야. 게다가 회사 임원들은 실제로 공장을 짓기 전에 공장이 어떻게 운영될지 미리 알고 싶다는데, 모형만 만들어선 건물 외관밖에 볼 수 없지 않나. 내가 꼬박 6개월을 공들인 보고서가 그것 때문에 무용지물이 됐네.

[디지털 만세] 그런 문제라면 내가 해결해주지. 2시간 뒤에 회사 임원들 모시고 내 사무실로 오게.

[아날로그 짱] 뭐? 2시간이라고?
 

21세기형 만능 공장 디지털 팩토리
 

4M 분석_ 누가, 무엇을, 무엇으로, 어떻게

“잘 오셨습니다. 김디지 공장장이라고 합니다. 네, 좀 어리둥절하실 겁니다. 공장일거라고 예상했을 텐데 조그마한 사무실에 컴퓨터 몇 대가 전부라 놀라셨죠? 사실 여기가 공장입니다. ‘디지털 팩토리’(Digital Factory)라고도 부르죠. 컴퓨터 안에 가상공장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예를 들어드리면 되겠군요. 최근에 저희가 대한제철소를 지었습니다. 사실 제철소 면적만 100만m²가 넘거든요. 어마어마한 넓이죠. 반응장치가 수천 개고, 반응장치 한 개도 이 방보다 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제철소 전체를 모델링하면 컴퓨터 한 대에 제철소가 다 들어갑니다. 철광석에서 철이 만들어지고 압연된 뒤 자동차 강판이 되는 과정을 전부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공장을 새로 만들거나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울 때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구요. 100만m2에 펼쳐져 있는 공장이 컴퓨터 한 대 안에 들어간다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심시티’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직접 아파트를 세우고 백화점을 지어 도시를 건설하는 것처럼 디지털 팩토리에서는 공장을 건설하는 셈이죠.

우선 여기 의자에 편히 앉으시죠. 차도 한잔 드시구요. 이 공장장, 초조해하지 말게. 이게 디지털 팩토리의 첫 번째 단계거든.

이제 제게 얘기를 좀 해주셔야 됩니다. 현재 회사의 상황을 듣고 싶군요. 제조 인력(Man)은 몇 명인가요? 자재(Material)는 무엇을 사용하시죠? 기계(Machine)는 어떤 형태입니까? 제조 방법(Method)은 뭔가요? 아, 이게 디지털 팩토리에서 ‘4M 분석’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려면 현재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먼저 알아야 하거든요.”

가상공장_ 진짜 같은 설계 프로그램

“옆방으로 가시죠. 이제 가상공장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만약 가상공장을 만들어놓은 상태라면 이 자리에서 바로 시뮬레이션을 보여드릴 수 있지만 조금 전에 4M 분석이 끝났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그 동안 이전에 만든 가상공장을 보여드리죠.

이 회사는 트랙터를 생산하는데, 4M 분석을 해봤더니 인간공학적인 요소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상공장을 만들 때 이 부분을 첨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업자의 무릎 밑에는 물건이 놓이지 않도록 설계하고 작업 높이를 허리 위로 올렸죠. 박스 모양도 작업자가 취급하기 쉽도록 뒤쪽으로 길게 설계했습니다. 디자인도 무시할 수 없어 안전하고 고급스런 소재를 택했습니다.

아, 이 프로그램 말이죠?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을 이용한 3차원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표현하고 싶은 대상의 모델을 만든 뒤 이 모델에 색깔을 입혀 영상을 만들고 모델에 기하학적인 변형과 움직임을 적용한 것이죠.

대개 프로그램이 억대를 호가하는데, 프랑스 기업인 다쏘(Dassault)가 개발한 ‘카티아’(CATIA)는 보잉을 비롯한 항공회사에서 많이 쓰고 있습니다. 비행기 한 대를 건조하는 일이 공장 하나 짓는 일과 진배없으니까요.

참, 지난해 말 유럽의 다국적 항공기업인 에어버스가 세계 최대 여객기인 A380 납품을 지연해 구설수에 올랐죠.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A380 설계를 맡았는데, 프랑스는 자국 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인 ‘카티아’와 ‘키르케’(Circe)를 쓰자고 독일측에 제안했답니다. 그런데 독일 기술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프랑스산 프로그램을 쓸 수 없었죠. 그래서 양쪽에서 호환이 안되는 프로그램으로 각자 설계를 하다가 일이 지연됐답니다.”

시뮬레이션_ 공장 배치는 내 맘대로

“가상공장 만드는 작업이 끝났군요.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제시한 문제점은 이런 것들이었죠. 생산라인의 규모와 숫자를 최적화하고 싶다, 제품의 특성을 고려해 건물을 설계하고 싶다, 작업자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싶다.

그럼 가상공장에서 공장을 배치하고 작업 조건을 바꿔볼까요? 지금 방식대로라면 완제품 하나를 생산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최대 30일이군요. 조립 단계도 수십 개나 되구요.

조건을 이렇게 바꿔봅시다. 자동차용 PC이니까 소형 컴퓨터에 해당하죠. 우선 반도체를 다루는 곳이니까 먼지가 가장 큰 적입니다. 현관문을 2중으로 만들고, 창문 크기도 더 작게 설계합시다. 에어커튼을 설치해 먼지 방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먼지가 적으면 청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석이조입니다.

조립품이 생산 라인에서 수직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없애고, 조립 단계도 5개로 줄여야겠네요. 이렇게 하면 제품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3일 단축할 수 있습니다. 작업 효율은 25%가 향상되구요.”

적용_ 컴퓨터에서 먼저 만든다

“만족해하시니 다행입니다. 사실 오늘 여러분이 본 내용은 디지털 팩토리 기술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디지털 팩토리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는 무궁무진하거든요. 컴퓨터 안에 공장을 짓다보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디지털 팩토리에서는 시간을 빨리 흐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백년 뒤 변화도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 안에서는 수분~수시간이면 5년, 10년 뒤 실제로 공장이 어떻게 운영될지 시뮬레이션이 끝나거든요. 예전에 어떤 교수님은 세포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습니다. 컴퓨터 안에서 가상세포를 키우는데, 이 세포를 배양하고 개량해서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 유전자나 단백질을 검출할 실험을 할 수 있는 공장 말이죠.

물론 아직까지는 연구자가 변수로 입력하는 현상만 가상공장에 반영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상공장과 실제공장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컴퓨터의 성능도 좋아지고, 능력있는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곧 이런 한계를 극복할 겁니다.

앞으로 ‘물건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아날로그방식에서 벗어나 ‘시뮬레이션으로 물건을 먼저 만들어본다’는 디지털방식으로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가상공장의 진화

2005년 4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하노버 페어 2005’의 화두는 디지털 팩토리였다. ‘하노버 페어’는 세계 최대의 산업자동화 전시회다.

지멘스 아태총괄 회장인 글라우스 부허러는 “기업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미래 자동화기술의 핵심은 디지털 팩토리”라고 강조했다. 치솟는 기름값과 인건비, 까다로운 고객의 입맛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디지털 팩토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디자인과 설계를 한 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실제 모델을 만들어보고 오류를 고치는 구조였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실제와 똑같은 가상제품을 만들고 시연하는 디지털 팩토리를 이용하면 시제품을 만들지 않아도 설계 오류를 잡아 낼 수 있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보잉은 비행기 설계와 조립, 제작, 시험 등 항공기 생산에 필요한 복잡한 과정을 모두 컴퓨터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비행기 한 대를 만드는데 많게는 수십 만장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보잉은 이 작업을 컴퓨터로 대신했다. 컴퓨터상의 가상공항에서 시뮬레이션도 거쳤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비행기가 ‘보잉 777’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볼보 등 세계의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들도 자동차 모델 시제품을 만들기 전에 컴퓨터에서 가상제품을 먼저 만든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을 이용해 부품 개발에서부터 자동차를 제작하는 생산라인의 모든 과정을 구현한다. 차의 모양, 디자인, 색깔 등을 가상공간에서 이리저리 바꿔가며 최상의 모델을 찾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1999년 가상공장인 디지털 가상현실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 컴퓨터로 가상의 자동차를 만들어 스타일 뿐 아니라 인체공학적인 측면과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최적의 구조를 찾는다. 현대자동차는 ‘투스카니’ 이후 생산되는 자동차를 가상현실 기술로 설계하고 있다.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김수영 교수는 “가상현실을 비롯한 디지털 팩토리 기술을 활용하면 시간을 절약하고 더 좋은 성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내기 쉽다”고 설명했다.

벤처기업인 ‘디지털팩토리’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김 교수는 2005년 디지털 팩토리 기술인 ‘신생산시스템’(NPS, New Product System)을 개발했다. 자동차용 PC를 생산하는 맥산시스템은 같은 해 NPS 기술을 이용해 공장을 건설했고, 트랙터를 생산하는 대동공업은 공장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 팩토리를 활용하면 생산성을 20% 이상 향상시킬 수 있다”면서 “디지털 팩토리는 가상공장의 가장 진화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공학적인 요소를 고려하면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가상공장에서 디자인한 자동차를 감상 중인 현대자동차 가상현실 연구센터 연구원들(위). 1990년대 초 비행기 제작에 처음으로 가상공장이 도입됐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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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임혜경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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