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를 넘나드는 고온, 0K에 가까운 극저온, 진공 상태, 6000기압의 초고압.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극한 환경이다. 이런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생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거짓말 같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이라면 잠시도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주인공은 완보동물. 대사율을 0.01% 이하로 억제해 100년 이상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장갑차 모양의 벌레다. 몸에서 수분을 방출한 일종의 가사 상태에 들어가면 전자렌지에 넣어도 죽지 않을뿐더러 극한 조건에서도 끄떡없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생물들의 세계를 소개한 책이 나왔다. 일본의 그래픽디자이너 겸 작가인 하야가와 이쿠오가 쓴 ‘이상한 생물 이야기’에는 다리가 85개인 문어, 몸 전체가 입으로만 된 것 같은 큰입멍게, ‘피부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고기’ 닥터피시, 재생력이 높아 머리와 꼬리를 잘라 연결하면 원형이 되는 코우가이빌 등 흥미진진한 생물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생물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온대성 바다에 사는 하늘소갯민숭이는 히드라처럼 독을 가진 자포생물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먹이의 독성 자세포를 흡수한 다음 등 쪽의 돌기로 운반해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 위와 등 쪽 돌기는 특수한 관으로 연결돼 섬모가 움직이며 자세포를 안전하게 운반한다.
피를 빨아먹는 물렁진드기는 모래 속에 몸을 움츠리고 먹이가 지나갈 때까지 1년도 넘게 기다린다. 먹이가 지나가는 진동을 느끼면 기어 나와 먹이에 올라타 먹잇감의 피부에 주둥이를 찔러 넣어 마취제를 주입한다. 한없이 피를 빨아먹은 진드기는 몸이 부풀어 ‘피로 가득 찬 풍선’처럼 변해 굴러 떨어진다.
사마귀의 사체에서 발견되는 철사벌레는 좀더 섬뜩하다. 사마귀의 꽁무니에서 검은 줄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데, 움켜쥐었다 놓으면 철사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또 물을 끼얹으면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한다. 길이가 15~90cm에 이르는 이 벌레는 때로는 사람에게도 기생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 책 한 권으로 ‘생물 연구계의 이단아’라는 평가를 받은 저자는 “이들도 엄연한 지구 생태계의 일원”이라며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이상한 생물이라고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데라니시 아키라의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특징을 잘 잡아내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한국해양연구원 김동성 박사는 “이들의 특이한 몸 형태나 생활습관은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종족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