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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을 마시는 음료수

드링크 과음이 부작용 부른다

작열하는 태양, 달아오른 아스팔트. 뜨거워진 우리 몸이 시원한 음료수를 갈망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편의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음료 냉장고 쪽으로 발길이 향한다. 물, 탄산음료, 주스 같은 ‘전통적’ 마실거리부터 스포츠 음료, 비타민 음료 등 ‘신세대’까지 냉장고에는 수십 종류의 음료수가 빼곡히 차있다. 무엇을 마실까.


요즘 음료 시장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갖가지 기능성 음료들. 기능에 따라 비타민, 아미노산 등 성분도 가지각색이다.


아미노산이 몸짱 만든다?

햇살이 눈부신 오후, 파란 원피스를 입은 ‘청순녀’가 자전거를 몰고 언덕길을 올라온다. 이마를 훔치는 그녀는 다소 지친 기색이다. 언덕 위에는 먼저 도착한 사내가 서있다. 빨간 셔츠를 입은 ‘근육남’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말한다. “함께 힘내요.”

최근 스포츠 음료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아미노산 음료 ‘아미노업’의 광고다. 청순녀는 ‘포카리스웨트’를, 근육맨은 아미노업을 상징한다.

포카리스웨트를 비롯한 이온 음료는 그간 스포츠 음료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아미노산 음료가 이온 음료를 밀어내면서 스포츠 음료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마라톤대회에서는 아미노산 음료가 공식 스포츠 음료로 지정되기도 했다. 인기 비결은 뭘까.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손숙미 교수는 “몸짱 열풍이 한 몫 한다”고 말한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성분이다. 단백질은 근육을 구성한다. 근육은 몸짱의 상징이다. 아미노산 음료는 은연중에 ‘아미노산=단백질=근육=몸짱’이라는 공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효과는 어떨까. 건양대 운동처방학과 김완수 교수는 “아미노업이 인기 있는 것은 실제 효과보다는 권상우라는 몸짱 모델이 제공하는 이미지가 더 클 것”이라며 “만약 광고가 암시하는 것처럼 아미노산 음료를 마시고 몸짱이 된다면 노벨상 감”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체육학과 이대택 교수는 “논리적으로 따져도 아미노산이 힘을 내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체내에 직접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탄수화물이고, 이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은 지방이다. 단백질은 근육같은 조직을 구성하는 데만 관여한다. “아미노산 음료가 ‘힘’(에너지)을 공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아미노산 음료는 전혀 효과가 없을까. 손숙미 교수는 “설탕 같은 당분 외에 미량이나마 단백질이 들어있는 것은 장점”이라면서도 “그 양이 너무 작아 거의 0%에 가깝다”고 말한다. 기능성 음료라고 하지만 사실은 맹물과 마찬가지인 셈. 손 교수는 “단백질 양만 따지면 차라리 계란 한 개를 먹는 것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아미노산 음료로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언제, 얼마만큼 마시는지도 따져야 한다. 김완수 교수는 “운동하기 40~50분 전에 마시고, 몸무게 1kg당 1g 이상을 섭취하면 안된다”고 얘기한다. 대개 아미노산 음료는 운동 직전이나 운동 중 또는 운동 직후에 마시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단백질 합성은 운동 중이 아니라 운동 후에 일어난다”며 “정 마시겠다면 운동 후가 낫다”고 말했다.

섭취량을 제한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김 교수는 “보디빌더처럼 의도적으로 근육을 키우는 사람도 몸무게 1kg당 1.5g을 넘어선 안된다”며 “만약 이 이상 먹게 되면 아미노산이 수분과 결합해 탈수증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숙미 교수는 “특정 아미노산이 너무 많으면 다른 아미노산의 흡수를 방해해 오히려 아미노산의 결핍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미노산 음료를 많이 마실 경우 인체에 득이 될 일이 없다는 것. 일례로 한 때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은 수면유도 신경물질인 세로토닌의 합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불면증 치료제로 많이 사용됐다.

그런데 트립토판을 지속적으로 복용한 사람들에게 고열과 혈구 이상 등 부작용이 생겼고 급기야 사망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후 트립토판은 판매가 금지됐다. 아미노산 비율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 사건이었다.

이대택 교수는 “아미노산 음료 같은 아미노산 보충제는 4~5년 전만 해도 전혀 조명을 받지 못했다”며 “축적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아직 전문가 사이에서 효능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몸짱의 유혹은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에게 아미노산 음료가 있다면 여성에게는 피트니스 음료가 있다. 그간 여성의 다이어트 심리를 겨냥한 다이어트 음료는 저칼로리 음료나 식이섬유 음료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피트니스 음료는 아예 체지방이 분해되거나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고 광고한다.


더운 여름, 음료수에 젱리 먼저 손이 간다.


효과 있어도 양이 문제

대표적인 제품이 ‘팻다운’(FatDown)이다. 팻다운은 이름처럼 지방흡수를 낮추고, 지방합성을 저해하며, 체지방을 분해한다고 선전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바르기만 하면’ 또는 ‘마시기만 하면’에서 벗어나 운동하기 전 팻다운을 마시면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피트니스 음료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팻다운은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까.

손숙미 교수는 “수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 광고 심의를 맡고 있는 손 교수는 “초기에 팻다운 광고는 ‘체중’ 감량이었다”며 “이 때 1kg 정도 감량 효과가 있다고 광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1kg이라도 효과가 있다면 의미있는 것 아닐까. 손 교수는 “체중 1kg은 부종때문에 하루에도 줄었다 늘었다 하는 양”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성은 생리주기가 가까워질수록 심한 경우 체중이 2~3kg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최근 팻다운은 체중에서 ‘체지방’이 준다고 광고 내용을 바꿨다. 지난 4월에는 임상실험 결과 팻다운이 체지방을 분해하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체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된 20~50대 여성 57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8주간 주 3회 운동만 시키고 나머지 한 그룹은 팻다운을 같이 마시게 한 결과 전자는 체지방이 0.1kg 감소한 반면 후자는 1.4kg이나 줄었다. 손 교수는 “여기에도 트릭이 있다”며 “중요한 것은 체지방 비율”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체지방량이 체중의 30%에서 28%로 줄었다’는 식의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체지방은 체중에 이 비율을 곱한 값이다. 만약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이 실험에 참여했다면 체지방이 3kg 줄었다고 해도 실제로 체중에 비해 줄어든 양은 적다.

손 교수는 “쓴 돈에 비해서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피트니스 음료는 다른 기능성 음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만큼 그에 상응하는 다이어트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피트니스 음료는 돈을 지불한 만큼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심리적 동기를 유발시킨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노란색의 달콤 쌉싸름한 박카스는 무려 40년 동안 대한민국의 ‘넘버 원’ 영양보충제였다. 그런데 최근 박카스의 아성을 위협하는 라이벌이 등장했다. 바로 ‘비타500’이다. 비타500은 ‘마시는 비타민C’를 내세우며 피로회복제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열풍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비타민C 과음 마세요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이연숙 교수는 “비타민 음료를 쉽게 살 수 있어 ‘과음’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식품을 통해서만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타민 음료를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합성된 비타민을 마실 수 있다. 문제는 비타민의 양이다. 대개 비타민 음료와 같은 보충제에는 비타민이 농축돼 있다. 비타500도 100ml한 병에 비타민C가 700mg 들어있다. 반면 귤 하나에는 비타민C가 50mg 들어있다. 그렇다면 ‘과음’이 왜 문제가 될까.

비타민C를 너무 많이 섭취할 경우 체내의 영양소 균형이 깨진다. 영양권장량이 정해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1998년에 제정된 영양권장량에 따르면 비타민C는 하루에 70mg 섭취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최근에 제정된 최대섭취허용량에서는 비타민C를 하루에 최대 2g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흔히 비타민C는 부작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설사나 복통, 신장 결석, 요로 결석 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비타민C는 수용성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 섭취하면 소변으로 배출된다. 하지만 너무 많이 섭취할 경우 칼슘 이온과 결합해 신장에 결석이 생길 수 있다. 임산부가 비타민C를 과다 섭취하면 태어난 아기의 비타민C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비타민 열풍이 비타민C가 무조건 좋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이양자 교수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 교수로부터 비타민C ‘신봉론’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폴링 교수는 비타민C가 감기에 효과가 있고 많이 섭취할수록 좋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5월 국내 대한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실제로 비타민C는 감기에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드링크의 ‘허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칼리성 이온 음료는 실제로 pH 4.7의 산성 음료다. 무가당 음료는 당을 첨가하지 않았을 뿐 당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천연(泉然)사이다는 광천수로 만들었을 뿐 ‘천연’(天然)이 아니다. 이 교수는 “식물성 식용유 병에 콜레스테롤 제로라고 써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콜레스테롤은 원래 동물성 기름에만 있다. 혹 지금 냉장고 앞에 서서 어떤 음료를 마실까 고민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네 음절만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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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김상민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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