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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더불어 사는 문화를 구현한다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나도선

“뽀샵으로 처리하지 마세요.”

나도선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56)은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좋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편집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뽀샵’이란 ‘포토샵’(Photoshop) 같은 그래픽편집 소프트웨어로 실제 인물 보다 사진이 나아 보이도록 조작하는 일종의 ‘성형 사진’을 가리키는 말.

최근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녀에게 ‘과학기술부 산하 최초의 여성 기관장’,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 어쩌구 저쩌구’ 하는 식의 상습적인 수식어를 붙이려던 생각을 단박에 포기해야 했다.

“자꾸 웃는 표정을 지으라고 하지 마세요. 난 억지로 웃기가 어렵거든요.”

나 이사장은 웃는 모습마저 사절(?)했다. 굳이 억지 웃음을 연출할 필요가 있느냐는 담박한 심정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연구실에서 실험과 연구에만 매달린 결과 생긴 ‘직업병’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최근 오른쪽 어깨에도 ‘직업병’이 번져 요즘은 가끔 왼손으로 마우스를 다룬다. 나 이사장은 ‘직업병’마저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당당하다.
 

일은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나도선 이사장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과학은 사회문화의 기반

“과학도 음악이나 미술처럼 사회문화의 기반입니다. 이것이 ‘과학문화’죠. 과학은 실제로 우리 생활의 모든 부문에 스며들어 있는데도 상당한 지식인조차 과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이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부정적인 견해는 과학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는 것. 생명 복제, 원자력 발전, 유전자변형 작물 같은 첨단 분야일수록 과학기술을 매도하는 정도가 심각하다. 정작 환경이나 인간성을 망가뜨리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며, 이를 감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 이사장의 주장이다.

“지난 해 시작한 사이언스코리아 운동은 과학문화를 토대로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이언스코리아는 사실 준비기간이 부족했지만, 지난 해에 과학문화의 씨앗을 전국적으로 뿌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의 장단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중장기계획을 수립할 예정입니다.”

나 이사장의 주특기는 염증 치료다. 나 이사장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던일리노이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1985년 귀국한 뒤, KIST 유전공학센터(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유전자재조합 기법을 도입해 신약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아넥신(Annexin)이 염증을 치료하는 단백질인 것을 밝히고, 그 구조와 작용을 규명한 논문은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새로운 염증 치료에 관심을 가진 것일까? 나도선 이사장은 과학문화재단에 부임하자마자 사이언스코리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줄줄 꿰더니, 곧바로 과학문화재단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쏟아냈다.

“그 동안 사업이 너무 많았습니다. 업무로 바쁘면 창의력이 떨어집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상상할 심심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쉬고 있거나 졸고 있으면 안됩니다. 졸고 있는 조직은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일은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나 이사장은 참여정부의 혁신방향에 맞춰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으며,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내실을 기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또 직원 모두를 10년, 20년 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자율적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는 ‘셀프리더’(Self Leader)로 양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저요? 10년 뒤든 20년 뒤든, 아마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있을 겁니다. 소외계층도 국가적인 인력자원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소외계층이 성공한 역할 모델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의욕을 갖도록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 나 이사장은 모든 사업에서 10~20%는 아예 소외계층의 몫으로 떼어 놓았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가족과학축전에도 남산복지원의 어린이를 비롯한 소외계층 200명을 초청해 행사를 벌였다. 남산복지원은 재단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자원봉사하는 곳이다. 나 이사장은 또 법무부의 지원을 얻어 과학기술앰배서더 사업으로 소년원이나 사회복지관 같은 기관에 있는 불우 청소년을 위한 강연도 확대하고 있다.

‘불멸의 나도선’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불편한 점이 참 많습니다. 사소한 예를 하나 들자면 남자 기관장이라면 정장 한 벌로 하루의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지만, 여자다 보니 정장이 여러 벌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 조찬부터 저녁 약속까지, 모임이나 행사의 분위기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하거든요.”

연구실에서는 하얀 실험복 단 벌에도 불만이 없던 나 이사장은 이미 카멜레온 체질로 변신했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정장 몇 벌을 집무실에 갖다 놓았다. 그러나 액세서리에는 아직 관심이 없다.

나 이사장은 인간의 고뇌가 들어 있고 인간의 본성을 묘사한 작품에 관심이 많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20번도 넘게 읽었다. 젊은 시절에 ‘김약국의 딸들’(박경리)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면, 지금은 ‘굳세어라 금순아’(MBC)를 즐겨 본다. 나 이사장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멸의 나도선’, 후배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직업병’도 그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연구실에서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을 만들고,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창립하고,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가 최근 과학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하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우리 사회는 슈퍼스타의 모델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더 중요합니다. 슈퍼스타부터 소외계층까지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문화가 필요합니다. 과학문화를 통해 그런 합리적인 사회시스템을 구현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문화재단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최한 가족과학축전에서 나도선 이사장이 여러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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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장혜진 기자
  • 허두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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