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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두리틀이 되고 싶나요?

개성만점 동물들의 성대모사 따라잡기

영화 ‘닥터 두리틀’(Doctor Dolittle)에서 두리틀 박사는 동물의 소리를 이해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어른이 되면서 이 능력을 잃어버린 박사는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다시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호랑이, 오리, 곰, 햄스터는 박사를 찾아와 자신들의 사정 이야기를 늘어놓기에 바쁘다. 두리틀 박사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왈왈’ ‘어흥’ ‘야옹’ 등의 의성어로 동물의 소리를 흉내 낸다. 동물도 사람의 말을 따라할 수 있을까? 우리도 동물과 서로의 고충과 사연을 나눌 수 있을까?

성대모사의 제왕 은키시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비슷하게 흉내 내는 동물은 단연 앵무새다. 주로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이 조류는 빨갛고 노란 색동 깃털로 사람의 시선을 먼저 붙잡은 다음 사람 같은 말소리로 귀를 의심하게 한다. 특히 ‘은키시’(N’kisi)라는 이름의 회색 앵무는 950개나 되는 단어를 사람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그런데 은키시는 사람의 음성을 흉내 낼 뿐만 아니라 몇 단어는 의미까지 알고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루퍼트 쉘드레이크 박사는 은키시가 자주 따라하는 전화, 안경, 물, 꽃, 이빨, 나체, 포옹, 의사 등 16개 단어의 그림을 매일 바꿔 보여주며 은키시의 연상 능력을 시험했다. 은키시는 처음에 물 사진을 보고 “의사!”라고 대답하는 등 제대로 맞춘 것이 거의 없었지만 점점 실력이 향상됐다. 특히 ‘꽃’과 ‘나체’라는 단어는 절대로 틀리지 않았다.

이제 스스로 문장을 구사하며 유머감각까지 발휘한다는 은키시는, 횟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다른 앵무새를 보고 “저 새의 사진을 찍어 둬요”라는 말도 할 줄 안다. 침팬지 연구의 선구자 제인 구달 박사를 만났을 때는 그녀가 침팬지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고 “침팬지를 데리고 왔나요?”라고 물어 구달 박사를 놀라게 했다. 이제 문맥에 따라 과거와 미래 시제까지 구사하며, 어린이처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은키시의 ‘말하기’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은키시가 구사하는 말이 스스로의 사고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인지 시청각 자극에 대한 단순 반응일 뿐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은키시가 사람 목소리를 녹음했다 들려주는 것처럼 흉내를 잘 내는 ‘성대모사’의 고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 비결이 뭘까?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가브리엘 베커스 교수가 최근 그 해답을 찾아냈다. 앵무새는 사람처럼 혀의 모양과 위치를 바꿔가며 다양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원래 조류는 사람의 성대에 해당하는 울대를 조절해 소리를 내는데 유독 앵무새만은 사람의 성대를 닮은 구강 구조를 갖고 있고, 혀가 사람처럼 두껍고 넓다. 베커스 교수는 “앵무새가 말할 수 있는 음성기관을 갖고 있는 것은 서로 더 정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성대모사’할 수 있는 최적의 음성기관을 가진 덕에 앵무새는 인간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회색 앵무는 보통 앵무새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앵무새 중에 가장 영리하고 말을 잘 따라하는 종으로 알려졌다.


움라이카의 트럭송

은키시만큼은 아니지만 원래 다른 소리를 잘 따라하는 동물도 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 3월호에는 달리는 트럭 소리까지 따라하는 유별난 동물이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아프리카 코끼리 ‘움라이카’(Mlaika)가 그 주인공이다. 케냐의 동물학자 조이스 풀 박사는 움라이카가 밤마다 내는 “끼익~” 소리를 녹음해 사람들에게 들려줬더니 대부분 트럭 소리로 오해했다고 한다. 풀 박사는 이 소리가 움라이카를 가둔 보호 우리에서 3km 떨어진 고속도로를 지나다니는 트럭 소리와 주파수가 같다는 것을 알아냈다. 움라이카는 트럭이 부르는 소리에 메아리로 응답한 셈이다.

고래도 남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호주 시드니대 마이클 노드 교수는 호주 동부 해안에 서식하는 험프백 고래 무리가 오랫동안 부르던 집단의 노래를 버리고 아예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위잉~”하며 내는 소리 자체의 주파수도 다르고 ‘곡’의 진행도 완전히 달랐다.
조사해 봤더니 이 새로운 노래는 서부 해안에서 온 몇 마리의 고래가 동부 해안 전체에 퍼뜨린 것이었다. 태평양에서 사는 동부 해안 고래 90여 마리 전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도양 출신 고래의 노래만 열심히 따라하고 있었다.

영리한 까마귀과의 조류 어치만큼 열정적으로 소리를 따라하는 동물도 없다. 어치가 갖고 있는 원래의 소리는 단순해서 돼지 멱따는 듯 “꽥꽥” 시끄러운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런데 이 새는 우리나라에서 소리 흉내를 제일 잘 내는 종으로 꼽힌다. 까치가 “깍~깍” 우는 소리나 고양이가 “야옹”하는 소리를 비슷하게 흉내 낸다. 뿐만 아니라 경적소리와 벨소리까지 따라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렇게 소리 흉내내기에 열심일까? 움라이카 만큼이나 흉내를 잘 내는 아프리카 코끼리가 있다. ‘칼리메로’(Calimero)라는 이름의 코끼리는 스위스의 한 동물원에서 암컷 아시아 코끼리 두 마리와 18년동안 함께 지냈다. 그러자 이제 칼리메로는 아시아 코끼리만 내는 독특한 “짹짹” 소리로 의사소통하게 됐다. 원래 다른 종의 소리를 전혀 따라하지 않는 아프리카 코끼리도 입을 다문 채 ‘왕따’로 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소리 흉내는 이렇게 무리 속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방법이 된다. 같이 놀기 위해 소리를 따라하는 경우다.

험프백 고래는 소리를 흉내 내는 목적이 조금 다르다. 노드 교수는 고래의 노래 따라하기를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물 건너온 외국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비유했다. 대중을 파고드는 유행가처럼 노래 자체가 고래를 사로잡았다는 설명이다.

어떤 노래가 유행할까? 힌트는 수컷이 번식기에 암컷을 유혹하는 소리가 바로 노래라는 사실에 있다. 어떤 수컷이 부른 노래를 암컷이 좋아하면 다른 수컷도 이것을 열심히 따라 부르고 결국 전체에 유행한다.‘작은 마디 A, 다음에 B, C, 다시 A···’하는 식으로 레퍼토리의 순서도 바꿔보고 새로운 소리를 섞으며 유행에도 신경 쓴다. 북미에 서식하는 멧종다리는 남의 레퍼토리를 따라하기로 유명하다.

호기심 때문에 소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서울대 야생동물생태관리연구소의 최창용 박사는 어치가 다양한 소리를 모사하는 이유에 대해 “어치는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어디서 신기한 소리가 들리면 궁금증을 참지 못해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새로운 소리 자극이 계속되면 똑같이 따라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어치가 간혹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까치의 공격으로부터 둥지 속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가설도 있다.

어치의 각종 소리 모사 개인기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 하더라도 꽤 유용한 듯 하다. 등산객의 관심을 끌어 먹이를 많이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코끼리 움라이카가 해만 떨어지면 몇 시간씩 혼자 트럭 소리를 따라한 것은 다른 코끼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한 것도 주위의 호응을 기대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노드 교수는 “혼자 갇혀있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소리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흉내를 내며 혼자 노는 유희 형의 예다.

이 밖에도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소리를 흉내 내는 안전형이 있다. 사막에 사는 버벳 원숭이는 표범과 독수리, 뱀이 나타나면 각 상황마다 다른 소리로 위험을 알린다.

그런데 이것은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게르빌루스쥐가 원래 지르던 소리를 상황에 맞춰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버벳 원숭이는 포식자의 위협을 동료에게 더 잘 알릴 수 있다.
 

어치는 엉뚱한 소리까지 흉내 내기로 유명하다. 산에서 들리는 벨 소리나 경적 소리도 어치가 내는 소리일 수 있다.


까복이에게 말걸기

까치도 사람의 음성과 비슷한 소리를 낼 줄 안다. 사람과 ‘같이 놀기’ 위해서다. 서울대 행동생태연구실 박사 과정의 박효정 씨는 ‘까복이’라는 까치를 키우면서 음성구조를 연구했다. 태어난 지 20여일 만에 사람과 함께 살게 된 까복이는 박 씨가 “까”하며 부르면 역시 “까”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야생 까치와 달랐다.

박씨는 까복이가 사람에게서 소리를 배워 따라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 까복이가 내는 소리의 주파수를 기록했다. 그 결과 까복이가 낸 “까” 소리는 다른 야생 까치 소리와는 전혀 다른 주파수 그래프로 나타났다. 오히려 사람의 목소리로 “까”하고 말할 때의 주파수 그래프와 거의 일치했다. 까복이는 사람이 말하는 “까” 소리를 따라한 것이다.

까복이에게 “짹짹” 해보라고 할 수는 없다. 동물마다 갖고 있는 음성 구조와 소리의 기본 법칙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동물은 반복되는 소리 자극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원래 종이 내는 소리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소리를 따라할 수 있다.
한국교원대 동물행동학연구실의 성환철 박사는 “원래부터 ‘비-- 삐빅 삐비빅’하고 우는 휘파람새가 종의 기본 소리 ‘비--’를 버릴 수는 없다. 앞부분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남겨둔 채 외부의 소리를 이용해 ‘삐빅 삐비빅’하는 뒷부분을 멋지게 바꿀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주위의 다른 새가 내는 소리를 따라하는 휘파람새도 종별 특성은 유지하는 한에서 개체의 독특한 소리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닥터 두리틀은 처음부터 개의 소리를 알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개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동물과 대화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그 동물이 잘 따라할 수 있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고, 지속적으로 비슷한 소리를 건네 보자. 그 종만의 특이한 언어로 소통해왔던 동물들이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올 것이다. 까복이가 사람의 음성으로 “까”하고 응답했듯이.
 

작년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기 전까지 연구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까복이. 까복이가 내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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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윤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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