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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기 북극과 남극 바뀔까

이상 조짐 나타나 과학자들 긴장

“오늘과 내일은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나타나게 될 것이 예견되므로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특별히 건강에 관심을 돌리기 바랍니다.” 지난 1월 10일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일기예보다. 일기예보에 지자기예보가 포함된 것도 신기하고, 지자기 폭풍과 건강을 연결시킨 것도 흥미롭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일기예보다.

흔히 줄여서 지자기로 불리는 지구자기장은 지구의 ‘투명 방패’다. 지구가 태어난 이래 우주에서 쏟아지는 변덕스런 태양풍과 우주방사선에 맞서 지구를 보호하는 든든한 바람막이였다. 그래서 지자기 폭풍은 지구 대기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우리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이런 지자기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50여년 전부터 지자기의 세기가 약해지더니 현재 그 강도가 15% 가량 쇠약해진 것. 일부 과학자들은 지자기의 세기가 약해져 지자기 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구의 자북극과 자남극이 서로 뒤바뀐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극점 이동하고 세기도 약해져

지구는 안쪽에서부터 내핵, 외핵, 맨틀, 그리고 가장 바깥의 지각까지 순서대로 쌓여 있다. 이 중 지자기의 모체는 3000~5000km 사이에 있는 외핵이다. 외핵은 내핵과 달리 액체상태의 유체인데, 내핵이 ‘철 덩어리’라면 외핵은 ‘철물’로 비유할 수 있다.
지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외핵의 유체운동 때문이다. 유체운동에 의해 전류가 만들어지고, 이 전류의 흐름으로 자기장이 생긴다. 이것이 1950년 제안된 ‘다이나모 이론’이다.

초기에 과학자들은 지구 중심에 막대자석과 같은 물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구 내부는 온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물질이 자성을 갖기 어렵다. 또 실제 지자기를 관측했을 때의 모양은 막대자석이 만드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무엇보다 막대자석 모델로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동력원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다이나모 이론이다. 다이나모라는 이름처럼 외핵이 지구의 ‘발전기’ 역할을 해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것. 외핵 내부에서 위아래 온도와 밀도 차이로 대류운동이 일어나 유체가 움직이게 되면 유체의 역학적 에너지가 전기로 바뀌어 유도전류가 형성되고, 이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어 지자기가 형성된다.

몇 년 전부터 지자기 역전에 대한 논의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자기 극의 움직임이다. 자북극이 캐나다에서 러시아 쪽으로 매년 평균 40km의 속도로 이동해 현재 자북극은 캐나다 북단의 한 섬에, 자남극은 호주 태즈메니아섬 남쪽 300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831년 처음 자북극이 발견됐을 때보다 북서쪽으로 약 1000km 가량 이동했다. 이 속도라면 50년 뒤에는 자북극이 시베리아에 위치하게 된다.


지구는 안쪽에서부터 내핵, 외핵, 맨틀, 지각이 쌓인 구조다. 이 중 지자기의 모체는 유체상태의 외핵이다.


자기장의 세기도 감소했다. 2002년 4월 파리 지구과학연구소의 고띠에르 울르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덴마크의 인공위성 에르스텟의 지자기 측정 결과를 토대로 남아프리카 아래 외핵의 한 지역에서 지자기가 지구의 나머지 부분과 정반대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세기도 수백년 동안 차츰 강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지자기 역전과정

1995년 미국 로스 알라모스연구소의 게리 글래츠마이어 박사와 캘리포니아대 폴 로버츠 박사가 재현한 지자기 역전 시뮬레이션.
a부터 차례대로 역전 과정을 거쳐 f에서는 지구의 자북과 자남이 뒤바뀐다.


울르 박사는 “이로 인해 전체 지자기 세기가 10% 가량 감소해왔다”며 “만약 같은 비율로 지자기 세기의 역전이 계속된다면 자북과 자남의 양 극은 200년 후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울르 박사는 혹시 이 현상이 지자기 역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현재 지구가 지자기 역전의 초기 단계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2003년 1월에는 덴마크 지구과학센터의 닐스 올센 박사가 지구의 핵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외핵의 운동이기 때문에 핵 내부의 변화는 지자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센 박사는 “만약 외핵의 운동이 급격히 요동칠 경우 자기장의 북극과 남극은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다”며 지자기 역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해 미국 과학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는 지자기 역전 의혹을 증폭시켰다. 컴퓨터로 지자기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자기장의 역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자기의 세기가 약해지면서 부분적으로 이상이 생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요 몇 년간의 변화와 맞아떨어지는 결과였다.

‘남대서양 이상’도 지자기 역전 조짐의 하나다. 우주선이 남대서양 위를 통과할 때마다 관제실의 과학자들은 모두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이상하게도 남대서양 상공에서는 인공위성이 낮은 궤도에 머물러도 태양풍의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가끔 전자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우주비행사들이 해를 입기도 한다. 그래서 ‘남대서양 이상’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지자기가 약하다. 최근에는 ‘남대서양 이상’을 보이는 지역이 브라질과 남대서양 위쪽에서 남인도양 쪽으로 차츰 넓어지고 있다.

현재 지자기의 세기는 15% 정도 약해진 상태며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덴마크의 인공위성 에르스텟이 2000년에 측정한 지자기 세기와 미국의 인공위성 마그셋이 20년 전에 측정한 결과를 비교해보면 현재 속도로 지자기의 세기가 줄어들 경우 1000년 뒤면 자기장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정말 지가기 역전이 임박한 것은 아닐까?

알쏭달쏭 주기 변화로 역전 가능성 희박

지자기 역전의 조짐은 있지만 과학자들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자기 역전 주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양의 자기장 역전 주기가 11년으로 일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산대 김인수 교수는 “지자기 역전은 지구의 역사 45억년 중 최소 200~300회 이상 일어났다”고 말한다. 100만년에 2~3번 꼴로 지자기 역전이 일어났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자기 역전이 발생한 것은 78만년전이었다. 막 걸어 다니기 시작한 인류 호모에렉투스가 돌로 도구 만드는 법을 익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 지자기 역전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자기 역전의 주기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앞으로 언제 또 다시 지자기 역전이 일어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1000만년 동안 한 번도 역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기간도 있었다.

역전 자체가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확실치 않다. 지난해 4월 미국 플로리다 인터내셔널대의 브래드포드 클레멘트 교수는 지자기가 역전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위도에 따라 다르다는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클레멘트 교수는 “역전 과정이 극지보다 적도 근처에서 더 빨리 일어난다”며 “적도 근처에서는 2000년, 극지 근처에서는 1만1000년까지 위도에 따라 지자기 역전에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지자기 역전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론적으로 지자기 역전은 지구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육해공을 막론하고 동물들이 대혼란에 빠진다. 붉은 바다거북이는 대서양을 따라 1만2800km의 긴 여정을 떠날 때 지자기를 나침반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어와 고래, 꿀벌과 두더지도 지자기로 방향을 확인한다. 비둘기의 경우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지난해 11월 ‘네이처’에는 비둘기의 지자기 감지 성공률이 절반이 넘는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지구 자체도 안전할 수 없다. 지자기는 지구 바깥에 자기권을 형성해 태양풍과 우주방사선을 막아준다. 오로라가 그 증거다. 지구 표면으로 들어오지 못한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자기장을 따라 극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상층대기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빛이 오로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자기 역전이 일어나기 전에 자기장의 세기가 약해진다면 자외선을 보호하는 지구의 오존층이 파괴돼 작물생산량이 떨어지고, 피부암 등 암 발생 비율도 높아질 수 있다.

지자기 역전 가능성을 놓고 과학자들의 견해는 두 갈래로 나뉜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앞으로 적어도 1000년 동안은 지자기 역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자기 역전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 상대적으로 미약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반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 당장이라도 지자기 역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자기 역전으로 인해 지구는 대규모 화산 폭발과 대지진에 시달리고, 수백만명이 방사능에 노출돼 죽을 수 있다고 예측한다. 지자기가 역전되는 순간 생물이 멸종할 것이라고도 한다. 공룡의 멸종을 지자기 역전으로 설명하는 가설도 있다.


독일 인공위성 챔프가 2002년부터 2년간 보내온 해양 지자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완성한 해수 움직임의 지자기 지도.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파란색보다 지자기 세기가 강하다.


김인수 교수는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지자기 역전이 곧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역전 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 최소 2000년은 걸릴 것이라는 견해가 아직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김인수 교수는 “지자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점들이 너무 많다”며 “몇몇 전문가들은 지자기 역전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앞선 견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지구 X선 찍을 스웜 프로젝트

지난해 6월 유럽우주국(ESA)은 세계에서 가장 큰 지자기 추적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스웜’이라는 인공위성 세 개를 띄워 지구 구석구석을 X선 촬영하듯 지자기를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ESA가 스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최근 지자기 역전 현상에 대한 조짐들과 무관하지 않다. 지자기 자체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너무나 없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간 지자기 측정은 덴마크가 1999년에 발사한 인공위성 에르스텟과 독일이 2000년에 띄운 원격위성 챔프가 도맡아왔다. 에르스텟은 주로 지자기 측정을, 챔프는 지자기와 중력 모두를 측정했다.

스웜은 이들에 비해 규모가 크다. 프랑스, 덴마크 등 7개 유럽 국가와 미국의 과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어 제안된 다국적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인공위성이 한꺼번에 세 개나 지구 주위를 돌게 된다.

스웜 A와 B는 적도 부근에서 수평방향으로 서로 150km 가량 떨어져 나란히 돌면서 동시에 자기장을 측정한다. 처음에는 지구 상공 450km 궤도를 돌게 되지만 임무가 끝날 때쯤이면 300km까지 지표 근처로 내려와 좀 더 정확히 지자기를 측정할 계획이다. 스웜 C는 임무를 수행하는 내내 500km 이상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지구 곳곳의 지자기를 스냅사진으로 찍어 실시간으로 송신한다. 같은 곳을 하루에 여러 번 찍어 지자기 변화를 포착하는 것도 스웜 C의 임무다.

예정대로라면 스웜은 2009~2013년까지 5년 동안 지구 상공에 머물게 된다. 스웜 프로젝트에 참가한 프랑스의 울르 박사는 “자기장이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원한다”며 “스웜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이면 세계에서 최초로 자기장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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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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