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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란에서 신경세포가 탄생하기까지

성장인자 정교하게 작동시키는 분화 프로그램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4일 앞둔 21일, 미국 뉴햄프셔의 조그만 마을에 사는 14세 소년 하워드에게 ‘특별한 자동차’ 한 대가 배달됐다. 하워드는 4살 때부터 바이러스로 인한 전신마비 때문에 숨쉬는 것조차 인공호흡기에 의지할 정도인 중증 장애아동으로, 지난 10년간 휠체어를 타고 학교와 병원을 오간 것 말고는 가본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다. 이 소년에게 배달된 자동차는 침대에 첨단 의료장비가 갖춰진, 그야말로 달리는 ‘특급 병실’이다.

하워드에게 이런 상상도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낸 사람은 바로 고인이 된 크리스토퍼 리브의 유족이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영화 ‘슈퍼맨’으로 잘 알려진 미국 영화배우다. 그는 1995년 불의의 승마사고로 척수를 다쳐 전신마비라는 엄청난 장애를 안게 됐다. 하지만 재활에 대한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 10월에 사망하기까지 척수 장애인의 대변인으로서 당당히 살다간 진정한 ‘슈퍼맨’이었다.

이는 지난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스포츠서울 USA’가 보도한 내용이다. 굳이 슈퍼맨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는 뇌손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노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중풍으로 잘 알려진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그 혈관으로부터 산소를 공급받는 뇌세포가 죽어 뇌기능이 상실되는 질환이다. 뇌졸중은 현재 노인에게서 신체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며 세계적으로 매년 4500만명 정도가 뇌졸중으로 사망한다고 추정된다. 우리나라 인구만큼의 환자들이 해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꼴이다.

왜 다른 장기와 달리 뇌와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그 후유증이 평생토록 가는 걸까. 대부분의 장기나 조직은 자체 내에 줄기세포가 있어서, 비록 손상됐다 하더라도 줄기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므로 재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뇌와 척수는 줄기세포가 없어서 다시 회복되기 어려운 것일까. 21세기 과학의 힘으로 다른 장기나 조직처럼 뇌, 척수의 재생능력을 눈뜨게 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인가.

만능 줄기세포로 신경재생

최근 뇌질환도 재생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예로 파킨슨병을 들 수 있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신경세포가 죽어 뇌 속의 도파민이 모자라서 생기는 질환이다. 환자는 떨림과 운동장애 증상을 보이는데, 도파민의 농도를 높여주는 약을 복용하면 이런 증상이 사라진다. 하지만 약물의 효과는 일시적이며, 장기 복용시 부작용이 일어나고, 결국 환자는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도파민을 합성하는 신경세포를 이식하면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때 이식에 사용되는 세포는 합법적으로 낙태된 태아의 뇌조직에서 얻는다. 문제는 환자 1명당 5-10명의 뇌조직에 해당하는 세포를 이식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이만큼의 태아 뇌조직을 한꺼번에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태아 뇌조직을 대신해서 도파민을 합성하는 세포를 다량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많은 과학자들은 그 해답을 바로 줄기세포에서 찾고 있다.

줄기세포는 모체에서는 태아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세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출생 후에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평생에 걸쳐 세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줄기세포는 세포분열을 통해 자신과 닮은 세포를 만들어 내며, 이때 생겨난 세포 중 일부는 해당 장기나 조직에 적합한 세포로 분화한다. 분화할 수 있는 세포의 종류에 따라 줄기세포를 만능(pluripotent), 다분화능(multipotent), 단분화능(unipotent)세포로 구분한다.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200여종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 줄기세포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분화능 줄기세포로 바뀐다. 다분화능 줄기세포는 발생 중 조직에 필요한 세포를 만들어내며, 아기가 출생한 다음에도 남아서 지속적으로 세포를 만들어내는 까닭에 성체줄기세포라고 일컬어진다. 예를 들면 조혈줄기세포는 평생 골수에서 혈액을 구성하는 적혈구, 백혈구, 림프구를 만들어내는 성체줄기세포의 일종이다. 이에 비해 피부의 줄기세포는 평생 동안 표피세포 한가지만 만들어내므로 단분화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줄기세포와 관련해서 1998년과 2004년은 난치병 치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전세계에 불어넣어준 특별한 해였다. 1998년은 미국 과학자가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를 최초로 배양한 해였다. 2004년에는 국내 연구진이 그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난자의 핵을 자기 몸에서 떼어낸 세포핵으로 치환시키는 방법으로 자신과 동일한 유전형을 지닌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즉시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신경세포를 얻는 일에 착수했다.

배아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경로는 발생 중 뇌, 척수를 구성하는 신경세포가 생기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이제 단일 수정란에서 신경세포가 생기는 경로에 대해 알아보자.

신경분화 명령하는 사령관 유전자

수정란은 난할(세포분열)을 여러 차례 거듭해 배반포를 만든다. 배반포는 후에 태반이 될 바깥쪽의 영양세포와 태아가 될 안쪽의 세포덩어리로 양분된다. 배아줄기세포는 바로 안쪽 세포덩어리를 분리해내 배양한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만능분화능을 지닌 세포로서 이미 그 안에 신경, 피부, 뼈, 근육, 내장을 만들 수 있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내장돼 시간이 지나면서 신경분화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배아줄기세포는 만능분화능을 상실하고 점차 다분화능을 지닌 신경줄기세포로 변하며, 신경줄기세포는 더 분화해서 신경조직을 구성하는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가 된다. 요약하면 ‘수정란→배아줄기세포→외배엽 세포→신경줄기세포→신경세포→신경망 형성’ 과정을 거쳐 신경세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 많은 유전 프로그램 중 특별히 신경분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것일까.

배아줄기세포에 해당하는 안쪽 세포덩어리는 서로 이웃한 세포끼리 bFGF, Wnt, BMP라는 인자를 주고받는다. 그 중 bFGF는 신경분화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반면, Wnt와 BMP는 신경분화 프로그램을 억제시킨다. 이 인자들 사이의 절묘한 균형으로 인해 같은 외배엽에서 피부와 신경이 함께 생겨난다. 즉 bFGF가 작용해 신경분화 프로그램이 작동하면 신경줄기세포가 만들어지고, Wnt와 BMP가 작용하면 신경분화가 억제돼 피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신경분화 프로그램은 어떻게 작동될까.

세포의 핵에는 이미 신경분화와 관련된 유전자 집단이 있으며 이 집단은 상부의 사령관 유전자의 통솔을 받는다. 사실 bFGF가 조절하는 것은 맨 꼭대기의 사령관 유전자이며, 사령관 유전자가 밑의 유전자 집단에 명령을 내린다. 그 결과 신경분화 집단에 속한 유전자들이 차례로 활성화되면서 신경세포가 되는데 필요한 물질을 생성하고, 세포는 신경세포의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이 같은 발생학적 지식은 줄기세포 기술 개발에 실제로 응용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에 bFGF를 처리해서 태아 뇌조직을 대신할 신경세포를 개발하거나 아예 사령관 유전자를 배아줄기세포에 넣어서 bFGF가 없이 신경세포를 직접 얻기도 한다.
 

수정란에서 신경세포가 생기는 과정^수정란이 세포분열을 거듭하면 배반포가 된다. 배반포 안쪽 세포덩어리를 배양하면 베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어떤 인자들이 작용하느냐에 따라 혈액, 신경, 뼈 등 체내 여러가지 세포로 분화된다.


이기적인 신경세포

20세기 최고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뇌는 무엇이 특별할까. 아인슈타인이 사망한지 30년 되는 1985년 미국 버클리대 다이아몬드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보다 가로로 15% 넓으며, 특히 왼쪽 뇌에 신경교세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교세포란 뇌에서 신경전달을 도와주는 세포로서 별아교세포와 희소돌기아교세포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신경세포와 마찬가지로 신경줄기세포에서 생겨나는데 일반적으로 그 수는 신경세포보다 10배 가량 많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바로 신경교세포가 조금 더 많은 것 때문인지는 현재 확실치 않으나, 신경줄기세포가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로 분화할 때 일반인보다 신경교세포가 조금 더 많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신경줄기세포는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비율을 어떻게 일정하게 유지할까. 이는 신경세포의 이기적인 특성 때문이다. 신경줄기세포는 신경세포로 되면서 delta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delta는 바로 이웃한 세포에 결합해 신경분화 사령관 유전자의 활동을 방해한다. 그 결과 이웃한 세포는 신경세포로 분화하지 못하고 대신 신경교세포로 분화한다. 신경세포의 이 같은 이기적인 작용으로 뇌에는 신경세포와 교세포의 수가 적당히 유지된다.

줄기세포로부터 신경세포를 얻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경세포를 뇌에 이식하는 것은 그보다 더욱 어렵다. 척수손상 환자나 루게릭병 환자에게 신경세포를 단순히 이식한다고 해서 운동기능이 회복될까. 이 점에 대해 학계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다른 장기와 달리 뇌와 척수는 신경세포가 신경망을 통해 신경정보를 전달해야 제 기능을 다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관심은 신경망을 재구성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되고 있다.

신경줄기세포는 어른이 된 후에도 뇌에 남아있으며, 평상시에는 잠잠하게 있다가 뇌졸중 같은 병으로 세포가 죽으면 갑자기 증식한다는 사실이 지난 2000년 발견됐다. 손상된 신경계를 재생시키기 위해 구태여 세포를 이식할 필요 없이 이미 우리 뇌에서 잠자고 있는 신경줄기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새로 생긴 신경세포가 살아남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문제는 비록 세포가 생겨난다 하더라도 그 부위는 이미 뇌혈관이 막혀 뇌조직이 죽어 있는 상태다 보니 새로 생겨난 세포도 별 수 없이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에게 남아있는 재생능력을 복구시키든지 아니면 세포가 죽는 것을 방지하는 새로운 치료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런 전략은 특히 수년에 걸쳐 병이 서서히 진행되는 퇴행성 뇌질환의 경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미국 솔크연구소 게이지 박사는 운동신경이 서서히 죽어 루게릭병이 걸린 생쥐에게 GDNF라는 성장인자를 주입해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죽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또 미국 존스홉킨스대 기어하트 박사는 생쥐에 인체의 배아줄기세포를 주입해 비슷한 효과를 얻었다.

다시 크리스토퍼 리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불의의 사고로 손상된 척수를 재생시킬 수 있을까.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에 불과하지만, 척수를 인위적으로 손상시킨 후 곧바로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척수신경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불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뇌나 척수의 재생이 멀지 않은 장래에 가능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험하지만, 에베레스트도 정복한 인간이 아닌가. 슈퍼맨이 몇년만 더 버텨줬더라면 다시 날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제 14살인 하워드군이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도록, 전세계의 신경과학자들은 지금도 땀 흘려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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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서해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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