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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치료의 열쇠는 분화 기술

조직이 손상되면 줄기세포는 잠에서 깨어난다.

세계적으로 질병으로 손상된 신체 조직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기능을 회복시키는 세포치료 연구가 활발하다. 줄기세포가 이처럼 치료용으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체내 여러 장기로 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에는 크게 발생 과정 중 수정란이 분열하면서 생기는 배아줄기세포, 성숙한 조직이나 기관 속에 들어 있는 성체줄기세포가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어느 장기로나 분화할 수 있어 분화 잠재력은 무한하나,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양만큼 분화하도록 조절하기가 어렵고 배아를 파괴해야 하는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윤리적 문제와 무관하지만 얻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고 분화 가능성이 제한돼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최근 성체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성체줄기세포의 운명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 장기로 분화하도록 정해져 있는 줄로만 알았던 성체줄기세포가 다른 장기로도 분화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골수에 들어있는 조혈줄기세포는 혈액세포로만 분화한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혈액과 발생기원이 다른 폐, 위, 장, 피부, 근육, 심장 등 여러 장기의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가 과연 어떻게 각 장기로 분화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성체줄기세포가 직접 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기의 성숙한 세포와 융합해 각 장기의 세포로 변하는 것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체줄기세포는 다른 세포와의 융합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의 신호를 받아 특정 장기로 ‘스스로’ 분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체줄기세포의 분화 메커니즘 연구가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알아보자.
 

수컷 생쥐의 조혈줄기세포가 이식된 암컷 생쥐의 간조직. 암컷 생쥐의 간에는 분화된 간세포염색체는 대부분 XY 또는 XYXY 형태를 나타냈다. 화살표 주변의 연두색은 Y염색체, 노랑색은 간세포 특이 단백질, 파랑색은 핵, 빨강색은 X 염색체.


세포융합 아닌 직접분화

성체줄기세포는 평소에는 잠자고 있다가 장기가 손상된 경우 깨어나 필요한 세포로 분화해 손상 부위를 복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필자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손상된 장기가 줄기세포의 분화 운명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세포생물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선 수컷 생쥐의 골수에서 조혈줄기세포를 분리했다. 이를 암컷 생쥐의 손상된 간조직과 함께 배양했다. 그 결과 48시간 만에 조혈줄기세포는 정상 간세포로 분화했다. 조혈줄기세포가 아닌 성숙한 골수세포를 손상된 간조직과 함께 배양했을 때는 이 같은 분화가 관찰되지 않았고, 조혈줄기세포를 정상 간과 함께 배양했을 때는 분화 정도가 미미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손상된 간을 넣어둔 배양액으로만 조혈줄기세포를 배양했을 때도 정상 간세포로 분화했다. 이 배양액에는 손상된 간이 분비하는 인자들이 들어 있다.

또한 간이 손상된 암컷 생쥐의 정맥으로 수컷 생쥐의 조혈줄기세포를 주사했더니 이 세포가 간으로 가 정상 간세포로 분화해 간 기능을 회복시켰다. 간세포로의 분화는 2~7일 사이에 일어났으며, 손상이 심할수록 분화가 많이 됐다. 이때 암컷 생쥐의 간에서 분화된 간세포들은 모두 정상 수컷의 Y염색체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수컷 조혈줄기세포 자체가 손상된 간에서 나오는 인자들에 반응해 스스로 분화하고 증식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연구팀은 간뿐만 아니라 콩팥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는 질병 장기에서 나오는 미세한 인자들이 미성숙한 성체줄기세포의 분화 운명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한동안 이 같은 직접분화가 아닌 세포융합이 실제 줄기세포 분화 메커니즘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2002년 초 골수세포 또는 신경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함께 배양했더니 세포융합이 일어났다는 것이 보도된 이후부터였다. 1년 뒤에는 간이 심하게 손상된 생쥐에 골수세포를 이식했더니 몇달 지나자 간에서 상당수의 세포융합이 관찰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에 성체줄기세포 자체는 다른 세포로 분화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4년 중반부터 그렇지 않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근육에 골수를 이식했더니 골수에 있는 줄기세포가 근육세포와 융합은 했지만 근육에만 있는 특이유전자를 발현하지는 못했다. 이는 줄기세포가 근육세포로 운명이 완전히 전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한 줄기세포만이 아닌 골수세포 전체를 이식해 융합된 세포들이 관찰된 경우는 실제로 여러 골수세포 중 어떤 세포가 융합에 관여했는지는 모른다. 실제로 순수하게 분리된 조혈줄기세포일수록 융합이 덜 관찰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결국 세포융합의 원인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좀더 성숙한 골수세포들이었고, 약물이나 방사선에 의한 극심한 조직 손상 또는 유전병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줄기세포 분화는 손상된 조직에서 나오는 많은 인자들이 동시에 또는 단계별로 작용하면서 일어난다. 즉 세포 외부의 환경과 내부의 유전적 조절의 복합적 작용으로 줄기세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도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인자들이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는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킨 후 손상 장기에 이식해 기능을 대체하는 방법이다. 세포치료의 가장 어려운 점은 특정 장기의 세포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 예를 들면 당뇨병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베타세포가 제 기능을 못해서 생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췌장의 알파세포나 섬세포가 아니라 베타세포다. 그러나 순수하게 베타세포만 만드는 방법은 지금껏 개발되지 못했다.

이식된 줄기세포가 원하지 않는 다른 세포로 분화되면 이식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과 분화에 관련된 단백질이나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화학물질을 처리해 필요한 세포로 직접 분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 분화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 다른 성숙세포와 함께 배양하거나, 특정 유전자를 줄기세포에 넣어 분화를 조절하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골수나 탯줄혈액에서 얻는 조혈줄기세포는 혈액질환 치료에 이미 사용되고 있다. 그 이외에는 아직까지 심장질환을 포함한 몇몇 질환에서 임상시험 단계다. 그런데 대부분 정제가 덜돼 순도가 높지 않은 세포를 이용하고 있어 증상이 호전된 경우에도 실제로 어느 세포가 관여했는지, 정말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로 분화된 것인지를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심지어 증상 호전이 줄기세포에 의한 것인지,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최근 골수에 있는 조혈줄기세포가 혈액세포뿐만 아니라 피부, 근육, 심장 등 여러 장기로도 분화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사진은 혈액 속의 각종 혈구세포들을 나타낸 그림.


세포치료 아직 산 너머 산

따라서 세포치료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순수한 줄기세포의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같은 줄기세포라도 연구자마다 다른 분화빈도와 다른 분화능력을 보이는 것은 다른 분리방법 때문인 경우가 많다. 줄기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확인해 분리하는 기존 방법은 발생과정이나 유전적 차이에 따라 발현되는 단백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줄기세포를 순수하게 분리해내기에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줄기세포만이 갖는 기능과 특징에 의해 순수하게 분리하는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한다.

또 충분한 양의 줄기세포를 확보해야 한다. 최근 골수 조혈줄기세포의 경우 대량증식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이식 후 성체줄기세포가 손상부위로 찾아가서 영구히 자리잡고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연구도 필요하며, 세포치료 후 생길 수 있는 합병증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마음대로 분화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 연구, 즉 효과적인 분화 관련 인자를 찾아내는 연구도 더욱 활발히 진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에 줄기세포가 보편적 치료 수단이 되면 개인별 맞춤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부작용이 반드시 존재하는 기존 약물요법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획기적인 치료법이 될 것이다. 난치병 환자들을 생각하면 이 같은 연구들이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하겠지만, 환자를 치료한다는 명목하에 무분별한 줄기세포 사용은 지양돼야 한다.


발생기원 | 다세포동물 발생 초기에 수정란이 분할하면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의 3가지 세포층을 형성한다. 외배엽은 피부, 신경계, 감각기관으로, 중배엽은 뼈, 근육, 혈구, 비뇨생식기관으로, 내배엽은 호흡기관, 소화기관으로 분화한다. 발생기원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배엽에서 분화했다는 의미다.

조혈줄기세포 | 골수 안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 백혈구와 적혈구 같은 혈액세포로 분화한다.

성체줄기세포 분화 과정에 대한 가설들

과학자들은 성체줄기세포가 특정 장기의 세포로 분화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골수의 조혈줄기세포가 혈액이 아닌
다른 세포로 분화하는 현상을 예로 들어 어떤 메커니즘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만능분화 : 발생 중 생긴 미분화된 줄기세포가 사라지지 않고 골수에 남아 모든 장기의 세포로 분화된다는 가설. 뇌, 근육, 피부 등에서도 이 같은 만능 성체줄기세포를 분리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이는 조직을 시험관 내에서 장시간 배양해 얻은 것이므로 배양하는 동안 줄기세포로 역분화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골수에 실제로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역분화와 재분화 : 조혈줄기세포가 거꾸로 분화해 더 원시적인 세포가 됐다가 다시 분화해 다른 세포의 형질을 갖는다는 가설. 양서류 팔다리 조직에서 실제로 역분화가 관찰됐다. 포유류의 신경세포나 근육세포를 시험관에서 배양하거나 인위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발현시키면 역분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증거는 아직 없다.

조직특이줄기세포 : 조직특이줄기세포가 조혈줄기세포와 함께 있다는 가설. 조직특이줄기세포는 필요에 따라 정해진 장기로 이동해 성숙세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장기로는 분화되지 않는다. 골수의 일부 줄기세포가 심장이나 뇌에만 있는 유전자를 이미 발현하고 있다고 보고됐다. 하지만 이들이 골수에 잠복해 있다가 재생이 필요할 때 그 조직으로 가 성숙세포가 되는지, 단지 그 조직의 유전정보만 일시적으로 발현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세포융합 : 조혈줄기세포가 다른 장기의 성숙세포와 융합해 그 장기의 세포가 갖고 있는 특성을 새롭게 얻는다는 가설. 줄기세포뿐 아니라 다른 세포도 함께 이식하거나 이식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융합된 세포들이 관찰된 경우 실제 줄기세포가 융합에 관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교차분화 : 조혈줄기세포가 손상된 장기에서 나오는 적절한 신호를 받아 발생기원이 다른 세포로 직접 분화할 것이라는 가설. 조혈줄기세포 자체가 원래 모든 장기로 분화하는 능력이 있다면 만능분화 가설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역사

100여년 전 몇몇 의사들은 빈혈이나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먹였다. 당시에도 골수안에 적혈구와 백혈구를 만들어낼 조혈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측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1900년대 초반 유럽의 과학자들은 모든 혈액세포가 하나의 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사람에게 직접 골수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세포 수준에서 성체줄기세포의 존재를 증명한 것은 1961년. 캐나다의 제임스틸과 어니스트 맥쿨록 박사 연구팀은 방사선을 쪼여 골수세포를 파괴한 생쥐에 정상골수를 주사했다. 연구팀은 골수가 비장에서 다양한 혈액세포가 들어있는 세포군(콜로니)을 만드는데, 이 세포군이 하나의 조혈줄기세포에서 유래한 것임을 증명해냈다. 이후부터 한동안 비장에 생기는 세포군의 수를 측정해 조혈줄기세포의 수를 알아내기도 했다.

또한 1960년대에는 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쥐의 뇌 두 곳에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신경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성체의 뇌에서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1984년 영국의 모린 오웬 박사는 골수에서 뼈, 연골, 지방과 섬유조직을 구성하는 간엽줄기세포의 개념을 제시했다. 1995년 미국의 프레드 게이지 박사는 뇌의 해마에서 신경줄기세포를 분리할 수 있으며, 이를 다시 뇌에 이식하면 성숙한 신경세포로 분화될 수 있음을 밝혔다. 그 후 과학자들은 뇌에 있는 주요 세포인 신경원세포(neuron), 성상세포, 희돌기아교세포로 분화되는 신경줄기세포가 뇌에 존재한다는데 동의하기 시작했다.

2000년 전후 과학자들은 성체 생쥐 조직에서 기대치 않았던 세포를 얻기 시작했다. 예를들면 몇몇 골수세포가 신경이나 간세포로 바뀌고, 뇌에서 발견된 줄기세포가 다른 종류의 세포를 형성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성체줄기세포의 존재가 뇌와 골수뿐만 아니라 피부, 위, 장, 혈관, 근육, 간, 췌장, 신장, 폐 등 거의 모든 장기에서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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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장윤영 전임교수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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