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과학자들이 물리적으로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나노 장치를 잇따라 개발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주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과 같이 생화학적인 방법으로 존재 유무를 판단해왔다. 이에 비해 새로 개발된 검출 장치는 바이러스 개체 하나의 무게를 감지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해 검사가 훨씬 간편하고 시간도 단축될 전망이다.
영국의 BBC방송이 지난 4월 7일 소개한 미국 코넬대의 나노 검출 장치는 바이러스의 몸무게를 직접 측정하는 방식(그림 1)으로, 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단위의 다이빙대 모양이다. 다이빙대에 사람이 올라가면 몸무게에 따라 다이빙대가 흔들리는 정도가 달라진다. 무거워질수록 다이빙대의 진동 주파수가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나노 다이빙대에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얹혀졌을 때 달라지는 진동 주파수를 측정함으로써 존재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레이저 광선을 나노 다이빙대에 쏘면 진동 주파수 변화에 따라 반사되는 레이저의 형태가 달라지게 된다. 이를 측정해 다이빙대 위에 어떤 물체가 얹혀졌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코넬대 연구팀은 이 장치로 박테리아인 대장균의 무게가 6백65펨토그램(fg)임을 밝혀냈다고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저널 오브 어플라이드 피직스’ 4월 1일자에 발표했다. 1fg은 1천조분의 1g(${10}^{15}$분의 1g).
바이러스를 검출할 때는 이보다 더 정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개체 하나의 무게는 약 10아토그램(ag)이다. 아토그램은 fg의 1천분의 1(${10}^{18}$분의 1g)이다. 연구 책임자인 해럴드 크레이그헤드 교수는 나노 다이빙대에 얹혀진 6ag의 금 입자를 측정하는데 성공, 바이러스 검출까지 가능함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형식의 바이러스 검출 장치는 미국 퍼듀대에서도 개발됐다. 라시드 바시르 교수 연구팀은 폭 30nm, 길이 4μm(1μm=1백만분의 1m) 크기의 다이빙대에 특정한 바이러스가 얹혀졌을 때의 진동수를 이론적으로 계산해냈다. 실험 결과 다이빙대에 같은 진동수가 나타날 때 그 위에 바로 그 바이러스가 얹혀져 있음을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했다.
바시르 교수는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 3월 8일자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하기 위해 이전처럼 DNA를 추출할 필요가 없어 인체에 해로운 바이러스를 개체 하나까지 신속하게 검출해낼 수 있다” 고 밝혔다.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나노 다이빙대 위에 특정 바이러스에만 결합하는 항체를 부착시켜 원하는 바이러스만 검출해낼 계획이다.
또다른 새로운 바이러스 검출 장치로는 나노 칩이 있다.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오포스사와 아이오와 주립대, 디모인대 공동연구팀은 가로세로 6mm인 실리콘 칩 표면에 수백종류의 바이러스 특이 항체들을 심은 ‘비리칩’(ViriChip)을 개발했다. 비리칩에 혈액 한방울만 떨어뜨리면 그 안에 든 바이러스들이 자신과 꼭 들어맞는 항체에 달라붙게 된다.
영국 물리연구소가 발행하는 ‘나노테크놀러지’ 1월 20일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나노칩에 달라붙은 바이러스는 원자력현미경으로 탐색해낼 수 있다. 원자력현미경에는 탐침이 붙어있는 나노미터 단위의 다이빙대가 있다. 탐침이 칩에서 바이러스가 붙은 부분을 지나가면 움직임이 달라지게 되고, 이를 레이저 광선으로 분석해 그 모양을 관찰할 수 있다. 바이오포스사의 에릭 헨더슨 박사는 “기존의 바이러스 검출법은 많은 양의 혈액 샘플과 DNA를 추출,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한 반면 비리칩은 단 한방울의 혈액으로 즉석에서 바이러스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고 밝혔다.
특히 연구팀은 심장 이식 수술 과정에서 감염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6종류를 비리칩으로 정확하게 찾아내는데 성공, 수술 부작용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비리칩은 앞으로 2년 이내에 병원에서 실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