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2월 17일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미국 키티호크 해변에서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명의 구경꾼들이 모여든 가운데 자신들이 만든 플라이어(Flyer)호를 떨리는 손길로 점검하는 이들 형제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잠시 뒤 라이트 형제는 플라이어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나는데 성공한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아주 오래된 꿈을 실현시켜준 역사적 순간이었다.
올해 12월은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이 성공한지 정확히 1백년이 된다.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해 지난 1백년 간 숨가쁘게 진행된 인류 비행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세계대전 거치면서 스타로 부상
1백년 전 라이트 형제의 비행은 비행기라는 존재를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비행기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가 없었더라도 인류는 수년 내에 화려한 모습으로 비행에 성공했을 게 분명하다. 20세기를 전후한 당시 기술 수준이 이미 하늘을 넘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돼 있었고,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는 첫 비행 성공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행기 개발을 추진했다. 첫 비행에 성공한지 5년 후에는 2명이 탑승해 비교적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비행기를 개발해 유럽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유럽의 많은 연구자들은 유럽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비행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1909년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는 처음으로 날개가 하나인 단엽기를 제작했다. 그는 자신의 비행기를 타고 영불해협을 횡단비행함으로써 비행기는 바다를 건너는데 성공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다양한 비행 기록대회가 개최되면서 경쟁적으로 속도, 고도, 비행시간에 대한 최고 기록이 작성됐다. 이런 노력은 비행기를 실용화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비행기의 역사는 20세기 이후에 벌어졌던 전쟁의 역사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비행기의 출현은 육지와 바다에서 수행돼온 과거의 전쟁에 하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추가했다. 하늘을 누가 장악하는가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무려 18만대나 되는 비행기가 소모됐다. 불과 10여년 동안 진행된 비행기의 놀라운 성장은 성능이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자 하는 당시의 개발 경쟁과 치열했을 공중전의 양상을 보여준다.
비행기 개발 경쟁은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비행기에 관심이 있었던 연구자들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서 국가간의 경쟁으로 바뀌게 된다. 각 나라들은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에게 많은 재원을 투자하며 성능이 우수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1915년 국립항공자문위원회(NACA, 현재 NASA의 전신)를 설립해 비행기 설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비행기는 주로 목재로 만든 골조에 천을 붙여 만들었다. 1917년에는 알루미늄 합금의 일종인 두랄루민이 비행기에 사용되기 시작해 가볍고 강한 비행기가 등장하게 됐다. 이런 개발경쟁을 거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비행기를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등으로 분류해 임무에 적절한 형상으로 설계하기 시작하는 등 항공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장거리 폭격기를 개조한 대형 여객기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에는 전쟁중 축적된 항공기술과 이를 통해 개발된 비행기가 우편물이나 사람, 화물을 나르는 민간항공 운송시대의 막을 올리는데 기여했다. 1918년 미국에서 시작된 항공우편 서비스는 1920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연결하는 대륙횡단 우편서비스로 발전했다.
1923년에는 뉴욕과 샌디에고 사이를 26시간 50분만에 쉬지 않고 비행하는 기록이 세워졌다. 1927년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에서 파리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에 성공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성공한 이런 기록은 비행기를 장거리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1935년 첫 비행에 성공한 DC-3 여객기는 이후 여객 운송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1939년에 이르러 팬아메리칸 항공사는 여객을 싣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민간항공 운행을 시작했다.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비행기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여러나라에서 개발한 우수한 전투기와 폭격기가 선보였다. 전투기로는 영국의 스핏파이어(Spitfire), 일본의 제로전투기, 그리고 미국의 F-51 무스탕(Mustang)이 등장했다. 전략 폭격기로는 일본에 원폭 투하를 수행했던 미국의 B-29가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사용됐던 전투기나 폭격기는 그 이전에 운항하던 비행기에 비해 비행거리나 속도, 고도 등 성능면에서 훨씬 우수했다. 특히 B-29에 탑재돼 운용됐던 레이더는 이후 비행기의 기본 운항장비로 자리잡게 됐다. 물체를 식별하는 전파 레이더를 통해 캄캄한 밤중이나 눈·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비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좀더 성능이 우수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서 독일과 영국은 제트 엔진을 이용해 소리의 전달속도(음속)를 돌파한 초음속 비행기 개발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전쟁이 종료된 후에 독일의 항공기술자들과 장비를 넘겨받은 미국과 옛소련은 초음속 비행기 개발 경쟁을 위한 바통까지 넘겨받았다.
한편 B-29와 같은 대형 폭격기와 수송기를 개발·사용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을 개조해 대형 프로펠러 여객기를 생산했다. 이를 이용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횡단하는 전세계 대형 여객기 시장을 주도했다.
음속 돌파한 전투기와 여객기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중 영국과 독일에서 연구됐던 제트기는 결국 미국과 옛소련에 의해서 실용화됐다. 미국에서는 초음속 영역에서 비행기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서 로켓엔진을 장착한 실험용 비행기 X-1을 제작했다. 1947년 10월 14일 미 공군 시험비행사인 척 예거는 B-29에서 분리된 X-1을 이용해서 마하 1.06(음속의 1.06배)으로 비행함으로 음속을 돌파한 비행에 성공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초음속 제트기는 순조롭게 개발됐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중에는 F-86 세이버(Sabre), 미그(MiG)-15, 미그-17과 같은 초음속 제트전투기가 실전에 배치돼 본격적인 제트기의 시대를 열었다.
제트엔진을 이용한 여객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됐다. 제트여객기는 높은 고도에서도 비행할 수 있어 연료소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높은 고도에서 운항하는 여객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승객들이 산소마스크 없이 호흡하기 위해 객실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여압장치를 개발해야 했다.
영국에서는 1949년 제트엔진을 탑재한 여객기 코밋(Comet)을 개발했으며, 여압장치 문제를 해결해 마침내 1952년 영국항공사(British Airways)에 의해 첫 제트여객기가 취항됐다. 그러나 동체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연이은 추락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펠러 여객기로 세계 여객기 시장을 독점했던 미국은 영국의 주도적인 제트여객기 도입에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다시 보잉사와 더글러스사를 중심으로 제트여객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보잉사는 여객기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많은 승객을 쾌적하게 운송하기 위한 보잉 707 제트여객기를 개발해 1958년 취항했다. 이듬해 더글러스사는 장거리 여객기 DC-8을 취항시켰다.
1960년대 들어 더 많은 승객을 태우려는 방향으로 여객기의 개발이 진행됐다. 1970년 보잉사는 5백50명의 승객을 운송할 수 있는 점보 여객기 보잉 747을 취항시켰다. 뒤이어서 록히드사의 L-1011,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DC-10, 유럽 에어버스사의 A300이 개발돼 취항했다. 가장 최근에 객실 통로가 두개로 돼 있는 형상인 와이드 바디 시장에 동참한 여객기가 보잉 777이다.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여객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다. 1968년 러시아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TU-144를 선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공동 개발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는 1976년 취항해 여객운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콩코드는 음속의 2.2배로 유럽과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로의 위치를 유지했다. 그러나 소음과 관련된 환경문제와 연료소비량이 많다는 경제적인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최근 퇴역했다.
컴퓨터로 날개를 단 비행제어기술
1970년 이후에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전자, 컴퓨터, 통신 기술은 항공전자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79년 F-16 전투기는 최초로 전기신호제어(FBW, Fly-By-Wire)를 채택한 비행기였다. FBW는 종래의 기계식 조종장치를 대체한 전기신호를 이용하는 전기식 조종장치다.
이후 개발된 고성능 전투기, 중대형 여객기,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와 같은 비행기에는 대부분 디지털 전기신호제어 또는 광신호제어(FBL, Fly-By-Light)를 사용해 비행조종 컴퓨터가 직접 정밀한 자동조종을 할 수 있게 됐다. 조종사의 수동조작에 의해서는 불가능한 복잡한 조종문제는 디지털 컴퓨터를 통해서 해결됐으며, 비행기의 이착륙 성능뿐만 아니라 안전성과 탑승감도 개선됐다.
이런 시스템은 더욱 발전돼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비행기는 대부분 비행조종 컴퓨터를 탑재한 전자식 비행관리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비행관리시스템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시험비행기 X-29, X-31, 기존의 비행기를 개조한 YF-16 등을 이용한 시험비행을 통해 실제 활용할 수 있음이 증명됐다. F-22 랩터(Raptor), 유로파이터(Eurofighter) 2000, 러시아의 수호이(Su)-37과 같은 첨단 전투기와 에어버스 340, 보잉 777과 같은 최신 여객기에 실용화되고 있다.
1988년 이후 F-117, B-2 전폭기와 같이 전파의 특성을 고려해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형상으로 설계된 스텔스(stealthy) 기능을 갖는 비행기들이 차례로 공개됐다. 1997년에는 엔진 추진력의 방향을 바꾸는 기술을 이용해 수직꼬리날개가 없는 시험비행기인 X-36의 비행시험에 성공했다.
정찰과 공격 가능한 무인기 등장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비행기는 주로 탐사나 정찰을 위한 임무에 활용됐다. 최근에는 C3I, 즉 명령(command), 제어(control), 통신(communication), 정보(information) 기술을 통합해 획기적으로 기능이 향상되고 있다.
무인비행기는 단순한 정찰임무뿐만 아니라 공격 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등에 투입돼 정찰과 공격에 대한 임무를 수행했던 프리데터(Predator)와 글로벌호크(Global Hawk)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무인전투기 X-45가 제작돼 2002년부터 시험비행중이다. 계속된 연구를 통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성능을 개선해 십여년 이내에 여러대의 무인기가 자율적으로 협동하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능적이며 자율비행능력을 갖춘 무인기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헬리콥터는 날개가 고정된 비행기 개발과는 역사가 다르다. 수직비행에 대한 개념은 기원전 400년 중국의 장난감이나 1500년대 중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개념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18-19세기에 이르러서 연구자들이 모여 모형 헬리콥터를 만들어 날리며 헬리콥터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러나 가벼우면서도 충분한 출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이 없어 실패를 거듭했다.
마침내 헬리콥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러시아 출신 이고르 시코르스키가 미국으로 망명해 1939년에 VS-300 헬리콥터의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시코르스키는 회사를 설립해 VS-300을 실용화한 XR-4라는 헬리콥터를 개발해,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 월남전 등에 납품하면서 사업에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시코르스키사와 벨사는 군용과 민간용의 다양한 헬리콥터를 개발했다. 최근에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헬리콥터의 기능과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고정익 비행기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비행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헬리콥터처럼 이륙해서 프로펠러를 앞으로 기울여서 비행하도록 하는 V-22 오스프리 틸트로터(Osprey tiltrotor)의 시험비행이 1991년에 성공했다. 좀더 운용하기 쉽고, 소음도 적으며, 효율성도 높은 틸트로터 비행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현재 계속되고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미래 항공기
라이트 형제가 첫 동력 비행에 성공한 이래 지난 1백년 동안 비행기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특성에 대한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 효율적이고 성능이 우수한 비행기를 설계하고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가까운 미래에는 자율비행능력을 갖는 지능형 무인비행기나 틸트로터 비행기들이 활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좀더 먼 미래에는 현재 개념적으로만 연구되고 있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행속도와 환경변화에 따라 날개의 형상을 최적으로 바꾸도록 설계된 형상변화 비행기, 효율은 물론 탑승감과 안정성이 뛰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박스날개 형상의 복엽기, 우수한 양력 특성을 위해 동체가 날개가 혼합된 비행기 등이다.
지금까지 비행기 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적으로 우수한 비행기가 다른 형상의 비행기와의 경쟁에서 밀려남으로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경우도 있었다. 콩코드처럼 항공공학적인 요인이 아닌 환경적인 또는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서 퇴역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기술과 같이 비행기에 응용할 수 있는 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우수한 성능을 가진 새로운 비행기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즈음 우리는 다양한 과학분야가 매우 빠른 속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비행기가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다가올 새로운 1백년 동안 써나갈 비행기의 역사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