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0년 6월 29일 늦은 오후, 화성 상공에 자그만 우주착륙선이 커다란 에어백에 매달린 채 화성 적도 부근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인간을 태운 이 착륙선은 모선인 우주선에 실린 채 지구를 출발, 6개월의 항해 끝에 화성에 도착했고 마침내 모선으로부터 분리돼 화성 착륙을 시도중인 것이다.
이 얘기는 물론 실제상황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 사람을 직접 보낸 적은 달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화성에 로봇이 아닌 인간이 직접 찾아가 생명체의 가능성을 조사할 날이 올 것이다.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암벽타기 챔피언인 까뜨린느 데스티벨르는 미래의 꿈같은 얘기를 현실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수단은 다큐멘터리. 데스티벨르는 화성전문가와 과학자로 구성된 팀을 꾸려 화성탐사 다큐멘터리를 지구에서 찍기로 했다.
올림푸스 등정의 베이스캠프 ‘부메랑’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화성에 있는 태양계 최대 높이 올림푸스 산의 등정 과정을 담는 것. 이를 위해 촬영팀은 과학자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꾸려 철저한 사전조사를 마쳤다. 최대한 화성에서의 실제 탐사와 비슷하도록 꾸미기 위해서다. 그 중 하나가 화성에서 탐사팀의 베이스캠프가 될 ‘부메랑’이다. 중앙을 기점으로 양쪽으로 실린더 모양의 기다란 튜브 공간이 뻗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부메랑은 미항공우주국(NASA)의 길버트 에버솔트의 자문을 얻어, 실제 화성에서도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부메랑은 탐사팀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압력 조절 공간과 작업, 취침 공간으로 이뤄져있다. 탐사팀은 화성의 압력과 대기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부메랑 내부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화성 암석 샘플을 연구할 수 있다.
당장 입어도 무리 없는 우주복
화성의 올림푸스 산은 지름이 5백km 이상이고 높이가 25km를 넘는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는 크기가 65km인 칼데라(화산 폭발로 생긴 산 정상의 움푹 패인 공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탐사팀은 이같은 조건에 맞는 촬영장소를 지구에서 찾았다. 찾은 장소는 아프리카 남동쪽 마다가스카르섬에서 동쪽으로 약 8백km 떨어진 프랑스령의 레위니옹섬.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이 섬 중앙에는 해발고도 2천5백m가 넘는 산지가 솟아 있다. 이 중 섬 남쪽에 있는 3개의 봉우리는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특히 푸르네스봉(2천6백13m)은 1640년을 시작으로 수십회에 이르는 분화기록이 있다. 섬의 황량한 기후와 높은 분화구, 적갈색의 화산암으로 이뤄진 삭막한 풍경은 화성탐사선이 보내온 사진 속의 화성과 매우 흡사하다.
다큐멘터리의 첫 부분은 탐사팀이 올림푸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과정이다. 탐사팀은 실제감을 더하기 위해 우주복을 입고 푸르네스 정상을 오른다. 이들이 입은 오렌지색의 우주복은 인기 TV시리즈 ‘스타 트렉’의 의상디자이너인 크리스 길먼에 의해 제작됐다. 또한 NASA 우주복 제작팀의 자문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 허술한 구석이 없다. 헬멧부터 공기순화 장치, 무선통신 장비 등 우주복의 모든 구성 요소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장 화성에서 착용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등정의 최대 고비는 분화구 탐사
탐사팀은 올림푸스 산 정상에 오른 뒤 분화구로 내려간다. 산의 표고가 매우 높고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탐사팀은 숙련된 산악가로 구성됐다. 매우 가파른 암벽과 뾰족한 암석, 부서지기 쉬운 표면을 가진 분화구 안쪽은 내려가는 과정이 더 까다롭다. 특히 이들은 화성대기에서 견딜 수 있는 우주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했다. 헬멧은 시야를 가리며 우주복의 무게는 움직임을 둔화시킨다.
총 5명으로 구성된 등반팀은 2명이 한조를 이뤄 로프를 이용해 분화구로 내려간다. 이 과정에서 분화구 안쪽의 암석을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은 가중된다. ‘부메랑’으로 가져갈 수 없는 큰 암석이나 화성지층의 특징은 탐사팀의 지질학자인 찰스 프랭켈이 현장에서 직접 조사·기록한다.
생명체 흔적 찾아 터널 속으로
칼데라로 무사히 내려온 탐사팀은 분화구 안쪽에 자리잡은 터널을 조사한다. 올림푸스 산의 형성과정에서 생겨난 이 터널은 화성 탐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형 중 하나다. 화성 대기를 통해 내리 쬐는 강력한 자외선과 우주선 등이 미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화성에는 지구와 달리 오존층이 없기 때문에 태양의 강력한 자외선과 우주공간의 우주선이 화성 표면으로 직접 떨어진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더라도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터널 내부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곳에서는 자외선과 우주선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운 탄소의 흔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터널 내부에 생명체의 초기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탐사팀에는 이 임무를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우주미생물학자인 데어린 림이 참가하고 있다. 현장에서 분석하기 힘든 광물은 림이 일차 조사를 마친 뒤, 좀더 심층적 분석을 위해 ‘부메랑’으로 옮겨진다.
화성에서의 걸음걸이 연마
다큐멘터리 출연진은 화성에서의 탐사 과정에 실제감을 더하기 위해 특별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 우주인을 체계적으로 훈련·육성하는 최고의 기관인 모스크바 스타 시티의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단기간의 특별 훈련을 받은 것이다. 탐사팀은 이곳에서 우주선 내부의 높은 압력을 견디는 훈련과 우주 유영 방법을 배웠다. 또한 우주인으로서 적합한지 의학 테스트를 받았으며, 특수 장치를 통해 중력 제로에서 나타나는 육체의 변화와 신체의 균형 감각 등을 익혔다.
탐사팀이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훈련받은 과정은 화성 표면에서의 걸음걸이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 중력의 0.38배에 불과하므로 화성 표면에서걸을 때 절반 정도의 힘이면 충분하다. 탐사팀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양 어깨에 풍선을 매달아 둥둥 떠다니는 듯한 걸음걸이를 훈련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