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와 맛을 감지하는 행동은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외부세계의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가운데 맛은 입안에 들어 있는 음식이나 물질에 대해 구강내의 모든 신경을 동원해 감지해서 느껴진다.
맛을 느끼는 행동은 기본적으로 생명체가 먹는 식품의 가치를 매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생명체에게 매우 중요한 식별 능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단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혀에 닿는 물질의 당도를 통해 높은 칼로리의 식품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한다. 쓴맛의 수용체를 통한 신호는 그 물질이 위험한지를 결정짓는 신호를 우리의 뇌로 보내준다. 즉 맛의 수용체는 혀에 닿는 물질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를 분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최근 생명공학계에서 인간이 느끼는 맛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인간은 맛을 어떻게 느끼는지, 생명공학에서는 어떤 맛을 주무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자.
설탕보다 단맛을 찾아라
흔히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이 느낄 수 있는 맛은 5가지라고 알려져 있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여기서 생소하게 들리는 감칠맛(deliciousness)은 조미료에서 느껴지는 맛이다. 조미료로 많이 쓰이는 글루탐산 모노나트륨(MSG, MonoSodium Glutamate)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발견되면서 제5의 맛으로 등장한 것이다.
최근 미국 퍼듀대의 리차드 마테스 교수는 인간이 지방(triglyceride)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고(高)지방식품이 무(無)지방식품 보다 인기가 많은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또한 제6의 맛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고로 우리의 음식에 흔한 매운맛은 맛의 수용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감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까지 과학자들 사이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맛은 5가지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욕구는 대다수의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화된 본능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인간의 이런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는 오래 전부터 이뤄져 왔다. 가장 먼저 여러가지 맛 중에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단맛’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는 인공감미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879년 미국의 아이라 렘슨과 독일의 콘스탄틴 팔베르크는 설탕보다 5백배 정도의 단맛을 내는 사카린(saccharin)을 발견했다. 사카린은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배설되는 장점을 갖지만 발암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인체에 무해하다고 결론이 났지만, 뒷맛이 쓰다는 단점 때문에 최근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1937년 미국 일리노이대의 대학원생 마이클 스베더는 사이클로헥실설파민산 나트륨이 단맛을 내는 것을 발견했다. 상품명으로 사이클라메이트(cyclamate)로 불리면서 1950년대 초부터 사용이 시작돼, 1960년대 세계 감미료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발암성 물질로 판명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최근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인공감미료는 1965년 제임스 쉬레터에 의해 발견된 아스파탐(aspartame)이다.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1백80-2백배 정도 높은 당도를 갖고 있다.
현재 시판되는 대다수의 다이어트 음료에는 아스파탐이 포함돼 있는데, 체내에 들어가면 대사과정 중 페닐알라닌을 생성한다. 따라서 페닐알라닌을 분해하는 특정 효소(phenylalanine hydroxylase)가 선천적으로 결핍된 페닐케톤뇨증 환자들은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닌다.
물질은 달라도 단맛은 하나
인공적으로 합성된 물질뿐 아니라 천연감미료도 여럿 개발되고 있다. 허브(herb)로 분류되고 있는 국화과의 다년생 식물(Stevia rebaudiana)의 잎에는 스테비오사이드(stevioside)라는 물질이 존재한다.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지대 원주민들은 이 물질을 4백년 이상 감미료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소주에 첨가되기도 하는데, 설탕의 2백배 정도의 단맛을 갖고 있다.
저분자 화학물질 이외에 고분자인 단백질도 단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우마틴(Thaumatin)은 서아프리카에서 기적의 과일이라고 불리는 다년생 식물(Thaumatococcus daniellii)의 과실 중에 포함돼 있다. 이 물질은 2백7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로 설탕보다 2천-3천배나 단맛을 나타낸다.
모넬린(Monellin)은 아프리카의 다우림 지대에 생육하는 세렌디퍼티 베리(Serendipity berry)라고 하는 넝쿨상 식물의 열매로부터 얻어지는 단백질로 설탕보다 무려 3천배가 달다. 그러나 재배가 쉽지 않으며 열매로부터의 추출도 어렵다. 더욱이 열안정성이 낮아서 식품가공과정에서 열처리를 하면 삼차원적인 단백질 구조를 잃어버려 단맛을 내지 못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현재에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단백질공학기술을 이용해 열안정성을 증진시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미라큐린(miraculin), 커큐린(curculin), 마빈린(mabinlin), 브라제인(brazzein) 등의 여러 감미단백질들이 알려져 있다. 2002년 생화학전문지 ‘FEBS 레터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제각기 다른 아미노산 서열을 갖지만 동일한 단맛수용체와 상호작용을 한다. 이를 통해 단맛수용체의 활성화 상태를 안정화시켜줌으로서 단맛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맛을 느끼는 세포막속 단백질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각자 느끼는 맛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맛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무엇인가에 의해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맛있는 음식에 대해 동의하고, 그것을 선호한다. 과학적으로 어떤 물질이 갖는 고유한 맛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리고 맛을 어떠한 경로로 느끼는지에 대해서 최근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맛을 느끼는 과정은 맛을 가진 분자가 혀에 존재하는 맛 수용체에 결합하면서 시작된다. 혀에는 4가지 종류의 유두가 있다. 이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고 많이 존재하는 사상유두는 맛과 상관없다. 나머지 3개, 즉 성곽유두, 엽상유두, 버섯유두에 맛의 수용체가 존재한다.
맛의 수용체는 미각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막단백질로서 G-단백질연관수용체(GPCRs, G-Protein Coupled Receptors)라는 단백질군에 속한다. 사람의 게놈에는 3백50개 이상의 G-단백질연관수용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1백50개 정도는 아직 기능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단맛과 감칠맛은 T1R1, T1R2, T1R3라는 3가지의 G-단백질연관수용체에 의해 인식된다. 단맛은 T1R2와 T1R3 수용체가 같이 작용해 인식하고, 감칠맛은 T1R1과 T1R3 수용체가 같이 작용해 인식한다. T1R3의 경우 단맛과 감칠맛 모두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수용체인 것이다.
쓴맛의 경우는 약 30개의 서로 다른 T2R 수용체에 의해서 감지된다. 이처럼 많은 숫자의 T2R 수용체는 홀로 작용하기도 하고, 다른 T2R 수용체와 함께 작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쓴맛을 갖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짠맛과 신맛은 이런 G-단백질연관수용체와 같은 막수용체를 거치지 않고, 이온채널에 의해 맛이 감지된다.
삶의 질 향상시키는 맛의 연금술
세포외부의 맛에 관한 신호를 미각세포내로 전달하는 과정은 맛 수용체인 G-단백질연관수용체가 G-단백질을 활성화시키면서 시작된다. 2003년 2월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의 찰스 주커 박사팀은 세계적인 세포생물학회지인 ‘셀’에 단맛, 쓴맛, 감칠맛은 각기 다른 맛 수용체를 갖지만, 거의 유사한 세포내의 신호전달 경로를 가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어떤 물질의 맛이 수용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과, 어떤 의미에서는 정반대의 맛인 단맛과 쓴맛의 경우 세포내의 신호전달 경로는 매우 유사하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분자수준에서 맛의 감지경로에 관한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동안, 한편에서는 현재까지 축적된 지식을 이용해 인공감미료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고전적인 인공감미료처럼 우연에 의한 발견이 아닌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다. 그 결과 쓴맛을 느끼는 경로를 인위적으로 차단해보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맛 수용체 연구의 대가인 미국 마운트시나이의대의 마골스키 박사가 공동 설립한 미국 뉴저지주의 링구아겐이라는 생명공학회사는 2002년 11월에 쓴맛을 신경세포로 전달해 뇌가 쓴맛을 느끼도록 만드는 채널단백질인 ‘Trpm5’를 발견했다고 과학전문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보고했다. 그리고 2003년 1월 23일에는 쥐를 이용해 쓴맛을 내는 물질의 작용 방식을 연구한 결과, ‘쓴맛차단제’의 기능을 가진 천연물질을 찾아내 특허를 취득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약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는 단맛이 나는 물질을 섞는다. 가공식품에서도 원료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 다량의 설탕과 소금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 결과 비만이나 고혈압을 유발할 위험이 문제가 되고 있다. 쓴맛차단제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쓰지 않고 달기만 한 약품이 개발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서, 인간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음식이다. 이 때문에 현대인은 무엇을 입고 어디에 사는지보다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이와 관련된 생명공학 연구는 삶의 질과 관련돼 굉장히 중요하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가 필요한 것만을 섭취하며 맛있는 것만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만간 달지만 칼로리가 거의 없는 다이어트용 아이스크림도 시판되지 않을까. 생명공학이 만드는 맛의 세계가 곧 우리들의 혀끝에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