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12일 옛소련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실을 발표했다.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사가 지구궤도를 한바퀴 돈 후 무사히 귀환했다는 것이다. 라이벌 국가인 미국은 약 10개월 후인 1962년 2월 20일에야 유인 우주비행을 할 수 있었다. 여러 단계로 준비한 미국과 달리 옛소련은 몇번의 예비시험 후 곧바로 유인 우주비행을 시도했다. 무모할 만큼 과감한 시도가 놀라운 성공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미국은 1959년 12월부터 4마리의 침팬지를 먼저 우주로 보냈다. 동물 우주비행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자 1961년에는 예비시험비행인 2번의 유인 준궤도비행을 시도했다. 이 비행에도 성공하자 마침내 지구를 완전히 일주하는 유인 지구궤도비행을 실시했다. 반면 옛소련은 동물을 이용한 몇번의 시험 후 곧바로 유인 지구궤도비행을 감행해 성공했다. 정말 옛소련은 발표한 것처럼 단 한번의 유인비행시도에서 성공한 것일까. 혹시 실패한 이전의 비행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은 우리를 모를 것이다”
우주개발 초기부터 수십년 동안 몇몇 언론과 연구가들은 옛소련이 공포하지 않은 가가린 이전의 ‘코스모나우츠’(러시아어로 우주비행사)를 추적해 왔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주개발 초기 한사람만이 우주에서 살아 돌아와 전세계에 알려졌고 나머지는 비밀에 붙여져 ‘유령 우주비행사’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옛소련은 이들의 공식기록을 폐기했고 다른 우주비행사와 함께 찍은 사진 속의 모습은 에어브러시로 정교하게 지워 없앴다는 얘기다.
사실 옛소련은 알리고 싶지 않은 많은 우주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가린의 지구착륙과정 또한 수년간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딱딱한 육지에 부드럽게 착륙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가가린은 7천m 상공에서 사출의자를 통해 우주선에서 분리된 후 낙하산을 이용해 하강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를 발표할 경우 비행체에 승무원이 탑승한 채 이륙하고 착륙해야 기록을 인정하는 국제항공연맹(FAI)의 규정을 위반한 일이 탄로 나는 것이었다. 때문에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미국과 벌였던 엄청난 달탐사 계획도 실패하는 바람에 옛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공개되지 못했다. 따라서 임무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우주비행사의 생존만으로 따져볼 때 실패로 끝난 우주비행은 계획 자체가 비밀에 붙여졌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공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소유즈1호와 소유즈11호의 경우 선전을 위해 임무가 끝나기도 전에 성급히 공식 발표된 후 귀환 도중 우주비행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별 수 없이 알려졌다.
가가린 이전에 존재했을지 모를 우주비행사에 대한 의혹은 1960년대 초 우주로부터 온 듯한 이상한 전파를 이탈리아의 젊은 아마추어 무선가 형제가 포착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의 안테나는 옛소련의 인공위성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비교적 쉽게 우주교신을 엿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1960년 11월 28일에 세번이나 러시아어와 영어 코드로 보내진 ‘전세계에 SOS’란 신호를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61년 2월에는 죽어가는 우주비행사의 것으로 보이는 고르지 못한 심장박동과 거친 호흡소리를, 1961년 5월 17일에는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왜 대답이 없지…세상은 우리를 모를 것이다”라고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는 내용도 수신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여러 언론기관과 개인이 1957년 11월부터 가가린 비행 이전까지의 유령 우주비행사라고 제기한 인원은 10여명 이상이나 된다. 유령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주장되고 있는데, 이 중 유일하게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우주비행사가 있다.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시도하기 불과 6일 전인 1961년 4월 7일에 우주로 향했다는 블라드미르 세르게예브비치 일루신이다. 이 주장이 맞고 우주비행에서 살아남았다면 일루신이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것이다. 그럼 왜 옛소련은 이 사실을 숨겼을까. 일루신은 발사된 후 우주에서 의식을 잃었는데, 지구를 3회전할 때쯤 겨우 의식을 되찾아 지구 진입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루신은 중국에 비상 착륙했고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중국당국에 의해 체포됐기 때문에 1962년에야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옛소련은 6일 후에 출발했지만 무사히 귀환한 가가린을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발표했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정말 사실일까. 이런 주장을 객관적으로 추적해온 사람이 있다. 러시아 우주전문가 제임스 오버그가 베일 속에 가려있던 옛소련 우주개발의 어두운 역사를 파헤쳐 왔다. 오버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유령 우주비행사들을 추적했는데, 그 결과 대부분이 단순한 루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일루신은 우주비행을 한 적도 없으며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사고로 부상을 입었던 일이 와전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옛소련의 몰락으로 우주개발과 관련된 당시의 장비나 서류, 일지까지 경매장에 나올 정도로 공개되면서 몇몇 우주비행사들의 훈련 중 사고는 밝혀졌다. 예를 들어 1961년 3월 23일 가가린이 비행하기 3주 전 지상의 우주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우주비행사 발렌틴 본도렌코가 사망한 사건은 1986년에야 비로소 밝혀졌다. 나머지 의혹의 경우 진실인지 아닌지는 더 파헤쳐 봐야 알 수 있겠다.
물론 과거 우주개발뿐 아니라 최근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사고에서 봤듯이 유인 우주개발은 우주비행사들의 희생 위에서 발전하고 있음이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