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놈은 길이가 2미터 남짓 된다. 허리통도 굵어서 몇 아름이나 된다. 음력 6-7월경 상어를 잡는 사람들이 낚시를 물 밑바닥까지 늘어뜨린다. 상어는 낚시에 걸리면 …… 거꾸로 매달린 자세가 된다. 이때 대면은 낚시에 걸린 상어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대면이 상어를 물면 오히려 상어의 등지느러미에 나 있는 송곳 같은 가시에 내장을 찔려 거꾸로 낚시에 걸린 꼴이 되고 만다. 낚시를 들어올리면 상어와 함께 올라오는데….
2백종이 넘는 해양생물 정리
몸길이가 2미터에 달하고 낚시에 걸린 상어를 한입에 삼키는 물고기 대면(大鮸). 우리나라에 과연 이런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답은‘그렇다’이다. 농어목 반딧불게르치과에 속하는 돗돔이 바로 대면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위에 인용한 글이 2백년 전 우리나라의 한 학자가 쓴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는 이밖에도 신기한 생물이 많이 등장한다. 어부에게 쫓긴 날치가 물가 들판으로 날아들고, 영화‘조스’의 주인공인 백상아리가 삼각형의 거대한 이빨을 드러낸다.‘ 노인과바다’에나오는새치가 뻘밭에서 몸을 뒤척이며,‘ 프리윌리’의 귀여운 범고래가 떼 지어 헤엄쳐 다닌다.
외국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생물이 우리나라에 서식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느껴지는데, 도대체 요즘 사람도 보기 힘든 물고기를 이토록 생생한 모습으로 기록해 놓은 이 책은 무엇이며 저자는 또 어떤 사람일까.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우리나라 최고(崔古)의 해양생물학서로 유명한‘현산어보’에서 발췌한 것이다.‘ 현산어보’는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지은 책이다. 정약전은 천주교에 관련됐다는 죄목으로 전남 신지도와 우이도를 거쳐 흑산도에서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이때 물고기, 게, 고둥, 조개, 해삼, 말미잘, 물개, 고래, 물새, 해조류 등 흑산도 근해에 서식하는 2백종이 넘는 해양생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현산어보’를 완성했다. 이 때문에 정약전을 기원 전 3백년 경에 서양 최초로 해양생물을 분류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물고기나 바다생물에 대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현산어보’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전의 책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상어의 배를 갈라보다

대체로 물고기는 난생이며 암수의 교배에 의해 새끼를 낳지 않는다. 수놈이 먼저 정액을 뿌리면 암컷은 여기에 알을 낳고, 이렇게 수정된 알이 부화하면 새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상어만은 태생이며, 특별히 새끼를 배는 시기가 없다는 것도 물 속에 사는 생물로서는 유별난 점이다. 상어의 수놈에게는 밖으로 드러난 두개의 생식기가 있고, 암놈의 뱃속에는 두개의 태보, 즉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이 있다. 각각의 태보 속에는 4-5개의 태가 들어있다. 이 태가 성숙하면 새끼가 태어난다. 태보 속의 새끼상어는 가슴 아래쪽에 하나의 알을 달고 있으며, 그 크기는 수세미 열매만하다. 알이 없어지면서 새끼가 태어난다.
이것은 요즘에 나온 동물발생학 서적의 한 부분이 아니다. 정약전이 상어 항목에서 기록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전까지 생물을 다룬 책들이 단순히 각 생물의 이름과 산지를 나열한 것에 그친데 반해 정약전의 접근방식은 현대 생물학자들의 방식과 훨씬 닮아있다. 이것이‘현산어보’를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생물학서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약전은 알을 낳는 보통 물고기와는 달리 일부 상어류가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구체적인 발생과정까지 면밀하게 관찰∙묘사하고 있다. 이 정도의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부를 실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2백년전 한 선비가 칼과 가위를 들고 상어의 몸 속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지않는가.‘ 현산어보’는 이렇게 이제까지전혀 모르고 있던 선조의 과학활동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청어의 뼈를 세다
물고기는 같은 종이라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질의 차이를 보이는데, 학자들은 종의 하위단계인 이런 개체군을‘계군’(stock)이라 부른다. 독일의 하인케는 물고기가 갖는 여러 형질 중에서 등뼈의 수로 계군을 나누는 방법을 처음 시도했다. 그는 1875년에서 1892년에 잡힌 청어 등뼈수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보이는 것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수산학계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레이셜 이론’(racial theory)을 만들었다.
그런데‘현산어보’에는 하인케보다 수십년이나 앞선 시기에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청어 항목에서‘영남산 청어는 척추골 수가 74마디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골 수가 53마디다’라고 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처음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서해바다의 외딴 섬에 살고 있던 장창대라는 무명인이었다는 점이다. 장창대는 흑산도 주민으로 정약전의 해양생물연구를 도와준 사람인데, 정약전은‘현산어보’의 서문에서 그를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과학적 사고력을 갖춘 인물로 소개하고 책 곳곳에서 그의 말을 직∙ 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장창대의 재능도 대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개 평민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자신의 저술에 인용까지 한 정약전의 자세도 당시의 학문풍토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이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전설상의 물고기‘비목’을 소재로 남녀간의 깊은 사랑을 노래한 류시화 시인의‘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다. 그런데 이 낭만적 시의 주인공이 실재하는 물고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놀랍게도 우리가 즐겨먹는 바다회의 대명사 넙치(광어)나 가자미 종류가 바로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의 정체다. 가자미류의 가장 큰 특징은 한쪽으로 쏠려버린 눈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눈을 흘겨보면 ‘가재미 눈깔 된다’라며 나무라곤 했다.
그런데 과거 중국인은 가자미류의 눈이 하나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자미를 언급한 중국의 고문헌에는 한결같이‘눈이 하나뿐이므로 두짝이 서로 합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한쌍이 아니면 나아가지 못한다’라는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가자미류의 중국식 이름인 비목어(比目魚)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비목어는 두짝이 붙어 ‘눈’(目)을‘나란히’(比)해야 제대로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왜 이런 생각이 성행하게 됐을까.
예로부터 중국문화의 중심은 내륙이었다. 내륙에 살고 있던 사람은 바다에서 나는 산물을 풍문으로만 전해듣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 바다를 찾는다 하더라도 바다 생물을 정확하게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가자미류를 처음 본 사람은 물고기의 눈이 몸의 한편에만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에 큰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소문이란 사람의 입을 거칠 때마다 왜곡되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말은 곧 눈이 한쪽에만 있다는 식으로 와전됐을 것이다. 눈이 있는 쪽의 색깔이 짙은 데 반해 반대쪽은 흰색을 띠고 있다는 점도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으리라. 흰 부분은 매끄러운데다 딱딱한 비늘이 없고 근육이 그대로 비쳐 보일 정도로 피부가 엷다. 이 물고기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나머지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 실제로 가자미 두마리를 놓고 봤을 때, 배를 마주해 겹쳐 놓는 편이 정상적인 물고기에 더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결국 가자미류의 특이한 생김새와 이를 관찰한 사람의 부 정확한 내용 전달이 비목어라는 전설상의 물고기를 탄생 시킨 것이다.

고루한 중국 학풍에 통쾌한 반박
하지만 정약전은‘현산어보’에서 비목어의 일종인 넙치의 눈이 두개임을 확실하게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 해부학적 구조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큰 놈은 길이가 4-5자, 넓이가 두자 정도다. 몸은 넓고 엷으며 두눈이 몸의 왼쪽에 치우쳐 있다. 입은 세로로 찢어졌으며 …… 장은 지갑과 같이 두개의 방으로 돼 있다. 알이 들어 있는 두개의 주머니는 가슴에서부터 등뼈사이를 따라 꼬리에까지 이어져 있다. 등은 검고 배는 희며 비늘은 매우 잘다.
‘현산어보’의 또다른 저자 이청 역시 중국 사람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통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대체로 중국문헌에는 넙치의 모양을 보지 못하고 상상만으로 풀이하고 있다. 가자미류는 분명히 한마리에 눈이 둘 있고 홀로 움직인다. 아래가 배이고 위는 등인데 한마리가 완전한 몸을 이루는 것이지 다른 쪽과 합쳐져서 나란히 가는것은 아니다.‘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은 남의 말을 듣고“합한 곳의 반쪽은 편편하고 비늘이 없다. 여기에서 눈과 같은 것을 본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보고 한 말은 아니다.
이청은 실제로 물고기를 관찰한 결과 가자미류도 다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눈이 2개이며, 한마리씩 독립해서 다닌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비목어에 대한 정약전과 이청 두 사람의 주장은 공리나 공론보다는 실제를 중요시하는 실사구시 정신의 진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을 무조건 믿고 숭상하던 고루한 기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의견을 당당하게 개진하고 있는 조선 실학자의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말미잘은 왜 말미잘인가
정약전이 기록해놓은 흑산도 해양생물의 방언은 2백년 전의 옛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생물 이름의 변화와 어원을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된다. 오래 전부터 국문학자들이 이 책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석항호 항목은‘현산어보’의 언어학적인 가치를 잘 보여준다.
석항호(石肛壕 ) 속명 홍미주알(紅未周軋) 모양은 오랫동안 이질을 앓은 사람이 탈항한 것 같고 빛깔은 검푸르다. 조수가 미치는 곳의 돌틈에서 산다. 둥글고 길쭉하게 생겼지만 붙어 있는 돌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진다. 다른 물체가 닿으면 조그맣게 오그라든다. 몸 안쪽은 호박 속처럼 생겼다. 육지 사람들은 이것으로 국을 끓인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본문의 내용이 말미잘을 설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돌틈에서 살아가며, 둥글고 길쭉한 몸통에 건드리면 조그맣게 오므라드는 생물이라면 말미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석항호라는 이름은 돌에 붙어 자라는 항문모양의 굴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이 돌에 붙어 자라는 생물을 대부분 굴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이름의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약전이 속명으로 밝혀 놓은 홍미주알은 또 무슨 뜻일까. 홍은 붉다는 뜻이고 미주알은 창자의 끝 즉 항문을 의미한다. 즉 홍미주알은‘붉은 색의 똥구멍’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제 미주알을 빨리 읽어보자. 미주알이 미좔, 미잘과 같이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똥구멍은 똥구멍인데 큼직한 똥구멍이니 말똥구멍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이 바로 말미잘이 아닐까. 우리 선조들은 말미잘을 보고 바다의 아네모네(sea anemone, 아네모네는 바람꽃의 일종)라는 고상한 표현 대신 말똥구멍이라는 토속적인 이름을 붙였다.‘ 현산어보’를 통해얻어낸 어원에대한지식은 앞으로 해변을 거닐다가 갖가지 생물들과 마주쳤을 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과 유쾌한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게 될 것이다.
까마귀가 오징어로 변한 까닭
말미잘이 말똥구멍이라면 오징어는 왜 오징어일까.‘ 현산어보’에는 오징어의 어원도 명쾌히 풀이돼 있다. 오징어의 원말은 오적어(烏賊魚)였다. 오적어는 까마귀의 적 이란 뜻이다. 오징어가 왜 까마귀의 적인가.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오징어가 바다에 죽은 척 하고 떠 있다가 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까마귀를 다리로 휘감아 물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우리 속담 중에도‘오징어 까마귀 잡아먹듯한다(꾀를 써서 힘을 들이지 않고 일하는 모양을 뜻함)’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은 동양문화권에서 꽤 보편적이었던 모양이다.
이보다 더욱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옛 문헌을 보면 까마귀가 변해서 오징어가 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렇게 한 생물이 다른 생물로 변하는 것을‘화생’(化生)이라 부른다.‘ 현산어보’에는 까마귀와 오징어 외에도 다양한 화생의 예가 등장하는데, 새조개 항목도 그 대표적인 것이다.
큰놈은 지름이 너댓치 정도다. 껍질은 두껍고 미끄러우며 색깔과 무늬가 참새깃털과 비슷하다. 아마도 참새(雀)가 변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합리적인 사고력을 갖춘 정약전조차 새가 변해서 조개가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선조들은 화생이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고, 실존하는 동물 사이에서 화생이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런 생각들이 나오게 된 것일까.
옛날에는 종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확립돼 있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생물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비늘이 있는 뱀이 용으로 변하고, 뱀과 닮은 가물치가 뱀으로 변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발생과정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생물의 생태도 화생 신화를 부추겼으리라 생각된다. 예로부터 뱀장어는 알을 낳지 않는 물고기로 알려져 있었다. 뱀장어는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으므로 정확한 산란생태는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신비에 싸여 있다. 뱀장어를 잡은 다음 배를 갈라봐도 그 속에 알이 없으니 어떻게 자손을 퍼뜨릴 수 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촉감마저 비슷한 새조개의 참새 깃털
화생하는 동물을 살펴보면 형태상으로 유사성이 갖는 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옛 사람은 대체 조개의 어떤 특징에서 새와 비슷한 점을 찾아냈던 것일까.
새조개의 껍질 표면에는 40-50개의 가늘고 얕은 골이 패어 있다. 정약전은 바로 여기에서 참새와의 유사성을 찾은 것 같다.
골무늬만으로 새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못마땅 하다면 새조개의 골무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길다란 홈을 따라 새의 깃털을 닮은 짧은 털이 빽빽하게 돋아 있는데, 이것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어보면 촉감마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새조개의 검고 길다란 발 부분은 ㄱ자 모양으로 휘어 있는 폼이 영락없는 새의 머리다. 흑산도 현지인은 조개의 엷은 아가미를 좌우로 펴가며 날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잘 발달된 근육질의‘발’로 새처럼 잘 뛰어오른다고 해서, 또는 다리가 닭고기 맛과 비슷하다고 해서 새조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주장한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던 조개와 새 사이에 이렇게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오징어는 까마귀와 어떤 점이 비슷할까. 오징어를 먹다보면 까만 각질의 물체가 씹힐 때가 있다. 근육조직으로 둘러싸인 이 부분을 흔히 오징어의 눈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눈이 아니라 이빨이다. 이 부분을 잘 살펴보면 꼭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 이것이 바로 오징어와 새를 연결짓는 고리다. 오징어를 잡아보니 몸 속에 새의 부리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오징어가 새를 잡아먹은 것이 틀림없다. 오징어는 먹물을 품고 있으니 필경 새 중에서도 까마귀를 먹은 것이리라.
예전에는 사물 간의 유사성을 찾아내고 상징을 부여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문학하는 사람들도 이런 작업에 익숙하다. 그러나 예전 사람은 스스로 부여한 상징에 실제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고 당시 널리 퍼져있던‘화생신화’와 더해진 결과 새가 변해 조개가 됐다는 생각을 낳게 된것이다.‘ 현산어보’는 이처럼 우리 선조의 생물관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
현산어보를 넘어서
정약전은 생물 외에도 천문, 역사, 지리, 기상, 물리, 수학, 철학,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지식과 식견을 가진 대학자였다. 실학의 집대성자로 불리는 정약용도 그에 대해 존경과 찬탄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의 저술을 일일이 감수받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였다.
정약전은 집에서 바늘구멍사진기의 원리를 실험하는가 하면, 지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흑산도의 밤하늘을 정밀히 관측해 그 당시 혜성의 궤적을 정확히 묘사하기도 했다.
2백년 전을 살다 간 정약전은 그 시대의 과학자였으며‘진정한’선비였다. 앞으로 정약전에 대한 연구가 좀 더 깊이 있게 진행돼 그의 참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길 기대한다.
| 현산어보 |
현산어보는 국사시간에‘자산어보’(慈山魚譜)라는 이름으로 배운 그 책이다. 하지만 慈자는‘자’보다는‘현’으로 발음하는게 좋을듯하다. 정약용과 교류가 있었던 유암은 흑산도를 검을 현(玄)자를써 현주(縣州)라 불렀고, 정약용∙정약전 형제도‘흑산’이라는 말이 어둡다고 여겨 검을 현(玄)자가 나란히 붙은‘慈’자를 사용했다. 慈자가 검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자’가 아니라‘현’으로 읽으므로 현산어보로 발음하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현산어보의 원문은 현재 남아있지 않고 필사본만 존재한다. 현산어보의 번역은 1977년 정문기가‘자산어보-흑산도의 물고기들’이라는 책을 내며 최초로 이뤄졌다. 4권의 필사본을 합쳐서 새로운 교감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말로 번역한 다음 간단한 주석을 붙였다. 이후 정석조는 1988년‘상해 자산어보’를 통해 정문기의 번역본에 없는 국명과 학명, 사진과 그림을 추가했다. 이 글에 나오는 현산어보 인용문은 필자가 현대의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것임을 밝힌다.
2백종이 넘는 해양생물 정리
몸길이가 2미터에 달하고 낚시에 걸린 상어를 한입에 삼키는 물고기 대면(大鮸). 우리나라에 과연 이런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답은‘그렇다’이다. 농어목 반딧불게르치과에 속하는 돗돔이 바로 대면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위에 인용한 글이 2백년 전 우리나라의 한 학자가 쓴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는 이밖에도 신기한 생물이 많이 등장한다. 어부에게 쫓긴 날치가 물가 들판으로 날아들고, 영화‘조스’의 주인공인 백상아리가 삼각형의 거대한 이빨을 드러낸다.‘ 노인과바다’에나오는새치가 뻘밭에서 몸을 뒤척이며,‘ 프리윌리’의 귀여운 범고래가 떼 지어 헤엄쳐 다닌다.
외국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생물이 우리나라에 서식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느껴지는데, 도대체 요즘 사람도 보기 힘든 물고기를 이토록 생생한 모습으로 기록해 놓은 이 책은 무엇이며 저자는 또 어떤 사람일까.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우리나라 최고(崔古)의 해양생물학서로 유명한‘현산어보’에서 발췌한 것이다.‘ 현산어보’는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지은 책이다. 정약전은 천주교에 관련됐다는 죄목으로 전남 신지도와 우이도를 거쳐 흑산도에서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이때 물고기, 게, 고둥, 조개, 해삼, 말미잘, 물개, 고래, 물새, 해조류 등 흑산도 근해에 서식하는 2백종이 넘는 해양생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현산어보’를 완성했다. 이 때문에 정약전을 기원 전 3백년 경에 서양 최초로 해양생물을 분류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물고기나 바다생물에 대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현산어보’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전의 책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상어의 배를 갈라보다

대체로 물고기는 난생이며 암수의 교배에 의해 새끼를 낳지 않는다. 수놈이 먼저 정액을 뿌리면 암컷은 여기에 알을 낳고, 이렇게 수정된 알이 부화하면 새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상어만은 태생이며, 특별히 새끼를 배는 시기가 없다는 것도 물 속에 사는 생물로서는 유별난 점이다. 상어의 수놈에게는 밖으로 드러난 두개의 생식기가 있고, 암놈의 뱃속에는 두개의 태보, 즉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이 있다. 각각의 태보 속에는 4-5개의 태가 들어있다. 이 태가 성숙하면 새끼가 태어난다. 태보 속의 새끼상어는 가슴 아래쪽에 하나의 알을 달고 있으며, 그 크기는 수세미 열매만하다. 알이 없어지면서 새끼가 태어난다.
이것은 요즘에 나온 동물발생학 서적의 한 부분이 아니다. 정약전이 상어 항목에서 기록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전까지 생물을 다룬 책들이 단순히 각 생물의 이름과 산지를 나열한 것에 그친데 반해 정약전의 접근방식은 현대 생물학자들의 방식과 훨씬 닮아있다. 이것이‘현산어보’를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생물학서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약전은 알을 낳는 보통 물고기와는 달리 일부 상어류가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구체적인 발생과정까지 면밀하게 관찰∙묘사하고 있다. 이 정도의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부를 실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2백년전 한 선비가 칼과 가위를 들고 상어의 몸 속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지않는가.‘ 현산어보’는 이렇게 이제까지전혀 모르고 있던 선조의 과학활동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청어의 뼈를 세다
물고기는 같은 종이라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질의 차이를 보이는데, 학자들은 종의 하위단계인 이런 개체군을‘계군’(stock)이라 부른다. 독일의 하인케는 물고기가 갖는 여러 형질 중에서 등뼈의 수로 계군을 나누는 방법을 처음 시도했다. 그는 1875년에서 1892년에 잡힌 청어 등뼈수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보이는 것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수산학계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레이셜 이론’(racial theory)을 만들었다.
그런데‘현산어보’에는 하인케보다 수십년이나 앞선 시기에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청어 항목에서‘영남산 청어는 척추골 수가 74마디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골 수가 53마디다’라고 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처음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서해바다의 외딴 섬에 살고 있던 장창대라는 무명인이었다는 점이다. 장창대는 흑산도 주민으로 정약전의 해양생물연구를 도와준 사람인데, 정약전은‘현산어보’의 서문에서 그를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과학적 사고력을 갖춘 인물로 소개하고 책 곳곳에서 그의 말을 직∙ 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장창대의 재능도 대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개 평민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자신의 저술에 인용까지 한 정약전의 자세도 당시의 학문풍토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이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전설상의 물고기‘비목’을 소재로 남녀간의 깊은 사랑을 노래한 류시화 시인의‘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다. 그런데 이 낭만적 시의 주인공이 실재하는 물고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놀랍게도 우리가 즐겨먹는 바다회의 대명사 넙치(광어)나 가자미 종류가 바로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의 정체다. 가자미류의 가장 큰 특징은 한쪽으로 쏠려버린 눈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눈을 흘겨보면 ‘가재미 눈깔 된다’라며 나무라곤 했다.
그런데 과거 중국인은 가자미류의 눈이 하나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자미를 언급한 중국의 고문헌에는 한결같이‘눈이 하나뿐이므로 두짝이 서로 합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한쌍이 아니면 나아가지 못한다’라는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가자미류의 중국식 이름인 비목어(比目魚)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비목어는 두짝이 붙어 ‘눈’(目)을‘나란히’(比)해야 제대로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왜 이런 생각이 성행하게 됐을까.
예로부터 중국문화의 중심은 내륙이었다. 내륙에 살고 있던 사람은 바다에서 나는 산물을 풍문으로만 전해듣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 바다를 찾는다 하더라도 바다 생물을 정확하게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가자미류를 처음 본 사람은 물고기의 눈이 몸의 한편에만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에 큰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소문이란 사람의 입을 거칠 때마다 왜곡되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말은 곧 눈이 한쪽에만 있다는 식으로 와전됐을 것이다. 눈이 있는 쪽의 색깔이 짙은 데 반해 반대쪽은 흰색을 띠고 있다는 점도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으리라. 흰 부분은 매끄러운데다 딱딱한 비늘이 없고 근육이 그대로 비쳐 보일 정도로 피부가 엷다. 이 물고기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나머지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 실제로 가자미 두마리를 놓고 봤을 때, 배를 마주해 겹쳐 놓는 편이 정상적인 물고기에 더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결국 가자미류의 특이한 생김새와 이를 관찰한 사람의 부 정확한 내용 전달이 비목어라는 전설상의 물고기를 탄생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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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중국 학풍에 통쾌한 반박
하지만 정약전은‘현산어보’에서 비목어의 일종인 넙치의 눈이 두개임을 확실하게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 해부학적 구조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큰 놈은 길이가 4-5자, 넓이가 두자 정도다. 몸은 넓고 엷으며 두눈이 몸의 왼쪽에 치우쳐 있다. 입은 세로로 찢어졌으며 …… 장은 지갑과 같이 두개의 방으로 돼 있다. 알이 들어 있는 두개의 주머니는 가슴에서부터 등뼈사이를 따라 꼬리에까지 이어져 있다. 등은 검고 배는 희며 비늘은 매우 잘다.
‘현산어보’의 또다른 저자 이청 역시 중국 사람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통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대체로 중국문헌에는 넙치의 모양을 보지 못하고 상상만으로 풀이하고 있다. 가자미류는 분명히 한마리에 눈이 둘 있고 홀로 움직인다. 아래가 배이고 위는 등인데 한마리가 완전한 몸을 이루는 것이지 다른 쪽과 합쳐져서 나란히 가는것은 아니다.‘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은 남의 말을 듣고“합한 곳의 반쪽은 편편하고 비늘이 없다. 여기에서 눈과 같은 것을 본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보고 한 말은 아니다.
이청은 실제로 물고기를 관찰한 결과 가자미류도 다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눈이 2개이며, 한마리씩 독립해서 다닌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비목어에 대한 정약전과 이청 두 사람의 주장은 공리나 공론보다는 실제를 중요시하는 실사구시 정신의 진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을 무조건 믿고 숭상하던 고루한 기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의견을 당당하게 개진하고 있는 조선 실학자의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말미잘은 왜 말미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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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호(石肛壕 ) 속명 홍미주알(紅未周軋) 모양은 오랫동안 이질을 앓은 사람이 탈항한 것 같고 빛깔은 검푸르다. 조수가 미치는 곳의 돌틈에서 산다. 둥글고 길쭉하게 생겼지만 붙어 있는 돌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진다. 다른 물체가 닿으면 조그맣게 오그라든다. 몸 안쪽은 호박 속처럼 생겼다. 육지 사람들은 이것으로 국을 끓인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본문의 내용이 말미잘을 설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돌틈에서 살아가며, 둥글고 길쭉한 몸통에 건드리면 조그맣게 오므라드는 생물이라면 말미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석항호라는 이름은 돌에 붙어 자라는 항문모양의 굴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이 돌에 붙어 자라는 생물을 대부분 굴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이름의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약전이 속명으로 밝혀 놓은 홍미주알은 또 무슨 뜻일까. 홍은 붉다는 뜻이고 미주알은 창자의 끝 즉 항문을 의미한다. 즉 홍미주알은‘붉은 색의 똥구멍’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제 미주알을 빨리 읽어보자. 미주알이 미좔, 미잘과 같이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똥구멍은 똥구멍인데 큼직한 똥구멍이니 말똥구멍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이 바로 말미잘이 아닐까. 우리 선조들은 말미잘을 보고 바다의 아네모네(sea anemone, 아네모네는 바람꽃의 일종)라는 고상한 표현 대신 말똥구멍이라는 토속적인 이름을 붙였다.‘ 현산어보’를 통해얻어낸 어원에대한지식은 앞으로 해변을 거닐다가 갖가지 생물들과 마주쳤을 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과 유쾌한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게 될 것이다.
까마귀가 오징어로 변한 까닭
말미잘이 말똥구멍이라면 오징어는 왜 오징어일까.‘ 현산어보’에는 오징어의 어원도 명쾌히 풀이돼 있다. 오징어의 원말은 오적어(烏賊魚)였다. 오적어는 까마귀의 적 이란 뜻이다. 오징어가 왜 까마귀의 적인가.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오징어가 바다에 죽은 척 하고 떠 있다가 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까마귀를 다리로 휘감아 물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우리 속담 중에도‘오징어 까마귀 잡아먹듯한다(꾀를 써서 힘을 들이지 않고 일하는 모양을 뜻함)’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은 동양문화권에서 꽤 보편적이었던 모양이다.
이보다 더욱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옛 문헌을 보면 까마귀가 변해서 오징어가 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렇게 한 생물이 다른 생물로 변하는 것을‘화생’(化生)이라 부른다.‘ 현산어보’에는 까마귀와 오징어 외에도 다양한 화생의 예가 등장하는데, 새조개 항목도 그 대표적인 것이다.
큰놈은 지름이 너댓치 정도다. 껍질은 두껍고 미끄러우며 색깔과 무늬가 참새깃털과 비슷하다. 아마도 참새(雀)가 변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합리적인 사고력을 갖춘 정약전조차 새가 변해서 조개가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선조들은 화생이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고, 실존하는 동물 사이에서 화생이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런 생각들이 나오게 된 것일까.
옛날에는 종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확립돼 있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생물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비늘이 있는 뱀이 용으로 변하고, 뱀과 닮은 가물치가 뱀으로 변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발생과정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생물의 생태도 화생 신화를 부추겼으리라 생각된다. 예로부터 뱀장어는 알을 낳지 않는 물고기로 알려져 있었다. 뱀장어는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으므로 정확한 산란생태는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신비에 싸여 있다. 뱀장어를 잡은 다음 배를 갈라봐도 그 속에 알이 없으니 어떻게 자손을 퍼뜨릴 수 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촉감마저 비슷한 새조개의 참새 깃털
화생하는 동물을 살펴보면 형태상으로 유사성이 갖는 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옛 사람은 대체 조개의 어떤 특징에서 새와 비슷한 점을 찾아냈던 것일까.
새조개의 껍질 표면에는 40-50개의 가늘고 얕은 골이 패어 있다. 정약전은 바로 여기에서 참새와의 유사성을 찾은 것 같다.
골무늬만으로 새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못마땅 하다면 새조개의 골무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길다란 홈을 따라 새의 깃털을 닮은 짧은 털이 빽빽하게 돋아 있는데, 이것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어보면 촉감마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새조개의 검고 길다란 발 부분은 ㄱ자 모양으로 휘어 있는 폼이 영락없는 새의 머리다. 흑산도 현지인은 조개의 엷은 아가미를 좌우로 펴가며 날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잘 발달된 근육질의‘발’로 새처럼 잘 뛰어오른다고 해서, 또는 다리가 닭고기 맛과 비슷하다고 해서 새조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주장한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던 조개와 새 사이에 이렇게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오징어는 까마귀와 어떤 점이 비슷할까. 오징어를 먹다보면 까만 각질의 물체가 씹힐 때가 있다. 근육조직으로 둘러싸인 이 부분을 흔히 오징어의 눈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눈이 아니라 이빨이다. 이 부분을 잘 살펴보면 꼭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 이것이 바로 오징어와 새를 연결짓는 고리다. 오징어를 잡아보니 몸 속에 새의 부리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오징어가 새를 잡아먹은 것이 틀림없다. 오징어는 먹물을 품고 있으니 필경 새 중에서도 까마귀를 먹은 것이리라.
예전에는 사물 간의 유사성을 찾아내고 상징을 부여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문학하는 사람들도 이런 작업에 익숙하다. 그러나 예전 사람은 스스로 부여한 상징에 실제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고 당시 널리 퍼져있던‘화생신화’와 더해진 결과 새가 변해 조개가 됐다는 생각을 낳게 된것이다.‘ 현산어보’는 이처럼 우리 선조의 생물관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
현산어보를 넘어서
정약전은 생물 외에도 천문, 역사, 지리, 기상, 물리, 수학, 철학,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지식과 식견을 가진 대학자였다. 실학의 집대성자로 불리는 정약용도 그에 대해 존경과 찬탄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의 저술을 일일이 감수받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였다.
정약전은 집에서 바늘구멍사진기의 원리를 실험하는가 하면, 지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흑산도의 밤하늘을 정밀히 관측해 그 당시 혜성의 궤적을 정확히 묘사하기도 했다.
2백년 전을 살다 간 정약전은 그 시대의 과학자였으며‘진정한’선비였다. 앞으로 정약전에 대한 연구가 좀 더 깊이 있게 진행돼 그의 참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길 기대한다.
| 현산어보 |
현산어보는 국사시간에‘자산어보’(慈山魚譜)라는 이름으로 배운 그 책이다. 하지만 慈자는‘자’보다는‘현’으로 발음하는게 좋을듯하다. 정약용과 교류가 있었던 유암은 흑산도를 검을 현(玄)자를써 현주(縣州)라 불렀고, 정약용∙정약전 형제도‘흑산’이라는 말이 어둡다고 여겨 검을 현(玄)자가 나란히 붙은‘慈’자를 사용했다. 慈자가 검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자’가 아니라‘현’으로 읽으므로 현산어보로 발음하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현산어보의 원문은 현재 남아있지 않고 필사본만 존재한다. 현산어보의 번역은 1977년 정문기가‘자산어보-흑산도의 물고기들’이라는 책을 내며 최초로 이뤄졌다. 4권의 필사본을 합쳐서 새로운 교감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말로 번역한 다음 간단한 주석을 붙였다. 이후 정석조는 1988년‘상해 자산어보’를 통해 정문기의 번역본에 없는 국명과 학명, 사진과 그림을 추가했다. 이 글에 나오는 현산어보 인용문은 필자가 현대의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