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4일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는 세계 최초의 복제동물인 돌리가 진행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도축했다고 발표했다. 1996년 7월 5일 다자란 암양의 유선세포의 핵과 미리 핵을 뺀 난자를 결합시켜 만든 돌리가 약 6년 반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보통 양의 수명은 10-16년으로 보고 있다. 돌리는 사람으로 따지면 요절한 셈이다.
한창 때 세상을 달리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인에 대해 아직까지도 말이 많은 것처럼 돌리의 사인을 두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돌리에게 유전자를 제공한 암양의 나이는 6살이었다고 한다. 돌리가 올해로 6살이니 이를 더하면 양의 평균 수명이 된다. 그렇다면 돌리를 만든 체세포 핵은 이미 6살이었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돌리는 죽기 전까지 비만, 퇴행성 관절염과 같이 노화 때문인 것으로 의심되는 신체 이상에 시달렸다. 안락사의 원인이 된 폐질환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돌리의 죽음을 두고 제일 먼저 제기된 의문은 바로 조기노화 현상이다.
줄었다 늘었다 복제동물의 텔로미어
영국의 PPL 세러퓨틱사는 1999년 ‘네이처’ 5월 27일자에 돌리의 텔로미어(telomere)가 짧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부분에 있는 단백질과 DNA의 결합체로 분열과정에서 염색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분열이 계속되면 텔로미어가 닳으면서 짧아지는데, 그 길이가 일정 한계에 이르면 세포가 사멸하게 된다. 당연히 나이가 든 동물의 텔로미어가 젊은 동물에 비해 짧다.
연구팀에 따르면 돌리와, 배아세포로 복제한 두마리 양의 텔로미어는 같은 나이의 일반적인 양에 비해 3천-4천 염기쌍 정도 짧았다. 배아세포로 복제한 6LL7이라는 이름의 양이 세마리 가운데 텔로미어의 길이가 가장 정상에 가까웠는데, 이 양을 복제하는데 사용된 배아세포가 세마리 중 가장 젊었다. 복제에 이용된 세포의 나이와 복제동물의 텔로미어 길이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PPL 세러퓨틱스사의 알랜 콜맨 박사는 당시 “텔로미어가 짧다는 것이 돌리가 나이에 비해 더 늙었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반박했다. 콜맨 박사는 돌리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은 것 이외에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듯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가 결핍된 쥐나 효모에게서 아무런 이상징후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반대로 복제동물의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의 어드벤스드 셀 테크놀로지(ACT)사의 로버트 란자 박사팀은 2000년 4월 28일자 ‘사이언스’에 복제동물의 텔로미어가 일반 동물에 비해 오히려 더 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소의 태아에서 세포를 뽑아낸 다음 실험실에서 몇달 동안 배양해 분열을 계속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일부러 나이를 먹게 한 것이다. 실제 이 세포들의 텔로미어는 늙은 동물의 세포처럼 짧아져 있었다. 그 후 돌리를 만든 것과 같은 방법으로 1천9백개의 수정란을 만들었고 이 가운데 6마리가 출생하는데 성공했다. 조사결과 이 복제소들의 텔로미어는 같은 나이의 소보다 길었으며, 몇몇은 금방 태어난 송아지보다도 길었다.
같은해 미국 코네티컷대의 제리양 박사 역시 5-6세의 성숙한 복제소의 텔로미어가 2천-5천 염기쌍 정도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2001년 일본의 나가이 박사는 5-6세짜리 성숙한 소의 피부세포를 통해 복제한 소는 텔로미어가 증가되나, 다른 세포로 복제된 소들은 약간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발생 프로그램 재가동이 열쇠
체세포 복제는 세포 기능의 분화가 이미 완료된 체세포를 분화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 과정이다. 강원대 수의학과 정희태 교수는 “돌리의 텔로미어가 짧아진 것은 이러한 리프로그래밍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길어진 복제는 리프로그래밍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 교수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진 것은 복제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이지 복제를 했다고 해서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팀이 해파리의 형광 발광 유전자(GFP)를 체세포에 삽입한 형질전환 돼지를 출생시켰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마리가 출생 4개월만에 복부와 턱 밑의 피부에 주름이 지고 울음소리가 늙은 돼지와 유사하는 등 조기노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황우석 교수는 “서울대 연구팀이 현재 조기노화 현상을 보인 돼지의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 중이며, 조만간 연구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복제동물이 일찍 늙을지는 아직은 모른다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텔로미어가 세포에서의 노화를 조절하는 분자적 시계로 작용한다고 의심해왔으나 아직 아무도 실제로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초 짧은 텔로미어를 가진 노인은 사망 위험도 높을지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의학전문지 ‘랜싯’에 발표되기도 했다.
미국 유타대의 리처드 커손 박사팀은 임의로 선발된 60세 이상 1백50명의 환자의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했다. 그 결과 짧은 텔로미어를 가진 사람은 감염성 질환을 가질 확률이 8배 높았으며 치명적인 심장마비로 고생할 확률은 3배 높았다. 그렇다면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았다는 것과 돌리의 조기노화 현상이나 요절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의 이화학연구소에서는 복제쥐의 수명이 일반 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지네틱스’ 3월호에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복제쥐 12마리와 정상적으로 태어난 쥐 7마리를 같은 조건에서 길러 수명과 체중 변화, 간 기능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일반 쥐의 평균 수명은 9백일 정도인데 복제 쥐는 1년이 지나 7마리가 죽었고, 2년 반이 지난 지난해 2월 현재 총 10마리가 죽었다. 반면 일반 쥐는 1마리만 죽었고 나머지 6마리는 모두 살아 있었다.
배아 발생 좌우하는 탈메틸화
복제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킬 때 실패율이 90-95%에 이른다고 한다. 황우석 교수에 따르면 성공적으로 착상된 복제 배아 중에서 출산 뒤까지 정상적으로 자란 동물은 25%에 불과하다. 소의 경우 자궁에 성공적으로 착상된 1백50여 마리의 복제 태아 가운데 33%가 유산됐다는 것. 설사 출산은 했다 하더라도 급성 설사 등으로 태어난지 한달도 못돼 죽는 이른바 ‘급사 증후군’도 22%에 달했다. 돌리 역시 0.2% 성공률의 결과다.
동물 복제의 실패율이 높은 이유는 우선 수정란의 분화 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001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용만, 이경광, 강용국 박사팀은 ‘네이처 지네틱스’6월호에 복제된 수정란의 분화 과정이 정상적인 수정란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게놈 차원에서 밝혀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포유동물의 수정란은 발생 초기 단계에 게놈에 붙어 있는 메틸기(CH3-)가 없어지는 탈메틸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상태로 분화된다. 그런데 복제된 수정란의 경우 메틸기가 게놈 DNA에 그대로 남아 정상적인 분화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복제 수정란에 들어간 체세포의 핵이 다시 발생 초기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복제의 실패 원인은 수정란이 자궁 속에서 태반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정란은 자궁에 착상하기 전에 세포수가 약 1백50개 정도인 배반포기를 거친다. 배반포기 배아는 두가지 세포를 가지는데, 하나는 태아로 자라날 내부세포덩어리이며 나머지는 태반형성에 관여하는 영양외배엽 세포다. 지난해 한용만 박사팀은 복제 수정란의 외배엽 세포 수는 정상 수정란에 비해 1/3로 줄어 아기를 감싸는 주머니인 태반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박사는 “복제수정란이 태반을 제대로 만들고 탈메틸화에도 이상이 생기지 않는 비율은 약 10%로 지금까지의 동물복제 성공률과 거의 비슷해 태반과 메틸화의 문제가 동물복제의 성공률을 좌우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 박사팀의 연구결과는 수정란의 게놈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탈메틸화를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발생 과정에서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고 억제되느냐는 문제도 메틸기와 상관이 있다. 이 경우는 메틸화 여부가 관건이 된다.
프로그램 중복 오류도 불러
정상적인 수정과정에서 태아는 부모로부터 염색체를 하나씩 물려받는다. 이때 양쪽 염색체의 유전자가 모두 발현되면 유전적 이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한쪽 유전자만 발현되도록 조절해야 하는데, 이를 유전체 각인(genomic imprinting)이라 한다. 이렇게 조절받는 유전자는 각인유전자(imprinted gene)다.
유전체 각인은 메틸기가 해당 유전자에 붙음으로써 일어난다. 결국 메틸화되지 않은 대립유전자만이 발현됨으로써 전체 유전자 용량이 조절되는 것이다.
복제과정에서 이러한 각인유전자의 기능이 비정상적이 되기도 한다. 2001년 7월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MIT)의 루돌프 재니시 박사팀은 배아 줄기세포로 복제한 쥐에서 6개의 각인유전자의 기능을 조사한 결과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재니시 박사는 “이는 복제동물이 건강해 보여도 유전자 발현에서는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전체 각인과 같은 현상은 성염색체에서도 일어난다. 동물의 성을 결정하는 X염색체를 암컷은 두개 갖고 있는 반면 수컷은 X염색체 한개와 Y염색체 한개를 갖는데, 암컷이 가진 두 개의 X염색체 중 한개는 메틸화돼 발현이 억제된다. 그런데 지난해 미 코네티컷대의 제리 양 박사 연구팀이 복제된 암소들의 X염색체를 조사한 결과 10개 가운데 9개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마치 두개의 똑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부터 각기 다른 지시를 받는 컴퓨터와 같은 상황이다.
유전자 차원에서 원인 찾는 연구도 시작
과학자들은 최근 복제의 실패 원인을 개별 유전자 차원에서도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한스 숄러 박사가 ‘유전자와 발생’에 발표한 연구결과다. 숄러 박사는 복제의 초기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Oct-4 유전자가 대부분의 복제 수정란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Oct-4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로, 배아가 정상적으로 분화하고 활력을 가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배아의 내부세포덩어리에서만 발현되며, 성체에서는 오직 생식 세포에서만 발현된다. 그러므로 복제 수정란에서 Oct-4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발현된다면 난자에 주입된 체세포 핵이 배 발생에 맞춰 새로운 유전자 프로그램을 재가동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조사 결과 복제쥐의 배반포기 내부세포덩어리에서 Oct-4 유전자가 발현된 경우는 34%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유전자가 아예 발현되지 않거나(11.3%) 내부세포덩어리 외에 다른 부분에서도 발현되는 비정상적인 형태(54.7%)를 보였다. 정상적으로 유전자가 발현돼도 일반적인 수정란에 비해서는 발현율이 낮았다. 연구진은 결국 복제된 쥐의 배아 중 Oct-4 유전자가 계속된 발생과정을 감당할 만큼 제대로 발현된 경우는 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국내 복제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내 동물복제는 기초연구보다는 결과물을 내는데 급급한 면이 없지 않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기초연구는 가능한 완벽한 복제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아예 복제와 같이 발생 프로그램을 재가동시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안겨줄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열린 연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