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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속의 첨단보안시스템 비밀자물쇠

열쇠로 8단계 정밀조작 거쳐야 열린다

예전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소중한 물건을 장롱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이처럼 자물쇠는 중요한 물건을 넣어 두는 함이나 장롱, 뒤주 등 여닫는 물건에 채워서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하도록 잠그는 장치의 일종이다.

우리의 전통 자물쇠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오늘날 잠금장치 개발에 지문인식이나 성문인식·체온인식 등 첨단과학기술이 동원되는 것처럼, 귀중품을 지키는 자물쇠에는 그 시대의 첨단인 과학기술이 사용됐다. 도난방지와 비밀유지라는 중요한 기능 외에도 가구장식의 아름다움을 돋구는 역할까지 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자물쇠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연구를 4년여 간 진행해 ‘겨레과학기술조사연구 10집 - 자물쇠’를 지난해 12월 12일 발간했다. 이를 통해 겨레과학의 정수가 담겨있는 전통 자물쇠의 비밀을 상당부분 벗겨냈다. 우리 조상의 슬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자물쇠 중 가장 돋보이는 비밀자물쇠를 만나보자.

열쇠 구멍 찾기부터 난관

우리의 전통 자물쇠는 자물통·소통·쇠통·쇄금·쇄약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자물쇠라는 말은 동사인 ‘자물’과 명사인 ‘쇠’가 합쳐서 만들어진 복합어다. 여기서 자물은 잠근다는 의미를 지닌 ‘ㅈ므다’에서 비롯됐고, 쇠는 쇠붙이를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자물쇠는 잠근다는 기능성을 강조한 말로, 폐쇄·보관·보수·수비 등을 상징한다.

자물쇠는 그것이 쓰이는 곳과 시대에 따라 구조와 형태, 재료에서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보였다. 우선 장·농·뒤주 등 가구의 기능과 구조가 발전하고 새로운 형태의 가구가 제작되면서, 그 흐름에 대응한 좀더 기능적인 자물쇠가 새롭게 제작됐다. 대롱자물쇠·함박자물쇠·물상형자물쇠·붙박이자물쇠 등 종류가 다양하다.

자물쇠의 재료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고대의 자물쇠는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굴된 백제자물쇠처럼 주로 철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구리에 아연을 합금한 황동이 주로 사용됐고, 조선시대 말기에는 구리와 니켈의 합금인 백동으로 만들어졌다. 자물쇠의 사용 목적을 생각하면 부수기 어렵도록 튼튼해야 한다. 연구결과 황동이나 백동 등은 현대에 만든 합금 못지 않게 강도나 금속특성이 우수하다. 우리 조상의 합금과 단조·주조기술이 뛰어났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전통 자물쇠는 크게 자물통과 고삐, 열쇠 세부분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자물통은 자물쇠의 몸통이고, 고삐는 잠글 물건을 거는 부분에 해당한다. 잠근장치 기능은 자물통과 고삐에 의해 이뤄진다. 고삐의 살줏대에 부착된 탄력성 있는 ‘>;’ 모양의 살대를 자물통에 끼워 넣어 잠가지는 것이다. 자물통의 열쇠구멍과 살줏대에 부착된 살대의 크기와 구조에 맞는 열쇠가 아니면 절대 열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그림 1).


(그림1) 백동 8단 비밀자물쇠의 구성^전통자물쇠는 몸통에 해당하는 자물통과 잠그는데 사용되는 고삐, 자물쇠를 여는 열쇠 등 세부분으로 구성된다. 자물통에 고삐를 끼워 잠그고, 열쇠를 조작해 연다.


전통 자물쇠 중에는 단순히 일자형으로 돼 있어 한번에 열리는 것도 있다. 그러나 미로처럼 만들어 순서에 맞게 여러 단계를 조작해야만 열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 담긴 종류도 있다. 지그재그 손놀림으로 밀고 당기면서 자물통과 열쇠의 퍼즐을 하나씩 풀어가는 셈이다. 이와 같은 비밀자물쇠는 조작하는 과정의 수에 따라 2단에서 8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는 전통 비밀자물쇠를 3천명에게 주고 열 수 있는지 시험해보았다. 시험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물론 자물통과 함께 열쇠가 주어졌다. 3단 자물쇠의 경우 3천명 중 30%가 여는데 성공했으며 평균 5분이 걸렸다. 그러나 6단이 되면 5%만이 여는데 성공했고 평균 20분이 걸렸다. 8단 자물쇠의 경우는 단 1명만이 여는데 성공했다. 열쇠를 복제하면 바로 열 수 있는 요즘 자물쇠보다 훨씬 안전한 셈이다.

정확한 순서를 찾아라


비밀자물쇠는 궁중이나 사대 부가 등 상류층에서 사용됐다.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1단 자물쇠를 사용했다.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열리는 조선시대의 백동 8단 비밀자물쇠를 직접 열어보자. 이 비밀자물쇠는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 궤를 잠그는데 사용됐는데 겉에 열쇠구멍이 없다. 열쇠를 어떻게 사용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168쪽 윗 사진을 보자. 우선 자물쇠 왼쪽 고삐앞판에 붙어있는 꽃무늬의 광두정을 아래로 누른다(1단계). 광두정을 누른 상태에서 줏대를 고삐방향으로 민다(2단계). 그러면 오른쪽의 회전판을 회전시킬 수 있다(3단계).

이 단계를 거치면 철커덕하고 열쇠구멍이 나타난다. 그러나 구멍의 모양이 열쇠 끝의 생김새와 다르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는 열쇠가 들어가지 않는다. 열쇠가 제짝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더 고민해보자.

자물통 밑면 양쪽 가장자리에 부착된 꽃무늬 광두정 가운데 하나를 고삐방향(왼쪽)으로 민다(4단계). 밀대판이 여닫이문처럼 열리면서 밑면에도 열쇠 구멍이 노출돼 비로소 열쇠 조작이 가능해진다. 옆면의 구멍에 열쇠를 자물통과 직각으로 해 열쇠 위에 부착된 ‘ㄱ’자 모양을 안으로 감듯이 넣으면 들어간다(5단계).

열쇠가 몸통 안으로 들어가면 열쇠를 잡은채로 고삐 방향으로 움직이면 2개의 홈에 열쇠의 돌출부위가 딱 맞으며 열쇠 끝 돌출부위가 안으로 들어간다(6단계). 그런 후 열쇠를 몸통방향과 수평되게 90° 튼다(7단계). 마지막으로 열쇠를 살줏대 방향으로 수평되게 밀면 드디어 고삐가 빠진다(8단계).

비밀자물쇠는 이젠 풀렸다 싶을 때 다시 막다른 골목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기 어려울수록 초정밀 수작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비밀자물쇠의 내부를 살펴보자. 자물쇠의 구조와 기능의 해석하기 위해서는 X선 분석법이 사용됐다.

자물쇠 속에 들어있는 속목창은 고삐가 들어가 살대가 펼쳐져 빠지지 않도록 해 진정한 자물쇠의 구실을 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위에는 줏대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고, 아랫부분에는 ‘土’자 모양의 구멍이 뚫려있다. 고삐에 붙어있는 살줏대와 살대는 아랫구멍으로 들어간다. 살대는 이 구멍을 지나면서 퉁겨지면서 펼쳐져 열쇠를 눌러주지 않는 한 고삐가 나오지 않게 된다.

특히 자물쇠의 속뭉치인 살줏대에 부착되는 살대는 탄력이 중요하다. 살대가 마치 다이빙대와 같은 탄력을 가져야 잠기거나 열쇠를 뺏을 때 원위치로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살대는 백동판을 망치로 오랫동안 두들겨 만든다. 이렇게 하면 금속조직이 치밀해지면서 강도가 높아지고 탄력성을 갖는다.

밑면에 부착된 밀대판은 배흘림을 갖도록 만들어져 있다. 즉 가운데 부분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는 구조를 갖도록 특수 설계한 것으로 판스프링 역할을 한다. 이는 밀대판을 오래 사용해도 헐거워지는 것을 방지해 양쪽으로 쉽게 밀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열쇠를 빼야 열리는 자물쇠

황동 5단 비밀광두자물쇠 역시 조선시대 궁중이나 사대부가의 괘에 사용됐다. 이 비밀자물쇠는 광두정이 앞면과 뒷면에 각 2점, 옆면에 각 3점씩 모두 10점이나 붙어 있다. 보통 자물쇠에 열쇠를 넣어 밀면 열리지만 이 자물쇠는 전혀 다르게 설계돼 있다. 자물쇠를 직접 열면서 원리를 생각해보자.

자물쇠 몸통 앞, 뒷면의 귀퉁이에 부착된 광두정이 시작이다. 두개의 광두정 가운데 하나를 잘 선택해 위로 살짝 밀면 잠금장치가 풀린다(1단계). 고삐가 몸통에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잠금장치가 풀린 상태에서 줏대를 고삐방향으로 민다(2단계). 이렇게 하면 고삐가 1/4 정도 열려 반대편에 있는 회전판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오른쪽 회전판을 1백80°회전시키면 열쇠구멍이 드러난다(3단계). 열쇠를 구멍의 생김새에 맞춰 수평으로 넣어 밀면 속뭉치인 고삐가 1/4 정도 더 열린다(4단계). 그러나 완전히 열리는 것은 아니다. 다시 열쇠를 자물쇠 구멍 있는 부분까지 빼내 완전히 180°돌린 다음 수평으로 밀어 넣으면 그제서야 자물쇠가 열린다(5단계).

황동 5단 비밀광두자물쇠의 비밀은 바로 겉면에 부착된 광두정과 속뭉치인 고삐에 위 아래로 간격을 두고 부착돼 있는 금속판인 2중 살대에 있다. 열쇠를 첫번째 넣어 밀면 위의 금속판인 살대를 눌러 첫 걸림쇠를 푼다. 1백80°돌려 두번째 넣으면 아래면의 살대를 눌러 두번째 걸림쇠가 풀리는 것이다. 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더 돌려야 열리는 자물쇠인 것이다.

백동 4단 비밀자물쇠는 조선시대 궁중이나 사대부가의 보석함이나 서류함에 사용된 종류다. 일반적인 전통 자물쇠와는 달리 열쇠 구멍이 자물통의 밑면에 있고, 열쇠도 현재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현재 열쇠처럼 단순히 돌리기만 하면 절대로 자물쇠를 열 수 없다.

자물쇠를 열려면 우선 자물쇠의 밑면의 여닫이문의 역할을 하는 밀대판을 오른쪽으로 밀어 열쇠 구멍을 드러나게 한다(1단계). 열쇠를 구멍에 넣고 한 방향으로 돌리면 속 뭉치인 고삐가 조금 열린다(2단계). 그러나 한번 돌려서는 열리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한번 돌린 열쇠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속뭉치인 고삐가 1cm정도 밖으로 튀어나온다(3단계). 그렇지만 절대로 자물쇠가 완전히 열리지 않는다.

이리저리 돌려도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고삐가 더 잠기게 된다. 핵심은 앞의 두 단계를 거친 후 바로 열쇠를 자물통에서 완전히 빼야 열리는 것이다(4단계). 열쇠를 자물통에서 완전히 뺄 때 잠글쇠가 풀리면서 분리되도록 한 설계가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장인의 자긍심 담겨 있어

조선말기에 사용된 문자자물쇠는 지금의 번호자물쇠와 같은 구조로 돼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수년에 걸친 자물쇠 조사에서 단 한점 발견된 흔치 않은 종류다. 이 문자자물쇠는 배 부분에 있는 3개의 문자판 바퀴가 수직으로 돌아간다. 바퀴에는 각각 4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바퀴에 새겨진 문자는 건완앙우(乾碗仰盂), 삼평육간(三平六艮), 연옥곤왕(連玉坤王)으로 3개의 문자판이 우육곤(盂六坤)이 됐을 때 자물쇠가 열리도록 설계돼 있다. 이 문자암호는 구(口)와 전(田)으로 표기돼 있는 곳에서 정확히 일렬로 배열해야 한다. 이 자물쇠는 당시로서는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자물쇠로 보석함이나 서류함용으로 각광을 받았다고 추정되고 있다. 열쇠를 잃어버릴 염려 없이 사용자만 문자암호를 알면 되는 편리성이 돋보이는 당시의 퓨전 자물쇠인 셈이다.

첨단기술이 동원된 요즘 열쇠는 그것을 열려고 하는 밤손님의 열정에 안 열리는 것이 있을지 의심이 된다. 그러나 선조들이 개발한 다양한 비밀자물쇠는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간다. 그만큼 정교하게 설계됐고, 한단계라도 틀리게 조작하면 열쇠구멍 조차 찾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통 자물쇠를 보노라면 자물쇠마다 다른 방식을 고안해낸 선조들의 예지와 과학적인 설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밀 자물쇠를 만든 장인은 자기가 만든 자물쇠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자물쇠 속뭉치인 고삐 목창에 정성스레 새겨 넣었다.

조상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자물쇠의 제작기술과 기능이 현대기술과 접목되면 새로운 개념의 잠금장치가 개발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앞서 말했듯이 전통 자물쇠는 장식의 효과도 있었다.

이렇게 만든 새로운 잠금장치를 값비싼 가구나 중요 건축물의 출입문에 사용하면 보안의 기능과 함께 인테리어 기능도 함께 할 수 있다. 더욱이 귀중품 보관에 많이 쓰이고 있는 외제 자물쇠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 과학기술이 새롭게 부활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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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윤용현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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