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파크에 사는 일개미 Z-4195는 단결과 희생을 강요하는 획일화된 개미 사회에 불만이 많은 개성 강한 이단아다. 어느 날 Z-4195는 몰래 세상구경을 나온 공주 발라에게 반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표독스런 전투개미 사령관 맨더블과 약혼한 사이. Z-4195는 발라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작정한다. 맨더블의 추격에 쫓기던 Z-4195와 발라는 Z-4195가 물방울에 갇히면서 위기에 처한다. 물방울은 발라가 막대기로 두드리고, 온몸으로 부딪쳐도 요지부동. 맨더블의 추격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마이크로 세계 연구하는 미세 유체역학
몇해 전 개봉됐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개미’의줄거리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물방울의 위력’에 감탄하게 된다. 물방울은 개미에게 마치‘젤리’와같이 끈적끈적하고 단단한 물체인 것이다. 이처럼 미시세계에서는 물방울같은 유체가 일상생활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의 김도현 교수가 이끄는 공정해석연구실에서는마이크로미터(μm, 1μm = 10-6m) 단위의 세계에서 유체가 갖는 특성을 수학적 모델링과 실험을 통해 해석한다. 이를 통해 미시세계에서 유체가 일으키는 화학반응 공정을 개선하고 좀더 효율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개미’의 사례에서처럼 미시세계의 유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시세계와는 다른 현상을 보인다. 우선 물방울 속에 갇힌 개미에게 물은 매우 끈적끈적한 늪처럼 느껴진다. 이는 물체가 작아질수록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넓어져 물의 점성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한 표면장력의 영향도 커져 물방울의 표면을 도저히 찢고 나올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이처럼 유체를 미세 단위에서 연구하는 분야를 ‘미세 유체역학’(micro fluidics)이라 한다. 미세 유체역학은 생물학이나 화학, 의학 등 액체 시료를 이용해 실험을 하는 분야에 중요하다. 특히 최근에는‘랩온어칩’(LOC, Lab On a Chip) 연구가활발해지면서 미세 유체역학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LOC는 말그대로 칩 위의 실험실(Lab)이란 뜻이다. 동전만한 크기의 칩 위에 분석에 필요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미세 기술을 이용해 집적시켜 놓은 화학분석장치로, ‘ 손바닥위의실험실’로도불린다. LOC는 시료를 채취하고 이를 반응시키기 전의 전처리 과정을 거쳐, 실제로 반응시키고 분리∙분석해서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얻는 과정을 모두 하나의 칩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LOC에 유체 형태로 주입되는 화학물질의 양은 10-9-10-6L로매우적다. 또한유체의흐름을통제하는 펌프와 밸브, 파이프 등도 크기가 수십μm 정도로 매우 작다.
공정해석 연구실의 최대 관심은 극미량의 유체를 효과적으로 제어해 원하는곳으로 흘리는방 법과 이를 수행하기 위한 유체소자의 효과적 설계에 있다.
반도체 제작 연구가 토대
압력차에 의한 일반적인 유체의 흐름은 중심에서 가장 빠른 유속을 갖고 유체가 흐르는 길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점점 느려지는 포물선 형태의 유속분포를 갖는다. 하지만 수μm에 불과한 미세채널에서 이런 흐름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김 교수는“유체가 미세채널을 꽉 채우지 않으면 유체의 흐름이 끊기거나 반응이 부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고 이유를 밝힌다.
연구실에서는 현미경 수준의 액체를 제어하기 위해 실험적 방법과 이론적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먼저 이론적 방법으로는 유체가 미세채널에서 갖는 여러변수, 즉 표면장력과 점성, 벽면과의 마찰 등을 고려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든다. 여러 변수를 수학적모델링을 통해 해석하면 유체가 미세채널을 통과할 때 실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론적 방법으로 좀더 효율적인 공정과정을 설계하면 이를 실험적 방법으로 검증한다. 유체를 강제로 흐르게 하는 마이크로 펌프나 흐름을 제어하는 밸브, 유체가 흐르는 관인 채널은 모두 반도체 공정과정에 의해 제작된다.
우선 건축에 쓰이는 CAD 시스템으로 마이크로 소자를 설계한다.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필름 역할을 하는 마스크를 제작하고, 반도체 표면을 감광재료로 덮은 다음 마스크를 통해 특정 부분에만 빛을 쏘인 후 현상용액으로 녹여 반도체 표면에 회로를 만든다.
실제LOC는유리나플라스틱으로만들어지는데, 앞서 만든 회로가 새겨진 반도체는 일종의 원판 역할을한다. 원하는 디자인이 새겨진 반도체 표면 위에 유리나 플라스틱을 붙여 이 모양대로 주조해내는 것이다.
공정해석 연구실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미세소자의 제작에 있다. 김 교수는“수년전부터 반도체 제작 공정의 복잡한 과정을 연구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미세소자의 제작과 설계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연구실은 미세 유체역학을 연구하기 이전부터 전자재료 공정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연과를 발표했다.
미세 유체역학은 LOC나 DNA칩 등 첨단 생명공학과 나노과학을 이끄는 핵심 기술이다. 외국의 경우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일찍 파악해, 연구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연구실은 늦은 출발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반도체 부문에 대한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미세유체역학에서 다시 한번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김도현 교수를 중심으로 석사과정 4명과 박사과정 4명은 마이크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오늘도 그들의 실험복을 땀으로 적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