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가 정말 느림보였을까. 다른 공룡들의 달리거나 걷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가장 빠른 공룡은 어떤 종류고 어느 정도로 빠를까. 가장 느린 공룡은 무엇일까. 티라노사우루스에 대한 최신연구를 중심으로 공룡이 걷거나 달리는 움직임을 살펴보자.
‘공룡’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종류는 무엇인가. 대부분은 대표적인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날카로운 이빨과 섬뜩한 눈으로 먹이를 잔인하게 뜯어먹는 광경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리라. 영화 ‘쥬라기공원’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는 어김없이 강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주인공이 전속력으로 모는 지프를 티라노사우루스가 매우 아슬아슬하게 쫓는 장면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진짜 티라노사우루스가 달리는 속도가 이 정도로 빨랐을까.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2월 28일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아예 달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체중의 86%가 다리 근육?
티라노사우루스는 과연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을까. 1986년 미국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바커와 1988년 역시 미국의 고생물학자 그레고리 폴은 각각 ‘날쌘돌이’ 티라노사우루스를 주장했다. 이들은 티라노사우루스의 다리 구조가 새와 매우 흡사하므로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무려 시속 70km 정도까지 달릴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시속 15-20km 이상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해 왔다. 6t이 넘는 육중한 몸집의 소유자인 티라노사우루스가 만약 시속 2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티라노사우루스의 커다란 머리와 갈비뼈가 쉽게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보잘 것 없는 앞발을 가진 티라노사우루스가 직접 사냥하지 않고 이미 죽은 고기만을 먹는 ‘시체 처리반’이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가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직접 사냥했다고 하더라도 치타가 먹이를 쫓듯이 빨리 달리지 않고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순간적으로 덩치를 이용해 움직이며 사냥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속도 논쟁에서 최근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는 ‘느림보’ 티라노사우루스 쪽의 손을 들어준다. 이 연구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빨리 달리지 못했다고 추정하는 근거는 다리 근육이 달릴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존 허치슨과 마리아노 가르시아는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동물의 다리 근육 크기를 달리기 속도와 관련지어 비교·연구했다. 닭의 경우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을 만큼 다리 근육이 충분히 존재하는 반면, 악어의 경우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다리 근육이 존재하지 않는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경우에는 어땠을까. 영화 ‘쥬라기공원’에서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자기 몸무게의 43% 정도가 각각 다리 하나의 근육을 구성해야 한다는 계산결과가 나왔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두다리 근육이 결국 체중의 86%를 차지한다는 얘기다. 즉 나머지 14%가 두 다리를 제외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몸 전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계산이다. 따라서 영화에서처럼 티라노사우루스가 빠른 속도로 달려 지프에 탄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설정은 매우 현실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결코 빠른 속도로는 뛸 수 없다는 연구 결과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달리기보다는 2.5m나 되는 긴 다리를 이용해 땅이 흔들릴 정도의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걸어다녔다고 추정된다. 지금 현존하는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뒤뚱거리며 걸어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연상된다. 앞으로 등장할 쥬라기공원 4편에서는 주인공들이 티라노사우루스에게서 도망가기 위해 열심히 지프를 몰 필요가 없다. 말을 타고 달리는 정도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타조만큼 빠른 공룡
과연 어떤 공룡이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까. 일명 ‘타조 공룡’이라는 별명을 지닌 갈리미무스라는 공룡이 있었다. 별명처럼 몸과 다리가 지금의 타조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학자들이 추정하는 이들의 속도는 시속 45-50km 정도이다.
하지만 갈리미무스가 최고로 빠른 공룡은 아니었다. 중생대 백악기 후반인 6천만-8천만년 전 캐나다에서 살았던 드로미케이오미무스라는 공룡은 무려 시속 60km가 넘는 스피드를 가진 공룡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공룡 가운데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스트루시오미무스도 빠른 공룡으로 손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달리기 선수의 순간속력(시속 36km)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드로미케이오미무스나 갈리미무스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타조와 비슷한 형태학적인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가벼운 몸통에 상대적으로 긴 다리가 있고, 이 긴 다리에 강력한 근육이 붙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뛸 수 있었다. 또 목과 꼬리에 의해 몸 전체의 균형이 잘 잡힌 점도 빠른 속도에 한몫했다.
하지만 이들 타조 공룡이 움직일 때마다 항상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자가 먹이감을 쫓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휴식 상태에 있으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많은 시간을 천천히 움직이거나 쉬면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먹이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한편 이들 타조 공룡은 자신들의 천적인 알버토사우루스와 같은 거대한 몸집의 육식공룡들의 공격을 손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버토사우루스와 같은 공룡들의 달리기 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이다.
공룡 중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였던 공룡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마도 브라키오사우루스와 같이 용각류에 속하고 목이 길며 몸집이 거대한 초식공룡이었을 것이다. 이들을 연구한 결과 시속 4-6km 정도의 속도를 내면서 걸었을 것으로 밝혀졌다. 놀랍게도 이 속도는 걷는 사람의 걸음걸이 속도(시속 5-6km)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가장 포악한 모습으로 중생대 백악기를 군림했던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이 육식공룡이 빠르게 뛸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아왔던 인기가 시들해질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몸집 큰 초식공룡 사냥 가능
티라노사우루스가 성큼성큼 걷는 속도는 현재 코뿔소가 달리는 정도의 속도인 시속 20km 정도로 추정된다. 빠르게 뛰는 속도가 아니기 때문에 비록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수각류 공룡이나 타조 공룡을 포획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전히 몸집이 큰 초식공룡을 사냥하기에는 충분한 능력이다. 뿐만 아니라 죽은 공룡의 살덩이를 잔인하게 뜯어먹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도 여전히 그 악명을 유지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최근 영국의 옥스퍼드주에 위치한 쥐라기 지층에서 발견된 공룡의 발자국 화석 가운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보행렬이 있다. 1억6천3백만년 전의 지층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에서는 수각류와 용각류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함께 발견됐다. 수각류의 발자국 화석 중에 형태가 서로 다른 두가지의 보행렬이 남겨져 있었다. 공룡의 이동 속도와 형태를 연구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이 화석에 대한 결과는 네이처 1월 31일자에 발표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줄리아 데이 박사팀은 이 육식공룡이 두가지 방법으로 뒷다리를 움직여 이동할 수 있었다고 결론내렸다. 즉 걷기도 하고 뛸 수도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육식공룡이 남긴 두 보행렬의 보폭을 측정해 속도를 계산해보니, 걸었을 때는 시속 6.8km, 그리고 뛰었을 때는 시속 29.2km가 각각 나왔다. 시속 29.2km로 과연 얼마나 달려갈 수 있었을까. 이 연구에서 밝혀진 달려간 보행열의 길이는 35m에 불과하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보다 크기가 작고, 먼저 지구상에 등장하였던 이 이름모를 육식공룡의 발자국은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두가지 방법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짧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걷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도 움직일 수 있었다고.
화석에서 달리기 속도 계산법
공룡의 걷거나 달리는 속도는 어떻게 계산할까. 발자국 화석으로부터 알아내기는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공룡의 속도를 구하는데 1976년 영국의 맥닐 알렉산더 박사가 제안한 공식 u=${0.25g}^{0.5}$×${λ}^{1.67}$×${h}^{-1.17}$(u는속도, g는 중력가속도, λ는 보폭 길이, h는 지면에서 엉덩이 높이)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알렉산더 박사는 공룡을 거대한 덩어리들의 결합체로 간주하고, 공룡의 움직임을 관성력과 중력이 작용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공식을 개발했다. 비록 공룡이 서로 다른 크기일지라도 기하학적으로 비슷한 공룡의 움직임은 이동속도도 이에 비례하리라고 생각 한 것이다. 알렉산더의 속도 공식은 발자국이 남는 땅의 조건이 딱딱하거나 부드럽건 별 차이가 없음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보폭 길이 λ는 공룡이 남긴 발자국 화석으로부터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공룡의 엉덩이 높이 h는 화석에서 잴 수 있는 발자국의 크기로부터 추정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두 발로 이동하는 대부분의 공룡(수각류와 조각류)의 뒷발자국 길이는 0.23-0.28h이고 네 발로 걷는 용각류의 뒷발자국 길이는 약 0.25h이다. 통상적으로 공룡의 뒷발자국 길이를 0.25h로 보고 엉덩이 높이는 뒷발자국 길이를 4배 해서 얻는다. 이때 공룡의 발에서 보통 척골과 지골을 연결하는 관절이 지면에 닿지만, 부골과 척골을 연결 하는 관절은 닿지 않는다는 점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공식을 사용해 얻은 속도는 공룡이 실제로 달릴 수 있는 절대 속도 라기보다는 상대적인 속도다. 왜냐하면 공룡이 실제로 달려간 발자국 수와 보행렬의 전구간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계산에 사용된 보폭 길이는 화석으로 남은 발자국만으로, 즉 공룡이 실제 걸어간 발자국 가운데 일부를 기준으로 얻은 것이지, 당시에 공룡이 남겼던 보행렬의 전체 발자국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발자국이 말하는 비밀
공룡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바로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1836년 미국의 에드워드 히치콕이 세계 최초로 공룡의 발자국을 발견한 이후, 모든 대륙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공룡 발자국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공룡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낼 수 있다. 공룡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지, 걸음걸이는 어땠는지, 그리고 이들의 자세나 행동에 나타나는 특징까지도 밝혀낼 수 있다.
공룡의 달리기 속도나 걸음걸이의 형태보다 먼저 알아내야 할 숙제가 바로 공룡의 자세였다. 공룡의 자세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자칫 공룡이 움직이는 방법을 잘못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룡이 남긴 많은 발자국 화석을 살펴보면, 이들이 직립 보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이나 고양이처럼 양쪽 다리가 몸통의 바로 밑으로 죽 뻗어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양쪽 다리가 몸통에서 직각으로 꺾이는 악어나 도마뱀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자세다. 고양이와 악어가 움직이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에는 대개 여러개의 발자국이 나타난다. 이들 발자국은 공룡이 걷거나 달리며 만든 보행렬이다. 공룡의 보행렬은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역에도 공룡의 보행렬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가 있다. 이런 보행렬을 살펴보면 네발로 걸었던 흔적과 두발로 걸었던 흔적이 뚜렷이 구별된다. 수각류와 조각류의 공룡은 두발로 걸어다녔고, 용각류의 공룡은 네발로 걸어다녔다. 일반적으로 용각류는 뒷발이 남긴 발자국이 앞발이 남긴 발자국보다 크기가 크다. 뿐만 아니라 발자국 화석의 간격을 연구해보면 남겨진 발자국의 주인공이 빨리 달렸는지, 아니면 천천히 걸어갔는지도 밝혀낼 수 있다. 하나의 보행렬에서 나란히 앞뒤로 나타나는 발자국 두개 사이의 거리, 즉 한 걸음의 길이인 보폭을 측정한다. 보폭이 크면 클수록 빨리 달릴 수 있는 공룡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염소와 타조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염소가 걸어가는 모습과 타조가 이동하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이들이 남긴 발자국 간격을 재본다면, 당연히 타조의 발자국 사이의 길이가 염소의 발자국 사이의 길이보다 훨씬 길게 나온다. 참고로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타조의 달리기 속도는 무려 시속 65km나 될 정도로 빠르다.
혹시 여러분도 바닷가로 놀러갈 기회가 있다면, 모래사장에 찍힌 여러분의 발자국을 갖고 스스로 실험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일정한 구간을 걸어본다. 걷기를 마친 후에 다시 시작지점으로 돌아와 똑같은 구간을 이번에는 달려본다. 그리고 나서 걸었을 때 찍힌 발자국의 보폭과 뛰어갔을 때의 보폭을 측정해 비교해보면, 어떤 보행렬이 빠른 속도로 움직인 흔적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보행렬도 화석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1930년대 미국의 텍사스주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매우 흥미롭다. 목이 긴 초식공룡인 용각류에 속하는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앞발의 발자국만 남아있었다. 그럼 이들이 물구나무서기라도 했던 것일까.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용각류는 육중한 체중을 오직 앞발로 지탱한채 단 1초라도 견딜 수 없는 거대한 공룡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공룡이 걸어갔던 곳은 육지가 아니라 얕은 개울가 같은 물 속이라고 추정했다. 이 공룡이 앞발로 전진할 때 뒷발을 바닥에서 살짝 들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밝혀냈다. 헤엄치는 듯한 독특한 수중 이동법이다. 아마도 이 방식으로 매우 쉽게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단지 뒷발보다 앞발이 갯벌 속으로 깊게 들어가면서 생긴 발자국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