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축구경기에서는 입이 딱 벌어지는 그림 같은 골이 연출된다. 바로 브라질의 카를로스나 한국의 고종수 같은 프리킥의 마술사들이 엮어내는 작품이다. 이들이 빚어낸 신비의 프리킥을 과학으로 파헤친다.
최근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얻는 전술은 무엇일까. 다름아닌 코너킥, 드로잉, 프리킥 등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세트 플레이다.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은 프리킥이다. 수비수 여럿이 쌓은 벽을 앞에 두고 20-30m 떨어진 골대를 향해 둘레가 68-70cm인 작지 않은 공을 힘껏 차면 교묘히 골네트로 빨려 들어가는 마술 같은 기술이 바로 프리킥이다.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로스,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 등 세계적인 선수가 모두 프리킥의 명수다. 우리나라 선수 중에도 대포알 슈팅을 자랑하던 황보관, 지난 프랑스월드컵 멕시코 전에서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뽑았던 왼발의 달인 하석주, 축구계의 악동 앙팡테리블 고종수 등이 멋진 프리킥을 자랑한다.
특히 고종수의 왼발 프리킥은 2001년 국내외를 흔들었다. 1월 월드올스타팀과 겨루는 경기에서 한일올스타팀 대표로 나선 그는 세계적인 수문장 칠라베르트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프리킥을 성공시키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경기에서도 대부분의 골을 프리킥으로 얻어내면서 고종수의 왼발은 계속 주목을 받았다. 급기야 국내 한 스포츠신문에서는 고종수의 프리킥을 연속으로 촬영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진행방향의 왼쪽으로 휘어지는 각은 야구의 커브를 연상시키고, 직선경로와 비교한 공의 비행경로는 무려 2.2-3.1m나 차이가 났다. 고종수의 왼발을 떠난 공은 처음에는 골대를 벗어나는 것처럼 상대골키퍼에게 보이지만 결국 골네트를 흔드는 마구였던 것이다.
또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1997년 프레월드컵 개막전에서 빚어낸 환상적인 프리킥은 아직도 세계축구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프랑스 수비수가 쌓은 벽을 멀찍이 돌아 30여m 떨어진 골네트로 빨려드는 골은 바나나킥의 진수를 보여줬다. 카를로스 역시 고종수처럼 왼발 프리킥을 했지만 바깥쪽으로 차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휘어 들어갔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과연 그들이 만들어낸 매직 프리킥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를 과학으로 풀어본다.
직선경로에 비해 4m나 꺾여
우선 카를로스나 고종수가 찬 공에는 회전이 걸려있다는 점이 단서가 된다. 회전하는 물체가 한쪽으로 꺾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설명하는데는 1852년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기여한 바가 크다. 마그누스는 회전하는 포탄이나 총알이 왜 한쪽으로 휘는지를 밝혔지만, 이 설명은 공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 축구에서 휘는 공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야구, 골프, 테니스 등에서도 똑같다.
회전하는 축구공이 선수의 발을 떠난 후를 생각해보자. 회전하는 공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이때 회전하는 축에서 보면 공을 따라 흐르는 공기의 흐름은 좌우가 다르다. 공기의 흐름이 회전방향과 같은 쪽에서는 공기의 속도가 빨라지고 압력이 감소하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압력이 증가한다. 따라서 압력이 감소하는 쪽으로 힘이 작용해 축구공이 휘게 된다. 이 효과를 일반적으로 ‘마그누스 효과’라고 부른다. 이 효과는 비행기 날개에도 적용돼 무거운 비행기도 떠오르게 하는 양력을 일으킨다.
그런데 축구공에 나타나는 마그누스 효과는 얼마나 클까. 프리킥한 공에 작용한 힘을 계산해보자. 축구공의 속도가 초속 25-30m(시속 90-1백8km)이고, 회전은 초당 8-10회가 걸렸다고 가정한다.
이때 양력은 약 3.5N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에 따른 축구공 질량인 4백10-4백50g을 생각하면, 축구공은 약 8m/${초}^{2}$의 가속도를 받는 셈이다(힘=질량×가속도). 결국 프리킥한 선수의 발을 떠난 공은 1초 동안 30m를 날아가기 때문에 양력은 직선으로 날아가는 코스로부터 4m나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벗어나는 거리=초속도×시간+$\frac{1}{2}$×가속도×${시간}^{2}$, 여기서 초속도=0, 시간=1초). 이 정도면 아무리 유능한 골키퍼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고종수의 왼발 프리킥이 휘는 정도도 잘 설명할 수 있다.
이유있는 대포알 슈팅
회전하는 공이 공기 중을 날아가는 경우에 어떤 힘이 작용할까 생각해보자. 먼저 공이 회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마그누스 효과는 공이 위로 떠오르거나 옆으로 휘는 힘인 양력을 일으킨다. 또 진공이 아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힘인 저항력이 공의 진행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저항력은 축구공이 공기를 뚫고 날아가기 때문에 생긴다. 공의 밀도가 일정하고 변형이 생기지 않는다면 공이 받는 저항력은 공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공의 속도가 빠를수록 저항력이 마냥 커질까. 그렇지 않다. 저항력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저항력과 관련되는 항력 계수가 문제가 된다.
여기서 차원이 없는 레이놀즈수를 도입하자. 레이놀즈수는 움직이는 유체 내에 물체가 놓일 때 그 흐름 상태를 나타내는 수치다. 만일 항력 계수를 레이놀즈수에 대해 나타내면, 특정 레이놀즈수에서 갑자기 항력 계수가 떨어진다. 즉 저항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왜 그럴까. 특정 레이놀즈수를 전후해 축구공 표면에서의 공기 흐름이 부드러운 층류에서 난류로 바뀌기 때문이다.
공기 흐름이 층류일 때 공의 뒤쪽 공기 흐름은 비교적 일찍 공 표면에서 분리된다. 이에 따라 공 앞뒤의 압력차가 커져 축구공에 가해지는 저항력은 커진다. 반면 공기 흐름이 난류일 때는 공 표면에 공기 흐름이 오랫동안 착 달라붙는다. 이에 따라 공 앞뒤의 압력차가 작아 저항력도 작다. 즉 공이 공기 흐름에 순탄하게 실려간다는 말이다.
따라서 저항력이 줄어드는 특정 레이놀즈수는 공의 표면에 좌우된다. 골프공의 표면을 곰보처럼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골프공이 거칠어지면 매끈할 때보다 비교적 작은 레이놀즈수(약 4만)에서도 저항력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하지만 축구공은 상황이 좀 다르다. 공 표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훨씬 큰 레이놀즈수(약 40만)에서 저항력이 줄어든다. 한편 레이놀즈수가 공의 속도에 비례해 커지는 양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결과적으로 속도가 느린 축구공은 레이놀즈수가 작은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비교적 큰 저항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공 표면의 공기 흐름이 난류가 될 만큼 충분히 빠른 속도로 축구공을 찬다면, 그 공은 레이놀즈수가 특정수치보다 커져 훨씬 작은 저항력을 받게 된다. 가끔 축구경기에서 대포알 같은 슈팅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고, 공이 쭉쭉 뻗어나간다고 말하는 것도 이 경우다. 속도가 매우 빠른 공은 골키퍼에게 이중의 고통을 가져다준다. 공이 빠를 뿐만 아니라 그 속도도 예상만큼 느려지지 않으니 이런 공은 골키퍼에게 진짜 ‘대포알’처럼 느껴질 테니까.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골키퍼로 활약할 김병지나 이운재는 이런 물리적 사실을 ‘동물적 감각’으로 깨닫고 있을까.
수비벽에서 휘는 공의 비밀
공의 회전은 프리킥한 공을 휘게 하는 양력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회전수와 속도, 그리고 양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1976년 영국 런던의 임페리얼대의 피터 베어먼 교수팀이 골프공으로 이에 관한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공의 회전수가 증가할수록 마그누스 효과가 커져 양력이 커지는 반면, 일정한 회전수에서는 공의 속도가 증가할수록 양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축구공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회전이 많이 걸린 느린 공은 똑같은 회전이 걸린 빠른 공보다 더 많은 양력을 받는다. 즉 더 많이 휘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프리킥한 축구공이 궤적 끝에서는 속도가 느려짐에 따라 휘어지는 효과가 좀더 커진다.
물론 처음부터 회전을 많이 걸어 느리게 찬 공이라면 속도가 빠른 공에 비해 더 많이 휘어질 것이다. 하지만 느린 공은 아무리 많이 휘어도 골키퍼가 대처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게 된다. 따라서 회전이 많이 걸린 공은 처음에 속도가 빨라야 좋다. 빨리 날아갈 뿐만 아니라 특정 위치에서 휘어지는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카를로스가 찬 프리킥을 분석해보자. 카를로스는 왼발 바깥쪽을 이용해 축구공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도록 힘껏 찼다. 공의 회전은 초당 10회 정도로 매우 많이 걸렸고 공의 속도는 초속 약 30m로 꽤나 빨랐을 것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공 표면의 공기 흐름이 난류여서 저항력은 비교적 적었다. 공이 진행하다가 중간에서, 아마도 수비수가 벽을 쌓은 위치에서 속도가 줄면서 층류 영역으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이때 실질적으로 공에 저항력이 증가하고 공의 속도는 더욱더 줄었다. 따라서 회전수는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속도가 줄어든 공은 마그누스 효과가 더 커져 옆으로 더 많이 휘었다. 마침내 휘어진 공은 골네트를 갈랐던 것이다.
카를로스는 자신의 왼발이 만들어낸 예술 프리킥 뒤에 숨어있는 물리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운동장에서 연습하면서 특정한 속도와 회전으로 공을 차면 어떻게 휠지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수비수 벽이 위치한 9.15m 거리에서 자신의 공이 휘도록 연습했을 것이다. 물론 고종수의 프리킥도 마찬가지다.
회전 극대화하는 공의 최적 지점
카를로스의 프리킥에서 공의 회전수가 초당 10회라는 것은 엄청난 양이다. 이 정도의 회전을 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98년 일본 야마가타대의 아사히 교수팀은 컴퓨터에서 가상축구선수가 공을 차는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해 이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공의 회전수는 축구화와 공 사이의 마찰 계수에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축구화와 공 사이의 마찰이 클수록 더 많이 회전했다. 프리킥을 전문으로 하는 일부선수들이 축구화 앞쪽에 까칠까칠한 가죽을 덧댄다는 속설이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비가 오는 날처럼 마찰 계수가 0인 상황에서는 공에 회전을 줄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아사히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의 회전수는 공의 무게중심에서부터 발까지의 거리에도 관련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에도 공의 무게중심에서 벗어난 곳을 차면 공에 변형이 일어나고 무게중심 둘레로 힘이 가해져 공이 회전한다. 따라서 비오는 날에도 비오지 않는 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축구공에 회전을 줄 수 있다. 아무튼 비오는 날의 축구경기에서는 선수들의 체력도 더 많이 소모되니, 수중경기는 이래저래 힘든 경기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아사히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공의 무게중심부터 발까지의 거리가 멀수록 공의 회전수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마냥 무게중심에서 먼 곳을 차면 안된다. 발이 공에 닿는 시간이 짧아지고 닿는 영역도 작아지기 때문에 공의 회전과 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전수가 최대가 되기 위해서는 발로 공을 찰 때 최적의 위치가 있다는 것이다. 즉 공의 무게중심에서 너무 가깝거나 너무 먼 위치를 차면 많은 회전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 카를로스나 고종수처럼 그림 같은 프리킥이나 슛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정리해보자. 먼저 공 표면의 공기 흐름이 난류가 될 만큼 강하게 공을 차야 한다. 그래야 발을 떠난 공은 저항력을 적게 받으면서 쭉쭉 뻗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을 휘게 하려면 공의 무게중심을 벗어난 곳을 차야 한다.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이 진행하다가 중간에 속도가 느려져 층류 영역에 접어들 때 공은 가장 많이 꺾이게 된다. 따라서 공 표면의 공기 흐름이 난류에서 층류로 바뀌는 지역, 즉 공이 극적으로 휘는 지점이 수비벽을 통과한 바로 뒤가 되도록 공의 속도와 회전, 그리고 방향을 열심히 연습해야 할 것이다. 물론 훌륭한 선수들은 직감적으로 알 테지만. 우리 태극전사들이 모두 프리킥의 명수가 되길 빈다. 그러면 16강이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