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잔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 차에 어떤 성분이 있어 애용되는 것일까. 차 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파헤쳐보자.
인류가 차를 마시게 된 까닭
해독·향균·항암 작용 알려져
차(茶)는 세계의 음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의 당나라 육우(陸羽, 727-803)가 쓴 다경(茶經)에 따르면 기원전 2700년경의 신농(神農) 시대부터 차를 마셨다고 하니 그 역사가 5천년에 이른다.
인류 중 차를 처음으로 마신 것으로 전해지는 신농. 그는 중국 삼황의 한사람으로 백성들에게 농경법을 가르치고 백초(百草)를 맛보고 약을 만들어 의약의 신으로 숭앙을 받았던 인물이다.
신농이 어떻게 차를 알게 됐는지에 대해 오늘날 몇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신농이 산천을 다니면서 직접 풀을 맛보아 식용 또는 약용을 결정하는데, 하루는 여러 풀을 맛보다가 독초에 중독됐다. 그때 우연히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을 먹고 해독됐다. 바로 그 나뭇잎이 차나무 잎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차에 대한 효능이 알려지고 널리 음용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찻잎은 독을 해독하는 성분을 포함하는 것일까. 비록 말로만 전해지는 얘기지만 찻잎의 성분을 따져보면 가능한 일이다.
차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수용성 성분은 카테킨이라는 물질이다. 이 성분은 차의 독특한 떫은맛을 낸다. 그런데 카테킨은 구조상 수산화기(OH-)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여러가지 물질과 잘 결합하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것이 독을 해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약초의 주요 독성분과 카테킨이 결합해 해독의 효과를 보여준다는 말이다.
카테킨은 해독 작용 외에도 다양한 의학적 작용을 나타낸다. 대표적인 작용은 항산화효과. 우리 몸의 지방 성분은 활성산소에 의해 산화돼 각종 과산화지질로 변성된다. 이것은 우리 몸의 세포를 공격,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카테킨은 바로 지방의 산화를 지연시키거나 막을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항산화효과이다. 황산화효과를 비롯해 카테킨의 항암작용, 항균작용 등이 국내외 학술지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한편 카테킨 외에 차에서 중요한 성분은 카페인인데, 이 역시 신농이 독초에 중독돼 정신을 잃었을 때 도움이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카페인은 뇌에 대한 자극이나 강심작용으로 신농이 제정신을 차리도록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차는 처음부터 기호음료로 마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약용으로 발견된 후 점차 경험적으로 알려진 효능으로 인해 오랫동안 민간에서 널리 이용돼 왔다. 카테킨과 카페인 외에도 찻잎이 다른 식물의 잎과 달리 갖는 성분으로 데아닌(theanin)이 있다. 데아닌은 녹차에 2-3% 함유된 아미노산의 일종인데, 흥분을 가라앉히는 진정작용이 있고 차의 감칠맛을 내는 성분이다.
따라서 차의 독특한 맛은 카테킨의 떫은맛과 데아닌의 감칠맛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차를 마시는 즐거움에서 그 은은한 향을 빼놓는다면 어떨까. 차의 향은 찻잎 중에 함유돼 있는 휘발성 성분에 의해 만들어진다. 차의 향기 성분은 0.1% 이하로서 미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종류는 2백-3백여종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가지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명차의 산지는 안개 많이 끼는곳
햇빛 차단해 감칠맛 늘인다
차 전문매장으로 녹차를 사러가본 사람이라면 녹차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종류가 대개 수확시기에 따라 분류되고 이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또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차는 수확시기에 따라 크게 세종류로 나뉜다. 이른봄에 딴 첫물차, 늦봄이나 초여름의 두물차, 그리고 여름에 수확한 세물차가 그것이다. 가격은 이른봄에 딴 첫물차가 가장 비싸다.
수확시기가 차의 가격을 결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수확시기에 따라 차의 성분 함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찻잎을 늦게 딸수록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과 비타민C의 함량은 증가하고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나 카페인의 함량은 감소한다. 따라서 첫물차가 두물차나 세물차보다 떫은맛이 덜해 부드럽다. 또한 향기성분의 함량이 더 높기 때문에 품질이 높게 평가받는다.
그런데 왜 수확시기에 따라 성분함량이 달라지는 것일까. 찻잎의 성분 함량이 햇빛의 양과 기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른 봄 새로운 어린 잎이 나기 시작할 때는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류가 다량으로 뿌리에서 합성된다. 그런 후 아미노산은 줄기를 거쳐 어린 잎으로 이동하는데, 여기에서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이 합성되면서 카테킨을 중심으로 한 폴리페놀류가 생성된다. 따라서 어린 잎에서는 폴리페놀류가 합성되기 전의 아미노산이 많다.
이 과정에서 햇빛의 양(일조량)과 기온이 관여하는 것이다. 잎은 여름으로 갈수록 아미노산류가 적어지고 폴리페놀류가 늘어간다. 점점 떫은맛이 강해지는 것이다
. 이같은 차의 성질을 이용해서 이른 봄의 찻잎에서 감칠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 재배시 인공적으로 햇빛을 차단시키는 방법이 쓰이고 있다. 일반 차의 재배와는 달리 찻잎이 한잎에서 두잎 정도 나올 무렵 차나무 위에 차광막(그늘막)을 씌워 햇볕을 차단해 재배한 차를 옥로차(玉露茶)라고 한다. 그늘에서 키운 녹차는 떫은맛이 덜한 반면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데아닌, 아르기닌, 글루타민산 등), 녹색을 내는 엽록소가 증가해 맛과 색이 뛰어난 고급 녹차가 된다.
예로부터 명차(茗茶) 산지로 꼽는 지역은 대개 하루 중 안개가 많이 끼는 곳이다. 이 역시 안개에 의한 차광과 일조량 제한으로 데아닌(아미노산류)의 축적이 많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라남도의 월출산, 제주도의 한라산 부근에 대규모 녹차 다원(茶園)이 형성된 것도 이와 같은 녹차 재배의 적합지이기 때문이다.
녹차, 홍차, 우롱차의 차이
원료는 같은 나무, 제조방법이 다를 뿐
찻집에 가 차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보자. 커피, 녹차, 홍차, 인삼차, 유자차 등 종류가 상당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이들 중 차에 속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본디 차(茶)는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만든 마실거리의 재료다. 따라서 커피, 인삼차, 유자차, 둥굴레차 등 찻잎을 쓰지 않고 다른 재료로 만든 음료는 차가 아니다. 예전에 차를 만들 때 찻잎도 적게 들고 약의 효과와 더불어 다른 맛을 얻기 위해 생강, 유자, 들국화, 참깨, 구기 등을 찻잎과 섞어 만들었다. 이것이 나중에는 차를 넣지 않고도 만들어서 차 대신 끓여 마시게 된 것이다. 대용차인 셈이다.
그렇다면 찻집 메뉴판에서 찾을 수 있는 차의 종류는 뭐가 있을까. 녹차, 홍차, 우롱차 등 세종류. 녹차, 홍차, 우롱차는 품종은 다르지만 모두 차나무(Camellia sinensis) 잎을 원료로 가공해 만든 기호음료다. 그러나 이들을 구분하는 기준은 차나무의 품종이 아니라 차 제조과정의 차이다. 찻잎을 따서 발효를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때문에 같은 차나무로 녹차, 홍차, 우롱차를 생산할 수 있다. 발효는 차를 분류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발효정도에 따라 발효가 전혀 일어나지 않은 비발효차, 발효 정도가 10-70% 사이인 반발효차, 그리고 85% 이상인 발효차로 나뉜다. 녹차는 비발효차, 우롱차는 반발효차, 그리고 홍차는 발효차에 속한다.
그렇다면 차는 어떻게 발효시키는 것일까. 사실 차에서의 발효는 진정한 의미의 발효가 아니다. 발효는 미생물에 의해서 음식물이 분해되거나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차에서 발효는 미생물이 관여하지 않는다. 사실은 찻잎에 존재하는 효소(폴리페놀옥시데이즈, polyphenoloxidase)에 의해 일어나는 산화다.
차에서 발효라는 용어가 잘못 쓰이게 된 까닭은 영국에서 홍차가 제조되기 시작하던 19세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한 탓이다. 1835년경 영국은 인도에서 홍차제조를 시작했다. 얼마 후인 1857년에 파스퇴르가 술이 미생물에 의한 발효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홍차의 제조과정에서 맛과 향, 색이 변하는 이유도 술과 마찬가지로 미생물이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홍차 제조에서 발효라는 말이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다.
찻잎의 발효, 즉 산화는 사과를 깎아놓았을 때 색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홍차를 만들려면 찻잎을 따서 그대로 방치해서 시들게 한다. 이 과정에서 찻잎에 함유된 카테킨을 대표로 하는 폴리페놀류 성분이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돼 데아플라빈(theaflavins)과 데아루비긴(thearubigins) 등 새로운 성분이 생성된다.
이들 성분이 바로 홍차의 매력적인 붉은 색을 내게 해준다. 홍차의 밝은 오렌지색은 주로 데아플라빈 때문이고, 데아루비긴에 의해서 갈색이 나타난다. 데아플라빈은 차에 맑은 광택을 주고 데아루비긴은 색에 깊이를 준다. 차의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데아플라빈이 감소하고 데아루비긴은 증가한다. 그리고 향기를 가진 많은 화합물들이 생성돼 홍차의 강하고 독특한 향기를 낸다.
그렇다면 녹차를 만들려면 찻잎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찻잎을 그대로 방치하면 산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찻잎을 따자마자 곧바로 산화를 막는 과정을 거친다. 찻잎의 산화효소는 열에 약하므로 싱싱한 찻잎을 볶거나, 덖거나, 찐다. 따라서 제조과정 중 성분의 변화가 거의 없다. 때문에 엽록소를 상당히 함유하고 있어 녹차는 은은한 녹색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한편 홍차와 녹차의 중간인 우롱차는 찻잎을 홍차보다 덜 시들게 한 후 더 이상 산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녹차와 마찬가지로 볶거나 덖는다. 우롱차는 홍차의 붉은 갈색에 가깝고 향기는 녹차에 가깝다.
녹차의 카페인은 몸에 괜찮을까
흡수 속도 더디고 신경 흥분 사라진다
카페인은 녹차를 비롯한 차 외에도 커피, 초콜릿, 콜라 등 다양한 식품에 함유돼 있다. 이 중에서 카페인에 대해 가장 많이 들먹이는 식품은 커피다. 그리고 녹차 카페인은 건강에 나쁘지 않지만, 커피는 그렇다고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의 카페인과 차의 카페인이 다르기 때문일까.
커피에 카페인이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1820년에 알게 됐다. 그리고 차의 카페인은 1827년에 분리됐다. 이 둘은 화학적으로 같은 물질이다. 따라서 커피와 차의 카페인의 종류가 달라서 커피는 해롭고 차는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양의 차이 때문일까. 녹차 1잔(약 1백mL)에 20-30mg 정도로 함유돼 있다. 그리고 커피에는 70-1백mg 정도다. 따라서 녹차는 카페인의 함량이 적어서 인체에 카페인이 미치는 영향이 작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 차에는 카테킨을 비롯한 폴리페놀성 화합물이 함유돼 있다고 했다. 그런데 카테킨은 카페인과 결합해 위장에서 카페인의 빠른 흡수를 억제한다. 따라서 실제로 차를 마셨을 때 카페인이 우리 몸에 흡수되는 양은 줄어들게 된다.
이 외에도 차에 함유된 아미노산의 일종인 데아닌이 카페인의 효과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데아닌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의 뇌파 지표인 알파파를 낸다고 밝혀졌다. 데아닌은 카페인에 의한 뇌 내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의 상승을 억제해 흥분을 억제하고 혈압저하 작용을 나타낸다.
카페인은 중추신경계에 대한 자극제로 작용한다. 이는 카페인이 신경전달물질의 체내 합성과 분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심장 근육에 직접 작용해 심장 박동을 늘리고 심장 수축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카페인은 가슴을 뛰게 하는 증상을 일으킨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뛰고 잠을 못 이룬다면 이제 차를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티백차도 효능을 발휘할까
화학성분 비슷, 품질은 다소 떨어져
차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맛있게 우려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차는 우려내는 온도, 시간, 차의 종류, 물, 다관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잎차의 경우 주로 다구를 이용해 우려내는데, 끓인 물을 약간(70-80℃로) 식혀서 차를 넣고 1-3분 정도 우린다.
특히 고급 녹차일수록 낮은 온도에서 우려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은 용해도가 높아 비교적 저온에서도 잘 우러난다. 하지만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 성분은 용해도가 낮아 고온에서 잘 우러난다. 때문에 고급 녹차일수록 많이 포함되는 감칠맛의 아미노산 성분을 즐기려면 저온에서 은은하게 녹차를 우려내야 한다. 그러면 떫은맛은 적고 감칠맛이 우수한 차를 즐길 수 있다.
우롱차나 홍차와 같이 발효된 차는 녹차보다 높은 온도에서 짧게 우려야 맛과 향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다. 차를 우려내는데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다구(茶具)다. 하지만 실제로 같은 차를 같은 조건에서 우려낼 때 다구에 따라 차의 색상과 맛과 향 모두 큰 차이를 낸다.
예를 들어 녹차와 같이 발효가 되지 않은 차는 찻잎 성분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보온력이 강하면 떫은맛이나 쓴맛을 내는 성분이 많이 용출된다. 따라서 사기류보다는 청자나 백자와 같은 보온력이 떨어지는 자기류를 사용해 차를 우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롱차나 홍차같이 발효된 차는 보온력이 강한 사기류가 적당하다.
잎차를 간편하게 즐기려면 머그잔이나 커피메이커를 이용하면 된다. 머그잔, 유리컵, 찻잔 등에 찻잎을 넣고 1-2분 우리고 찻잎이 가라앉으면 그대로 마실 수도 있다. 원두커피용 커피메이커를 이용해 필터 위에 차 잎을 놓고 물을 부어서 마실 수 있다.
잎차의 경우 다 우러난 후 따로 찻잎을 걸러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
그래서 요즘은 티백차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티백용 차는 용출율(차의 성분이 물에 우러나는 정도)을 높이고 티백에 넣어 포장하기 위해 제조된 찻잎을 잘라서 포장한다. 때문에 잎차보다 우려내는 시간을 줄여야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다.
차 속에 함유된 화학성분은 잎차와 티백차 사이에 현저한 차이는 없다. 그러나 잎차용 차는 이른 봄에 새로 난 차 싹을 채취해 제조한다. 따라서 비교적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고급차로 이용되지만 수확량이 적고 가격이 비싸다.
티백용 차는 일반적으로 잎차용 차를 수확한 후에 다시 올라오는 차 싹과 싹 아래 두번째 잎까지 수확한다. 싹만 채엽했을 때보다 수확량이 많아 가격 부담이 덜하다. 대규모의 다원에서는 이른봄부터 초여름까지 수확하는 찻잎을 적정 아미노산 함량이 유지되도록 혼합해 티백을 제조하기 때문에 잎차에 비해 맛과 품질, 효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차는 따뜻하게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특수한 제법으로 제조돼 찬물에도 잘 우러나는 녹차가 있다. 찬물에 녹차를 우리면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은 잘 우러나지만 상대적으로 카테킨을 포함한 폴리페놀류가 적게 빠져나온다. 따라서 떫지 않고 감칠맛과 단맛이 있는 새로운 느낌의 차를 즐길 수 있다.
한편 뜨거운 물에 녹차를 우리면 아름다운 연녹색의 물이 식으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차의 폴리페놀 성분이 서서히 산화되기 때문인데 녹차의 효능이나 맛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는?
아일랜드인 하루 4잔, 한국인 20일에 1잔
전세계의 사람들은 1인당 하루 평균 약 1백20mL의 차를 마신다. 하루에 한잔을 마시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라마다 차이는 어떨까.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국민은 아일랜드인으로 하루에 4잔을 마신다. 영국인은 3잔, 일본인은 1.3잔, 미국인은 반잔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 민족은 7세기에 음다 풍속이 자리잡고 있었음이 여러 사료에서 확인된다. 기록상 나타난 녹차의 전래는 삼국사기에 신라 선덕왕(A.D. 632~647) 때부터라고 기록돼 있다. 차 재배가 시작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A.D.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게 한 이후부터로, 그 곳 사찰을 중심으로 전파됐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61년 신라 문무왕 때 가야의 종묘에 시절 제사를 지내는 음식으로서 떡, 밥, 과일 등과 함께 차(茶)가 놓였다고 한다.
이처럼 녹차는 삼국시대부터 국내에 전래돼 1천년 이상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 석굴암 본존불 오른쪽 벽면에 있는 문수보살의 손에는 찻잔이 들려있다. 이는 차가 생활의 일부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차가 가장 먼저 전래된 나라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는 오늘날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양을 마신다. 우리나라 국민은 20일만에 겨우 한잔의 차를 마시고 있다.
전통적으로 구미인들은 거의 대부분 홍차를 마신다. 홍차에 비해 녹차의 소비량이 극히 미미한 미국의 경우, 1999년의 녹차와 녹차추출물의 소비량이 전년 대비 무려 1000%나 증가했다.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시험관에서, 또는 실험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연구돼온 녹차의 효능에 대한 연구결과 때문이다.
5천년 동안 인류가 음용해왔고, 화려한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간의 전쟁과 새로운 나라의 탄생과 독립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차. 이제 그 효능의 비밀이 현대과학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녹차의 효능에 대해 전문 의학잡지에 보고되는 연구논문은 매년 수백편에 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녹차는 자연이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녹차는 우리의 육체적 건강에 주는 효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바로 우리 마음의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문화의 매개체라는 점이다.
이제 내년 봄이면 겨우내 움추렸던 차나무 가지에 향기로운 차 싹이 피어나고 차의 계절이 시작된다. 한잔의 녹차를 마심으로써 찌들고 피폐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에 활력과 풍요를 주고, 이제는 잊혀진 우리의 차 문화를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