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진공청소기가 발명된지 1백년째 되는 해다. 1901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진공청소기는 당시 집안 일에 힘들어하던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가정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몰았다. 지금은 어떨까.
진공청소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국의 발명가 세실 부쓰다. 그때만 해도 기원전 2천3백년 전부터 사용된 빗자루가 청소대장이었다. 부쓰는 어느날 미국인 발명가가 만든 청소기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그 청소기는 강한 바람을 내뿜는 모터를 사용해 먼지와 쓰레기를 집진기 안으로 불어넣는 장치였다. 부쓰는 이 장치를 보면서 공기를 내뿜는 게 아니라 빨아들이는, 요즘과 같은 진공청소기를 생각했다.
사교계의 자랑거리가 되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그랬듯 부쓰도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사용했다. 진공청소기를 만들기에 앞서 그는 의자에 먼지를 뿌린 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 위에 손수건을 고정시켜놓은 후 입으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손수건을 뒤집어보자 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 물론 그는 많은 먼지를 들이마셔야 했다.
이런 실험을 거쳐 그는 1901년 ‘부쓰식 진공청소펌프’라는 흡입식 청소기를 개발했고, 그해 8월말 특허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이 청소기는 우리 가정에 있는 조그마한 청소기가 아니었다. 마차에 펌프를 장치한 거대한 기계였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도 진공청소기를 움직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여러명의 건장한 어른이나 말이 진공청소기를 끌고 다녔다.
부쓰의 ‘진공청소대원들’은 청소펌프를 끌고 영국 런던의 상점이나 호텔, 부잣집, 거리 등을 돌아다니며 광고를 했다. 직접 진공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하면서 청소펌프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주기도 했다. 곧 진공청소펌프에 대한 이야기는 런던에 퍼졌고, 당시 사교계의 부인들은 응접실에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광경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부쓰의 진공청소기가 결정적으로 히트를 친 것은 만국박람회와 영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덕분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부쓰는 영국 왕실로부터 제1회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런던의 수정궁을 청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수정궁에 근무하던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려 자꾸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왕실은 수정궁 안에 먼지가 너무 많아 병이 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의 손만으로는 그 많은 먼지를 청소하기 어려웠다.
부쓰는 진공청소펌프를 이용해 수정궁 안의 엄청난 먼지를 모두 빨아들였다. 먼지와 함께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도 사라졌다. 당시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참석했던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국가 원수들은 진공펌프의 엄청난 위력을 눈으로 보고는 자신들도 그 청소기를 갖고 싶어 부쓰에게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기침 때문에 발명된 휴대용 청소기
첫 진공청소기는 부쓰가 만들었지만, 현재 우리가 집에서 쓰는 청소기는 미국의 제임스 스팽글러가 처음 개발했다. 그는 늘 기침에 시달렸는데, 자신의 기침이 먼지 때문이라 생각하고 먼지를 빨아들이는 휴대용 진공청소기를 발명했다. 이 진공청소기는 지금처럼 직접 끌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스팽글러의 진공청소기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의 친척인 윌리엄 후버 덕분이다. 스팽글러에게서 진공청소기의 특허권을 산 후버는 뛰어난 상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직원들이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해 시범을 보이게 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모든 먼지와 모래알은 후버가 남김없이 가져갑니다’라는 광고노래까지 만들었다. 또 진공청소기를 많이 팔기 위해 집안에 엄청나게 많은 먼지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후버 덕분에 가정용 진공청소기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에 처음으로 진공청소기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웬만한 집에는 진공청소기가 한대씩 있을 정도로 생활필수품이 됐다. 기업들은 진공청소기가 여성의 집안일을 줄여주고 집안을 깨끗하게 해준다고 광고한다. 진공청소기는 정말로 여성의 가사 부담을 덜어줬을까.
세탁기 등 많은 가전제품이 가사부담을 덜어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사부담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연구가 많다. 세탁기 덕분에 ‘옷 하나를 빨래하는 수고’는 줄었지만 옷을 여러번 빨래하게 되고 입는 옷도 더 늘어나, 전체적인 빨래의 양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다.
진공청소기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많다. 예전에는 카페트를 털고 햇볕에 너는 일은 남자의 일이었지만 진공청소기가 나오면서 그 일이 고스란히 여자에게 넘어왔다. 또 진공청소기가 나오면서 여성에게 ‘깨끗한 집에 대한 요구’가 강해진 것도 여성들에게 청소에 대한 부담을 늘렸다. 우리나라처럼 물걸레 청소가 많은 곳에서는 진공청소기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진공청소기가 나오면서 남자들도 쉽게 청소를 하게 됐고, 집안 환경이 좀더 위생적으로 바뀐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진공청소기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진공청소기는 형태에 따라 캐니스터, 업라이트, 드럼, 핸디형 등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캐니스터형은 우리 가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진공청소기다. 본체, 호스, 파이프, 솔 등으로 구성되며, 마루바닥이나 장판을 청소하기에 적합한 청소기다. 캐니스터형은 솔의 회전 없이 빨아들이는 힘만을 이용해 청소하기 때문에 표면의 먼지나 카페트 위의 부스러기를 청소하기는 쉽지만, 카페트 속에 들어 있는 잔모래 등은 청소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영국에 많은 업라이트형은 카페트가 깔린 넓은 공간을 청소하기 쉽다. 솔이 회전하면서 카페트 깊숙이 박혀 있는 먼지를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청소기가 먼지를 먹어치운다. 캐니스터형에 비해 먼지를 2배나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
드럼형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일반 가정보다는 가게에서 많이 사용한다. 뿜어들이는 공간이 넓어 먼지뿐만 아니라 낙엽, 휴지 등 커다란 쓰레기와 액체도 빨아들일 수 있다. 요즘에는 세제가 내장돼 있는 청소기도 있어 청소할 부위에 세제를 부어 표면을 깨끗하게 닦아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핸디형은 자동차에서 흔히 사용하는 있는 청소기로, 한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어 좁은 공간을 청소하는데 사용된다.
홈로봇으로 탈바꿈
집안에 있는 먼지나 모래를 청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공청소기는 이제 가정을 나와 연구소나 공장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대 입자물리학의 꽃인 가속기도 진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꿈이었다. 가속기는 전자, 양성자 등 다양한 입자를 거대한 원형 링 안에서 돌린다. 이 링 안은 진공중의 진공인 ‘극진공’ 상태로 유지된다. 전자가 공기 속에 있는 입자와 부딪히면 바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진공이란 공기 분자의 수가 주위보다 아주 적은 상태다. 공기 분자가 적을수록 압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주변의 공기가 진공 쪽으로 빨려들어간다. 지구 위의 대기압은 7백60토르(torr)며, 진공청소기 안은 약 6백토르 정도다. 바로 이 기압차를 이용해 먼지를 빨아들인다. 가속기 안은 무려 1백억분의 1토르다. 이런 진공을 만들기 위해 가속기에서는 먼저 고속 펌프로 공기를 빨아들인 뒤 뜨거운 불꽃으로 가속기 안을 깨끗하게 태워버린다.
반도체도 진공이 필요하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실리콘 위에 박막을 입혀야 하는데, 이 작업은 반드시 진공 상태에서 해야 한다. 미세한 먼지가 붙을 위험이나 공기 중에서 산화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가 잘 먹는 라면도 습기를 없애기 위해 진공 안에서 만든다. 라면을 오래 둬도 잘 눅눅해지지 않는 것은 진공 상태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진공청소기는 1백주년을 맞아 이제 로봇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홈로봇의 중요기능 중 하나가 바로 청소다.
외국에는 이미 청소로봇이 시장에 나와 있다. 미국 P로보틱스사가 만든 청소로봇 ‘싸이’(Cye)는 컴퓨터로 집안 구조를 그린 지도 위에 청소할 위치를 지정해주면 스스로 그곳을 찾아가 청소한다. 로봇이 컴퓨터와 무선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8백달러(1백여만원)로 비싼 편이다. 영국 다이슨 사가 만든 청소로봇 ‘DC06’은 현재 팔리고 있는 청소로봇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 청소를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할 수 있어 똑같은 장소의 청소를 시키면 “이미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전후좌우뿐만 아니라 원운동을 할 수 있어 방 한가운데 두면 나선을 그리며 방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로봇 안에 50개의 센서가 들어 있어 장애물도 척척 피한다. 이 역시 값이 3천5백달러(4백20여만원)으로 너무 비싼 것이 흠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청소부 로봇이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우리기술이라는 벤처기업이 지난 5월 공동 개발한 홈로봇 ‘아이작’은 진공청소기를 갖추고 있다. 주인이 “청소해”라고 명령하면 스스로 먼지나 과자 부스러기를 빨아들인다. 요즘에는 마루에서 “안방을 청소해”라고 명령하면 안방을 찾아가 청소하는 기능까지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은 인터넷과도 연결돼 있어 회사에서 “집에 갈 때까지 청소해”라고 명령하면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청소를 마쳐놓고 기다린다. 미래에는 우리가 시키지 않아도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 청소부 로봇이 집안을 깨끗하게 치워놓고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개발된 청소로봇은 아직 값이 비쌀 뿐 아니라 문턱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쓰기 어렵다. 걸레질도 할 수 없어 ‘반쪽짜리’ 청소에 그친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걸레질은 물론 집안 구석구석 어디서나 갈 수 있는 ‘한국형 청소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진공청소기 어떻게 작동하나
진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텅 비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는 공기 분자가 있지만 진공에는 공기 분자가 거의 없다. 공기 분자가 없기 때문에 진공은 주위보다 기압이 낮고, 바깥에 있는 공기가 진공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진공청소기는 청소기 내부에 진공을 만들고, 진공이 갖고 있는 ‘빨아들이는 힘’을 이용해 먼지를 없앤다. 먼저 모터를 이용해 청소기 내부에 있는 임펠러(추진기)를 돌린다. 임펠러를 따라 주위의 공기도 같이 회전하면서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 공기는 원심력에 의해 바깥쪽으로 몰리게 된다. 즉 안쪽 부분에 공기 분자가 적어지면서 진공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진공력’이 생기며, 이 힘이 공기 중의 먼지를 빨아들인다.
진공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간 먼지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걸러지며, 깨끗한 공기만 모터를 냉각시키면서 다시 바깥으로 배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