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는 아마도 발명가일 것이다. 발명 이야기처럼 공상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적합한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줄거리가 주인공이 공들여 발명한 발명품이 우여곡절을 거쳐 빛을 본다는 이야기이지만 그 반대로 발명가들의 일확천금에 대한 꿈을 경고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한 발명가가 전 재산을 주고 마술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신비의 약’을 구입한다. 그가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약을 산 이유는 간단했다. 전세계에서 원유가 생산되는 지역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직접 과거로 올라가 원유를 생산한다면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술사가 준 약을 먹고 과거에 도착한 그는 유전지대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원유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나 유전을 개발해 거부가 되려던 그의 꿈은 엉뚱한 일로 실패한다. 그가 도착한 시대에는 펌프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땅 속 깊이 묻혀 있는 원유를 퍼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화기술 없을 때 사진기 발명
발명가의 좋은 아이디어가 실용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당대의 기술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지 못하거나 발명품의 문제점을 당장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든 발명품 중 하나인 사진기도 발명 초기에는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최초의 사진기는 19세기 초 프랑스의 니엡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인데, 사진에 찍힌 피사체의 형체가 뚜렷치 않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빛의 노출시간을 조절하는 셔터도 발명되지 않아 노출시간이 무려 8시간이나 됐다. 이 사진기로 태양을 찍으면 사진찍는 8시간 동안에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므로 2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풍경은 그런대로 찍을 수 있었지만 사람을 찍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모델들은 카메라만 보면 도망갔다. 현재와 같은 사진 인화기술은 니엡스가 죽은 8년 뒤, 프랑스의 화가 다게르에 의해 발명됐다. 다게르의 인화기술이 없었더라면 니엡스는 희안한 물건을 발명한 사람으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헬리콥터의 아이디어를 창안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하늘을 올라갈 만큼의 회전력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이 아이디어는 단지 재미있는 공상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번개 잡아 어디에 보관하나
현재 일부 발명가는 레이저를 이용해 벼락을 잡는 기술을 연구중이다. 일반적으로 벼락은 한번에 1-2천만kw의 에너지를 방출하므로 벼락을 효율적으로 잡아 저장한다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는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이 엄청난 에너지를 순식간에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간단하지 않다.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12볼트짜리 배터리의 크기를 보면 1-2천만kw를 저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규모의 저장장치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벼락을 잡는 기술보다 저장 기술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정부나 대학의 대규모 연구기관이 아닌 개인 발명가가 개발 우선 순위를 혼동한다면 파산하기 십상이다.
발명가들의 약점 중 하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불가능한 이유를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극구 변명하는 것이다. 자신이 개발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왜 실용화가 어려운지를 따져보지는 않고 발명품을 채택하지 않는 사회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다.
발명가들의 선지자적인 아이디어가 후대에 실용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당대에 접목될 수 없는 기술과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아이디어는 결국 사장될 수밖에 없다. 발명가는 현재의 기술들이 모여서 새로운 기술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이해하고당대에 맞는 최선의 아이디어를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가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발명가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