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관련된 속담이나 이야기를 접할 때 ‘왜 하필 거기에 빗댈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그냥’생겨난게 아니다. 과학적으로 충분히 따져볼 수 있는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사시나무 떨듯 떤다
잎몸보다 잎자루가 긴 잎의 구조
누군가 심한 공포나 두려움으로 온몸을 벌벌 떨고 있을 때, 또는 추위로 인해 이빨이 부딪칠 만큼 떨릴 때 우리는 흔히 ‘사시나무 떨듯 떤다’는 표현을 쓴다. 왜 하필 사시나무에 비유하는 것일까.
사시나무 잎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일반적인 잎의 구조에서 잎몸과 줄기를 연결하는 잎자루는 잎몸 하단에 짧게 붙어있다. 하지만 사시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길다랗고 가는 잎자루를 갖고 있으며, 사시나무의 잎은 이런 잎자루의 끝자락에 ‘탄력적으로’ 매달려 있다. 결국 미풍이나 산들바람에도 파르르 떨며, 센바람은 물론 약간의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시나무의 생존에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시나무가 보통 자라는 곳은 햇빛에 많이 노출된 지역이다. 한낮 동안 잎의 온도는 쉽게 상승하기 마련. 잎의 양도 많기 때문에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해야 한다. 결국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잎은 과도하게 달궈진 잎의 열을 식히는 동시에 뿌리로부터 잎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생존의 한 방식이 아닐까.
거목 밑에 잔솔 크지 못한다
소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독성물질
훌륭한 부모 밑의 자식이 되레 치어서 잘 되지 못할 경우, 또는 뛰어난 연장자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빛을 발하지 못할 경우를 빗대 ‘거목 밑에 잔솔 크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왜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큰 나무의 그림자가 햇빛을 가려서 잔솔의 생장을 방해하는 것일까.
식물의 뿌리에서 나오는 독성 화학물질에서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마치 동물이 소변이나 몸의 분비물질을 이용해 자기의 영역을 표시해놓으려는 것처럼, 식물도 일종의 자기 영역을 형성하려는 행동의 일환으로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예를 들어 가래나무나 소나무는 스스로 설정한 영역 안에서 딴 식물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갈로탄닌’이라는 화학물질을 뿌리에서 분비해낸다. 이 물질의 독성은 주변에 있는 다른 식물들의 발아를 억제하고 생장을 저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큰 나무를 베어내고 나면 어느새 수많은 식물들이 싹을 틔운다. 평화롭고 조용히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식물들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쑥대밭이 됐다
불모지가 옥토로 변신
방안이 난장판일 때 우스갯소리로 ‘내 방 쑥대밭 됐어’라는 표현을 쓴다. 쑥대밭은 왜 망가지고 폐허가 됐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일까.
쑥은 강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양지바른 풀밭에서 잘 자라나지만, 건조하거나 추운 날씨에도 잘 적응한다. 이런 이유로 쑥은 빈 공터나 휴경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에도 가장 먼저 돋아난 것이 바로 쑥이었다고 한다. 버려진 땅, 폐허의 땅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다고 해서 쑥대밭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쑥의 진수는 이때부터 발휘된다. 불모지에 뿌리를 내린 후 주위의 수분을 흡수해 습한 환경을 꾸미고 자신의 사체를 드리움으로써 땅에 양분을 공급한다. 쑥은 스스로 만든 환경에서는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식물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특성이 있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이 쑥대밭이 된 후에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폐허 후 희망을 꿈꾸는 것은 바로 이런 쑥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까.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심는다
함과 장롱 만들기 좋은 재질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다’는 옛말이 있다. 딸과 오동나무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런 말이 생겨난 것일까.
오동나무의 쓰임새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동나무는 함이나 장롱 등의 가구를 짜기에 제격이다. 재질이 연하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휘거나 트지 않으며, 곰팡이나 세균이 생기지 않고 습기에도 잘 견디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동나무는 장롱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문서를 기록한 보존서의 보존함으로 애용되고 있으며, 음색의 변함이 없어 가야금, 거문고 등 국악기의 재료로 쓰일 만큼 요긴하다. 또한 오동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생장이 매우 빠른 대표적인 속성수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목재의 절대량이 부족한 경우 많이 심으면 조림의 확대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하는 나무다.
옛말의 속뜻은 이런게 아닐까. 딸을 낳은 후 오동나무를 심으면 딸이 혼인할 즈음엔 그 오동나무가 쓸만한 재목으로 자라게 된다. 그러면 오동나무를 베어 함과 장롱을 만들어 딸을 시집보낸다는 것.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전해 내려오는 옛말 하나하나에 묻어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대밭에서 쉴 때는 모자를 죽순 위에 걸어놓지 말라
죽순의 빠른 생장속도 빗대
어떤 일이 일시에 많이 생겨날 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는 말을 즐겨 쓴다. 이 말은 어떤 근거로 생겨난 것일까.
죽순이 땅을 뚫고 나올 때 가장 반가운 존재는 다름 아닌 ‘비’다. 죽순은 수개월 동안 땅속에서 자라다가 비가 오면 땅을 뚫고 나오면서 줄기차게 자라난다. 하루에 보통 15cm씩 자라는 것은 기본이며, 많게는 무려 80cm가 자라는 경우도 있다.
‘대밭에서 쉴 때는 모자를 죽순 위에 걸어놓지 말라’는 옛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잠시 죽순에 모자를 걸어놓고 쉬고 있는데, 그동안 죽순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 모자를 내리지 못할 정도의 높이까지 커버린다는 것.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죽순의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죽순의 생장기간인 한달 정도가 지나면 대략 5-6m까지 자란다. 참나무나 소나무라면 약 15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높이니, 실로 엄청난 생장속도다. 이후 생장이 멈추면 파릇파릇한 초록빛 속살을 뽐내며 꼭대기부터 껍질을 벗고, 여기에서 잎이 펼쳐지면 대나무가 된다.
죽순이 빨리 자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죽순에는 생장점이 온몸에 흩어져 있어 길이생장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 식물들의 생장점이 줄기 끝에만 분포하는 것과 비교하면 빨리 자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