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자살 테러 여객기가 연이어 충돌한지 얼마 되지 않아 1백10층 건물이 폭삭 주저앉으며 잿더미로 변했다. 순간 전세계인은 충격과 공포에 떨었다. 이제 냉정한 마음으로 만일에 대비해 그 원인을 밝혀보자.
9월 11일 오후 9시 45분(미국동부시간으로 오전 8시 45분) 세계무역센터 북쪽건물에 첫번째 여객기(AA11)가 충돌했다. 20분 후 화재로 불타는 북쪽건물 뒤로 또다른 비행기(UA175)가 나타나더니 남쪽건물에 다시 충돌했다. 1백10층짜리 쌍둥이 건물이 모두 커다란 화염에 휩싸였다.
수백명의 소방관과 구조대원이 건물에 투입됐다. 화재에 견디지 못한 몇몇 사람은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충돌 후 45분만에 갑자기 남쪽건물이 붕괴됐다. 더구나 순식간에 위쪽부터 차례로 무너졌다. 미 CNN 생방송에 출연한 한 전문가가 “세계무역센터는 이런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설하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야말로 폭삭 주저앉았다. 북쪽건물도 충돌 후 1시간 45분만에 무너져내렸다. 왜 그랬을까. 충돌한 비행기 한대의 위력이 얼마나 컸길래 지진이나 강풍에도 견딘다는 마천루가 무너졌을까.
화재가 결정적 역할
TV를 통해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모습을 지켜보던 여러 사람들은 거대건물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건물에 부딪친 비행기가 준 강력한 힘 때문에 일부 층이 붕괴됐고 이 여파로 인해 아래쪽으로 힘이 가해져 차례로 무너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비행기가 충돌한 힘은 아무래도 건물 전체를 붕괴시키기에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지하에 폭탄을 설치해 건물을 폭파시킨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마치 건물폭파공법을 사용했을 때처럼 건물이 옆으로 쓰러지지 않고 폭삭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폭파공법은 기본적으로 건물의 자체 무게를 이용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로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그래서 지하에 폭약을 설치하기보다 예를 들어 2개층마다 기둥에 폭약을 설치한 후 위층에서부터 터뜨린다. 하지만 실제 국내외 건축전문가들은 “화재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화재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먼저 1백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가 어떤 구조였는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각광받던 세계무역센터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현대건축물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는 대표적인 철골구조물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철골이 중심이 된 ‘튜브구조’ 건물이었다.
가운데 코어부분에는 철근을 비교적 촘촘히 수직으로 세운 후 콘크리트로 보강했다. 즉 엘리베이터가 있는 코어부분은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건물 외곽으로는 1m 간격으로 촘촘히 철골기둥을 세웠다. 코어와 외곽 사이에는 바닥과 나란하고 코어에서 외곽을 향하는 방향으로 철골을 연결시켰다. 전체적인 건물 모양이 안쪽 코어를 제외하면 별다른 버팀 기둥이 없기 때문에 속이 빈 튜브가 연상된다. 이런 튜브 구조는 강풍이나 지진과 같은 가로방향의 힘에 강하고, 사무실로 활용할 수 있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초고층건물에 자주 사용돼 왔다. 철골 튜브 구조인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게 된 단서는 충돌한 비행기가 아니라 건물재료로 쓰인 철이다. 철은 지진이나 바람과 같은 외력에 강하지만 화재로 발생하는 고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튜브 구조의 철골 고열에 약해
납치된 비행기는 건물에 부딪치며 강한 외력을 가했지만, 이 영향은 건물을 무너뜨릴 만큼 크지 않았다. 비행기에 항공기름이 있었기 때문에 화재가 일어났고 9만1천L나 되는 엄청난 양의 항공기름이 타면서 형성된 온도는 철이 녹아내릴 정도까지 높아졌다. 철은 흐물흐물해져 더이상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객기를 납치했던 테러리스트도 이런 사실을 사전에 감지해, 미국 국내선 가운데서도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까지 멀리 날아가는 여객기를 타깃으로 선정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여객기는 장거리를 날기 위해 필요한 항공기름을 대량으로 채우기 때문에, 건물에 충돌했을 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게 아닐까.
철의 강도는 5백℃에서 상온에서보다 절반으로 줄어들고, 8백℃에서는 1/10로 급격히 떨어진다. 대장간에서 철이 벌겋게 달궈져 흐물흐물해지는 온도가 바로 8백℃다. 세계무역센터를 구성하는 철, 특히 건물외곽 철골기둥과 바닥에 깔린 철이 화재로 인해 고온에서 매우 약해지면서 화재로 영향을 받은 층이 붕괴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도미노처럼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철이 8백℃라는 온도에서 쉽게 약해진다면, 오히려 1백10층짜리 초고층건물이 45분에서 1시간45분 동안 버틴 것이 더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영국 뉴캐슬대의 건축공학과 존 크냅톤 교수는 “세계무역센터가 잘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1-2시간 정도 화재에 버텨서 수천명의 사람이 건물에서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고 주장했다. 실제 철골구조는 3mm 두께로 열에 강한 재료인 질석을 겉에 씌워서 불이 나도 건물이 2시간 정도는 붕괴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세계무역센터 코어부분을 구성했던 철근콘크리트도 건물이 버티는데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소 원자폭탄 위력의 1/50
다음으로 세계무역센터가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지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다름아닌 중력이다. 중력은 사람이나 물체를 땅 위에 묶어두고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게 하는 힘이다. 뿐만 아니라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원인이 되는 힘이다.
세계무역센터는 건물외곽이 철골기둥 61개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 철골기둥은 자신의 무게를 비롯해 바닥무게의 절반을 떠받친다고 한다. 건물중앙에 있는 코어도 자신의 무게 이상을 지탱했다. 바닥무게의 절반, 엘리베이터와 다른 기계장치까지 버틸 수 있었다. 또한 코어와 외곽철골기둥을 강철 트러스가 묶어주었다. 하지만 엄청난 화재로 인해 온도가 8백℃까지 올라가자 철골은 매우 약해졌고 더이상 자신의 무게도 떠받치기에 버거워져 결국 바닥이 무너졌다.
바닥이 무너지면 위에 있던 부분의 무게는 그만큼 운동량을 얻게 된다. 각층의 바닥이 무너짐에 따라 더 많은 무게가 아래 바닥으로 돌진하고, 운동량은 엄청나고 빠르게 증가한다. 수학적으로 운동량은 중력가속도와 함께 건물 높이와 무게의 함수가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와스모어대 물리학과의 프랭크 모스카텔리 교수가 비행기 충돌에서부터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기까지 발생한 총에너지를 계산한 결과, 이 에너지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위력의 1/50 - 1/20 정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위치에너지가 가장 파괴적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붕괴될 때까지 관여한 에너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선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관련된 것일까. 이에 대해 모스카텔리 교수는 크게 세가지를 언급했다. 두대의 여객기가 건물까지 비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운동에너지, 항공기름이 폭발하면서 생긴 에너지, 그리고 건물이 무너지면서 생긴 중력 위치에너지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건물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중력으로 인해 생긴 위치에너지가 가장 파괴적이었다. 모스카텔리 교수는 “중력 위치에너지가 세 에너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건물의 커다란 무게와 높이 때문”이라며, 세계무역센터가 파멸한 원인이 바로 “건물의 웅대함”이라고 주장했다.
수치를 대입해 모스카텔리 교수가 계산한 이들 세가지 에너지의 결과를 보자. 이 가운데 여객기 두대의 운동에너지가 1.9×109J(줄, 일과 에너지의 단위로 1J은 1N의 힘으로 물체를 1m 움직이는 동안에 하는 일에 해당한다), 두대에 실린 항공기름이 타면서 생긴 에너지가 6.9×1010J, 건물 두채와 나머지 다른 붕괴로 인한 중력 위치에너지는 6.8×1011J이었다(이들 계산수치는 약 25% 이내의 정확성을 갖는다고 한다). 이것은 TNT 2백t이 폭발할 때와 맞먹는 에너지라고 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TNT 1만t에 상당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세계무역센터 건물 붕괴와 관련된 에너지는 적어도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50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여객기 충돌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고, 대량의 항공기름이 불타면서 온도가 8백℃까지 올랐으며, 일단 이 온도에서 철골구조가 녹아버리자 건물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붕괴된 층이 충돌과 화재에 영향을 받지 않은 층에 급진적으로 강한 힘을 가해 건물 전체가 폭삭 주저앉게 됐던 것이다.
붕괴로 발생한 지진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졌을 때 주위에 다른 영향은 없었을까. 먼저 무너진 건물이 땅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 소규모의 지진과 비슷한 진동이 주변 지역에 발생했다. 이것은 맨해튼 북쪽 34km 지점에 있던 뉴욕 팰리새즈 지진연구소에서 관측했던 사실이다. 남쪽과 북쪽 건물이 무너질 때 리히터 규모로 각각 진도 2.1과 2.3의 ‘지진’이 기록됐다. 이 규모는 어떤 사람도 느낄 수 없는 정도다.
또한 전형적으로 땅 속 수km에서 발생해서 에너지가 사방으로 펴져나가기 때문에 먼 거리까지 전파되는 지진과 달리 이번 붕괴로 인한 에너지는 매우 좁은 지역에만 집중됐다. 붕괴 에너지의 대부분은 건물 자체를 파괴시키거나 파편을 구름처럼 발생시켰다. 놀랍게도 여객기가 건물에 부딪칠 때 생긴 충격이 땅을 흔들었고, 리히터 규모로 진도 0.7과 0.9의 지진으로 각각 기록되기도 했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질 때 충격파가 발생했는데, 이것은 마치 거대한 폭발과도 같았다. 건물이 수직으로 붕괴됐기 때문에 이들 충격파는 반경 2백m 정도에 제한됐다고 한다. 이 지역 내 구조물은 ‘힘(load)의 재분배’를 겪게 되고 장차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떨어진 파편에 직접 맞은 건물은 조속히 안전하게 구조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붕괴할 때 생긴 충격파가 화재와 함께 47층짜리 7번 건물(7WTC) 붕괴의 원인이 됐다. 7번 건물은 세계무역센터에 속하는 건물로 1백10층 건물로부터 1백m 떨어져 있다. 물론 충격파가 7번 건물을 약화시킨 반면, 화재가 47층 건물 붕괴의 궁극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9백-1천℃ 온도에서 철골이 녹아서 건물이 붕괴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핵발전소도 감당 못해
그렇다면 미래에는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건물을 이번 테러와 유사한 공격에 견딜 수 있게 설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진 이유가 화재로 인해 철골구조가 약해진 때문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렇다면 바닥과 벽에 이전보다 화재에 강한 소재를 사용할 경우 화재가 번지는 속도가 느려지고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좀더 효과적으로 대피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는 콘크리트가 유리나 철에 비해 화재에 강하다. 외벽 구조는 좀더 두텁게 해야 한다. 세계무역센터가 건설될 당시에는 콘크리트가 너무 무거워 1백10층짜리 건물을 만드는 재료로 실용적이지 못했다. 최근에는 좀더 강한 콘크리트가 개발됐는데, 이것이 바로 철근콘크리트다. 철근콘크리트는 초고층 건물의 재료로 선택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미래 건물 설계는 비용에 의해 제한될 것이다. 테러에 강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핵발전소와 같은 건물을 지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행기가 외벽을 뚫을 수 없고 화재가 퍼지지 않을 수있다. 단 이번 여객기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콘크리벽 두께가 특수하게 10m 이상은 돼야 한다. 보통 핵발전소는 벽 두께가 약 1.2m로 5t짜리 경비행기의 충돌 정도까지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이런 참사를 막는 일이 최선이라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1백10층처럼 높은 건물을 또다시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건물이 붕괴되는데 원인을 제공한 요인은 화재였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데는 초고층건물의 덩치(무게)가 가장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