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오전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여객기를 이용한 동시 다발테러가 발생했을 때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등 비상시 미국을 움직여야 할 주요 인물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가 조금 못돼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한 초등학교로 가는 차량 안에서 무역센터에 대한 테러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연설을 마친 뒤 곧바로 사라소타의 브래든턴 국제공항으로 향했고, 대기중이던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올랐다. 전용기는 대서양 상공에서 지그재그로 비행하다, 최종적으로 루이지애나주 스레브포트 인근의 박스데일 공군기지로 향했다. 불규칙한 비행경로는 대통령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곳에서 짧막한 연설을 한 뒤 다시 전용기에 올랐다. 전용기는 얼마동안 비행한 뒤 미국 핵군사력의 지휘소가 있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오퍼트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하늘의 백악관 에어포스 원
미국은 핵전쟁, 테러 등의 국가 비상사태시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에어포스 원이다.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은 평상시에는 대통령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역할을 하지만 비상시에는 군최고통수권자의 지휘센터로 바뀐다. 최첨단 통신장비와 암호화 시스템, 낮은 주파수로 통신할 수 있는 8km 안테나선, 특수 군사쌍방향 수신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핵미사일 사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핵가방’도 에어포스 원에 함께 탑승해 대통령은 전용기내에서 핵사용 여부를 마지막으로 결정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해 F15와 F16 전투기가 호위하며 에어포스 원 자체에 장착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가동시킨다. 에어포스 원은 그야말로 대통령의 은신처이자 창공의 ‘전자중추’다.
내부구조는 백악관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다. 맨 뒷부분에는 언론기관 등 외부 방문객을 위한 공간이 있으며, 그 오른쪽으로 보좌관과 경호원들이 쉴 수 있는 로비가 있다. 거기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특수 통신시설이 가득한 ‘중앙통제실’이 나온다. 육·해·공군 사령관에게 암호로 된 군사명령을 내리고 각 상황을 점검할 수 있는 비디오 장치가 있다. 뒤편으론 대통령 집무실과 침실, 거실 등이 있다. 창고엔 한꺼번에 2백명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저장돼 있으며 비상탈출을 위한 낙하산은 50개 정도 비치돼 있다. 만약의 사태를 위한 키세스 초콜릿 모양으로 생긴 원뿔 모양의 탈출기가 있다. 일인용(물론 대통령용)으로 착륙 이후엔 강한 신호를 보내 금방 찾을 수 있게 디자인돼 있다.
원래 전용 비행기는 1944년부터 존재했다. 다만 이름이 에어포스 원이 아니었을 뿐이다. 루즈벨트 집권 때는 ‘세크리드 카우’(신성한 소)라 불렀고, 트루먼 때는 ‘인디펜던스’라 불렀다. 아이젠하워 때는 ‘컬럼바인 Ⅱ&Ⅲ’였다. 지금의 에어포스 원이란 이름은 케네디 재임 이후부터였다. 보잉사의 보잉 747-200B's 기종을 그의 지휘 아래 세세한 사항까지 맞춤형으로 개조했다. 이후부터 에어포스 원은 강력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됐다.
에어포스 원은 하늘에 떠있어 기동성 면에서는 효과적이나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 가장 안전한 장소는 지하벙커다. 미국은 대통령과 주요 인사를 위한 지하벙커를 전국에 수개 이상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안전할 순 없다
실제로 이번 테러 사태 때 부시가 2번째로 들렀던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오퍼트 공군기지는 미국 내에서 가장 안전한 군사시설 중 하나다. 지하 수백m 아래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네브라스카 전략공군사령부는 백악관의 상황실과 비슷한 정교한 최첨단 지휘통제장비를 갖추고 있다. 벙커 주위를 수m의 콘크리트로 에워쌌기 때문에 웬만한 핵공격에도 끄떡없다.
핵전쟁과 생화학 무기전을 대비한 지하벙커는 백악관 내에도 있다. ‘대통령 비상 작전센터’(PEOC)로 알려진 이 지하 벙커에는 각 군사령관에게 직접 연결되는 ‘핫라인’이 설치돼 있어 모든 작전을 지휘할 수 있다. 핵폭탄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테러사태 때 체니 미국 부통령과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벙커로 피신해 부시 대통령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 밖에도 잘 알려진 비상 지하벙커로는 콜로라도주 체옌산속 암반 수천m 밑에 있는 북미우주항공사령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