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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철통 경계 미국 본토가 뚫린 이유

방공사령부 전투기 즉각 출격에 실패

미국에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이 다른 곳도 아닌 본토의 심장부에 테러를 당했다. 납치 여객기를 자살 폭탄으로 이용하는 시나리오도 엽기적이었지만, 미국 본토가 허망하게 뚫린 이유는 정작 무엇일까.

역사상 전례가 없는 미국 테러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참사였다는 언론의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하면서 누구에게나 떠올랐던 의아한 점이 있다. 첨단무기와 감시체계를 자랑하는 미국이 본토 그것도 뉴욕, 워싱턴과 같은 심장부에서 테러범이 납치한 ‘여객기 폭탄’에 허망하게 뚫리다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에셜론은 인 공위성과 해저광케이블을 이용 해 전세계 통화량과 인터넷 이 메일 중 90%를 무차별적으로 감청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 다. 하지만 이번 테러에서 중 요한 정보를 추적하는데 실패 했다.


에셜론 vs 스테가노그래피

먼저 정보의 실패를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미연방수사국(FBI)의 로버트 멀러 국장이 “사전에 아무런 경고도 없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 테러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은 정보당국의 가장 큰 실책이라 할 수 있다.

어째서 미국정보국은 사전에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해 어떤 경고도 하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미국이 첨단 감시체계에 너무 의존하다가 비극적인 테러계획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즉 첩보원을 통해 정보를 추적하는 일에 소홀했다는 것. 지난 2-3년에 걸쳐 미국은 발로 뛰면서 정보를 추적하기보다 앉아서 첨단장비로 정보를 빼내는데 주력했다.

실제로 미국은 기술적으로 가장 정교한 국제감시네트워크를 운영해 왔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협력해 관리중인 국제적인 감청시스템인 이른바 에셜론이 그것이다. 해저광케이블과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에셜론은 전세계 통화량과 인터넷 이메일 중 90%를 무차별적으로 감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에는 카너보(Carnivore)라는 인터넷 도청시스템을 새롭게 마련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법 집행자들에게 각종 이메일 메시지에 그물을 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컴퓨터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와 가장 관련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동 테러집단이 이런 첨단감시체계를 무력화시킬 만한 의사소통 방법을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의 감시체계는 수학적인 키를 사용해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방법에 강한 반면, 예를 들어 메시지를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란 방법에는 속수무책이란 것. 스테가노그래피는 평범해보이는 웹 이미지(포르노 이미지가 유력하다는 의견이 있다)를 구성하는 데이터에 메시지를 숨기는 방법인데, 메시지를 숨긴 곳이 어디인지 모르면 판독이 불가능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정보는 비밀리에 사람을 통해 전달했을 것이다.

헛짚은 대비 방향

다음으로는 이번 테러가 미국이 평소 대비하던 테러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이 테러를 대비하는 방향을 잘못 짚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번처럼 납치한 민간항공기를 ‘자살 폭탄’으로 사용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TV를 통해 항공기가 거대한 빌딩에 충돌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가 아니라 영화의 한장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번 비극은 심지어 할리우드 작가도 쓰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미국이 대비했던 테러는 어떤 것이었을까. 클린턴 전대통령 이래 본토를 위협하는 시나리오로 화생방무기, 즉 화학물질, 세균, 핵과 관련된 공격을 생각해 왔다. 부시 대통령은 적대국으로부터의 미사일 공격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워싱턴에 대한 사이버 테러 위협에 관심을 집중했다. 올여름에는 중국의 해커들이 코드레드와 같은 바이러스로 백악관의 서버를 공격한 일도 있었다.

실제 지난해 미국은 테러 대비 예산 가운데 1/3을 화학 테러, 생물 테러, 그리고 사이버 테러에 대항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처럼 민간항공기를 납치해 진주만을 침공하던 일본의 자살특공대인 가미가제처럼 건물에 부딪치는 ‘단순과격한’ 방법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테러의 양상이 바뀌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테러리스트의 관심은 문자 그대로 그들의 적 미국을 강타하는데 있었다. 이번 테러는 “테러리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귀기울이기를 원하지,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보안전문가의 기존 통념을 깼다. 납치된 항공기의 인질이 테러리스트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낄 여지도 남기지 않은채(실제 인질이 인질범의 인간적 행동에 감화돼 인질범의 편을 드는 심리 현상인 ‘스톡홀름 신드롬’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테러리스트는 비장한 각오로 죽음을 향해 돌진했던 것이다.

이번 테러는 테러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년 늘어났다는 최근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무성의 통계에 따르면, 10명 이상 사망자를 발생시킨 테러의 비율이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정말 테러리스트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기 원하는 것일까.

국내선에 10cm 칼날 소지 가능

이번 테러에서는 공항의 보안검색과정도 문제였다. 납치된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들 중 일부가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준 당시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비행기가 납치됐어요. 테러범들은 칼로 무장했어요.” 이것은 시어도어 올슨 미 법무차관의 부인인 바버라 올슨이 남편에게 한 전화통화 내용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를 납치하기 위해 이런 무기를 들고 탑승 수속을 밟았을텐데, 어떻게 항공보안검색관이 아무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테러리스트들이 노린 여객기는 모두 미국 국내 항공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국내선의 보안은 국제선에 비해 훨씬 허술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들은 작은 칼과 커터를 이용했다고 한다. 미국연방법에 따르면 승객은 날 크기가 10cm 정도인 칼까지 소지하고 탈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이런 법을 악용해 작은 칼을 들고 유유히 보안검색구역을 지나갔을 것이다.

또 국제선에서는 화물을 X선으로 검사하고 감지기를 이용해 폭탄을 수색하지만 국내선에는 이런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1996년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이끈 위원회가 국내선의 보안을 국제선 수준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는 권고도 무시했다. 항공사들은 짐을 옮기고 검사하는 과정이 포함되면 그만큼 탑승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허술한 보안검색을 틈타 테러리스트들은 폭탄을 갖고 탔을지 모른다. 특히 보스턴과 뉴어크(Newark) 공항은 보안검색이 허술했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행 AA11(92명 탑승)은 9월 11일 오전 7시 59분(이하 미동부시 간)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을 출발해 납치된 후 8시 45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충돌했고, 8시 14분 같은 공항을 출발한 로스앤젤레스행 UA175(65 명 탑승)는 납치된 후 9시 5분 남쪽 건물에 충돌했다. 또 9시 워싱턴 덜레 스국제공항을 출발한 로스앤젤레스행 AA77(64명 탑승)은 납치된 후 9시 45 분 펜타곤 건물에 충돌했다. 한편 샌프란시스코행 UA93(45명 탑승)은 뉴 어크국제공항을 출발해 납치된 후 10시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했다.


무력한 비행금지구역

테러리스트들은 검열에 걸리지 않고 여객기에 몸을 실었고 조종석에 가까운 자리에서 조종사를 무기로 위협해 의도대로 항공기를 납치했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뉴욕의 국제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으로 향해 돌진하는 ‘자살 비행기’를 그대로 두었을까. 한마디로 미국 방공망이 뚫렸던 것이다.

보통 서울의 방공체계를 보더라도 청와대와 같이 중요한 지점을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이 정해진다. 수도권 비행금지구역은 청와대를 중심에 두고 일정한 반경으로 그어진다. 내외곽 2단계로 구성된 이 구역은 원칙적으로 비행이 금지돼 있다. 만일 어떤 비행기가 허락없이 외곽 비행금지구역에 접근하면 공군의 중앙방공통제소(MCRC)는 군용기나 민항기 비상주파수를 통해 경고방송을 한다. 이를 어기고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하면 전투기가 투입되고 서울 안팎 고층건물옥상이나 고지대에 위치한 방공포와 대공포가 경고 사격을 실시한다. 내곽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발포해 격추시킨다. 서울은 휴전선과 가깝기 때문에 1-2분 정도에 대응할 수 있는 방공포와 대공포의 역할이 크다.

미국의 방공체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주변 1.8-3.6km에 미연방항공국(FAA)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이 있고 워싱턴 상공에도 비행금지구역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백악관 지붕에는 단거리 고성능 지대공미사일을 배치해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방공망이 이번 테러에 힘을 못쓴 이유는 무엇일까.

북미방공사령부(NORAD)가 밝힌 자료를 보면 이번 테러에서 나타난 미공군의 대응을 살필 수 있다. 북미방공사령부는 유사시에 대비해 미국과 캐나다의 영공을 모니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번 테러에서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미방공사령부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에 ‘폭탄’으로 사용된 납치 여객기를 격추하기 위해 최소 4대의 전투기를 발진시켰지만 테러를 저지하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

9월 11일 오전 8시 52분(이하 미동부시간) F15 두대가 매사추세츠주 팰머스의 오티스 공군기지에서 출격했지만, 이때는 이미 아메리칸항공(AA) 11편이 세계무역센터 북쪽건물에 충돌한지 7분이 지난 때. 또 오전 9시 5분 유나이티드항공(UA)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남쪽건물에 충돌할 때 이들 전투기는 뉴욕 상공까지 8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어 손을 쓸 수 없었다.

워싱턴의 펜타곤 테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전 9시 30분 F16 두대가 펜타곤 테러를 막기 위해 버지니아주 랭글리 공군기지에서 출격했지만, 오전 9시 45분 AA75가 펜타곤에 충돌할 때는 펜타곤까지 12분 거리에 있어 막을 수 없었다. 펜타곤이 ‘여객기 폭탄’에 테러당하자 비로소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투기에 워싱턴을 위협하는 어떤 비행기라도 발포해 격추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충돌했던 납치 여객기를 격추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지만, 그럼에도 전투기의 출동이 늦었던 이유에 대해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 지명자는 “냉전이 끝난 후 즉각적인 출격 태세를 갖춘 전투기의 수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미국 펜타곤 건물의 경우 국내선 전용인 로널드 레이건 공항이 바로 인근에 있어 비행금지구역이 좁았기 때문에 방어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만일 전투기가 제때에 출격했더라도, 자국민을 수십-수백명씩 태운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나 펜타곤으로 돌진해갈 때 과연 테러 여객기를 향해 미사일을 쏠 수 있었을까.


방공망의 개념도^중요지역 A를 중심으로 보통 두개 구역의 비행금지구역이 설치된다. 서울의 경우 정 체불명의 비행기가 b구역에 접근하면 경 고방송을 하고, b구역에 진입하면 전투기 가 투입되고 방공포와 대공포가 경고 사 격을 한다. 또 a구역에 진입하면 무조건 발 포해 격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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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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