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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분해 유산균 장까지 살아가는 비결

플라스틱이 분해된다? 요즘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간다는 광고가 자주 나온다. 이 비밀은 인체에 해가 없이 분해되는 고분자로 만들어진 캡슐에 있다. 바로 생분해성 고분자다. 이것은 썩는 플라스틱을 가능케 하고 인공 장기를 배양하는 틀에도 쓰일 수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플라스틱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 없다. 플라스틱(고분자) 제품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이처럼 고분자 제품을 많이 사용하자 문제가 생겼다. 다름아닌 사용하고 난 고분자 폐품을 처치하는 문제가 커다란 숙제로 남겨진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50% 이상이 포장 재료용으로 사용되며, 이 중 90%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골치다. 매년 1회용 고분자 제품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당연히 쓰레기를 처리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가 함께 등장했다. 즉 몇년 후면 지구상의 상당부분이 폐기된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는 날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과장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단시간에 쉽게 분해되는 고분자가 개발되고 있다. 바로 썩는 플라스틱인 생분해성 고분자다. 이것은 장까지 살아간다고 선전하는 유산균의 보호막으로도 사용된다. 물론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은 필수적이다. 또한 생분해성 고분자가 인공장기를 배양하는 틀로도 쓰인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1백년도 끄떡없는 탄소-탄소 결합

일반 플라스틱이 잘 썩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분자 제품은 조그만 분자들이 탄소-탄소 결합으로 사슬처럼 길게 연결된 큰 분자로 이뤄진다. 여기서 바로 탄소-탄소 결합의 특성이 문제다.

기존 고분자 가운데 대표격인 폴리에틸렌(-(CH2CH2)n-)을 예로 들어보자. 폴리에틸렌을 구성하는 사슬도 탄소-탄소 결합으로 이뤄진다. 폴리에틸렌과 같은 고분자로 이뤄진 일반 플라스틱이 자연에 폐기됐을 때, 이들을 분해하는 대표적인 분해자는 미생물과 물, 그리고 빛이다. 고분자의 탄소-탄소 사슬은 미생물도 거들떠보지 않고 물에 의해서도 분해되지 않는다. 대신 강한 자외선을 오랫동안 쪼이면 끊어진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폴리에틸렌과 같은 고분자가 분해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런 고분자 폐기물 하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위해서는 수십년에서 1백년 이상까지도 소요된다.

그렇다면 사용 후에 빠르고 안전하게 분해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는 없을까. 최근 이런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고분자들이 등장했다. 환경친화성 고분자(eco-friendly polymer) 또는 생분해성 고분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환경친화성 고분자란 미생물이나 물에 의해 쉽게 분해되고, 짧게는 한달에서 수년 이내에 완전히 분해되는 고분자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전분이나 게의 껍질에서 얻는 키토산과 같은 천연 고분자와, 젖산으로부터 얻어지는 합성 고분자로 분류된다.

환경친화성 고분자는 어떻게 분해되는 것일까. 환경친화성 고분자 중에서 천연 고분자와 합성 고분자의 분해 방식이 틀리다. 먼저 천연 고분자의 예로 전분을 생각해보자. 전분은 옥수수, 감자 등 곡물에서 쉽게 얻는 성분인데, 탄소, 수소, 산소로 구성된 6각형 구조를 갖는 고분자다.

6각형 구조에서 바로 산소가 연결된 부분이 토양에 흔한 미생물이 분비하는 효소에 의해 쉽게 끊어지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미생물이 전분을 분해해 영양소로 섭취하는 것이다.

반면 환경친화성 합성 고분자는 다른 방법으로 분해된다. 대표적인 환경친화성 합성 고분자인 폴리카프로락톤을 예로 들어보자. 폴리카프로락톤 고분자 사슬 사이에는 에스테르 결합이 존재한다. 바로 이 에스테르 결합이 물에 의해 쉽게 끊어진다(그림1).
이를 가수 분해라고 한다. 폴리카프로락톤이 완전히 분해되는데는 1년에서 3년 정도 걸린다.
 

(그림1) 생분해성 고분자가 분해되는 원리


분해되는 비닐?
 

생분해성 고분자 캡슐인 미립구.


환경친화성 고분자에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있다. 즉 천연 고분자의 경우 일반적인 플라스틱 제품으로 사용되기에 강도와 같은 특성이 부족하고, 합성 고분자는 기존에 사용되는 고분자들에 비해 값이 비싼 단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이들보다 더 좋은 특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진행되고 있다.

환경친화성 고분자의 특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연구는 크게 세가지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천연 고분자와 합성 고분자를 섞어서 물성을 좋게 하는 방법이고, 또다른 하나는 천연 고분자에 화학적인 처리를 해서 특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세번째 방법이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합성 고분자를 합성하는 공정을 기존보다 더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국제적으로는 천연 고분자와 합성 고분자를 이용한 새로운 재료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회사인 다우, 카길, 유니언카바이드에서는 폴리카프로락톤을 비롯한 폴리락틱산, 폴리글리콜릭산 등의 생분해성 고분자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연구실에서도 향상된 특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고분자의 합성과 더불어 대량 생산을 위해 연구중이다.

현재 쓰레기 봉투와 같은 비닐 봉투에 ‘분해되는 비닐’이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비닐이 실제로 완전히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분과 폴리에틸렌을 섞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분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생분해성 고분자인 반면, 폴리에틸렌은 분해되기 힘든 일반 고분자다. 따라서 이 비닐이 토양에 버려지면 전분 성분은 완전히 분해되지만, 폴리에틸렌은 그렇지 못하다. 단지 이런 비닐이 분해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닐에서 전분 성분이 완전히 분해될 때 쓰레기 형태가 없어지고 부피가 줄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고분자 캡슐

이제 시선을 돌려 생분해성 고분자가 우리 인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사용되는 현장을 살펴보자. 최근 TV 광고를 보면, 대부분의 유산균 음료가 ‘장까지 살아서 간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유산균을 고분자 캡슐로 감싸 장에 도달하기 전에 유산균이 활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생분해성 고분자가 우리 인체내를 여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와 비슷한 또다른 예로는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도록 우유를 캡슐에 넣은 음료수, 빛이나 열에 약한 비타민C를 캡슐에 넣어 피부 모공에 흡수되는 정도를 향상시킨 화장품, 그리고 약하고 빨리 사라지는 항암제에 적용하는 주사약 효과 지속제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재료는 인체나 동물에 사용되기 때문에 생체내에서 부작용없이 안정해야 한다. 이런 특성을 생체 적합성이라 부른다. 생체 적합성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체 적합성은 어떤 물질이 몸안에 들어갔을 때 특이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특성이다. 의료 분야에서 생체 적합성을 가진 물질이라 하면 인체에 독성이나 상해를 입히지 않고 특정기능을 수행하는 물질로 정의한다. 따라서 생체에 적합하다는 말은 캡슐 제조에 어떤 재료가 사용되는가가 관건이다.

젖산과 같이 몸안에 있는 물질로 캡슐이 제조된다면 인체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최소한 체내에서 분해되는 물질 자체가 몸에 독성만 나타내지 않으면 된다. 예를 들어 여성의 유방 확대 수술에 사용되는 실리콘은 보통 몸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생분해성은 아니지만 생체 적합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위와 장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신

유산균 음료를 예로 들어 인체내에서 생분해성 고분자의 역할을 살펴보자. 유산균 음료와 같은 음식물을 입으로 섭취하면 음식물은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과 대장을 차례로 거친 후 배설된다. 특히 위는 살균과 소화가 활발히 일어나는 기관이다. 위 안의 환경이 산도(pH)가 2 정도로 매우 강한 산성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산균은 위에서 활성을 잃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장에서 유산균 흡수를 증진시키기 위해 생체 적합성 고분자(생분해성이며 인체에 무해한 고분자)로 유산균을 감싼다. 그러면 안전하게 위를 통과한 후, 장에 도달하게 되고 생체 적합성 고분자가 분해돼 유산균이 방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생분해성 고분자 캡슐이 보호막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로부터 생분해성 고분자가 다양한 의료용으로 응용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최근 생명과학 분야의 발달로 만들어진 항암제, AIDS 치료제, 치매 치료제 등 새로운 약을 필요한 기관에서만 작용하게 하는 데에도 생분해성 고분자가 보호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가지 예가 대표적이다. 첫번째는 미립구라 불리는 캡슐의 재료로 생분해성 고분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생분해성 고분자로 제조한 캡슐에 감싼 항암제와 같은 약물을 먹거나 주사하면 캡슐에 보호된 약은 원하는 위치까지 안전하게 도달하고, 일정한 양이 꾸준히 방출됨으로써 장시간 동안 약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약을 감싸는 캡슐 고분자가 분해되는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는 서서히 분해가 진행되면서 위를 통과하고 장에서 완전히 분해가 끝나 약이 나오는 방법도 있다.

두번째는 생분해성 고분자로 만들어진 주사약 효과 지속제를 첨가해 항암제와 같은 약을 원하는 위치에 주사하는 경우다. 주사할 때는 상태가 액체인데, 몸안에 들어가면서 온도 36℃에서 굳어져 약 주위를 생분해성 고분자가 감싸게 된다. 이때는 동그란 미립구 모양이 아니고, 건포도빵에 비유하자면 생분해성 고분자에 약이 건포도처럼 분포된 모습이다. 그리고 생분해성 고분자가 시간에 따라 분해되면서 약물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방출된다. 생분해성 고분자로 이뤄진 주사약 효과 지속제는 미립구와는 달리 액체로 주사를 할 수 있어 편리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이렇게 사용되는 새로운 고분자 재료가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온도나 산성도에 따라 크기가 바뀌는 고분자 캡슐을 만들 수 있는 고분자도 등장했다. 예를 들어 카르복실산을 다량 함유한 셀루로오스와 같은 다당류 천연 고분자는 강한 산성에서는 수축하면서 물과 효소의 침투를 억제해 위에서는 형태를 유지한다. 반면 물의 흡수가 일어나는 장에서는 팽창해 약을 방출한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단백질 약물을 한달 동안 효율적으로 방출할 수 있는 고분자 캡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기존의 캡슐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단백질 약물을 100% 방출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개발했고, 계속해서 항암제의 특성을 향상시키는 캡슐 제조에 전념하고 있다.

인공장기를 키우는 틀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으로도 생분해성 고분자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다양하고 깊숙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실감할 것이다. 그러나 생분해성 고분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방법이 한가지 더 남아있다. 생분해성 고분자가 인간의 세포를 키울 수 있는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54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신장을 이식하는데 성공한 이후 장기이식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장기 부족 문제, 이식의 어려움, 고가의 비용, 면역 항체 반응, 발암 가능성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방법은 필요한 당사자의 세포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장기를 제조하고 이것을 이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환자 당사자의 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장기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인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환자 당사자의 세포를 이용해 인공장기를 제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열쇠는 생체 적합성을 갖는 생분해성 고분자가 갖고 있다.

먼저 생분해성 고분자를, 이식할 장기와 비슷한 크기와 모양으로 제조한다. 이 틀은 세포들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큰 구멍들이 서로 연결돼 있는 다공성 형태다. 이 틀에 환자의 세포를 약간 떼어내 배양액에서 키운다. 세포들은 점차 자라고, 틀을 이루던 생분해성 고분자는 분해돼 점차 사라진다. 최종적으로는 인간 내부의 기관과 같은 형태의 장기를 얻을 수 있다.(그림2)
 

(그림2) 인공귀를 키우는 방법(그림2) 인공귀를 키우는 방법


이런 기술은 이식가능한 장기의 범위를 더 넓혀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선천적으로 귓바퀴가 없이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다. 이 경우 생분해성 고분자를 귀의 형태로 만들고 여기에 사람의 세포(체세포)를 조금 떼어내 키우면, 시간이 지나 틀을 유지하던 생분해성 고분자는 분해되고 그곳에 귀의 형태를 가진 세포들이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귀를 다시 아기에게 이식하면 정상인의 귀와 똑같이 복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분해성 고분자를 인공장기를 키우는 틀로 사용하면, 간, 귀, 대장, 신경체계 등 다양한 기관을 만들 수 있고, 선천적인 인체와 동일하게 완벽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생분해성 고분자를 틀로 이용해 장기를 제조하는 기술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또한 인간 복제를 통한 장기 이식에서 나타나는 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지 않으므로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 하겠다.

생분해성 고분자의 등장으로 인류에 의한,인류를 위한, 인간 친화적인 재료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시작됐고, 하루가 다르게 그 제조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이런 고분자가 사용된 제품들을 일상생활에서 친숙하게 사용할 것이며, 더욱 새롭고 다양한 분야로 응용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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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조국영 박사과정
  • 박정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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