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줄기세포 어디서 얻어야 하나. 최근 발표된 생명윤리기본법안에서 '줄기세포'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법안에서는 냉동배아를 통한 배아줄기세포와 몸안에 있는 성체출기세포 연구만 허용했다. 그런데 연구 범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줄기세포가 과연 무엇이길래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5월 18일 생명윤리자문위원회(위원장 진교훈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과 교수)에서 발표한 생명윤리기본법안은 인간배아를 통해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 중에서 생배아와 복제배아를 완전히 금지하고 냉동배아만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더욱이 냉동배아에 대한 연구도 심사를 거쳐 감독받도록 돼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난치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추세에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줄기세포(간세포, stem cell)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의 근간이 되는 세포다. 줄기세포에는 인간배아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혈구세포를 끊임없이 만드는 골수세포와 같은 ‘성체줄기세포’가 있다.
인간으로 발생하는 세포
배아줄기세포에서 배아(embryo)는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된 수정란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수정된 후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가 마무리되는 8주까지 단계를 가리킨다. 배아는 약 5-7일 동안 세포분열을 거쳐 1백-2백여개의 세포로 구성된 배반포기배아(blastocyst)로 발생돼 자궁에 착상한다. 착상이 이뤄진 배아는 계속해서 세포분열과 분화 과정을 통해 인간 개체로 발생하게 된다.
배아줄기세포는 착상 직전 배반포기배아나 임신 8-12주 사이에서 유산된 태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말한다. 배아줄기세포는 분열은 활발하지만 아직 분화하지 않은 세포라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인간으로 발생하는 세포이기 때문에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실을 이용해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는 미래 의학의 핵심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성체줄기세포의 경우에는 정해진 방향으로만 분화하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골수세포는 혈액을 구성하는 백혈구나 적혈구 세포가 된다. 그런데 최근 골수세포나 아기가 출생할 때 탯줄에 존재하는 조혈모세포나 체지방 세포가 신경이나 근육과 같은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가능성도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는 채취하기 어렵고 채취되는 줄기세포의 양이 매우 적다. 또한 실험실에서 배양을 통해 증식을 유도하는 기술이 아직 개발돼 있지 않다.
반면 배아줄기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2백10여종의 모든 세포나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한 만능 세포다. 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 무한대로 증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적은 양의 배아줄기세포도 수를 쉽게 늘릴 수 있어 이용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의 재료는 인간의 생명세포인 배아이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배아를 통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1998년 11월 미국의 톰슨과 기어하트 연구팀에 의해 배아줄기세포 생산이 최초로 보고된 것이다. 그러나 잠재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일부 국가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추진되거나 준비중에 있다.
폐기될 운명의 냉동배아 사용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착상전 단계의 배아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이 있다. 바로 생명윤리기본법안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냉동배아를 통해 얻는 방법이다.
시험관아기와 같은 불임치료 시술을 할 경우 불임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수술도 필요하다. 더욱이 시험관아기 시술의 임신성공률은 30% 정도로 높지 않기 때문에 넉넉한 수의 난자를 채취한다. 일반적으로 호르몬을 사용해 환자의 난소를 자극하는데 한번에 약 10개 정도의 난자를 채취한다. 채취된 난자는 남편의 정자를 이용해 수정시키는데, 약 80% 정도가 수정에 성공한다.
수정된 난자 즉 배아는 3-5일간 여성의 자궁과 같은 조건을 갖춘 배양기에서 배양해 발생을 유도한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2-3개의 배아만 선택해 환자의 자궁에 이식해 임신을 유도하는데 사용된다. 남은 배아는 영하 1백96℃의 초저온에서 냉동 보관된다. 바로 냉동배아다.
임신에 실패한 환자의 경우 냉동배아를 이용해 다시 임신을 시도하지만, 성공한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이때 냉동배아의 운명은 환자의 결정에 달려있다. 냉동보존을 계속해 둘째 아기 임신을 위해 사용될 수 있지만, 환자의 동의로 폐기되는 배아도 있다.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이용되는 배아는 냉동보존되다가 폐기되는 배아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시험관아기 시술과정에서 냉동보존하지 않은 배아(생배아)를 바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윤리적 문제가 크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폐기될 운명의 냉동배아에서 어떻게 줄기세포를 얻는 것일까. 우선 영하 1백96℃의 냉동상태에서 37℃로 해동해 착상전 단계까지 배양한다.
착상전 배아는 태반이나 태막이 되는 영양배엽세포와 인체가 되는 내부세포덩어리 두가지 세포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내부세포덩어리만을 분리한 다음 이를 특수한 배양조건에서 배양하면 세포의 증식만 일어나고 분화가 되지 않은 세포가 된다. 이것이 바로 배아줄기세포다. 마리아병원 기초의학연구소와 필자가 속한 연구소에서 폐기될 처지에 있던 냉동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윤리적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체세포복제기술도 동원돼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또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위해 유산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태아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자궁외임신처럼 비정상적인 임신의 경우에는 환자를 위해 유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유산되는 태아는 임신 8-12주 정도 지난 것이다. 이미 많은 발생과정을 거친 후기배아로 인체 대부분의 기관이 형성된 상태다. 이 중에서 생식기 발생을 담당하는 원시생식세포를 분리해 역시 특수한 배양과정을 거치면 배아줄기세포가 만들어진다. 이번 법안에서도 허용됐는데,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한 제3의 방법으로 체세포복제를 이용하는 길도 있다. 바로 널리 알려진 인간배아복제다. 이 방법은 복제양 돌리와 같은 복제동물을 생산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환자의 귀나 피부에서 소량의 조직을 채취하고 효소를 처리해 체세포를 분리한다. 이 체세포에 가는 유리관을 넣어 핵을 뽑아낸다. 그리고 시험관아기 시술과정에서 채취한 난자의 핵을 제거한 다음 체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넣어준다. 전기·화학적 자극을 주면 배아가 만들어진다.
이 경우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의해 수정된 배아가 아니고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만든 새로운 복제배아다. 일단 복제배아는 배양과정을 통해 착상전 단계의 배아까지 발생시킨다. 그리고 착상전 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배아줄기세포를 만든다. 복제배아는 복제기술을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대량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목받는 방법이다.
최근 미국 ACT라는 생명공학회사의 호세 시벨리 연구팀이 소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를 넣어 배아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크지만, 의미있는 연구결과다.
10대 과학 업적 중 하나
그동안 의학분야에 커다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품이나 수술 이외에는 별다른 질병치료기술이 없었다. 현재에도 많은 난치병, 불치병이 존재하고 새로운 질병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21세기의 의학은 궁극적으로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 위주로 연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의학연구에는 질병에 걸린 세포를 새로운 건강한 세포로 바꿔주는 세포대체요법이나 조직·장기를 만들어 이식하는 방법, 그리고 유전자치료법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노인성 치매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질환은 신경세포가 재생되지 않아 치료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신경세포를 만들어 이식하는 방법 외에는 치료법이 없다. 또한 당뇨병, 심장병, 간염이나 간암과 같은 난치병 환자는 췌장세포, 심장세포, 간세포를 만들어 이식하는 방법을 통해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화상치료에는 피부세포, 퇴행성관절염에는 연골세포, 백혈병이나 악성빈혈에는 조혈모세포를 만들어 이식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이와 같은 세포대체요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핵심기술이 배아줄기세포 연구다.
특히 인간유전자지도가 완성됨에 따라 배아줄기세포가 여러가지 세포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유전자의 기능을 해석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도 알 수 있어 획기적인 질병 치료기술의 개발도 병행할 수 있다.
또한 배아줄기세포는 신약개발에도 도움을 준다. 신약이 될 수 있는 후보약물에 대해서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만든 특정세포를 사용해 약물의 효능이나 부작용을 쉽고 정확하게 알아 볼 수 있다.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개발된지 불과 2년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위대한 10대 과학발견 업적’ 중에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질병 치료의 효과 주목해야
현재까지 인간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가 갖는 엄청난 효과에 대해서 모든 의학자들이 인정하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연구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의 생명세포를 이용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복제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개체복제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거나 출생하는 아기의 탯줄 혈액을 이용해 또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시험관아기 시술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돼야 하는 냉동배아와, 유산할 수밖에 없는 배아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연구는 앞으로 인류의 질병에 대한 근원적 치료법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이해돼야 한다.
또한 체세포복제를 이용한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는 장기를 이식할 때 일어나는 면역거부반응과 같은 부작용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인간복제를 철저히 막을 수 있는 국가적 통제가 이뤄진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임상적 치료방법의 성과가 보고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역시 머지 않아 이런 연구성과가 나올 것이고 이를위해서 많은 국가적, 사회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과학전문지‘사이언스’에서 인간 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있다.‘ 유사이래 한가지 세포를 이용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인간 배아 줄기세포다.’